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48)
제548화
#548.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랴.
목포항 인근, 문 닫힌 선술집.
‘폐업’이라 써 붙인 종이가 무색하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챙 넓은 모자, 얼굴을 가리는 넥워머, 반팔 티에 토시 차림에 어깨엔 하드 케이스의 낚시가방을 멘 남자였다.
남자는 안쪽을 둘러봤다. 텅 빈 술집 구석 테이블에 홀로 소주를 자작하고 있는 자가 보였다. 그가 다가가 말했다.
“여긴 노출됐다, 김명준. 다음 은신처로 이동한다.”
“누구한테 들켰는데.”
“표해주.”
“표해주? 표해주라면 그 백귀라는 유사 짱개? 그놈이 왜 날 찾아?”
“최도유한테 붙었다.”
“씨부럴, 최도유! 새 사냥개를 사 왔구나?”
김명준은 술병을 벽에 던졌다. 챙강,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조각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일부 파편이 김명준의 볼을 스쳤으나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는 술병을 던지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테이블까지 쪼개곤 씩씩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딴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최도유! 날 지워버리겠다고? 어림도 없다.”
김명준은 표해주의 역할을 단번에 알아챘다. 여태껏 자신이 했던 일이니까.
사건이나 인간을 지우는 일.
흔히 청소부라 불리는 일이었다.
대형 길드의 음지에서 활동하는 게 김명준의 사업이었다.
그는 최도유가 표해주를 선택한 경위를 쉽게 짐작했다.
‘한국에 연고 없는 뜨내기니까 써먹는 거겠지.’
대형 길드가 청소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능력이 아니었다.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데 가장 쓸모 있는 건 언제 버려도 뒤탈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중도 출신 김명준이든, 중국에서 건너온 표해주든 슬레이어 입장에선 쓰다 버리기 좋은 도구에 불과했다.
반면에 청소부는 의뢰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을 깔끔히 처리해야 했다. 하물며 첫 의뢰는 더욱 신경 써야 했다. 앞으로 계속 일을 맡으려면 능력을 증명해야 하니까.
김명준은 중국에서도 지독하기로 유명한 백귀 표해주를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금세 침울해졌다.
‘황룡 길드에 반대하는 일파가 모여 만든 게 역천 길드다. 백귀는 거기서 공동 길마를 맡아 온갖 공작을 펼쳐 황룡을 골치 아프게 하던 놈이지. 그만한 길드를 버리고 어째서 한국으로 돌아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무조건 피하고 봐야 한다.’
김명준의 생각처럼 표해주 소식을 전한 남자도 같은 의견이었다.
“백귀의 암살 부대가 올 거다. 일단 여길 피하는 게 상책이다.”
“참나, 일본 최고 헌터의 수하란 놈들이 이리 쉽게 추적당하다니. 실망스럽군, 사카구치.”
사카구치라 불린 낚시꾼은 낚시가방을 열어 검을 꺼내곤 말했다.
“이쪽 정보 라인은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단지 중국 쪽 라인에서 역으로 타고 들어올지 몰랐을 뿐.”
일본 최고 길드 일광의 헌터이자 S랭크 키신 타케루의 직속 부대원인 사카구치로서도 표해주의 개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이 지점에서 할 말이 많았다.
원래 일본과 중국의 헌터계는 한국 내 정보 계통과 침투 루트를 공유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는 두 나라가 제휴했다기보다는 한국의 헌터계가 너무 좁은 탓이었다.
업계 규모가 일본과 중국에 비해 작아서 비집고 들어갈 틈도 한정적이었다.
그런 틈을 두 국가가 억지로 뚫다 보니 서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동거였으나 그렇다고 모두 독점하려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싸웠다가는 몰래 만들어 놓은 루트가 발각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를 흘리면서까지 그것을 사수할 이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없이 두 국가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정보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슬레이어가 나섰다면 한참 걸렸을 일이나 표해주를 통해 중국 라인을 쓴 셈이니 이곳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인 셈이었다.
물론 김명준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처한 처지가 너무나 궁색한지라 사카구치 탓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카구치가 상황을 간단히 정리했다.
“결과적으로 표해주를 이용할 정도면, 최도유도 이쪽 사정을 꿰고 있었다는 거지. 이건 곧 네가 우리와 접촉했다는 걸 눈치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최도유가 슬레이어 부길마 자리를 가위바위보로 딴 줄 알았어? 그놈은 음흉한 놈이야. 남들 머리 위에 올라가 있지. 네놈들은 예전부터 그놈 술수에 휘둘려 놓고선 그놈을 그렇게 몰라?”
“알고 있다. 그래서 진작 처리하려 했던 거고.”
“말은 잘한다. 매번 실패해 놓고선.”
“성선제가 최도유를 밀어내지 않았으면, 어떻게든 암살했을 거다.”
“퍽이나.”
김명준은 아직 잡혀선 안 됐다. 꼬리가 밟혀서도 곤란했다. 이곳에서 계획한 일들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쓸모없는 놈으로 낙인 찍혀 키신에게 버림받을지도 몰랐다.
