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45)
제545화
#545. 헌터 해도 되지?
백성빈이 장득구의 전투를 본 소감은 딱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잘 죽인다.’
그 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장득구는 어떻게 해야 빌런을 확실히 죽일 수 있는지 아는 헌터였다.
‘원래 랭크 차이가 있더라도 여기선 디버프 탓에 격차가 크지 않아.’
왜?
우중도에선 랭크가 높을수록 디버프도 강하게 적용되니까.
‘피차 같은 조건에서 머릿수가 많으면 당연히 저쪽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어.’
그런데도 장득구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투를 이끌어가는 건 빌런들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맬 것인가.
그 난제로 인해 앞장서서 싸우는 이가 적었다. 서로 눈치 보며 몸을 사리니 장득구와 같이 대인전 경험이 많은 헌터에겐 밥상을 차려 떠먹여 주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공짜로 먹는 건 아니지만.’
이런 판을 만든 건 장득구 본인이었다.
일부러 빈틈을 보이고, 자켓과 열쇠라는 미끼를 뿌리고, 한쪽의 공세가 격렬해질 기색을 보이면 수세에 몰려 미끼를 빼앗길 듯 다른 쪽을 끌어들여 서로 견제하게 했다.
반대로 아무도 달려들지 않을 땐 적극적으로 달려나가 공세를 퍼부었다.
“욕심 많은 놈들이다. 그에 반해 신중하지 못하지. 그런 놈들은 미끼인 줄 알면서도 뛰어들어.”
욕심을 절제할 줄 아는 똑똑한 놈들은 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게 장득구의 가르침이었다.
역으로 이를 잘 이용하면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실력이 받쳐줬을 때 얘기겠지.’
일대일에서는 그 누구도 장득구를 당해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죄수끼리 파티를 만들어 뭉쳤다.
그럴 때면 장득구는 귀신같이 눈치채고 물러나 미로 전체를 전장으로 두고 싸웠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한 팀이었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바로 각개격파 당했다.
“좋아. 맨손은 여기까지 하고.”
그제야 백성빈은 장득구가 여태껏 무기 없이 싸웠다는 걸 깨달았다.
‘타격기와 관절기만으로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었던 건가?’
장득구는 백성빈이 들고 있던 몬스터 뼈 칼을 빼앗아 들었다.
“무기 다루는 법도 보여주지.”
장득구가 무기를 들기 무섭게 주변을 기웃거리던 죄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바운티 헌터로 워낙 유명했기에 그의 손에 무기가 쥐어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듯했다.
“포기한 건 아니다. 언제 또 족쇄 열쇠가 감옥 안에 들어오겠어? 잠시 물러났을 뿐이지. 아마 다음번엔 모두 함께 올 거야.”
“그러면 위험하잖습니까?”
“위험? 왜?”
“비를 맞은 채 수십 명에게 둘러싸이면…….”
“비? 아, 디버프? 그걸 왜 걱정하나? 자켓을 입으면 되지.”
“예?”
“뭘 놀라? 빌런 잡아 죽이는 데 같은 조건에서 점잖게 싸울 이유가 없잖아.”
“아니, 제게 빌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이게 가르침이다. 빌런을 잡을 땐 봐주지 말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라. 네가 바보 같은 착각에 빠진 걸 보니 저놈들도 같은 생각이겠군. 잘 됐어.”
백성빈은 비로소 장득구가 함정을 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장득구가 자켓을 입고 있으면 아무리 열쇠가 탐난다 한들 그 누가 그에게 덤빌까?
이런 생각이 들자 의문이 생겼다.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자켓을 입고 싸우시지. 괜히 사서 고생한 것 아닙니까?”
“내가 자켓 입는다고 저놈들이 완전히 포기할까? 말했잖아. 감옥 안에 열쇠가 들어올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여긴 욕심 많은 놈들이 가득하지. 처음부터 자켓을 입고 있었으면, 당장은 물러나도 끝내 다른 방법을 찾아 귀찮게 굴 거다. 후한을 남기지 마. 저놈들 눈치 보느라 신경 쓰느니 차라리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게 나아. 일일이 쫓아가서 죽이는 건 성가시거든.”
백성빈은 오싹함을 느꼈다. 중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이 몰려든 곳에서 역으로 함정을 파다니.
도대체 얼마나 자신이 있으면 저럴 수 있을까.
헌터를 잡는 건 몬스터를 잡는 것 이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악당이더라도 같은 사람을 죽이는 건 거부감이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직접 살인은 아니었으나 미라주에 가담함으로써 수도권 시민들의 목숨을 위협한 전적이 있는 백성빈은 이 거부감이 얼마나 정신을 깎아 먹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이후 그는 그날의 트라우마를 지우려고 몸부림쳤다.
헌터는 정의와 희생이 모토라며 호들갑을 떨어왔던 지난날이 부끄러워 잠조차 자지 못했다.
하지만 낙인처럼 남은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희석되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든 그 결과는 같을 것 같았다.
‘저 사람은 그런 게 없는 걸까? 경험 많은 고랭크 헌터는 다 저런가?’
이제 갓 A랭크대에 발을 들인 백성빈으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할 터였다.
장득구는 그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 상태를 점검한 뒤 몰래 자켓을 꺼내 입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잘 된 거지, 뭐. 그렇지 않아도 여기 빌런 밀도가 높다던데. 자기들끼리 파벌 만들어서 질긴 목숨을 고무줄처럼 늘린다며? 적당히 청소할 때가 됐어. 그래야 새 죄수를 받지.”
“정말… 빌런은 인간 취급도 안 하시는군요.”
