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7)
제57화
57. 허락하실 겁니까, 말 겁니까?
“마태수를 찍으라고? 갑자기? 이건 뭐 변덕이 죽 끓는 건가, 아니면 장난치는 건가? 마태수 지지를 철회하랄 땐 언제고 다시 그자를 밀어주라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않습니까? 제가 부탁한 두 번의 요구 사항만 이행하시면 저희 거래는 끝이니까요.
“강무혁 단장, 정말 당신과의 약속은 이 두 가지가 전부인가.”
“김 전무님이 언제까지고 약속에 얽매일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깔끔하게. 이 두 개로 끝내는 게 낫죠. 제가 협박한다고 더 들어줄 분도 아니고.”
“아니라고 부정하진 못하겠군.”
김명준은 찜찜했다.
정말 끝인가?
약점과 목숨줄을 모두 휘어잡은 승자의 요구라기엔 지나치게 깔끔한 거래였다.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자로군.’
들어 보니 전화 몇 통화 돌리면 되는 어려운 일도 아니고, 부당하다고 느낄 땐 거부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달았다.
사람 약점을 잡으면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자신과는 다른 인간.
기본적으로 인간을 불신하는 김명준이 강무혁을 의심하는 건 당연했다.
그는 앞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추했다.
‘마태수 쪽과 어떤 거래가 있었던 거로군. 무슨 내용일까?’
뒤를 파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귀신같이 강무혁의 경고가 들어왔다.
-굳이 알려고 애쓸 필요 없습니다. 며칠 후면 누구나 알게 될 테니까요. 괜히 몰래 움직이다가 겨우 되돌려 놓은 평화를 깨지 않길 바랍니다.
“당한 게 있는데 설마 경거망동할까. 걱정 마시죠, 강 단장님. 나도 염치가 있으니. 하하하.”
-염치는 모르겠지만, 눈치는 빠르신 것 같으니 말씀드리는데. 유니온과 관련된 곳과 계속 손잡고 있으면 위험할 겁니다. 적당한 시점에 손 털고 나오세요.
김명준은 흠칫했다.
‘역시 알고 있는 건가? 혹은 찔러보기?’
강무혁은 유니온을 지칭하지 않고 그 뒤에 있는 다른 세력을 언급했다. 그 때문에 죽이려 한 것인데, 주세아 때문에 실패. 이제 와서 강무혁을 잡는다고 비밀이 지켜질 것도 아니고. 부디 강무혁이 입을 다물어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김명준은 짐짓 허세를 부리며 농담을 건넸다.
“싸우다가 정든다더니. 혹 내 걱정을 해 주는 겁니까?”
-당신 하나만 피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갑자기 강무혁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그 변화에 김명준은 움찔했다. 정중하게 말하는 듯하지만, 허투루 볼 수 없는 한마디였다.
어쨌든 이자는 방심할 수 없다.
김명준은 새삼 긴장감을 끌어 올리며 대꾸했다.
“피를 봐도 내가 먼저 보겠죠. 물론 그 피가 내 것일지, 당신 것이 될진 모르겠지만. 아니면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거래는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다시 엮이지 않길 바랍니다.
통화가 끊기자 김명준은 턱을 문지르며 씁쓸하게 웃었다.
“엮이지 말자고?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 강무혁 단장.”
* * *
요즘 최미란은 마음이 뒤숭숭했다.
“되는 일이 없네.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니. 도 대장이 이렇게 뒤통수칠 줄은 몰랐어.”
“그래도 저흰 그나마 다행이죠. 타이탄에 입단할 것 믿고 도경훈 따라 퇴단한 단원들이 진짜 엿 된 거예요.”
김성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정대장이었던 도경훈의 배신에 존칭마저 생략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퇴단을 두고 고민했다.
구 태성 길드 3대 파벌인 원정대 라인의 수장이랄 수 있는 도경훈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아이언윌에 남을 것인지.
도경훈을 따라가면 타이탄에 들어갈 수 있단 소문 때문에 상당히 휘둘렸었다.
그때 최미란이 그를 말렸다.
강무혁 단장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며.
도경훈이 깨끗하게 퇴단한 것도 아니고, 뒤로 몰래 단원들 빼돌리다 쫓겨났다. 업계에서도 양아치 짓이랄 수 있는 그림으로 나갔으니 단장이 가만둘 리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김성현이 최미란과 함께 길드에 남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니 구사일생이었다.
타이탄과 계약서를 쓴 단원들은 계약대로 입단했지만, 도경훈은 타이탄 현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토사구팽당했다. 그를 따라나섰던 미계약 단원들도 한순간에 나가리. 졸지에 백수가 된 것이다.
프리랜서로 뛸 순 있겠지만, 보장 연봉과 길드 서포트가 뒷받침되던 편안한 생활은 이제 안녕이었다.
“누나가 보기엔 어때요?”
“뭐가?”
“앞으로요. 우리 길드.”
