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55)
제455화
#455. 영 거슬리네.
강무혁은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연맹 임무 일부를 이글스와 공유했다.
이글스는 강무혁이 연맹과 연관된 또 다른 일을 맡았음을 알려왔다.
졸지에 처음 맡았던 안내와 가드 외에 수색과 구출이라는 임무가 추가되었으나 이글스는 기분 나빠하거나 곤란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대공의 의뢰 자체가 단장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었으니 상관없습니다. 일이 몇 개가 추가되든 값은 이미 치렀고, 계약 기간을 넘긴 일에 대해선 추가 비용도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무혁은 에도아르도가 용병대에 명확한 의뢰 내용을 정하지 않은 데 대해 살짝 감탄했다.
이는 말 그대로 강무혁이 마음껏 부려도 되는 사설 무력 단체를 손에 쥔 셈이니까.
다시 한번 에도아르도의 배려에 감사하며 강무혁은 알렉스를 만나기 위해 호텔을 떠나려 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이글스가 호텔 밖에 대기하고 있던 가드 파티를 불러 따라나서려 했지만, 강무혁은 이를 거절했다.
연맹의 모로코 지부는 사실상 안가 역할을 했기에 용병대에 위치를 공개할 수 없었다.
“당장 호위는 여기 토마스 헌터면 충분합니다.”
“이 사람, 혼자요?”
이글스는 비실비실해 보이는 토마스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머리가 백발이라는 것 외엔 평범해 보이는 남자.
마법사라는 걸 듣긴 했으나 마법사라고 전부 토마스처럼 약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
몬스터와 부대끼는 게 일상인 헌터의 특성상 마법사도 강인한 근육과 힘을 갖춘 경우가 상당했다.
실제로 대전쟁 때 호주를 가라앉힐 뻔했던 대괴수 리바이어던을 봉인한 마법사도 맨손으로 트롤 하나쯤은 가볍게 찢어 죽였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차라리 현정건이라 불리는 인상이 안 좋은 남자가 호위로는 최소 100배 더 나을 듯했다.
“저희가 가까이 붙는 게 정 불편하시면 거리를 두고 호위하겠습니다.”
“아니요. 토마스 헌터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지금 가려는 곳이 좀 민감한 장소라서 외부인은 그리 반기지 않을 겁니다.”
이글스는 강무혁의 목적지가 연맹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외부인? 자신은 외부인이 아니라는 건가?’
강무혁이 꺼리는 낌새를 보아하니 연맹의 주요 거점 방문 혹은 주요 인물을 만나러 가는 길인 것 같았다. 그런 자리라면 마땅히 용병인 자신이 불편하리라.
하지만 용병도 연맹 일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아 그쪽 사람들 프로세스가 어떻게 돌아가는 대충은 알고 있었다.
‘외부인을 만날 때 절대 자기 거점에 사람을 들이지 않지.’
거기까지 떠올리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사람은 뭐지? 뭔데 대공이 직접 의뢰를 넣을 정도로 신경 써주고 연맹과 함께 일을 하는 걸까? 모로코에 연고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
주세아의 등장 이전까지 헌터계에선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한국의 일반인 단장이 아프리카에서 거물들의 지지를 얻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이글스가 생각이 많아 보이자 강무혁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용병대가 놀게 둘 순 없죠.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시켜 두십시오. 전 상당히 악덕 고용주라서 준 만큼 빼먹거든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여기선 준 만큼 일 시키면 그나마 착한 축에 드니까요.”
이글스는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용병이 생각이 많아지면 죽기 마련이었다. 저승사자가 몬스터가 될지, 헌터가 될지, 아군이 될진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입은 무겁고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는 편이 안전했다.
“대공께 받은 의뢰대로 단장님 명령에 따르도록 하죠.”
* * *
강무혁은 토마스를 대동하고 알렉스가 보내온 주소로 갔다. 그곳은 카사블랑카의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유명한 곳이었다.
