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78)
제578화
#578. 가서 보고 판단해 봐.
강무혁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긴 순간 지금까지 세웠던 계획을 바로 접었다.
‘기존 계획은 대전쟁 시절 나가 왕국의 전력을 바탕으로 세웠다. 그런데 전에 보지 못한 나가가 등장했다는 건 또 다른 변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 변수는 아마도 나가의 진화일 터였다. 당장 근육질 나가만 해도 전에 없던 종이었다.
강무혁은 나가의 진화가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급 미션에서 초반 설계는 무척 중요하다. 계획을 세우는 순간 바로 엇나가는 게 레이드라지만, 설계만 제대로 되어있다면 오차를 수정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처럼 상정한 적이 전혀 다른 수준의 대상이라면, 전투 도중에 수정하는 건 어려웠다.
‘아니, 어려운 걸 넘어서 큰 피해를 볼 거다. 후퇴해 재정비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
어쩌면 후퇴조차 상당한 희생이 필요할 터였다. 그 이유는 바로 전장이 바다이기 때문이었다.
‘물속에서 플라잉 씨홀스가 없는 헌터는 랭크가 적어도 다섯 단계는 다운된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카리브 해에서 머맨이 골칫거리가 된 이유였고, 반면에 나가가 지중해에서 귀찮은 잡몹 취급당하는 차이였다.
갑작스러운 난제에 강무혁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눈치챈 관홍은 잠시 화제를 돌렸다.
“단장님, 나가는 원래 진화 주기가 느린 몬스터로 알고 있습니다. 나가왕이 다시 탄생한 것도 실로 오랜만이죠.”
“예. 대전쟁 이후 처음일 겁니다. 근접했던 개체가 있었지만, 유럽에서 자주 청소해서 제대로 성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나가왕은 왕이 되고서 상당히 오랜 기간 숨어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럽을 벗어나서 동북아로 이주해왔죠. 몬스터 따위에게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만, 이놈은 상당히 영악한 놈입니다. 어쩌면 숨어 사는 동안 뭔가 다른 준비를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관홍 역시 전반적으로 강무혁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 준비가 종족 전체의 진화라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상이기도 했다.
관홍마저 자신과 같은 방향에 초점을 맞추자 강무혁은 첫걸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오키나와. 그리고 그 보금자리에 있는 나가에 대한 정찰이 필요합니다. 관홍 실장님. 일본 쪽에 미팅 가능할까요?”
“직접 개입할 생각이십니까?”
“그동안은 각국 영토에 대한 정찰은 개별로 진행해왔지만, 나가 소굴이 어딘지 확인된 이상 정보 관련된 분야도 이젠 통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홍은 턱을 문지르며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일본에서 별로 좋아할 것 같진 않군요.”
“중국이었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도 지역색이 워낙 강해서 문제인데, 타국의 간섭은 더하죠.”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 간 헌터 미션 공조는 복잡한 문제죠.”
마경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게이트 자원을 독차지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마경을 더욱 키웠다는 건 헌터가 아닌 이들도 아는 얘기였다.
훗카이도가 몬스터 아일랜드가 된 것 역시 외국의 지원을 내정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때를 놓친 일본 정부와 헌터계의 실수였다.
강무혁과 관홍이 우려하는 점은 오키나와도 그와 같은 전철을 밟다가 시기를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안전항로기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겠군요.”
“중재 요청을 할 생각이십니까? 하긴 UN 소속 기관 하나 끼면 그림이 그럴싸해지겠군요. 외국 헌터계의 개입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 조직으로. 일본의 반발이 줄겠군요.”
관홍이 결과를 낙관하며 동의하자 강무혁이 고개를 저었다.
“반발이 줄어요? 그건 일본 헌터계를 모르고 하는 소립니다. 중국은 일본과 이해관계가 직접 부딪히지 않아 모르겠지만, 한국 헌터계는 오랫동안 그들에게 눌려 지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쪽은 겨우 그런 체면치레에 장단을 맞춰 줄 자들이 아닙니다.”