“글쎄. 북포천에 처박히긴 했는데…. 늑돌이들도 있고. 뭐, 잘되지 않을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하긴 탈것 사육장은 확실히 비전이 있긴 하죠. 어쨌든 전 세계에서도 몇 군데 없는 거니까? 게다가 라이더 늑대는 거의 유일한 전투형 탈것이기도 하고.”
“비전으로 따지면 길마님하고 단장님을 먼저 꼽아야지.”
김성현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주세아가 지닌 무력은 한국 제일이라 해도 무방했고, 강무혁의 길드 운영은 성과로 말해 주고 있으니까.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채우는 시너지는 업계에서도 보기 드문 협업 사례였다.
하지만 김성현은 그 부분이 길드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둘만으론 좀 불안한 감이 있죠. 레이드 혼자 뛸 것도 아니고. 당장 길드 탈퇴한 헌터들만 수십 명이에요.”
“머릿수가 많이 부족하긴 하지. 그러니 지금 이 고생이지.”
최미란의 푸념은 당연했다.
당장 패트롤 파티가 모자라서 하루에도 이동로 순찰 근무를 재탕, 삼탕 뛰고 있었다.
헌터이기에 단순 순찰이 힘들 리는 없겠지만, 북포천 면적을 생각하면 여가 시간 하나 없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셈이었다.
강무혁이 인력 보강 계획을 단원들과 공유하지 않았다면, 진작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단장 얘기 들어 보면, 인원 보강에 질적인 업그레이드를 하겠다는 건데. 솔직히 높은 랭크에 실력까지 갖춘 헌터들이 북포천까지 올 리 없잖아요.”
“나란들 뭘 알겠냐? 음흉한 생각이 가득한 사람이니 협박을 하든 사기를 치든 뭔가 방법이 있겠지.”
“도대체 누나는 단장을 좋게 보는 건지, 나쁘게 보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능력은 인정. 인성은 의심. 첫인상부터 쉣이었잖… 어? 저기 오크 아니야?”
최미란은 도로에서 멀찍이 떨어진 언덕 위에서 주변을 기웃거리는 몬스터를 발견하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김성현은 고개를 쭉 빼고 눈을 부라렸다.
“피부색이 검푸른 게 좀 거시기하긴 한데…. 오크야 종류가 많으니까. 못생긴 건 확실히 오크 맞네요.”
그는 바로 지역 정보가 담긴 태블릿을 꺼내 ‘오크’를 검색했다.
“오크는 다른 파티 근무일지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데요. 북포천 몬스터 도감에도 없는 종이고요.”
“새로 소환된 놈인가? 특활지에선 가끔 랜덤으로 몹이 리젠된다던데.”
“그래 봤자 오크죠.”
“얼마 전에 고블린한테 개고생했으면서 그런 말이 나와? 오크도 렙업하면 고블린 이상으로 성가셔져.”
“이제 막 소환됐으면 아직 진화하지도 못했을걸요. 어떻게 할래요? 가서 잡을까요?”
“산 타기 귀찮은데…. 음, 그리고 오크는 혼자 안 다니잖아. 근처에 친구들 있을걸? 쟤들 쓸데없이 끈질겨서 항상 개싸움 된다고. 찝찝하게 피 묻히고 싶지 않아. 그냥 가자. 보고해 두면 다른 애들이 처리하겠지.”
최미란은 꿀꿀한 기분으로 헌팅하고 싶지 않았다. 남포천행 이동로에 접근하지도 않은 오크를 잡자고 땀 흘리기도 싫었다.
그들은 오크를 무시하고 이동했다. 그들이 사라진 이후에도 오크는 도로를 유심히 노려봤다. 그 오크 뒤로 험상궂은 얼굴 몇이 불쑥 솟아올랐다.
최미란이 예상했던 오크 무리였다.
일곱 마리 오크는 코를 킁킁거리며 바람결에 섞인 인간의 냄새를 맡았다.
앞서 있던 오크가 말 투레질 같은 소릴 내며 남쪽을 가리켰다.
오크들은 그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아이언윌 길드에 당장 필요한 건, 첫째가 사람이요, 둘째도 사람이었다.
헌터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무직 단원 역시 부족했다. 얼마 전까지 가득했던 일반직 단원들은 계약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간 상태였다.
“아무리 계약이 북포천 평정 때까지였다지만, 그래도 일반 단원들은 좀 더 부탁해서 잡아 둘 걸 그랬나 봐요.”
난데없이 주어진 산더미 같은 일거리에 주세아는 온종일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슬레이어 길드 파티장에, 원정대 에이스 출신. 레이드 계획서 등 문서 작업에 익숙한 그녀였지만, 해도 해도 줄어들 기미가 없는 일 더미에 항복하기 직전이었다.
“헌터들이야 몬스터를 잡는 게 천직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일반인에게 북포천은 견디기 힘든 환경이죠. 퇴근 후 맥주 한잔할 호프집도 없는 곳에서 워라벨 챙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가족까지 있는 사람들은 더욱 어려울 겁니다.”
“그건 헌터들도 힘들어요. 특히 몬스터 잡고 번 돈 쓰기 좋아하는 젊은 애들한텐 고역이죠.”