해변 가까운 언덕에 대저택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지어져 있었다. 언덕 아래로는 헌터들이 지켰다. 카사블랑카에서 유명한 길드가 시큐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토마스는 평화롭게 해변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여긴 나가들이 공격하지 않았나 보군요.”
“아무래도 유럽의 플라잉 씨홀스 전력의 영향력이 닿는 곳이니까요. 그런 대도시를 치는 건 나가들에게도 부담이었을 겁니다. 세력을 키우기 전에 들키면 바로 토벌대가 움직였을 테니까요.”
조수석에서 토마스와 같은 광경을 보고 있던 강무혁이 대답했다.
“하지만 작년 아시아로 오기 전에 유럽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습격하는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땐 왜 공격한 걸까요?”
“제가 나가왕의 생각을 모두 알 순 없지만, 그래도 두 가지 측면에서 추측해 보자면…. 첫 번째는, 자신이 있어서였을 겁니다.”
“자신이요?”
“서아프리카를 잡아먹고 그만한 숫자의 세력을 일궜으니 해볼 만하다 싶었겠죠.”
“그다음은요?”
“두 번째는, 해볼 만하다 싶었는데 막상 싸워보니 만만치가 않았던 거죠. 특히 베네치아 방벽은 넘기 어려웠을 겁니다. 거기에 더해 플라잉 씨홀스를 다루는 각국 수천, 수만의 헌터들이 바다로 몰려오니 홈그라운드에서 고전했겠죠. 어쩌면 해안에서 식량 확보하는 게 어려워진 것 외에도 그 때문에 대규모 이동을 결정했을지도 모르죠.”
“그 성소라는 왕의 보금자리를 떠나면서까지 말이죠?”
토마스는 답을 구하듯 곁눈질로 강무혁을 쳐다봤다. 그는 후계자를 키우는 장소를 버리고 먼 길을 떠난 나가의 행동 패턴에 의문을 가졌다.
강무혁이 침중한 어조로 답했다.
“그게 무서운 겁니다. 몬스터가 그런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는 게.”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차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내 연맹의 지부에 도착했다.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저택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으리으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큰 규모였다. 정문 뒤로 난 길을 따라 목을 빼고 돌아봐도 저택이 안 보일 정도였다.
강무혁은 초인종이 정문 우측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걸 발견하곤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때 토마스가 강무혁을 만류했다.
“트랩이 있습니다. 마법인 것 같군요. 저기요.”
토마스가 가리킨 곳은 초인종 옆의 나무였다. 강무혁도 집중해서 보자 희미한 마나가 인위적으로 뭉쳐 있는 빛이 보였다.
“마나를 볼 수 있음에도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라니. 과연 연맹의 안가답군요.”
“아무리 단장님이라도 저런 건 바로바로 눈치채기 어렵죠. 저야 마법사라서 보기 전에 느낀 것이지만.”
“그럼, 벨을 누르는 것보다 전화를 거는 게 낫겠군요. 마침 받은 번호도 있으니.”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문 안쪽에 헌터가 지키고 있습니다.”
토마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살처럼 문양을 낸 정문 뒤쪽 길가 수풀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검은색 위장복을 입은 그의 몸은 온갖 풀과 꽃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언뜻 보기엔 길리슈트를 흉내 낸 듯 보였다.
강무혁은 그 헌터의 복장에 붙어있는 화초들이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눈치챘다.
‘모두 아이템이다. 그것도 비가공용 아이템들.’
비가공 아이템이란, 제작할 필요 없이 원본 재료 그 자체로 효과를 내기에 따는 아이템을 뜻했다.
헌터의 몸에 두르고 있는 꽃은 향기를 맡는 순간 인지도와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헤드 파피’라는 게이트 자원이었고, 풀은 ‘그림자 먹이’라 불리며 헌터의 기운을 감추는 효과가 있었다.
헌터는 정문에 붙어 차량을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정문을 열며 말했다.
“C004.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토마스는 차량을 정문 안쪽으로 들였다.
