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55)
제555화
#555. 뭐가 됐든 원 없이 갈리게 생겼군.
장득구는 이곳의 유일한 출구를 등진 채 빠져나가기 위해 악을 쓰며 달려드는 빌런들의 명줄을 하나씩 끊어냈다.
돌로 벼린 단검을 들고 품에 파고드는 놈의 팔의 겨드랑이에 끼워 관절을 뽑고 박치기. 그리고 뒤이어 달려드는 놈에게 밀어 엉키게 한 뒤 단칼에 둘을 꼬치로 만들어 버렸다.
그사이 옆을 통과하려던 빌런은 던진 칼에 맞아 고꾸라졌고, 빈손이 된 장득구를 보고 기회라 여겨 송곳을 들고 덤빈 헌터는 꼬치가 된 시신에서 뺏은 단검에 턱 아래로 구멍이 뚫렸다.
어둠과 시신, 피와 먼지에 가린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장득구의 다리에 태클을 걸던 빌런도 앞서 감방 동기들과 같은 길을 걸었다. 훤히 드러난 등판에 조금 전 죽은 자의 송곳이 수차례 박히며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허물어졌다.
순식간에 빌런 여럿이 절명하자 막무가내로 탈출하려던 빌런들은 다른 탈출로를 찾아 움직였다.
“절벽으로!”
“아래로 타고 내려가!”
개방형 미로 던전, 우중도.
같은 층임에도 고저 차가 확연히 느껴지는 입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복잡한 길이지만, 벽이 없기에 이곳의 죄수들은 간혹 벽을 타는 지름길을 이용하곤 했다.
‘보통 때라면 저건 나쁜 방법이 아니지만…….’
백성빈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빌런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끄아악!”
“흐학, 여기 왜 저것들이…….”
“악! 내 머리… 아, 안 돼엑……!”
벽을 타고 내려가던 빌런들에게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벽에 발을 들이지 않거나 이제 막 벽에 손을 박았던 빌런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올라가, 올라가!”
“저, ‘절벽 고릴라’다!”
“X발! 저 새끼들이 왜 여기 둥지를 튼 거야?”
절벽 고릴라.
우중도의 미끄러운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몬스터였다.
손에 흡착판이 있고 악력이 강해서 미끄러져서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집단생활로 무리 사냥이 특기인 데다가 긴 팔다리로 도구까지 사용해 공격하기에 디버프로 목욕한 빌런들은 절벽에선 이 몬스터를 당해낼 수 없었다.
끝내 절벽에 붙어 있던 마지막 빌런은 위로 올라가다가 발목이 잡혀 그대로 몸이 찢겼다.
죽다 살아난 빌런들은 마른침을 삼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적이 빗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백성빈은 퇴로가 막힌 헌터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장득구의 덫에 혀를 내둘렀다.
‘장득구 파티장은 이전에도 몇 번이나 이곳을 온 적이 있기에 절벽 고릴라를 알고 있었어.’
또한, 우중도 몬스터들이 영역을 옮겨 다닌다는 것도 알았다.
‘파티장인 장소를 물색할 때 내게 물어본 조건은 두 가지.’
출입구가 하나인 막힌 지형. 그리고 새로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근에야 자리 잡은 절벽 고릴라가 있는 곳이었다.
‘운이 좋았어. 마침 그런 곳이 있었으니까.’
백성빈은 이내 그런 생각을 털어냈다. 장득구는 우중도에서 몬스터의 리젠과 영역이 잦다는 걸 알고 물은 게 분명했다.
‘내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처지라는 것도 예상했겠지. 그래서 이런 지형과 몬스터 분포에 민감하다는 것도 알았을 테고.’
백성빈이 A-랭크로 승급한 건 몬스터를 잡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람을 더 많이 잡은 덕이었다.
빌런들의 원수랄 수 있는 장득구가 아이언윌 소속이라는 건 우중도에 들어오는 죄수들로 인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와 같은 길드 소속이었던 백성빈이 잡혀 왔으니 분풀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집단 괴롭힘이 시작됐다.
그들에겐 미라주와 엮여 아이언윌의 배신자가 된 백성빈의 처지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바깥에서 장득구에게 직접 엿을 먹이지 않은 한 그와 한 식구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격할 이유가 됐다.