주세아의 대꾸에 강무혁은 일하던 시선을 돌려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봤다.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굴렀다지만, 주세아 역시 이제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대개 헌터들이 본격적인 헌팅에 투입되기 시작하는 나이였지만, 중견이라 불릴 경력 때문인지 간혹 그녀는 3, 40대 은퇴 직전 헌터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왜요?”
“아니요.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확실히 북포천은 요즘 젊은 헌터들 성향을 충족시켜 주기 어려운 곳이죠. 길드 일을 사명이 아닌 직업으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계속 우리가 데스크 일만 볼 수도 없는데. 순찰 도는 파티도 죽는소리할 정도예요. 고블린 손이라도 빌려야 할 지경이라고요.”
“그렇다고 아무나 들일 순 없습니다. 도경훈 덕분에 썩은 부위를 많이 도려냈습니다. 새살을 채워야 할 곳에 썩은 물을 또 부을 순 없습니다.”
“우리 같은 C급 길드가 가려서 받을 처지인가요?”
“상식적으론 힘들죠. 괜찮은 헌터들을 데려오는 건.”
강무혁이 두드리는 타이핑 속도가 빨라졌다. 자각자각, 키보드 자판 소리가 요란하게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강무혁이 스트레스를 키보드에 푼다고 생각한 주세아가 그를 말리듯 말했다.
“그러다 키보드 부서지겠네. 거봐요. 그러니까 왜 얌전히 있는 단원들까지 부추겨서 도경훈 쫓아가게 했대? 적당히 어르고 달래서 일단 급한 불부터 껐어야지. 이러다가 이진주 헌터 출근하면 뭐라 할 거예요? ‘원정대장 시켜 준다고 꼬셔서 왔는데, 단원이 없네? 와, 이거 완전 취업 사기당했잖아?’ 단장님 머리채 잡혀도 전 안 말립니다.”
“이진주 헌터는 그렇게 과격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쪽 사정 모르지도 않고요. 어느 정도 각오하고 이적을 결정했을 겁니다. 물론 베스트는 머리채 잡힐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죠.”
“그 베스트를 어떻게 할 건데요? 드래프트나 FA 시장에서 찾을 거면, 그쪽도 퀄리티는 보장 못 할 텐데.”
“그쪽이야 지난번 미리 보여 드린 계획 중에 들어 있긴 합니다만, 저도 그쪽을 주력으로 올릴 생각은 없습니다. 거긴 장기적으로 봐야죠. 대신 저흰 이미 좋은 방법을 찾았지 않습니까.”
“좋은 방법? 언제요?”
강무혁은 대답 대신 스피드를 올려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한순간에 작업을 멈췄다. 사무실에 적막감이 들었다. 그는 마우스를 몇 차례 클릭하곤 태블릿을 들어 주세아 책상에 다가가 걸터앉은 뒤, 태블릿을 조작해 그녀에게 넘겼다.
주세아는 얼떨결에 태블릿을 받아 액정을 확인했다. 화면엔 이력서와 같이 사진과 경력 사항이 적힌 문서들이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한 사람 한 사람 넘겨 보며 물었다.
“이게 뭔데요?”
“영입 리스트입니다. 이진주 헌터처럼 괜찮은 자원을 가진 길드에 이적 제의를 던져 볼 겁니다.”
강무혁의 대답에 주세아는 다시 한번 태블릿을 확인했다.
“이거 되겠어요? 다들 경력이 장난 아닌데? 중견 길드는 그렇다 치고, A급 길드? 머리에 총 맞지 않는 한 길드도, 헌터도 받지 않을걸요. 아니, 나 같으면 머리에 총 맞아도 안 보낼 거예요.”
“물론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해 볼 만합니다.”
주세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강무혁은 허세를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확률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고. 승산이 있으니 영입 리스트를 내민 것일 터. 괜히 재차 태블릿을 훑어본다.
‘정말 데려올 수 있는 건가? B랭크 이상이 이렇게 많은데? 어쭈, A랭크도 있잖아? 레드 게이트 경험자도 있고. 어? 이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네?’
주세아는 태블릿에 얼굴을 묻은 채 눈만 치켜떠 강무혁을 쳐다봤다.
“그래서 제가 해 줄 건요?”
“다른 건 없습니다. 그저 인사권에 대한 무한 재량 정도?”
“그건 계약서 쓸 때 이미 약속했잖아요. 지금까지 태클 건 적도 없고요.”
“여태 쓰지만 않았을 뿐, 계약 조항엔 길드장님이 거부할 권리도 함께 들어 있죠. 그래서 미리 양해를 구해 두는 겁니다. 앞으로 좀, 많이 파격적일 거거든요. 제가 추진한 영입에 절대 손대지 않는다고 확답을 주셔야 이 이적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아, 진짜 뭔데? 왜 이렇게 불안하게 해요?”
“허락하실 겁니까, 말 겁니까?”
부가 설명도 없는 강무혁의 요청에 주세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하지 말란다고 그만둘 사람도 아니고. 해요, 해. 마음대로 하세요. 강 단장님.”
“그럼, 첫 번째 영입으로 태극 길드와 접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