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2)
52.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겠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강무혁의 추궁에 이정민은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주동자가 있었군요.”
“그 녀석이 누구야?”
주세아가 얼굴을 들이밀며 캐물었다. 이정민은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더니 벌어지던 입을 손바닥을 틀어막곤 고개를 도리질 쳤다.
“제 입으로 말 못 합니다.”
“역시 헌터는 랭크 상관없이 말로 듣는 족속들이 아니라니까.”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듯 주세아가 주먹을 들이밀었다. 짐짓 협박하는 척 연기하는 것이었지만, 몰릴 대로 몰린 이정민에겐 그걸 구분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끝내 말하진 않았다.
“제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제가 누설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끝장이라고요.”
“여기 불려 온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의심받을걸?”
표범희의 지적에 이정민은 거의 울 듯이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강무혁이 그를 진정시켰다.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 가는 사람이 몇 있으니까. 대신 하나만 더 묻죠. 타이탄에서 그에게 어떤 말을 전했습니까? 휴가자 외에 길드 밖으로 나간 이가 없으니 뭔가 쪽지라도 남겼을 것 같은데. 아니면 말로 전달했습니까?”
“…….”
“이조차 입을 열지 않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이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요. 편지입니다. 물론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봉인되어서 뜯으면 티가 나게 되어 있는 아이템을 썼거든요.”
이정민은 혹시나 트집이라도 잡힐까 싶어 급히 말을 덧붙였다.
‘봉인지 아이템을 써서까지 극비로 편지를 전했다는 건 전령으로 쓸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야. 믿을 사람이 없다는 건 일이 급히 진행돼서 충분히 교류할 시간이 없었다는 뜻일 거고. 마태수 부길마의 신변에 변화가 생긴 것도 근래 일이니 미리 준비하긴 더더욱 어려웠겠지.’
특활 구역이라 통화도 제한된 상태에서 글자 몇 자 적어선 사전 교류도 없이 주동자의 마음을 잡긴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길드를 배신할 만큼 간담이 큰 높은 랭크의 헌터가 믿는 구석 없이 일을 벌일 정도로 어리석진 않을 터.
강무혁은 께름칙한 부분을 확인하려 재차 물었다.
“혹 편지 말고 다른 건 없었습니까? 따로 전하는 말이라든지, 물건이라든지.”
“다른 건 없었…. 아? 그러고 보니 저희끼리 하던 대화 중에, 그러니까 휴가 복귀자들이요. 하여간 그중에 타이탄으로부터 다른 걸 받은 단원이 있다는 소릴 듣긴 했었습니다.”
“다른 단원 누구요? 어떤 물건이죠?”
“흘려들은 거라 누군지는 모르겠고, 아마 마나석이었던 것 같은데…. 아! 중급 마나석 2개인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중급 마나석을 2개나?”
주세아가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중급이면 상당히 값어치 나가는 물건이었다. 이정민은 이번에도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냉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은 받지 못한 계약금 대신인가 싶어 따져 물었다가 알게 됐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 물건이 아니라 편지를 들고 찾아온 사람에게 건네라는 물건이라고요. 그래서 아쉬웠다는 소릴 들었답니다.”
“중급 마나석이 비싸긴 하지만, 혹할 정도의 물건은 아닌데. 흠, 계약금 같은 건가?”
“아니요. 대가로 주는 물건이 아닙니다.”
주세아의 물음에 강무혁이 대신 답했다.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뭔가 짐작이 가는 표정이었다.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
“일단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어떤 걸요?‘
“장비실입니다.”
* * *
전략전술 물자창고.
강무혁이 타이탄으로부터 C창고를 인수해서 새롭게 바꾼 명칭이었다.
줄여서 편하게 장비실이라고 하지만, 문서엔 정식 부서명으로 적혀 있었다.
장비실로 가는 도중에 주세아가 물었다.
“장비실엔 왜 가는 거죠?”
“중급 마나석 때문입니다.”
“마나석?”
