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611)
제611화
#611. 적을 안 만드는 게 가장 베스트입니다.
드웨인 딕스의 느닷없는 한국 귀화 발표는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렸다.
낮에는 카페에서, 밤에는 바에서, 화이트칼라의 사무실과 블루칼라의 현장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모든 사람이 드웨인 얘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드웨인에 대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역시 워싱턴이었다.
미국 정치 중심지.
백악관에 쏟아지는 전화로 웨스트윙(백악관 서쪽 동, 대통령 집무실이 있음) 직원들은 두통을 앓을 정도였다.
특히 백악관 대변인 제이 클레번은 출입 기자들의 성화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제이, 오늘 기자회견은 왜 시간을 미뤘죠? 지금 언론을 피하는 건가요?”
“상황 파악 중이에요, 브린. 조금만 참을성을 가져줘요.”
“클레번 대변인. 드웨인 딕스의 한국 이적설에 대한…….”
“피터. 여기서부터는 관계자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합시다.”
“나중, 언제요?”
“곧이요. 곧 문자 갈 겁니다.”
제이는 기자들을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며 관계자 구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귀찮은 언론을 피할 때면 그가 항상 숨는 곳이었다. 기자들은 그가 충분히 곤란한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다. 백악관 대변인이 곤란하다는 건 아직 위에서 대응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거나 아직도 상황 파악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혹은 상황을 무마할 협상 카드를 제시 중이거나.’
대전쟁 시대 이후 워싱턴 유력지로 떠오른 워싱턴 투데이의 붙박이 백악관 출입 기자인 브린은 손목에 끼고 있던 머리끈으로 자신의 연갈색 단발을 질끈 묶었다. 특종의 냄새를 맡은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바빠질 것 같은데?”
* * *
제이는 기자를 따돌리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와의 실랑이는 정말 넌더리가 난다니까.’
무슨 일만 벌어졌다 하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악마의 족속들이었다. 그들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질문은 PTSD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제이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악마보다 더한 현장을 목도했다.
사방에서 어지럽게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아니요. 저흰 그것에 대해 답변드릴 권한이 없습니다.”
“의원님, 지금 보좌관이 전화를 피하는 게 아니라 이미 양손에 전화기를 들고 있어서…….”
“예. 드웨인이요. 예. 역시 드웨인이죠. 예. 그러니까 드웨인 아니겠어요?”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총성 대신 전화벨이 귀를 따갑게 했고, 직원들은 무기 대신 수화기와 스마트론을 들고 정신없이 통화하고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바로 울리는 과정이 반복되자 제이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 질렀다.
“모두 전화선 뽑아! 스마트폰 꺼!”
제이의 고함에 직원들은 바로 전화를 끊고 수화기를 책상에 내려놨다.
한순간에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이는 직원 전부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웨스트윙에서 아무도 나가지 마! 밥도 시켜 먹든가, 굶든가 해! 누구와도 접촉하지 말고, 가족 전화도 받지 마! 그랬다가 걸리면 바로 짐 쌀 줄 알아!”
“나도 책상 비워야 하나?”
등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제이가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비서실장님.”
“오늘 점심에 의회 약속이 있는데 말이야.”
“기자들에게 안 잡히기만 하면 됩니다.”
“공보국장은 이미 입구에서 잡혀서 허둥대더군.”
“그 양반은 원래 말이 별로 없어서 괜찮습니다.”
“그럼, 됐고. 따라오게. 대통령님이 부르시네.”
제이는 출근하자마자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 불려가는 게 부담스러웠다.
아직 대응책은커녕 상황 파악도 되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부르니 안 갈 수도 없었다. 지금 핑계를 대거나 자리를 피우는 건 직무 태만이었다. 대통령이 곤란하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게 자신들 참모진이니까.
‘대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재선을 노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런 핵폭탄을 터트리다니. 드웨인 딕스! 이 미친 새끼야!’
제이는 속으로만 쌍욕을 뱉으며 비서실장을 뒤따라갔다.
* * *
현 미합중국 대통령 애런 아서는 백악관 참모진들을 모아놓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사라진 드웨인 딕스가 한국에서 나타나다니. 지난번 항공기 하이재킹 사건 이후 내가 잘 감시하라고 하지 않았나?”
전략 무기 취급을 받으며 국가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S랭크는 어느 나라에 있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귀영화 안에는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다.
소속 국가 안에서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으나 국경을 넘을 때는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이유가 합당하더라도 절차는 복잡했다. 그 절차를 모두 소화한다고 해도 최종 승인 도장이 찍히지 않으면 절대 다른 나라에 입국할 수 없었다.
