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59)
제459화
#459. 물론 저도 우연이길 빕니다.
메두사의 머리가 최종 목적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지도에 눈길이 갔다.
‘강무혁이 어디로 갈지 알려면, 일단 강무혁처럼 생각해야 한다.’
게리 디는 자오커지로부터 얻은 강무혁에 대한 정보를 되새김질하며 그의 행보를 짐작해보려 했다.
‘일단 그가 유럽까지 온 건 플라잉 씨홀스 때문이야. 그 원인은 나가의 대이동 때문이고. 글로리아가 강무혁에게 숙박과 입국 수속 등 모로코에서의 편의를 제공한 건 에도아르도 대공의 입김이 있어서겠지. 왜? 대공이 강무혁과 독대한 이후 이번 협상을 제공했으니까. 그런데 헌터라는 것에 자부심이 강해 신념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는 대공이 헌터도 아닌 자의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그를 만족시킬 무엇인가가 강무혁에게 있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일까?
게리 디는 메두사의 머리에 그 해답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직감이 이미 여길 가리키고 있었던 건가?’
게리 디는 헛웃음을 지었다. 직감이 말했다. 강무혁이 메두사의 머리로 향할 것이라고.
어느새 그는 강무혁이 메두사의 머리로 갈 것이라고 납득할 이유를 억지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도 확실하게 해야겠지.”
게리 디는 라바트의 동쪽 도시 두 군데를 짚었다.
‘메크네스’와 ‘페스’라는 이름의 도시.
“이 두 곳에도 연락해 둬. 도시 경비대에 돈 좀 쥐여 주고 강무혁 사진 돌려. 그가 이곳을 지나칠지 확인하도록 해. 일단 우리도 출발한다.”
“차량 준비하겠습니다.”
“차량? 그걸로 어느 세월에 강무혁을 쫓아가나?
“그럼, 어떻게…….”
“우리 비행기는 무슨 고철로 팔아먹었나? 당연히 빠른 걸 타고 가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마침 라바트 시위가 끝날 기미를 보인다니까. 그쪽 공항에 미리 연락해 차량을…….”
“이런 멍청한 자식을 봤나? 라바트로 가도 착륙하고 짐 내리고 나면, 시간상 강무혁 꽁무니다. 가려면 앞서가야지.”
“그럼, 어디로……?”
“여기. 페스-사이스 공항으로 간다. 강무혁이 지중해로 향하건, 대서양으로 가건, 라바트를 우회하려면 메크네스를 지나겠지. 우린 페스에서 메크네스로 간다. 아마 시간상 얼추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다.”
* * *
사카모토 타츠야가 탄 여객기는 일본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은 하늘에 떠 있었다.
그는 이번 이탈리아 임무를 복기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강무혁이 주도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군. 문제는 협상 전까지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야.’
에도아르도 아스부르고에스테 대공과의 독대.
그 누가 S랭크 헌터를 찾아 설득할 생각을 할까?
주세아라도 있었다면, 그 뒷배를 믿고 시도해봄 직한 일이었으나 S랭크가 S랭크를 찾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그 적은 만남 중 9할이 목숨 걸고 싸울 때에나 성사되는 자리이니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계획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키신 타케루 공에게 대공을 만나길 청했다면, 그건 나에 대한 신뢰 문제 이전에 불손한 언사가 될 일이다.’
그건 자오커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비원쥔에게 에도아르도를 만나달라고 청했다면, 바로 목이 잘렸으리라.
황룡 길드에서 퇴단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머리 없는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 일이었다.
그만큼 S랭크 대 S랭크의 만남은 어떤 일이 터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헌터라는 자들 자체가 양보라는 걸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들인데, 헌터 중 최고라는 인간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S랭크 본인들도 동맹 관계가 아닌 이상 대부분이 만남을 꺼렸다.
‘그런데 강무혁은 그걸 해냈어. 주세아 없이, 헌터도 아닌 자가.’
오히려 헌터가 아니기에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없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걸까?