“제가 이정민 헌터의 말을 듣고 의문이 든 건 어떻게 타이탄과 내부자가 소통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특활지의 특성상 외부와 통화하기 어려우니까요. 제가 의심하는 내부자 목록에 있던 사람들은 아직 휴가를 나간 적이 없었거든요.”
“하긴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런데 중급 마나석이란 단서가 나온 순간 퍼뜩 떠오르는 게 있더군요.”
“그게 뭔데요?”
“예전에 제가 타이탄에 있을 때 C창고에서 개발을 승인했던 장비입니다. 효율이 극심하게 떨어져 거의 폐기 수준으로 봉인해 놨었는데…….”
“어떤 장비길래?”
“위성 전화기입니다. 차량 엔진 보호 카트리지와 같이 고농도 마나 지역에서 통신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녀석이죠. 대신 5분 통화에 중급 마나석 하나를 갉아먹는 물건입니다.”
주세아는 5분 사용에 중급 마나석 하나라는 극강의 낭비에 경악했다. 전에 몸담았던 슬레이어 길드도 함부로 쓰기 부담되는 비용이었다.
발길을 재촉하자 금세 장비실에 도착했다.
장비팀을 총괄하는 안지일은 녹슨 장비들을 정비하다 강무혁을 보곤 일을 멈췄다.
“레이드도 없을 텐데, 이 누추한 장비실엔 어쩐 일인가? 어라, 길마님도 오셨고…. 표 팀장에, 염 팀장까지? 진짜 뭔 일 났나?”
“위성 전화기를 지금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 돈 먹는 물건을 왜?”
“확인할 게 있어서요. 출납 대장도 좀 부탁드립니다.”
“잠깐만 있어 봐. 이봐, 거기 출납지 가져오고, 그쪽은…. 아니다. 장비는 내가 찾는 게 빠르겠다.”
강무혁이 장비 출납 대장을 받아 확인하던 중 안지일이 물건을 들고나왔다. 일반적인 위성 전화기보다도 몇 배는 더 큰 전화기였는데, 그걸 든 그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안지일은 위성 전화기를 높이 들고 흔들어 대며 버럭 화를 냈다.
“이거 건드린 녀석 누구야? 봉인해 뒀는데 왜 뜯어져 있어? 게다가 수량도 하나 비어 있고. 누가 멋대로 장비 반출한 거야?!”
“출납 대장에도 위성 전화기를 쓴 사람은 안 적혀 있네요.”
강무혁이 서류를 들이밀자 안지일은 단단히 화가 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이런…. 쪽팔리게. 나 진짜 열받았어. 내 허락 없이 장비를 이딴 식으로 빼내?! 색출해서 뭉개 버리기 전에 순순히 자백해! 앙?!”
안지일의 협박 때문인지, 그 뒤에 서 있는 길마와 단장의 심각한 분위기 때문인지, 안절부절못하는 직원이 있었다.
강무혁은 그를 발견하곤 다가갔다. 가슴에 단 배지엔 ‘유동수’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동수 씨?”
“예, 예…….”
“유동수 씨가 위성 전화기를 빼냈습니까?”
“빼, 빼낸 게 아닙니다. 원정대장님이 좀 보겠다고 해서……!”
“원정대장?”
주세아는 잠시 원정대장이 누군가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원정대가 해체됐음을 깨달았다. 원정대 없는 길드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지만, 게이트를 공략하지 못하는 특활 구역 상황에선 불필요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길드 조직 재편 전엔 엄연히 존재했던 부서였고, 새 조직도에 익숙하지 않은 단원들 사이에선 아직도 예전 직책으로 불리곤 했다.
예전 원정대장이…….
“도경훈 헌터. 예상했던 내통자 후보군 중 하나라 놀랍진 않네요.”
강무혁의 말에 한 박자 늦게 깨달은 주세아가 말했다.
“그가 왜?”