이는 앞서 말했듯 S랭크가 전략 무기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이나 일본 등 동북아 국가에선 헌터의 군사 무기화에 대한 인식이 다소 떨어졌으나 서방 세계와 중동, 아프리카 등의 제3세계 국가에서는 ‘헌터=군사 병기’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몬스터로 인해 혼란한 정국을 틈타 쿠데타를 일으킨 아프리카나 신의 이름을 앞세우는 중동, 헌터가 범죄 조직을 세우는 남미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각 지역에서 헌터를 무기로 내세우다 보니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도 자연스레 그들의 위험한 행보에 개입하면서 생긴 인식이었다.
즉, 지금 미국은 핵무기를 길바닥에 내버려 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다른 나라에 쓰라고 던져준 것이었다.
대통령의 낮은 목소리에는 그런 질책을 뛰어넘어 분노가 담겨 있었다.
비서실장 허버트 프랭클린이 나섰다.
현재 대통령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 정치 초년생 시절부터 선거 캠프를 거쳐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 함께 해온 그 외에는 없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이름을 두 개나 이름에 넣고 있는 이 비서실장은 침착한 음성으로 대통령의 화를 다독였다.
“CIA도, FBI도, NSA도, S랭크를 감시하는 건 어렵습니다. 누굴 탓할 문제가 아닙니다.”
“탓이 아니라 시스템의 부재를 말하는 것일세.”
“시스템이 통하지 않으니 S랭크인 거죠.”
“그럼, 슈퍼S는? 그 작자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기껏 S랭크 협의체라고 족쇄를 달아놨더니 하는 일이 없잖은가. 매번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우는소리만 하지.”
슈퍼S는 S랭크 헌터들과 그들 소속 길드들을 제어하기 위해 만든 법안의 이름을 따서 만든 조직이었다.
미국은 강한 헌터의 힘을 법으로 다스리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S랭크를 완전히 다루는 건 불가능했다. 비서실장이 이 점을 짚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할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S랭크의 힘을 함부로 투사하지 않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단지 번외자가 슈퍼S에 속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을 뿐이죠.”
“안 되면 힘으로라도 가입시켜야지.”
“힘으로 하면 남북 전쟁 저리 가라 할 큰 피해가 날 겁니다. S랭크끼리 싸우라니 끔찍하군요. 선거는 물거품 되겠죠.”
선거 얘기가 나오자 대통령의 흥분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감정만으론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우리가 좀 안일하긴 했죠. 드웨인 그자야 원래 제멋대로 돌아다녀서 어디 게이트에라도 들어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지난번엔 교도소가 궁금하다고 66구역에 들어갔던 자입니다. 그런 미친놈을 제어하는 건 선거에서 캘리포니아를 가져오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기회를 포착한 비서실장이 우스갯소리를 뱉었다.
대통령도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차라리 66구역이 낫지. 거기 악명 높은 빌런 놈들 마음에 안 든다고 모두 죽였으니까. 덕분에 빵값 축내는 버러지들 세금 낭비 줄이지 않았나. 내가 알기론 그게 드웨인이 한 가장 착한 일이었을걸세.”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자 대통령은 대응책을 물었고, 비서실장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우선 상황 파악이 먼저죠.”
“파악할 게 뭐 있나? 한국 귀화하겠다고 헛소리하는 건 사실인데.”
“그 헛소리를 왜 하는지 알아봐야죠.”
“바로 알아볼 수는 있고? 시간이 없어. 언론에 뼈다귀라도 던져줘야 해. 그런데 북한 붕괴 후에 한국 라인은 전략 우선순위에서 배제됐지 않은가.”
“전화 한 통이면 됩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한국에 알렉산더 해밀턴 실장이 있으니까요.”
“해밀턴이?”
대통령의 미간에 주름이 아로새겨졌다.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은근한 어투로 말했다.
“혹시 그가 드웨인을…….”
“절대 아닙니다. 괜히 이상하게 엮지 마십시오. 그 탓에 유능한 헌터 정책 수장을 내쫓지 않았습니까?”
비서실장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대통령은 지금 해밀턴이 수작을 부려 드웨인을 빼간 건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전혀 상관없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국가 반역죄로 평생 가둬둘 수 있었다.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속셈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는 해밀턴 같은 인재를 그렇게 버리긴 아깝다고 여겼다. 언젠가는 다시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의 분노 때문에 망가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분노가 한국 아이언윌 길드의 주세아 길마와 강무혁 단장 때문이었지. ‘르페브르 게이트’니 뭐니 하면서 터트렸으니 하마터면 임기 중간에 레임덕이 올 뻔했으니까.’
