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607)
제607화
#607. 되는 뭐고, 말은 뭐야?
일찍 떠오른 태양 아래, 동해 한가운데에서 러시아 해군 소속 고속정이 닻을 내리고 있는 모습은 퍽 낯설었다. 그 옆에 작은 어선 하나가 가까이 붙은 모습 역시 이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건 러시아 함선에서 미국 헌터, 그것도 S랭크 헌터가 있다는 점이었다.
“오오~ 마리아!”
마리아는 고속정 함교에서 유리창을 깨며 바깥으로 뛰어내리는 드웨인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드웨인이 어선에 착지한 순산 배가 거친 풍랑에 흔들리듯 요동쳤다. 마리아는 헌터답게 출렁이는 배 위에서도 균형을 잡고 서 있었지만, 난간을 넘어온 바닷물에 구두가 젖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살살. 좀 살살! 내가 누누이 말했죠? 다른 사람 생각 좀 하자고요.”
마리아가 가리킨 곳에는 남자 두 명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길드협력처에서 지원 나온 직원이었다.
그녀가 주의를 줬음에도 드웨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어이, 러시아 친구들!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의 외침에 함선 위에선 욕설로 추정되는 고함이 들려왔다.
고속정은 닻을 올리기 무섭게 도망치듯 해역을 빠져나갔다.
러시아 함선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든 드웨인은 마리아를 돌아보며 반겼다.
“그렇게 갑자기 한국에 가버리면 어떻게 해? 정말 곤란했다고.”
“왜요? 소송 때문에? 드디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조금은 알았나 보네요?”
“아니, 뉴욕브리치즈버거를 먹고 싶은데, 사다 줄 사람이 없어서.”
잠시간의 정적.
“하아, 그러면 그렇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네. 이 인간이 소송에 신경 안 쓰는걸. 잠깐! 뉴욕브리치즈버거를 먹는데 왜 날 찾아? 뉴욕 출입 금지 명령 해제됐잖아. 직접 가서 먹으면 되지.”
“아, 내가 말을 안 했나? 지난달에 나 다시 금지당했어.”
“왜?!”
“뉴욕시장 놈이 TV에서 나보고 갱만도 못한 놈이라잖아. 그래서 홧김에 욕을 해줬지.”
“겨우 욕한 거로 출입금지를 시킨다고? 그게 말이 돼?”
“어. 말이 되더라고. 직접 가서 거꾸로 매달아 놓고 욕했거든.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고도 몇 개 있었고.”
“부, 불미… 그게 뭔데?”
“별건 아니고. 그냥 방 하나 부수고, 몇 사람 다친 정도?”
마리아는 등줄기에 오한이 들었다.
‘보통 이런 패턴일 때는 피해액을 100배 부풀려 짐작해야 하지. 건물 하나 부순 걸까? 아니야. 그랬다면 뉴스에 나왔을 텐데, 이번엔 크게 이슈가 되는 사건이 없었단 말이지.’
평소 마리아의 일과는 뉴스를 보는 것으로 시작해 뉴스로 끝났다. 드웨인이 사고치고 뉴스에 나오는 일이 많은 탓이었다.
이 오랜 습관은 이제 하루라도 안 하면 불안한 지경에 이르러서 드웨인의 법률 대리인을 때려치우고 왔음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다그쳐 물었다.
“내 경험상 거기서 끝이 아닐 텐데? 똑바로 말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예요?”
“진짜라니까. 나 진짜 말한 게 전부야. 그 이상으로 뭔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드웨인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호소했다.
마리아는 미심쩍은 얼굴을 지우지 않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 보니 진짜긴 하네. 죽은 사람은 없죠?”
“어. 없어. 중상자도 없고. 팔 부러진 사람은 있지만.”
“휴우, 그나마 다행인가? 알았어요. 믿어줄게요.”
“역시 마리아!”
“뉴욕시장은 무사하죠?”
“그냥 멱살 잡고 욕만 했어.”
“일단 저도 알아야 하니까, 그 부서진 방이 있는 장소하고, 팔 부러졌다는 사람 이름 알면 알려줘요.”
“어, 거기…. 주소는 잘 모르겠고. 빌딩 이름이 엠파이어 스테이트야. 거기 파티홀을 좀 부쉈어.”
“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거기 역사 명소로 등록된 곳이잖아! 너 지금 문화재를 부쉈다고! 그리고 거기 파티홀은 기금 파티 같은 큰 행사만 하는 곳이잖아? 거기 1년 예약이 꽉 차 있는 것 몰라?!”