만약 백성빈이 높은 수준의 힐링팩터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 뼈 한 조각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 터였다.
‘마침 적당한 장소가 있었다는 건 운이라고 해도 이 판을 만든 건 절대 운이 아니야. 주세아 길마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 뿐이지, 그는 정말 뛰어난 헌터가 분명해.’
백성빈이 감탄하며 장득구가 만든 무대를 관람하는 동안 빌런들은 한데 모여들었다.
“장득구 새끼, 예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이딴 개 같은 함정을 파?! 찢어 죽일 테다!”
“그전에 네가 찢길걸.”
“뭐? 누구야?! 어떤 새끼가 주둥이를 막 놀려? 혀 뽑아줄까? 앙?”
“나다, 이 씹X야! 눈에 뵈는 게 없으면 그 눈알은 왜 달고 다녀? 내가 눈 먼저 뽑아줘?!”
“미쳤나, 이게. 넌 장득구한테 갈 필요도 없어. 내가 죽여주마.”
“해봐. 누가 죽나 보자고.”
말로 시작된 시비는 기 싸움으로 번지더니 급기야는 피를 보기 직전까지 커졌다.
독 안에 든 쥐새끼가 되어서도 자기들끼리 물어뜯으려는 모습에 우중도 수감 10년 차 죄수인 오동식이 나서며 싸움을 말렸다.
“자자,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아. 죽이고 싶으면 여기 빠져나가고 나서 둘이 알아서 하라고. 일단 우리끼리 힘을 합쳐 여기서 나가자.”
“힘을 합친다고 별수가 있나? 이건 진짜 최악이라고.”
밑엔 절벽 고릴라, 앞엔 빌런이라면 기를 쓰고 죽이는 악마.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자살하는 길이었다.
이에 오동식은 입술을 비죽이며 웃었다.
“우중도라고 해서 모든 게 절망적인 건 아니다. 게이트에서도 항상 길은 있기 마련이지.”
“길이 있다고? 어디에?”
“봐봐. 우리가 여기 있는 데도 장득구 자식이 덤벼오지 않잖아. 밖에서라면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어도 진작 휘둘렀을걸? 아마 길을 내줘서 도망칠까 봐 입구만 막고 있는 거겠지. 이런 함정을 팠다는 건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거야. 진짜 질리도록 장득구라고.”
수사관과 바운티 헌터 시절의 장득구는 빌런을 잡을 때 생포를 선호했었다.
생명 존중이나 범죄자 인권을 고려한 선택이 아니었다. 살아서 우중도에 갇히는 것이 깔끔하게 죽는 것보다 더욱 괴롭기 때문이었다.
물론 잡는 게 힘들 경우엔 죽이는 것 역시 마다치 않았다.
그런데 여긴 이미 우중도 안.
잡아서 더한 곳에 가둘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러니 남은 건 우중도에서 생존해 익숙해진 놈들을 아예 죽여버리는 것뿐이었다.
이쯤 되니 장득구에게 잡혀 우중도에 들어온 빌런들과 그 외의 경로로 잡혔으나 그에 대한 소문 한둘은 섭렵하고 있는 빌런들 모두 지금 상황이 최악이라는 데 동의했다.
오동식은 검지 하나를 펴며 말했다.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다.”
“뭔데?”
“장득구가 힘들면, 장득구보다 덜 힘든 걸 건드려야지.”
“그게 뭔 헛소리야?”
“저기 저놈.”
빌런들은 오동식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다. 구석에 서 있는 백성빈이 보였다.
“저 도마뱀 새끼를?”
“그래. 저놈 아이언윌 출신이잖아. 장득구가 괜히 여기 온 게 아니야. 아까 열쇠 봤지? 저놈 풀어주려고 온 거야.”