당시 해밀턴은 강무혁과 협력해 다음 대선의 유력한 상대 당 대통령 후보인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인기 정치인으로 띄워주고야 말았다.
그 탓에 대통령으로부터 밉보였다. 대통령의 해명 요구에도 정면으로 반박하며 질타하는 바람에 화를 돋우고야 말았다.
‘지금 아이언윌에 있다는 소린 하지 않는 게 좋겠군. 드웨인의 변호사인 마리아 로렌스도 함께 있다는 것 역시.’
일이 성사되기 전에 대통령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 성격에 파탄이 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10년 전 자신에게 굴욕을 안긴 정치인의 일을 잊지 않고 정치적 복수를 할 정도로 뒤끝이 긴 애런 아서 대통령이기에 비서실장은 적당히 정보를 가지치기해서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나중엔 대통령도 알게 되겠지만, 과도한 정보는 당장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었다.
‘정보를 내가 먼저 마크에게 들어서 다행이야. 설마 안전항로기구가 물밑에서 로비스트를 움직이고 있을 줄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신기할 정도로 우연과 필연이 겹친 관계였다.
나가 사태에 안전항로기구가 관심을 가진 건 당연했다. 워싱턴에서 유능한 로비스트인 마크 리빙스턴에게 일을 맡긴 것 역시 별로 이상할 게 없었다.
그가 옛 친구이자 경쟁자이면서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강무혁과 연결된 해밀턴을 찾은 것도 이해 가는 일 처리였다.
그런데 마리아 로렌스에서부터 뭔가 어긋났다.
‘해밀턴은 어째서 마리아를 고용했는가.’
비서실장 역시 그 부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반역은 억측에 불과했다.
마리아가 드웨인 일을 그만두려 한다는 건 이쪽 업계에서 유명한 희망 사항이었고, 실제로 그만두려 했을 때 정계가 은밀히 움직여 그만두지 못하게 공작을 펼칠 정도였으니까.
드웨인 같은 폭탄에 달린 유일한 안전장치를 함부로 뽑게 둘 순 없었다.
그런 사항을 고려해 비서실장이 내린 결론은.
‘도망쳤겠지. 해밀턴과 아예 안면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일자리 제안받으니 옳다구나 갔을 거야. 그런데 드웨인은 왜 한국에 갔을까?’
비서실장의 추리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설마 드웨인이 출입 금지당한 뉴욕에서 햄버거 하나 먹겠다고 대신 사다 줄 배달부로 마리아를 찾아 태평양을 헤엄쳐 건넜다는 식의 상상은 꿈에도 꾸지 못할 터였다.
그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해밀턴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처리하려는가?”
“드웨인 쪽과 접촉해서 그가 원하는 걸 들어보고 없던 일로 만들어야죠.”
“없던 일? 이 난리를 치고도?”
“단순 해프닝으로 만들거나, 드웨인의 변덕으로 만들면 됩니다. 정신병이 있다고 해도 좋겠군요. 조울증 같은 것 말입니다.”
“정신병은 곤란해. 사람들이 기겁할 걸세. 조울증 걸린 핵폭탄을 생각해 보게.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하지 않나.”
“그럼, 적당히 말을 맞춰서 무마해보도록 하죠.”
“좋아. 최대한 빠르게. 다른 사람들은 언론에 일절 대응하지 않도록. 모두 입단속 시키고. 대변인은 비서실장과 얘기해서 여러 가지 방안으로 발표 내용 미리 준비하고.”
“예. 알겠습니다.”
애런 아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참모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웨스트윙의 긴 하루가 시작됐다.
* * *
강무혁은 늦은 밤에 해밀턴을 찾아 부탁한 내용을 확인했다.
“해밀턴 씨 얘기가 백악관엔 잘 흘러 들어갔겠죠?”
“그럴 겁니다. 마크에게 언질해 뒀으니까요.”
“지난번에 싸웠다더니 우리 요구대로 하던가요?”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지만, 로비스트는 적을 안 만드는 게 가장 베스트입니다. 안전항로기구의 로비 건은 제가 아닌 마크의 공적으로 돌렸습니다. 기구와도 합의했고요. 리타이어가 아니라, 거래 성공으로 경력이 붙었으니 분명 만족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