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54)
제554화
#554. 그래, 좋게 생각하자.
우중도의 온갖 디버프로 능력치가 다운된 죄수들과 그 영향에서 벗어난 장득구의 차이는 첫 격돌에서부터 극명하게 갈렸다.
장득구는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선두의 오른쪽 어깨를 잘랐다. 돌칼을 쥔 손이 바닥을 굴렀다. 절단면에선 피 분수가 뿜어졌다.
상대의 비명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득구가 입은 자켓을 발견한 후열은 기겁하며 흩어졌다.
장득구는 정면에 열린 길을 그대로 가로질렀다. 반응이 늦은 일부 죄수들이 피하지 못하고 그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죄수들은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어설프게 피하다가 등에 칼을 맞느니 차라리 동시에 들이치자는 신호였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장득구는 죄수들이 함정을 파고 있음을 알고도 거침없이 그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죄수들이 반응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한 건 아니었다.
장득구를 공격한 건 단 네 명뿐이었다. 나머진 모두 사방으로 몸을 던졌다.
“야, 이 개…….”
약속을 어긴 죄수들을 욕하던 자는 마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목에 칼이 꽂혀 절명했다.
다음으로 앞서 죽은 이의 유지를 받들어 욕을 다 뱉은 죄수가 죽었다.
“개새끼들이 그러면 그렇지!”
“장득구한테 뒈져라, 새끼들아!”
나머지 둘은 저주를 퍼부으며 악에 받쳐 무기를 휘두르다가 목이 날아갔다.
장득구가 빌런 넷을 죽인 움직임은 거창하지 않았다.
절제된 몸놀림, 최적의 검로.
그에게 검술, 창술, 타격기, 관절기 등등 모든 전투법을 전수 받은 주세아조차 여전히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없는 정제된 검술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백성빈은 나직하게 감탄성을 뱉었다.
“이, 이런 게 마스터라는 거구나.”
웨폰 마스터.
헌터의 고스펙 시대에서 가치로 치면 중간에나 겨우 들까 말까 한 특성이었다.
불을 뿜고, 번개가 치고, 잘린 팔이 다시 붙거나 아예 상처 입지 않은 특성들에 비하면 하품 나게 따분한 능력이었으나 지금 장득구가 보여주고 있는 위용은 결코 상위 특성에 밀리지 않았다.
‘저런 건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같은 붓을 들고도 명작과 졸작이 나뉘듯, 같은 검을 써도 고수와 하수로 갈린다.
여기 있는 고랭크 빌런들이 하수일 리는 없었다. 하수가 A랭크대로 진입한다는 건 전투 속에서 발전하는 랭크업의 구조상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디버프의 영향 때문에 장득구가 압도하는 것이라고 매도할 수도 없었다.
떨어져도 능력치가 떨어지는 것이지, 무기를 다루는 수법을 까먹는 건 아니었으니까.
별다른 힘을 쓰지 않고도 무기술만으로 적을 압도하는 거 오로지 장득구 본인의 능력이라 볼 수 있었다.
‘지금 든 무기가 아쉽다.’
문득 백성빈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그는 우주도 몬스터의 척추를 뽑아 만든 조악한 뼈 칼에 눈살을 찌푸렸다.
죄수들을 벨 때마다 뼈 칼은 당장에라도 부러질 듯 낭창낭창 휘었다.
무기가 받쳐주지 못함에도 이만한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건 장득구의 검술이 이보다 더한 위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백성빈은 궁금해졌다.
‘저런 사람한테 진짜 좋은 무기를 쥐여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새삼 심장이 뛰었다.
* * *
“키아아악!”
콰아앙!
용을 닮은 사족보행 몬스터, 드라카가 단말마를 내며 쓰러졌다. 신장만 30m에 달하는 괴물이 소형차만 한 머리를 아래로 떨구자 그 위에 있던 그림자도 함께 바닥에 착지했다.
주변에 U자형 포메이션을 그리고 있던 헌터들은 쓰러진 다섯 마리의 드라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방금 검술 봤어? 별로 힘을 들이지도 않았어. 드라카의 비늘을 따라 결대로 잘랐다고. 저건 힘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이야.”
“주세아가 단순히 몸만 단단한 게 아니었구나?”
“심지어 저 무기는 유니크도 아니야. 그냥 우리 길드 보급용 검이라고.”