“그런데 장득구가 과연 죄수를 풀어줄까? 저 새끼 우리 같은 놈들 진짜 싫어하잖아.”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하자 주변에서 동요가 일었다. 빌런이라면 치를 떠는 장득구라면 우중도 죄수를 풀어줄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오동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수사관일 때 얘기고. 바운티 헌터 때부터 좀 변했어. 돈맛을 본 거지. 지금 주세아 밑에 있는 거 보면 몰라? 주세아는 태성 그룹 딸이라고. 돈이 무지 많겠지? 헌터는 길드 방침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 신념이니 뭐니 개똥 철학 읊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그럴싸한 추리를 한 오동식은 빌런들이 납득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게다가 힐링팩터는 귀해. 그리고 저놈처럼 팔 잘리면 다시 자라는 도마뱀 같은 놈은 더욱 드물고. 감옥에 가둬두기엔 아까웠겠지. 제대로 키우면 티어 길드 메인 탱커도 가능한 특성이니까. 주세아 닦달에 장득구라고 별수 있겠어? 까라면 까는 거야. 그러니까 우린 저놈을 인질로 잡는다.”
“배때기를 칼로 십창 내도 안 죽는 새끼를 인질로 잡아서 뭐 하게?”
“힐링팩터도 목이 잘리면 끝장인 거 몰라? 자꾸 구시렁대지 말고.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모든 빌런이 오동식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었다.
자살 공격으로 장득구에게 상처를 입히다 보면 언젠가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디버프 때문에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게다가 전투 초반에 함께 싸우기로 한 놈들이 자기만 살고자 약속을 깨고 흩어졌던 일을 생각하면, 각자 옆에 있는 놈이 똑같은 짓을 저지를 개새끼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긴 우중도.
‘개새끼가 아닌 놈들이 없지.’
오동식은 지난 10년 동안 우중도 짬버섯 먹은 경험을 살려 성질 나쁜 죄수들을 중재하곤 있었으나 누구도 믿지 않았다.
솔직히 자기 빼고 나머지가 다 죽더라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 기회에 대부분이 죽기를 바랐다. 적당히 줄여야 얼마 없는 자원도 혼자 독식할 수 있을 테니까.
오동식은 백성빈을 잡을 간단한 작전을 말한 뒤 앞으로 나섰다.
“자, 그럼. 오랜만에 인질 좀 잡아볼까?”
* * *
장득구는 빌런들의 움직임이 바뀐 걸 눈치채고 비웃었다.
‘하여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놈들이라니까. 그래서 여기 갇히고도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빌런들은 서로를 보고 배운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악질 범죄를 익힌다. 어두운 골목에서 만나 온갖 불법이 범벅된 정보를 공유한다.
그래야 나 말고 저놈이 잡혀갈 테니까.
보고 배운 짓이 그렇다 보니 항상 하는 짓도 패턴이 있었다. 마음이 급하면 그 패턴은 더욱 또렷하게 드러났다.
장득구는 백성빈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시작이다! 잘 버텨라!”
이번엔 백성빈도 무슨 뜻인지 되묻지 않았다.
‘그게 이런 뜻이었군.’
빌런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의도는 명확했다.
‘날 인질로 잡아 빠져나가려는 건가?’
자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설혹 인질이 된다 하더라도 장득구에겐 통할 것 같지 않았다.
백성빈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뭐가 됐든 원 없이 갈리게 생겼군.”
빌런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 * *
노송린은 고까운 표정으로 용해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소장 당신이 최도유의 메신저? 그게 무슨 소리야? 빙빙 돌리지 말고 제대로 지껄여.”
용해수는 살기등등한 목소리에도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세상엔 영원한 비밀이 없댔지. 하물며 비밀을 아는 입이 몇 개인데, 아무리 우중도에 갇혔어도 새어나갈 구멍이 이 정도로 많으면 언젠가는 알려질 수밖에 없어. 솔직히 이만큼 오랫동안 버틴 것도 용한 거야. 뭐, 그만큼 최도유가 무서웠던 거겠지.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그게 아쉽기도 했고.”
“뭐야? 최도유가 일부러 비밀이 밝혀지길 바라기라도 했단 뜻이야?”
“최도유는 이곳에서 자신이 벌일 일을 딱히 숨기려고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알려지길 바랐지. 그때를 대비해 내가 여기 있었던 거고.‘
“마치 당신이 최도유 따까리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군.”
“따까리? 글쎄. 그보다는 같은 목적을 공유한 동지에 가깝겠군.”
“동지?”
“하나 알려줄까? 난 단 한 번도 현역에서 은퇴한 적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