그제야 마리아는 어째서 뉴스에 드웨인의 행패가 나가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파티룸은 상류층 사람들의 자선기금 파티나 기념회 행사를 주로 하는 장소였다. 그만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모였다.
뉴욕시장이 그런 사람들 앞에서 멱살을 잡혀 쌍욕을 먹었으니 이보다 망신일 수가 없었다.
워싱턴 정계로의 진출을 노리는 뉴욕시장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지였다.
드웨인과 엮였다는 것 자체가 언론과 미디어에 숱한 떡밥을 제공하는 것과 같았다.
보통 드웨인은 미국 스탠딩 코미디의 주요 소재 중 하나로 쓰였으니 뉴욕시장 역시 도매가로 함께 넘어갈 수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소스에 쓰이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갑자기 드웨인이 손뼉을 쳤다.
“아아, 파티! 그래서 거기 사람들이 엄청 모여 있었구나? 참, 생각났다. 내가 팔 부러트린 사람. 거기 플랜카드에 적혀 있었어. 줄리어스 위빙? 우빙? 어빙? 그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주, 줄리어스 어빙?! 야, 이 자식아! 뉴욕 상원의원 팔을 분지르면 어떻게 해?!”
줄리어스 어빙은 상원의원이자 다음 미국 대선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 중 하나였다.
재회 5분 만에 마리아는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드웨인은 깜짝 놀라며 마리아를 부축했다.
“안 돼에, 마리아! 죽지 마!”
“고혈압에 시달리는 헌터는 아마 나밖에 없을 거야.”
“괜찮아?”
“그래도 걱정은 해주긴 하네요. 내가 죽든 말든 나 몰라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나 배고파.”
“…….”
“죽기 전에 한국 맛집 좀 알려줘.”
이 자식이 S랭크만 아니었어도 죽여버리는 건데.
악다문 이빨에서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번뜩이는 영감이 마리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마침 잘됐네요. 제가 얼마 전에 대단한 맛집을 알아냈거든요.”
“오오, 역시 마리아! 뭔데? 어떤 요리야?”
“한국에 열 명이 먹다 열 명이 죽어도 모를 맛이죠.”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뉴욕브리치즈버거보다 더 맛있겠네?”
“그럼요. 아주 뿅 갈걸요.”
“그 음식 이름이 뭔데?”
“삭힌 홍어와 청국장. 진정한 한국의 맛이랍니다.”
* * *
강무혁은 전화를 통해 마리아의 보고를 듣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상원의원 팔을 부러트렸다니 더욱 잘됐네요. 한국 망명의 이유 중 하나로 넣죠. 그 상원의원 이름이 줄리어스 어빙이라고 했죠? 어쩌면 이쪽에서 역으로 화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사람 때문에 S랭크가 망명한다고 하면, 소송은 꿈에도 꾸지 못할 겁니다.”
-지금 농담이 나오세요, 단장님?
“물론 협박만 해서는 농담이겠지만, S랭크의 지지 선언이라면 꽤 좋은 미끼가 되지 않겠습니까? 더해서 망명하려던 드웨인의 마음을 돌렸다는 타이틀을 건네주면, 그쪽에서도 제법 좋은 홍보라 생각할 겁니다. 팔 하나와 맞바꾼 대통령 자리. 제법 먹힐 것 같지 않습니까?”
-괜찮은 생각이라고 생각한 제가 참 원망스럽네요. 드웨인이 뭐가 이쁘다고 이렇게 해줘야 하는지 자괴감도 느껴지고요.
“줄리어스 어빙에 관해선 해밀턴 씨에게 물어보도록 하죠. 그와 관련한 전략도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럼, 북포천에서 봅시다.”
강무혁이 드웨인이라는 꽃놀이패를 들고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마리아가 북포천에 도착했다.
마나 카트리지를 부착해 환승 없이 특활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차량이 별도의 검문 없이 아이언윌 길드에 들어왔다.
하지만 강무혁은 그것만으론 보안에 부족하다고 여겼다. 현재 길드엔 고을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량을 길드로 들이지 않고 다른 장소를 알려줬다.
“대낮이라 본사에도 보는 눈이 많습니다. 북쪽으로 가죠. 철원 쪽은 정리가 안 된 지역이라 아직도 어수선합니다. 사람도 살지 않으니 거기가 적당할 것 같네요.”
철원은 길드 이전 초창기 오크 전쟁 당시 오크를 뱉어낸 게이트가 있던 곳이었다.
대전쟁의 여파로 수많은 지뢰가 깔린 탓에 불모지가 된 땅이었다.
사람도 거의 살지 않고 특활지에 붙어 있는 데다가 여전히 야생의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지역이라 재개발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였다.