그의 갑갑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카구치는 걱정을 덜어준답시고 태연하게 말했다.
“어쨌든 중국이 우리와 라인을 공유한 만큼, 우리도 그쪽 정보를 받을 수 있지. 표해주의 움직임을 미리 알았으니 된 거다. 덕분에 자릴 옮길 여유가 생겼으니까.”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표해주의 움직임을 우리도 미리 알았다고, 했다.”
“언제 알았는데?”
“20분 전.”
“어떻게?”
“중국 브로커가 있다. 그가 직접 와서 표해주 쪽에서 일본 길드 은신처 위치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은신처를 알지 못하지만, 여길 찾는 건 시간문제일 거라고.”
“브로커가 왜 직접 전해. 전화는 어따 두고.”
“브로커는 고객과 접촉하는동시에 감시가 들어온다. 당연히 도청도 당하지. 그럴 때마다 브로커는 자기만 아는 비밀 통로로 거점을 옮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
“제기랄! 표해주가 네놈도 아는 걸 모르는 줄 알았냐? 그놈이 얼마나 여우 새끼인데. 너, 당한 거야.”
김명준은 기겁해서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슬며시 커튼을 젖혀 바깥을 살폈다.
나가 사태 이후 한적해진 바닷가 근처 상권이었기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길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바다를 마주 보며 길거리에 쭉 늘어선 횟집들도 모두 개장휴업 중이었다. 목숨 걸고 영업했으나 손님이 없으니 일찍 문을 닫은 것이다.
서해 너머로 지는 노을 뒤로 땅거미가 깔렸다.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숫자는 많지 않았으나 막 간판불을 껐던 가게가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김명준은 그 한가한 광경에 입술을 짓씹으며 들췄던 커튼을 내렸다.
“벌써 쫙 깔렸네.”
“난 모르겠는데?”
“요즘 여기 손님 오는 거 봤어?”
뒤이어 김명준이 욕설을 뱉었다. 거지 같은 상황이 짜증 났다.
그를 따라서 바깥을 살폈던 사카구치도 이를 악물었다.
김명준은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는 그를 보면서 한마디 했다.
“하여간 싸울 줄만 아는 놈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머리라는 게 있으면 브로커가 직접 전했을 때 의심이라도 했어야지. 칼 잘 쓰고 충성도 높은 애들이라고 한국에 보내놓으니 최도유를 죽이지 못했지.”
“그렇게 불만이면, 진작 최도유의 약점을 불었어야지.”
“그놈은 약점이랄 것도 없다고. 내가 가진 건 그렇고 그런 루머 덩어리에 불과하고.”
“네놈에겐 별것이 아닐지 몰라도 우리 손에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지지. 그걸 아니까 너도 끝까지 쥐고 있던 게 아닌가?”
“그걸 풀면. 내가 네놈들에게 뭘 어필할 수 있는데. 난 목숨 걸고 사업하는 거다. 단물 빼먹고 버리는 건 용납 못 해.”
김명준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최도유에 관한 정보를 다 내놓지 않았다.
사카구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까지 최도유와 협상할 수단으로 남겨둘 생각이로군. 정말 바퀴벌레같이 끈질긴 녀석이야.’
키신에게 간도 쓸개도 내줄 듯 굴더니 한편으로는 빠져나갈 구멍을 팔 궁리를 하는 김명준.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생존 본능이라 할 수 있었다.
사카구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상황을 빠져나가는 데 누구 탓인지 따지는 건 쓸모가 없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에 집중하지.”
“방법이 안 보이니까 그러는 거지.”
김명준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리자 사카구치는 아무것도 없는 벽면 쪽으로 다가가더니 바닥 구석 쪽을 발로 툭툭 찼다.
그러자 잠시 후 딸깍 소리가 났다. 사카구치는 손바닥으로 벽을 밀었다. 벽면이 180도 빙글 돌더니 반대편 벽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건…….”
돌아간 벽면에는 검과 도, 창 등 각종 무기와 방어구, 앰플킷과 같은 필수 소모품부터 독이나 부비트랩 혹은 연막 생성기 등의 각종 장비가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 게이트라도 들어가려는 건가? 게이트 공략 세트급이잖아?”
“바깥 놈들. 이쪽에 들키지 않으려고 맨몸으로 왔더군. 기껏해야 안에 껴입은 가죽 갑옷에 단검이나 비수겠지. 검을 챙겨왔다고 해도 빈약한 무장인 건 확실하다.
“그래서 정면 돌파하자고?”
“승산이 충분하다.”
김명준은 결연한 표정으로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하는 사카구치를 보고서야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임을 깨달았다.
‘무식한 자식. 아무리 키신의 직속 부대 조직원이라곤 하지만…. 아니, 어쩌면 이거 될 것 같은데?’
머리 쓰는 데는 소질이 없는 헌터라곤 하나 전투력만큼은 대단한 자가 바로 사카구치였다.