“대충 들어 알고 있긴 한데, 반응을 보니 제 상상 이상이었나 보군요. 그런 명분도 통하지 않을 정도였습니까?”
“명분도 힘 있는 자가 억지를 부리면 소용없죠. 주먹 앞세우고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데, 누가 이겨 먹겠습니까?”
관홍도 잘 아는 논리였다. 중국이, 황룡 길드가 잘 쓰는 방법이었으니까.
중국 헌터계는 대만과 분리 독립한 홍콩 및 동남아 헌터계에 같은 방식으로 위협을 가해왔다.
대의니 명분이니 하나 복잡한 소리는 필요 없었다. 일단 때리고 이유를 만들면 됐다.
때린 뒤 만들어진 이유도 가관이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맞은 입장에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렇게 중국의 억지 주장은 억지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마경과 러시아 때문에 개입 순위가 낮았지. 덕분에 황룡 길드도 신의주에 늦게 진출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지금 아이언윌에 있을 수 있게 됐으니 세상사 참 아이러니하군.’
관홍은 몇 년까진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그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물었다.
“단장님 말씀대로 일본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면, 왜 안전항로기구를 이용하려는 겁니까?”
“명분 쌓기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죠.”
“다른 방법이요?”
“안전항로기구엔 그가 있지 않습니까?”
“그? 그라면… 아아!”
관홍은 강무혁이 콕 집어 말한 이가 누군지 눈치챘다.
강무혁이 씨익 웃었다.
“일본도 알아야죠. 자기네보다 더한 놈이 있다는 걸.”
강무혁이 해밀턴을 통해 미국에 제안서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난데없는 거울 치료를 받게 된다.
* * *
뉴욕시 맨해튼.
‘세계인의 땅’으로 지정된 UN 본부 청사로부터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안전항로기구는 성세를 이루었던 과거와 달리 규모가 쪼그라들어 30층 높이 빌딩의 중간 다섯 개 층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줄어든 살림살이와는 달리 독기는 오를 대로 올라 뉴욕에서 가장 미치광이들이 모인 장소라 불리기도 했다.
그 독기의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안전항로기구는 헌터만이 아니라 일반인 직원도 제정신인 놈이 없어서 갱단이나 마피아도 건들지 않았다.
실제로 기구의 일반인 직원 하나가 차량에 박격포를 넣고 다니다가 경찰 검문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그가 안전항로기구 소속이라는 걸 알고는 벌금형만 내리는 선에서 끝난 사건이 있었다.
뉴욕 시민들은 이 뉴스를 듣고는, 그쪽 사람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고개 한번 끄덕이곤 넘어갔다.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짜라는 점에서 미국인들에겐 미치광이 집단설의 신빙성을 더해줬다.
그렇게 UN에서도 내놓은 자식 취급하는 안정항로기구로 어느 나른한 오후에 한국으로부터 메일 하나가 날아왔다.
메일 발신자는 알렉산더 해밀턴, 수신자는 안전항로기구 사무총장 나빈 맥버니.
나빈은 메일에 첨부된 파일 내용을 보기도 전에 파일명만 보고서 번뜩이는 영감을 받았다.
“머맨 머스트 다이. mmd? 제목 한번 기똥차군. 이건 보지 않아도 고야.”
예상대로 내용 역시 찰졌다. 자신이, 아니 안전항로기구가 원하는 모든 게 들어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만든 게 누구인진 몰라도 만약 앞에 있었다면 아마 키스를 퍼부었으리라.
나빈은 잔뜩 흥분해 항로위기관리국장 제레미 드레이븐을 호출했다.
드레이븐을 부른 건 그가 기구의 해결사이기도 했지만, 제안서의 당사자가 그를 콕 집어 지명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총장님이 절 부른 걸 보니 동북아에서 우리 제안을 받아들인 겁니까?”