“지원 나왔다더니 이건 그냥 지원이 아니잖아. 완전 메인 아니냐고.”
“역시 S랭…….”
수군대는 헌터들의 한가운데서 주세아는 무심하게 드라카의 머리를 툭툭 찼다.
완전히 숨이 끊긴 걸 확인한 그녀는 손에 든 무기를 확인했다.
‘날이 다 나갔네?’
이가 빠져 톱처럼 변한 검은 당장에라도 부러질 듯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역시 득구 아저씨처럼은 안되나?”
무기가 가진 능력을 전부 내보이는, 아니 그 이상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웨폰 마스터.
주세아는 장득구에게서 검술을 120% 물려받았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무기를 다루는 데는 스승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녀가 게이트에서 평범한 장검을 쓰는 건 유니크 무기가 상할 걸 우려한 것이기도 했으나 진짜 이유는 수련 때문이었다.
평범한 검으로 용처럼 단단한 비늘을 지닌 드라카를 손상 없이 잡을 수 있다면, 유니크 무기를 들었을 때 그 본연의 힘을 더욱 끌어낼 수 있어서였다.
‘예전에 비하면 이것도 진짜 많이 좋아진 거지만, 아무래도 아깝단 말이야. 역시 노력만으로는 특성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걸까?’
주세아는 슬레이어 시절 자신이 쓰던 유니크 마검 다인슬라프를 떠올렸다.
다인스라프는 스스로를 해치는 저주가 걸린 마검이었기에 다치지 않는 주세아만 쓸 수 있는 전용 무기였다.
그녀 외의 수많은 슬레이어 길드 엘리트 헌터들이 도전했으나 성선제나 소상엽을 비롯한 에이스급 몇 명만 약간 버텼을 뿐 누구도 3분을 넘긴 적이 없었다.
‘아니지. 한 명 더 있었지. 슬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주세아는 장난삼아 장득구에게 다인슬라프를 건넨 적이 있었다.
아직 경험 적고 치기 어린 10대 헌터였기에 할 수 있는 장난이었으나 실로 위험한 짓이었다.
그녀가 들고 있어서 별문제가 없었을 뿐, 다인슬라프는 실제로 그 검을 든 몇 명의 헌터를 해친 적이 있었다.
당시 주세아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스승에 대한 반항심으로 자그마한 복수를 하려고 건넨 것이었으나 장득구는 아무렇지 않게 마검을 들어 한참 휘둘러보고는 한마디 하며 검을 돌려줬었다.
‘지나치게 날카로운 검이구나. 남을 해치지 않도록 잘 다뤄라.’
그때 처음 알았다.
웨폰 마스터는 단순히 무기를 극한으로 잘 다루는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만약 득구 아저씨가 유니크 검을 들고 싸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지만, 다인슬라프는 슬레이어의 재산이기에 실험해볼 수 없었다.
그녀가 장득구를 골릴 목적으로 슬레이어 무기고에서 잠시 빼내 온 것도 문제가 돼 한동안 근신 처분을 받을 정도였으니 궁금증을 풀 시도는 아예 할 엄두도 못 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주세아는 오랫동안 묵힌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어졌다.
‘지금 가지고 있는 유니크 무기 하나 빼내서 쓰라고 해볼까?’
그런 유혹은 금세 머리에서 사라졌다. 강무혁이 기겁하는 모습이 떠오른 탓이었다.
강무혁은 유니크 무기를 아꼈다. 다른 유니크 아이템 보유 길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긴 유니크는 비싸니까.’
단순히 비싸다기보단 희소하다고 말하는 게 옳은 표현이었다.
게다가 영원불멸하지도 않았다. 지속해서 정비하지 않으면, 전투 중에 복구 불능의 손상을 입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길드의 주요 전력이자 상징인 유니크 장비의 존재는 티어와 A급을 가르는 척도가 될 정도로 중요했다.
그런 소중한 무기를 길마의 호기심 좀 풀자고 아무한테나 맡길 리 없었다.
물론 장득구가 웨폰 마스터 특성에다가 외인이 아니라지만, S랭크에게도 줄 유니크가 부족한 마당에 함부로 돌리지 않을 터였다.
‘이래서 유니크 좀 빵빵하게 채워야 하는데. 도대체 미국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든 건 언제 완성되는 거야?’