“원정대장 자리가 날아갔잖습니까. 자리 때문에 영향력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표면적으로나마 강등당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불만이 없을 리 없죠. 게다가 길드 이전 문제로 반기를 들기도 했었고, 길드장님이 젊은 헌터들 트레이닝을 하면서 불안감이 커졌을 겁니다.”
“트레이닝이 어째서요?”
“자기 사람들을 빼 가려는 행동으로 보였겠죠.”
강무혁이 단장으로 취임하기 이전까지 주세아는 헌터들과 직접 소통한 적이 없었다. 각 파벌이 대놓고 헌터들을 단속하니 애초에 가깝게 지낼 자리를 만드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렇다고 실력을 발휘할 무대를 마련할 수도 없었다. 게이트 공략에 길마 혼자 나갈 수도 없었고, 다른 길드와 협업할 영업력을 가진 직원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외부에선 슬레이어 길드가 계속 시비를 걸어오는 데다가 태성 그룹의 배다른 형제들도 견제하니 사방이 적인 상태의 고립무원이었다. 일반 단원들에겐 길마 자리가 위태롭게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주세아라지만, 썩은 동아줄로 보일 수밖에.
그런데 강무혁이 온 이후로 길드가 점차 달라졌다.
길마와 단장이 전면에 나선 길드의 변화는 실제로 주는 압박보다도 더욱 도경훈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건지도 몰랐다.
“그동안 기회를 줄 겸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이건 선을 넘었네요. 가시죠, 길드장님. 이참에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겠습니다.”
* * *
이전 리조트 건물 1층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에서 도경훈은 식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도경훈의 파벌이라 할 수 있는 전 원정대원과 일부 헌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 속에서 최미란과 김성현도 말석에 앉아 오후 티타임을 가지는 중이었다.
“아아, 그래도 여긴 그나마 마음에 든다니까. 휴양지 같아서 좋아. 아주 이쁘게 꾸몄어.”
“전에 있던 뷔페 리모델링 한 곳이잖아요. 당연히 좋겠죠.”
“처음 여기 왔을 때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알아? 고블린 똥오줌 냄새에 토하는 줄 알았다, 야.”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이걸 보면 참 단장님이, 난 사람은 난 사람이에요. 일 처리가 아주 빨라. 언제 여길 다 고쳤대?”
“뭐, 그건 나도 동감. 주차장에서 처음 봤을 땐 좀 재수 없긴 했는데. 겪어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니더라. 단원들 지낼 숙소하고 식당만큼은 제일 먼저 공사 끝냈잖아. 텐트에서 지낼 땐 얼마나 불편하던지. 그나마 지하수가 나와서 샤워라도 했기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나 탈퇴했을걸?”
“전 길마님 트레이닝이 아쉬워서 남아 있는데요? 어디 가서 받기 힘든 특급 과외잖아요.”
“하긴 길마님 상대하고 몬스터 보니까 싱겁게 느껴지긴 하더라. 대처 능력도 좋아졌고, 다들 움직임이 좋아져서 버프나 디버프 걸기 편해졌어.”
최미란과 김성현은 눈치 없이 떠들었다.
덕분에 도경훈은 그들의 대화를 죄다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젊은 녀석들은 단장과 길마 쪽으로 기우는군. 지금이야 내 호통에 겁먹겠지만, 시간이 더 흘렀다간 내 명령은 씨알도 안 먹히겠지. 움직이려면 지금뿐이야.’
이런 상황 때문에 젊은 헌터들에겐 아직 타이탄 이적을 권유하지도 못했다. 배신자가 나와서 단장 귀에 들어갔다간 일을 망칠 수도 있는 탓이었다.
“쯧!”
도경훈은 마침 카페테리아로 들어오는 강무혁을 보더니 혀를 찼다. 옆엔 주세아가 있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일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걸음에 감정이 한껏 담긴 모양새였다.
강무혁과 주세아의 등장과 함께 식사하던 단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일부 도경훈 파벌 헌터들에게선 긴장감이 느껴졌다.