드웨인을 태운 차량이 철원으로 이동한 뒤 강무혁은 주세아를 찾았다.
그녀는 이미 드웨인에 대해서 보고를 들었던 터라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내가 가야겠죠?”
“길드장님께서 직접 맞아주시면 든든하죠.”
“별로 반기고 싶은 스타일은 아닌데.”
“폭군을 만날 땐 마경까지 손수 찾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폭군이 나을지도.”
“설마요.”
“적어도 폭군은 러시아에서 대접받잖아요. 그에 반해 드웨인은 거의 내놓은 자식 아닌가?”
강무혁도 이번만큼은 뭐라 대꾸할 말이 궁색했다.
그 역시 드웨인이 마냥 쓰기 좋은 패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인데, S랭크인 건 확실히 부담스럽지.’
하지만 드웨인이 태평양을 수영으로 건너온 건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강무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상황을 최대한 유리하게 끌어가는 것뿐이었다.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올라타라.
강무혁은 드웨인에게 올라타기로 결정하고 일말의 불안감을 지웠다.
“그래도 참고 잘 대해주십시오. 잘하면 이번 나가 공략 때 공짜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보면 참 단장님은 공짜 좋아한단 말이야. 꽁으로 먹으려다간 대머리 돼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 집안엔 대머리가 없습니다. 유전적으로 머리가 벗겨질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주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머 코트를 챙겨 들었다.
“좋아요. 오늘도 연기 좀 해보지, 뭐. 내가 또 한 의전하니까. 아주 드웨인이 송구스러울 정도로 친한 척해줄게요.”
* * *
인적이 드물다 못해 아예 없는 철원의 아스팔트 도로 위로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사람이 없었기에 드웨인은 차량 밖으로 나온 상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는 그에게 마리아가 경고했다.
“도로에서 벗어나지 마요. 여기 곳곳에 지뢰가…….”
쾅!
“벌써 밟았구나? 응, 그래야 드웨인이지.”
몬스터용 지뢰인지 폭발력이 강했다. 드웨인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도로 위로 떨어졌다.
도로를 부수며 등판으로 떨어진 드웨인은 곧바로 벌떡 일어서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여긴, 코리아 디즈니랜드인가? 뭐가 이렇게 재밌어?”
확 마경에 던져버리고 싶다.
마리아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도로 끝에서 검은 차 한 대가 접근해왔다.
차량이 멈추자 강무혁과 주세아가 내렸다.
드웨인은 주세아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오! 주세아다!”
“이야, 치즈버거네?”
주세아가 비꼬듯 응답하자 강무혁이 바짝 붙어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길드장님, 의전. 의전이요.”
“아 맞다. 치즈버거처럼 생겨서 나도 모르게 그만. 아니 타코였던가? ”
뻐억!
LA 타코 트럭 앞에서 처음 만났던 걸 빗대 상대를 놀리려던 주세아의 고개가 갑자기 홱 돌아갔다.
주세아는 그대로 타고 온 차량에 부딪혀 함께 날아갔다.
“드웨이이인!”
마리아가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보자마자 사고를 치다니. 그나마 여기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동아줄인데.
놀란 마리아에 반해 강무혁은 태평했다. 그가 드웨인에게 물었다.
“주세아 길드장님과 싸우면 곤란합니다, 드웨인 헌터.”
“싸운 거 아니야. 지난번 빚을 갚은 거지. 그때 그쪽 길마가 나보고 뭐랬더라? 쏜빵빌숭? 하여간 먼저 때려야 이긴 거라며? 난 그걸 한 거라고. 다치기 싫으면 괜히 나서서 말리지 마.”
강무혁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싸우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드웨인 헌터가 곤란해진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곤란해?”
“어. 많이 곤란해질 거야.”
드웨인의 질문에 답한 건 주세아였다. 드웨인이 고개를 돌렸다. 주세아는 차량 보닛에 처박힌 몸을 빼내며 일어서고 있었다.
“선빵필승. 잘 배웠네. 그러면 내가 하나 더 가르쳐주지.”
“우리 S랭크 후배님이 가르쳐준다니 배워볼까?”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 알아?”
“되는 뭐고, 말은 뭐야?”
“되는 방금 네가 날 때린 거고. 말은…….”
순간 주세아가 드웨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웨인은 복부에 큰 충격을 느꼈다. 허리가 새우처럼 꺾이며 수백 미터를 날아갔다. 땅에 묻힌 지뢰가 그가 구른 궤적을 따라 화려하게 폭발했다.
드웨인은 낮은 산허리에 파묻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말은 방금 내가 때린 거.”
주세아가 강무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한국에 온 대접 확실하죠, 단장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