강무혁은 LA에서 잡은 육식말벌의 여왕에게서 얻은 재료로 S랭크 주세아에게 날개를 달아줄 유니크 장비를 제작하고 있었다.
만들려는 장비의 등급이 등급이다 보니 예상보다 완성이 늦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드라카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자 중견 길드 아리아의 원정대장 문정환이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세아 길마님. 역시 명불허전이로군요. 드라카를 이렇게 쉽게 잡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냥 알바하러 나온 건데요, 뭘. 알바비나 잘 쳐주세요.”
“하하하, 무슨 그런 농담을…. 물론 그만한 보상이 있겠지만, S랭크 헌터가 알바라니, 참, 어디 가서 그런 농담 하지 마십시오. 저희 길드가 몹쓸 놈들 집단이 되어버릴 겁니다.‘
“농담 아닌데…….”
문정환은 발음을 뭉개며 중얼거리는 주세아의 뒷말을 듣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주세아 길마가 도와줘서 다행이야.’
그는 아리아 길드 내에서 이번 게이트 공략에 주세아의 합류를 적극적으로 반긴 부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게이트가 ‘드라카 둥지’이기 때문이었다.
드라카는 용족 중에서도 최하위에 있는 몬스터였으나 용족 특유의 단단함으로 공략 난이도가 제법 높은 축에 속했다.
그런 괴물이 둥지를 틀 정도로 많은 개체가 모인 게이트라면 공략이 어려울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건 원래 티어 길드가 맡아야 할 게이트였지.’
중견 길드의 역량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게이트.
평소라면 포기하고 다른 티어 길드가 차지하게 두거나 공략권을 팔 일이었으나 현재 외부의 사정이 아리아 길드의 처지를 봐주지 않았다.
외부의 사정이란 바로 나가 사태였다
나가의 습격에 방비하기 위해 티어 길드가 빠진 자리를 다른 길드가 무리해서 채우는 중이었다.
주세아가 알바라 부르는 농담 섞인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한반도 곳곳에 아웃 브레이킹을 걱정할 게이트가 수두룩했을 터였다.
‘다른 나라는 S랭크들 엉덩이가 무거워서 움직이게 하기 힘들다지? 그것이야말로 정말 국가적인 낭비인데 말이야.’
문정환은 S랭크가 왜 전략 병기라 불리는지 이번 기회에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근래 주세아가 공략한 게이트만 해도 그 숫자와 난이도, 규모 면에서 어지간한 중견 길드는 비빌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녀가 나섰기에 한국은 나가 사태에 대응는 동시에 게이트의 위협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선 현상 유지마저도 힘들어 일부러 터트린 게이트가 제법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각국의 S랭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걸 보면, 정말 나라 망하는 건 S랭크들에겐 그리 와 닿지 않는 위협인가 싶기도 했다.
드라카 사체를 해체 중인 헌터들을 뒤로 하고 주세아는 잠시 쉬겠다며 발길을 옮기다가 멈칫했다.
“생각난 김에 말해두는데, 이번 드라카 사체에서 얻은 부산물들이요. 그거 절반은 우리 길드 배당이죠?”
“예. 맞습니다. 그런 쪽으로 강무혁 단장님이 확실하시더군요. 계약서도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아니, 바쁘다면서 그런 건 또 언제 했대? 아무튼, 그건 아리아 길드와 계약된 가공소에 보내지 말고 그대로 태성 쪽 공장 라인으로 돌려주세요.”
“태성이라면, 그…. 아직 그쪽과 일하시는군요. 길드 이름이 바뀌면서 독립했다고 들었는데. 하긴 그쪽 집안 분이시니까.”
주세아는 마치 태성과 자신이 가까이 지낸다는 듯한 문정환의 말을 정정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입을 열진 못했다.
‘내가 오늘 무슨 말을 변명하던,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말로 아니라고 해봤자 태성과 여전히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이언윌의 행보 때문에 도루묵이 될 게 뻔했다.
그녀는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든 원흉이 미워졌다.
‘단장님 때문에 자꾸 밖으로 도니까, 입만 귀찮아지잖아.’
강무혁은 길드 금고가 채워진다며 싱글벙글하겠지만, S랭크 주제에 게이트 알바나 다니는 자신은 어째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참에 보스 잡고 괜찮은 재료 하나 얻어서 득구 아저씨 무기 콜렉션이나 하나 맞춰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