“도경훈 헌터, 얘기 좀 합시다.”
“말씀하시죠, 단장님.”
강무혁은 뻣뻣하게 구는 도경훈을 보면서 그가 각오했음을 눈치챘다.
“진짜 여기서 해도 되겠습니까?”
“어디 안 도망칩니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숨길 일도 없으니까.”
“낯짝 두꺼운 거야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는데. 내 앞에서 잘도 그렇게 말하시네? 간도 큰가 봐요, 도경훈 씨.”
“레드 게이트를 밥 먹듯 드나드는 길마님만큼은 아닙니다.”
주세아의 도발에 도경훈은 유들유들 웃으며 대답했다.
강무혁은 주먹이 꿈틀거리는 주세아에게 진정하라는 표시를 준 후 말했다.
“보아하니 저희가 여기 왜 왔는지는 아는 것 같네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만 퇴단해 주십시오.”
“제가 왜요?”
“그게 서로를 위해서 좋을 테니까요. 버티시면 안 좋은 꼴 봅니다.”
“저녁이면 장득구 실장 들어올 거야. 진짜 도경훈 씨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듣는 게 좋을걸?”
주세아가 강무혁을 거들었다.
장득구에 대해 익히 아는 구 원정대 파티장들은 움찔 몸을 떨었다. 도경훈 역시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물러나선 체면이 서지 않았다. 아직 자신의 측근들을 제외하고 다른 단원들은 포섭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도경훈은 어쩔 수 없이 주세아가 길마가 되기 이전에 들어놓은 보험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퇴단한다고 치고. 위약금은 제대로 챙겨 줄 겁니까? 내 위약금이 300억인데.”
“알고 있습니다. 길드의 요청으로 퇴단할 경우 위약금이 300억. 그쪽에서 그만둘 때는 1억. 완벽한 불공정 계약이더군요. 전 길드장을 구슬리다니. 능력이 참 좋네요.”
“내가 좀 유능하긴 하죠.”
“그 능력을 아이언윌에서 써 주길 바랐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쓰지 말고.”
“그래서 챙겨 줄 겁니까, 말 겁니까? 아, 지금 길드에 돈이 말랐지? 이거 할부로 받아줄까요?”
재무팀을 통해 길드 자금 사정을 알고 있는 도경훈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한신금융지주로부터 받은 수천억의 대출금이었다. 강무혁이 아직 재무팀과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고, 통장에 꽂힌 금액도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도경훈 입장에선 상당한 블러핑이었지만, 대출 덕분에 강무혁은 흔들림 없이 대응할 수 있었다.
“드리겠습니다. 일시불로.”
“뭐?!”
“뭐, 줄 순 있는데. 주려니 또 화가 나네요. 돈이 있어도 당신 같은 사람에겐 주긴 싫어서.”
위약금을 준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는데, 다시 변덕스럽게 결정을 바꾸자 도경훈은 화가 났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건가? 아니, 그보단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강무혁의 눈길이 거슬렸다.
“뭐 하자는 수작이야?!”
“이런 건 어떻습니까? 상호 합의에 의한 계약 해지.”
도경훈은 입을 딱 벌렸다. 헛웃음이 나왔다.
“뭔가 했더니. 한 푼도 주기 싫다는 뜻이 그거였습니까? 제가 그걸 받아들이리라 생각한 겁니까?”
“이 제안, 받아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당신이 이곳에서 저지른 짓이 이 바닥에 쫙 깔릴 거야.”
“!!”
“소속 길드 헌터들을 조직적으로 타 길드에 빼돌린 파렴치한 헌터로 낙인찍히게 해 주지.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거야.”
“겨우 소문 퍼트리는 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이미 선약이 있는데.”
“타이탄에 들어가면 된다고? 내 장담하건대, 타이탄에 입단할 순 없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단장님, 예전에 당신 입김이 닿던 타이탄이 아니야. 뭔가 착각을 하시네?”
“그럼, 해 봐.”
“…….”
“내 말이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