실패하면 멍청이지만, 성공했기에 찬사를 받아 마땅한 도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타츠야는 전문 협상가로서 강무혁을 존경했다.
‘존경은 존경이고. 적수는 적수지.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다. 키신 공과 주세아는 물과 기름이고. 앞으로 부딪힐 일이 많을 거야.’
이를 대비하려면 강무혁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베네치아에서 저녁 자리를 마련했으나 만찬은 민숭민숭하게 끝나 버렸다.
강무혁이 뭔가 알아낼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듯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릴 떠났었다. 술을 못 마신다는 핑계를 대고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협상가가, 단장이 술을 못 마신다? 그건 말이 안 되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이쪽 세계 인간관계에서 술이 빠지고선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분명 자릴 피하려는 변명이었을 거야.’
아쉽게도 타츠야 역시 다음날 일정이 있어서 강무혁을 따로 만나지 못했다.
마침 강무혁도 급히 베네치아를 떠났다고 들은 터라 타츠야는 이왕 유럽에 온 김에 하루를 더 머물며 이탈리아 인맥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게다가 그가 정작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자오커지의 행보도 이상해. 왜 아프리카에 갔지?’
전부터 중국 길드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다국적 길드와 협력관계에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당장 중국에 급한 건 나가 관련 이슈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일을 볼 여유가 없었다.
“이것도 파올로를 통해 알아봐야겠군. 글로리아가 아프리카에 연줄이 있을 테니까.”
타츠야는 이번 이탈리아의 성과를 단순히 플라잉 씨홀스 수입 성공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파올로와 같은 대형 길드의 인사와 관계를 돈독히 한 것에 의미를 둘 만했다.
“생각난 김에 메시지나 보내 둘까?”
퍼스트 클래스였기에 이용 가능한 와이파이로 파올로에게 연락해둔 타츠야는 착륙까지 남은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휴식을 취하고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그는 파올로로부터 받은 메시지에 공항을 떠나지 못했다.
“자오커지만이 아니라 강무혁도? 한국이 아닌 아프리카에 갔다고?”
타츠야는 감히 키신에게 이번 협상의 성과를 보고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두 국가가 동시에 아프리카를 찾았다는 것.
거기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걸 키신 공이 알게 된다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두 국가, 특히 한국 쪽 협상단이 왜 아프리카로 갔는지조차 모르는 무능한 놈으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전혀 근거 없는 얘긴 아니야. 내 전임자 역시 한국 공작에서 실수 한 번 한 것 때문에 한직으로 밀려났지.’
각성했으나 헌터로서의 재능이 일천해 출세 수단으로 협상가의 길을 택한 타츠야에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는 짐을 찾아 입국장을 나오기 무섭게 출국장을 찾았다.
“모로코행 티켓. 가장 빠른 편으로.”
* * *
라바트를 우회해 북부로 난 고속도로를 이용하려 했던 강무혁은 메크네스에 도착하면서 곤란한 상황을 맞이했다.
“메크네스에서 시작하는 고속도로가 통제됐답니다.”
이글스는 스마트폰에 뜬 뉴스를 보이며 말했다.
강무혁은 그에게서 스마트폰을 받아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는 시위대와의 협상에 끝까지 반대한 무정부주의자 일당이 메크네스로 흘러들어와 이들의 스페인 망명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로를 봉쇄했다고 쓰여 있었다.
“거짓말이군요.”
강무혁은 단번에 기사의 허실을 파악하며 스마트폰을 되돌려줬다.
“거짓말이요?”
“시위대와 왕실의 협상은 이제 막 이뤄졌습니다. 우리가 라바트를 지나치기 전까지도 언론에선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죠.”
“물밑교섭이 있었을 수도 있잖습니까?”
“물밑으로라도 얘기가 오갔더라면 뭔가 대외 활동에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전쟁 중에도 협상 중에 전투를 멈춘다든가, 아니면 유리한 고지를 얻기 위해 더욱 격렬히 싸운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황들만 뉴스에 나오고 있지 않았습니까? 마치 갑자기 만들어진 협상 자리처럼요.”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부족합니다.”