그가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으나 키신의 직속 부대 소속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됐다.
김명준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장비를 챙겼다.
‘까짓것 죽기밖에 더하랴. 어디 한번 해보지, 뭐.’
* * *
정보팀의 만수로 부팀장은 아이언윌 길드에 입단한 이후 처음으로 단장실을 찾았다.
강무혁도 미스터 조를 영입하면서 입단 전 그녀의 직원들과 얼굴을 익힐 겸 인사했을 때를 제외하곤 직접 본 일이 없었지만, 만수로에 대해선 프로필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항상 봤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맞이했다.
“만수로 부팀장님, 따로 보고할 일이 있는 걸 보니 급한 일인가 보군요.”
“예. 조 사장님…. 아니, 조 팀장님이 부재중이라서 직접 왔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이걸 먼저 보시겠습니까?”
만수로는 단장실 한편에 마련된 노트북에 스틱형 저장장치를 꽂곤 프로젝터를 작동시켰다.
이내 하얀 벽면 위로 사진 한 장이 떴다.
강무혁은 사진에 찍힌 인물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표해주 헌터로군요.”
“예. 그 백귀입니다. 단장님이 지속 감시 대상으로 지정하셨던.”
“그가 움직였습니까?”
“다음 사진입니다.”
사진엔 표해주가 차를 타고 어디론가 움직이는 장면이 찍혀 있었고, 그 아래 슬레이어 길드 본사 사진으로 이어졌다.
“최도유를 만났습니다.”
“이거 언제 사진입니까?”
“사흘 전입니다.”
사흘 전이라면, 현정건 등이 우중도를 찾기 전이었다.
‘다행히 그쪽 일은 아니로군.’
강무혁은 다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사흘 전 사진이 왜 지금에서야 올라온 거죠?”
“슬레이어나 백귀가 머무는 곳 근처에선 인력으로 사진을 찍기 힘듭니다. 그래서 기계를 쓰는데, 이걸 온라인으로 접속하려 했다가는 바로 해킹당해서 추적되더군요. 아무래도 슬레이어 쪽에서 손을 쓴 것 같은데, 본사 건물만이 아니라 주변 거리 전부를 시크리티 존으로 만들었다더군요. 이건 공두리 팀장이 확인해줬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으로 작동하는 카메라를 숨겨두고 며칠에 한 번씩 헌터가 아닌 직원이 주변 빌딩 방제 업체로 위장해서 데이터를 회수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오늘 들어온 정보고요.”
물리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뜻이었다.
강무혁도 슬레이어를 상대로 이만한 정보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 알기에 이해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최도유가 표해주를 만난 사실은 이해하고 넘어가기 힘들었다.
‘성선제 팀장이 있을 때 표해주는 손발이 완전히 묶여 있었다. 없애버리는 게 가장 속 편하지만, 중국에서 망명하는 그림을 그리며 황룡 길드와의 충돌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준 자를 제거하는 건 명분이 없어 제외됐었지.’
대신 성선제는 감시를 강화했다. 강무혁도 슬레이어가 표해주를 맡았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표해주의 행동 범위를 제한했다.
겉으로는 단순히 슬레이어를 움직여 방해하는 방식을 취했으나 그가 진짜 집중한 곳은 중국 쪽이었다.
강무혁은 관홍이 건넨 역천 길드의 정보를 듣고 표해주의 진짜 전력이 아직 중국에 남아 있음을 눈치챘다.
그는 황룡 길드가 미라주와 엮였을 때 상황을 이용해 역공작을 펼쳤고, 표해주의 전력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황룡 길드로서는 강무혁에게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표해주가 역천 길드 시절 백귀로 활동했을 당시 당한 게 적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중국 내 활동이 원활하지 않은 걸 단순히 원한 어린 황룡 길드의 방해로 알고 있었으나 사실은 강무혁의 책략에 의한 것이었다.
‘성선제 팀장과 달리 최도유 부길마는 명분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없애고자 하면 언제든 표해주를 노릴 수도 있어.’
그런데 표해주를 슬레이어 본사로 불러들였다는 건 분명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강무혁은 표해주의 정보와 현재 슬레이어의 상황을 고려해 몇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냈다.
그리곤 소거법을 통해 낮은 확률의 가능성을 제거한 뒤 결론을 내렸다.
‘표해주는 역천 길드에서 황룡 길드를 상대로 각종 공작을 담당했던 이다.’
황룡을 상대하는 백귀의 방식은 황룡을 적대하는 많은 길드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슬레이어 길드가 그런 방식을 써야할 급은 아니다. 그렇다는 건 표해주의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야.’
표해주가 뒷공작 외에 잘했던 것.
그건 바로 암살과 첩보였다.
‘김명준 자리가 지금 비었었지?’
강무혁이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최도유 부길마가 새로운 청소부를 찾은 모양이군요.”
그리고 그 청소부의 첫 임무는 아마…….
“만수로 부팀장님, 지금 김명준 어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