“인간? 그런 단어 함부로 쓰지 마라. 넌 몬스터한테도 연민을 가지나? 빌런은 몬스터 같은 거다. 아니, 그보다 못한 존재다. 몬스터는 죽어서 뼈와 가죽이라도 남기지, 저놈들은 찝찝함 외에 남는 게 없어.”
빌런에게 한결같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장득구의 말을 들으면서 백성빈은 문득 자신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저는 어떻습니까? 저도 몬스터입니까?”
겉으로만 보면 몬스터보다 더했다.
부수고, 깨트리고, 베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괴물.
이전까진 마음만 헌터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음은 이미 깨진 지 오래였다.
“난 나쁜 놈하고 말 안 해.”
겉옷 안으로 자켓을 숨겨 입은 장득구는 배낭을 챙기곤 뒷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싫은 놈하곤 길게 말 안 해.”
별것 아닌 한마디에 백성빈은 가슴 위 묵직한 돌이 치워진 기분을 느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무엇으로도 풀릴 것 같지 않던 응어리가 저렇게 멋대가리 없는 중년 아재가 툭 던지는 말에 녹을 줄이야.
백성빈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를 악물고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곤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가 그의 얼굴을 세차게 쳐댔다.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타고 흐른 빗물이 턱에 맺혀 떨어졌다.
‘나, 아직 더… 헌터 해도 되지?’
이젠 만날 수 없는 가족에게 물으며 백성빈은 눈을 감았다.
* * *
오범준은 25층으로 내려갔다. 노송린이 전하는 메시지와 수십 개의 비상식량을 손에 쥐고서.
그가 계단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가 시끄럽더군. 도망쳐온 게냐?”
오범준은 목소리만으로도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다. 25층 아래 터줏대감이랄 수 있는 악당이기 때문이었다.
“아, 아닙니다. 남 선생님.”
남 선생이라고 불린 악당의 풀네임은 남기풍이었다. 이젠 오래된 신문 기사에서나 볼 수 있는 잊힌 이름이었다.
남기풍은 약하게나마 바깥 빛이 들어오는 계단 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무료한 나날을 억지로 버텨내는 듯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얀 장발 머리카락, 하얀 수염, 얼굴 가득 자글자글한 주름에, 이빨 여기저기가 빠지거나 검게 착색된 생김새였다.
겉으로만 보면 노숙자가 따로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범준은 절대 방심하지 않았다. 이 거지꼴을 한 노인이야말로 희대의 살인자니까.
자신과 같은 A+랭크였지만, 9구역의 죄수들은 가진 특성이 범상치 않은 괴물들만 있는 곳이었다.
같은 랭크더라도 특성에 따라 전투력이 천차만별로 갈렸다. 마치 가챠 게임에서 뽑기 운이 필요하듯 각성 시 얻는 특성은 헌터의 수준을 가르는 최초의 벽이라 할 수 있었다.
‘남기풍만 하더라도 헌터 100명을 죽이고 들어온 놈이다. 이런 놈을 밖에서 안 죽이고 여기 쳐넣은 놈이 있다니. 그놈이 더 미친놈인지도 모르겠군.’
속내야 어떻든 오범준은 깍듯하게 남기풍을 맞았다.
“남 선생님. 위에서 메시지가 있어 내려왔습니다.”
“그 비상식량이 대가냐?”
“예.”
“꽤 많군. 소장이라도 내려왔나? 그 목숨 질긴 녀석이 꼬장꼬장해서 저만한 양을 여기까지 나르기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소장도 함께 있긴 합니다만, 이 질문은 다른 녀석에게서 받은 겁니다. 남 선생님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노송린이라고…….”
“노송린? 아아, 그 명준이 꼬붕?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지. 근데 그놈 출소했다지 않았던가? 다시 잡혀 왔어?”
“이번엔 죄수가 아닌 상태로 내려왔습니다.”
남기풍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죄수가 아닌 전과자가 우중도에 왔다는 건 그의 긴 수감 생활 중에서도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짐작 가는 데가 있어 물었다.
“혹시 명준이처럼 누굴 빼내려는 놈들 수작인가?”
“그건 아닙니다. 노송린은 지금 아이언윌이란 길드에 있습니다.”
오범석이 아이언윌을 언급한 건 다분히 의도가 깔려있었다.
우중도가 비록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지만, 바깥소식마저 끊긴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죄수를 통해서 간간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서 우중도를 한동안 크게 달궜던 뉴스는 단연 대전쟁 이후 최초의 S랭크 탄생이었다.
주세아.
그녀의 이름 석 자는 우중도 9층의 화석들조차 흥미를 가질 정도였다.
당연히 그녀가 길마로 있는 아이언윌 길드의 이름도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범석은 일을 순탄하게 진행하기 위해 일부러 이 부분을 언급한 것이었다.
‘정승 집 개 정도는 되어야 여기 괴물들도 귀를 기울일 것 아니냐고.’
반응은 오범석의 예상대로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9구역 악당의 집중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S랭크가 있는 길드 놈이 우중도에 왔다라…. 무슨 말일지 궁금해지는군. 어디 한번 말해봐.”
* * *
“먹고 째는 건 아니겠지?”
미스터 조는 아래로 내려간 지 한참 지났음에도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 오범석을 의심했다.
노송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뒈지지 않았으면 올라 올 거야. 원래 9구역 노괴들은 느려 터졌거든. 접촉까지 시간이 더 걸릴지 몰라.”
“노괴는 또 뭐야?”
“말 그대로 늙은 괴물이라는 뜻이지. 여기선 9구역 놈들을 그렇게 불러. 아래로 내려가면 선생이라고 해야 하지만.”
“선생? 참나, 뭔 교도소가 이렇게 따지는 게 많은지. 할 짓이 없어서 그런가?”
노송린이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계단으로부터 그림자가 불쑥 솟았다.
오범석이 어두운 낯빛으로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