“협상 내용도 이상하죠. 아까 봤던 다른 기사 내용을 보면 왕실이 크게 양보한 협상이었습니다. 이글스 헌터가 보기엔 어떻습니까? 알라위 왕가가 그렇게 머리 숙이고 들어가는 경우를 봤습니까?”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에 이력이 난 이글스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현 국왕은 자존심만큼 고집도 센 사람입니다. 그나마 상식이 있고 유럽의 눈치를 보느라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진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항상 양보를 받는 입장이었죠.”
“그렇다면 상황이 재밌어지는군요. 양보도 모르고, 자존심 강하고, 힘도 센 헌터 출신 국왕이 시위대에 유리한 방식으로 재빠르게 협상을 마무리 짓고 갑자기 언급도 없던 무정부주의자들을 언급하며 메크네스에서 시작되는 북부 고속도로를 봉쇄했다는 거군요. 무정부주의자들이 아무리 빨라도 그 협상 발표 훨씬 전에 라바트를 지나온 저희보다 빠르진 않았을 텐데 말이죠. 거기다가 라바트 인근 공항은 아직 봉쇄돼 있을 테고 말이죠.”
이글스는 들을수록 강무혁의 의견에 마음이 기울었다.
이때 강무혁이 간단히 정리해 말했다.
“이건 숫제 빠르게 시위를 끝내려는 의도로밖에 풀이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자 이글스는 의문이 들었다.
‘이 사람이 진짜 봉쇄 이유를 모를까?’
상식적으로는 모르는 게 맞았다.
강무혁은 모로코 왕실에 연줄도 없을 테고, 이곳에 정보 라인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이는 에도아르도라도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고선 알아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대공과 글로리아가 나서더라도 폐쇄적인 모로코 왕실의 결정을 알긴 힘들어.’
그런데 이글스는 자꾸만 강무혁이 이번 일에 이상을 감지한 것처럼 그 내막도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속내를 눈치챈 듯 강무혁이 입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메크네스의 고속도로는 메두사의 머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죠.”
“그 말은 혹시… 왕실이 그쪽에 뭔가…….”
이글스는 나쁜 예감에 끝까지 말을 뱉지 못하고 사색이 되었다.
강무혁이 메두사의 머리로 가려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걸 일부러 막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은 이번 일과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혹은 방관했다든지.
“너, 너무 과한 상상입니다. 만약 이게 진짜라면, 이건 거의 유럽에 대한 테러…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물론 저도 우연이길 빕니다.”
“…….”
이글스는 용병대로서 나섰던 최악의 임무를 떠올렸다.
게이트가 터진 탓에 몬스터가 떼거리로 튀어나왔던 남아프리카의 한복판 마을에서 사람들을 지키며 버텨내던 그때.
‘그땐 정말 죽는 줄 알았지.’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한 오한이 등줄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래. 아닐 거야. 강무혁 이 사람은 지금 모든 일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어. 나쁜 상황은 전부 자신의 임무에 방해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물론 몬스터와 헌터를 상대하는 전장에선 비관론자일수록 더욱 생존확률이 높았다. 모든 걸 의심하고 조심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이건 너무 나간 추측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황만을 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본다.
비관론자 이전에 망상병 환자로 봐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강무혁은 이글스가 미심쩍어하는 눈초리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딱히 자기변호를 하진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느라 바빴다.
‘정말 우연이 기가 막히게 겹쳐서 생겨난 사건이었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메두사의 머리에서 모로코 왕실근위대를 맞닥뜨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언제는 이 바닥에서 예고 없는 음모가 있었던가?’
예상 못 한 시기에, 뜬금없는 인물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그게 바로 음모의 전조라 할 수 있었다.
강무혁은 확실히 비관론자였다.
비관론자는 항상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메크네스는 포기합니다. 페스로 갑시다. 그곳은 도로 한두 군데 막는다고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