“아닐세. 그쪽은 우리 제안서는 보지도 않았어.”
“제법 강단이 있군요. 그럼, 제가 할 일은 거기 가서 한바탕 뒤집어놓는 거겠군요.”
“S랭크가 있는 길드야. 뒤집으려다가 자네가 뒤집힐걸?”
“아, 주세아? 뭐, 죽이려면 죽이라죠. 제가 죽으면 다음은 부국장이 가서 죽으면 되겠네. 그다음은 1국 담당자부터 차례대로 관 짜두라고 하겠습니다. 몇 명까지 죽이나 카운트하라고 하죠.”
“에잉!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난장판을 만들 생각부터 하나? 자네가 그러니까 우리보고 미치광이니, 갱단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거야.”
나빈은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드레이븐은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과격하게 일을 처리할 생각을 했군요. 요즘은 평판이 중요한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할 일은 뭡니까?”
“일본에 가서 깽판을 좀 치게.”
“…….”
뭐지? 방금 한 말하고 너무 다르잖아?
드레이븐은 오랜만에 불충한 눈이 되어 나빈을 쏘아봤다.
나빈은 전혀 흔들림 없이 설명했다.
“아이언윌에서 우리 제안보다 더 좋은 제안을 줬어. 그 전제 조건으로 일본 애들 으름장을 좀 놓아달라더군. 그리고 몇 가지 자질구레한 부탁도 있고.”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그 몇 가지 자질구레한 부탁이 뭡니까?”
“나머진 별것 없어. 한국 국회에서 드러눕는 것 하고, 중국 자금성에 가서 배 째는 것 정도?”
드레이븐은 순간 ‘F’로 시작되는 단어를 뱉을 뻔했다.
하지만 그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굳건했다. 그는 간신히 이 문제의 원흉을 사무총장에서 제안자로 돌릴 수 있었다.
“아이언윌에 미친놈이 있었군요. 자기가 하는 것 아니라고 이런 어이없는 일을 떠넘기다니. 잘못되면 개죽음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일세. 참 곤란해. 그런 탐나는 인재가 동방의 작은 나라에 있다는 게.”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만.”
“자네가 아직 믿음이 부족하군. 이 제안서를 한 번 읽어보게.”
나빈은 프린트한 제안서를 드레이븐에게 넘겼다.
드레이븐은 제안서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읽고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이게 됩니까?”
“자신이 있으니까 지껄였겠지. 대공도 설득한 놈이야. 그게 아니었으면 동북아로 플라잉 씨홀스가 갈 일은 없었어.”
“그러면 된다 치고. 우리 사업을 하려면 동북아 먼저 해결해야겠군요.”
“어때? 지금도 못 하겠나?”
나빈의 질문에 드레이븐의 눈빛이 바뀌었다.
별 감정이 담겨 있지 않던 차분한 눈이 호랑이 눈처럼 빛났다.
“이만하면 개죽음도 감수할 만하죠. 일본으로 당장 떠나겠습니다.”
“일본 가기 전에 한국 먼저 들러.”
“한국이요?”
“요런 미친 인재가 어느 정도인지 봐야 할 것 아니야? 그래야 앞으로 함께 사업할 수 있을지 우리가 홀랑 먹을지 정할 수 있지. 가서 보고 판단해 봐.”
* * *
-너 이 자식! 날 빼고 항로기구와 다이렉트로 연결해? 이거 상도의가 아니잖아?!
한밤중에 걸려온 마크의 전화는 항의와 욕설로 가득했다.
자다가 깬 해밀턴은 조용히 한마디 했다.
“나 퇴근한 지 얼마 안 됐어. 내일… 아니, 오늘 아침에 얘기하자. 끊는다.”
-어이, 해밀턴! 알렉산더! 무슨 퇴근을 이 시간에…….
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