정문에서 본채까지 이어지는 길목은 은은한 조명만 비출 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겉으로만 조용하군.’
토마스는 도로 곳곳에 숨어 있는 헌터들을 감지했다. 적이 멋모르고 이 길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될 터였다.
길 양쪽에 펼쳐져 있는 정원도 범상치 않았다. 여기저기에 마나가 담긴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채에 도착하자 알렉스가 현관을 열며 마중을 나왔다.
“커맨더. 잘 오셨습니다. 모로코 지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대놓고 커맨더라 불러주니 어색하네요.”
강무혁은 차에서 내리며 알렉스가 건넨 손을 맞잡았다. 인사나 반가움의 표시라기보다는 강무혁의 지위를 명확히 확인해주는 과정이었다.
“연맹 임무를 맡으셨으니 그게 당연한 겁니다.”
“어째 연맹에 너무 무심하다고 타박하는 것으로 들리는군요.”
“조금은 신경 써주길 부탁드리는 겁니다.”
“미안해서라도 반드시 아일라 님을 찾아야겠군요.”
“아일라 님만 찾아내신다면, 잔소리는 접어두도록 하죠. 자료는 준비해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저택 안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레이븐 헌터도 이곳에 와 있었군요. 한국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일라 님 일이니까요.”
강무혁과 마주친 레이븐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전의 만남과는 다르게 독기가 빠진 눈빛이었다. 아마도 강무혁이 아일라를 찾는 걸 돕겠다니 우호적인 시선을 하고 있는 듯했다.
강무혁은 그가 아일라를 굉장히 소중히 여긴다는 걸 눈치챘다.
‘전에도 느꼈던 거지만, 뭔가 사연이 있는가 보군.’
알렉스도, 레이븐도 아일라를 끔찍이 여겼다.
과장 조금 보태서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것 같았다. 어쩌면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지도 모를 충신이라 할 수 있었다.
아일라와 깊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강무혁으로서는 그녀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사연으로 뭉뚱그려 생각할 뿐이었다.
알렉스가 응접실로 강무혁과 토마스를 안내했고, 레이븐이 조용히 따라붙었다.
응접실에는 다부진 체격에 각진 턱을 지닌 흑인 남자 한 명이 뒷짐을 쥐고 서있었다.
검은색 위장복을 입고 허리 뒤로 날이 짧은 검 두 자루를 서로 교차해 차고 있는 모습은 헌터라기보다 군인에 가까웠다.
강무혁은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유럽에서 지원온 공격대의 책임자임을 알 수 있었다.
서로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직전 알렉스가 나서서 그를 소개했다.
“이쪽은 유럽 지부 그리스 작전팀 팀장인 호크입니다.”
“호크라고 합니다, 커맨더.”
호크라 불린 남자는 입으론 강무혁을 커맨더라고 대우했으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눈동자엔 의심과 무시가 담겨 있었고, 입가엔 조소가 가득했다.
호크가 악수를 청했다. 은은한 마력마저 담긴 인사였다.
강무혁은 그가 어떤 유치한 짓을 할지 짐작하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이를 눈치챈 알렉스가 호크를 만류하려 했다.
“이봐, 호크 팀장. 지금 무슨…….”
그때 토마스가 대신 호크의 손을 맞잡으며 끼어들었다.
“호크라고 하더니 눈도 매 눈인가? 영 거슬리네.”
“넌 뭔……?”
호크는 토마스의 도발에 반응할 수 없었다. 악수한 손바닥에 전해지는 묵직한 압력. 이 호리호리한 동양인의 손아귀 힘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밀리고 있었다. 점차 퍼지는 통증으로 인해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호크가 팔에 핏줄이 불뚝 솟을 정도로 저항했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상대는 단순히 힘으로 누르는 게 아니었다.
‘마나?!’
마나가 그의 팔을 짓이기고 있었다.
토마스가 호크를 바라봤다. 눈엔 무시를, 입가엔 조소를 담고서.
“눈은 상대를 봐 가면서 부라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