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635)
제635화
#635. 승인하겠습니다.
노송린이 미스터 조와 현정건을 지목한 건 단순히 혼자 못 죽는다는 심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의 그는 일반인 단장의 비서 역할을 자처한 실없는 헌터처럼 보이지만, 태성 길드 시절에는 공격대 라인의 수장으로 길드를 갈가리 찢어놓은 수완을 발휘하던 자였다.
게다가 빌런과 몬스터가 난무하는 우중도라는 흉지에서 살아나온 보기 드문 생존 전문가.
나름 사람을 다루고, 안 될 일을 되게, 될 일을 안 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김명준이 괜히 우중도에서 자신을 무서워하면서도 말을 듣지 않는 노송린을 태성 길드에 집어넣은 게 아니란 뜻이었다.
그런 경험을 살려 선택한 게 바로 이 두 사람이었다.
‘스파이나 암살자나 몬스터 상대로 전쟁할 땐 고랭크라는 것 외에 별 쓸모가 없단 말이지.’
강무혁도 그걸 알기에 전쟁에 투입하기보단 만약을 대비한 예비 전력으로 두고 있었다.
강무혁은 국내엔 김명준과 백귀, 더해서 이들을 이용하려는 키신과 그를 상대하는 최도유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걸 경계하고 있었다.
‘당장은 나가 전쟁 때문에 묻힌 감이 있지만, 오키나와 건이 정리되면 그때부터 움직일 거라고 단장님은 예상하고 있지. 조 씨와 현 씨는 그때까지 개점휴업 상태이니 지금 쓰는 건 괜찮아.’
게다가 노송린이 오키나와에서 상대해야 할 건 몬스터가 아닌 헌터들이었다.
그것도 그냥 헌터가 아니었다. 지난 1년 가까이 법과 질서에서 멀찍이 떨어졌던 헌터들. 이놈들은 거의 ‘절반은 빌런’이라 해도 무방했다. 이런 헌터들을 상대하는 데는 후방 교란과 무력이 필수였다.
노송린은 우중도 때의 경험을 살려 이 어설픈 ‘반런’들을 휘어잡은 뒤 고을지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데려온 미스터 조와 현정건을 맞이했다.
“웰컴 투 오키나와. 형제들, 기다렸다네.”
노송린을 보자마자 미스터 조와 현정건이 반가움을 표시했다.
“노 씨, 거기 가만히 있어. 어허, 왜 뒤로 가? 안 아프게 죽여줄게. 반항하면 고통만 늘어난다고.”
“죽이는 건 내가 하지.”
현정건이 팔을 걷어붙이며 다가갔다. 그의 손목엔 작은 비수들이 꽂혀 있었다. 비수의 칼날은 청회색이었다. 어떤 몬스터의 비늘을 소재로 만든 칼이란 뜻이었다.
노송린은 그걸 눈치채곤 뒷걸음질 치며 허리춤에서 슬며시 카람빗칼을 꺼냈다.
“흥분하지 마. 이거 임무야. 단장님 오더라고. 오면서 설명 들었지?”
“설명? 들었지. 단장님이 나가라는 델 가보니 고 씨 꼬맹이가 너하고 똑같이 말하면서 우릴 바로 끌고 오더군. 노 씨가 우릴 추천했다면서 말이야.”
“나 꼬맹이 아니야!”
고을지의 외침에 노송린과 현정건이 동시에 소리쳤다.
“인마, 넌 또 그걸 꼰지르냐? 이봐, 현 씨. 오키나와에 날 데려온 건 고을지라고. 쟤가 모든 일의 원흉이야.”
“호오, 역시 꼬맹이였냐? 기다려. 노 씨 다음엔 너니까.”
고을지는 억울해하며 미스터 조에게 하소연했다.
“미스터 조, 현 씨가 날 죽이려 해! 난 아무 잘못 없다고! 나도 길마한테 당했어!”
“넌 현 씨보다 날 먼저 걱정해야 할걸. 내가 내려달라는데 무시하고 데려왔지?”
“으잉? 미스터 조는 내 편 아니었어?”
“내가 네 편이었으면, 현 씨만 데려갔어야지!”
현정건이 인상을 팍 쓰며 미스터 조를 째려봤다.
“어이, 너만 살겠다는 거냐?”
“세상이 원래 그래. 나만 잘살기도 바쁜데 누굴 챙겨?”
미스터 조와 현정건 사이가 삐거덕거리는 것 같자 고을지가 냉큼 틈을 파고들었다.
“봐봐, 저 암살자 아저씨는 못 믿을 놈이라고. 근데 우린 사이 좋았잖아. 맨날 수다도 나누고 그랬잖아.”
“수다? 좋지. 근데 넌 나하고만 수다 떤 게 아니더라. 내가 너한테 모로코 일 흘린 걸 단장님이 어떻게 알까? 도망치려니 그걸 가지고 찌르는 바람에 튈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가 여길 잡혀 왔고. 그런데 과연 우리 사이가 좋을 수 있을까?”
“그, 그건…….”
“그냥 포기하고 일루와.”
고을지는 모든 걸 체념하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동작 그만! 움직이지 마! 여기 지금 내 영역이야! 수작 부렸다간 바로 다 같이 죽는 거야!”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미리 낌새를 눈치챘던 아이언윌 헌터들은 고을지의 기운에 맞섰다.
나머지 일본 측 헌터들은 뒤늦게 대응하는 바람에 휘청거렸다. 그중 저랭크 헌터들은 아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미스터 조는 고을지의 반항을 비웃었다.
“너 지금 내 독에 중독된 건 모르지?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아까 날아올 때 몰래 독향을 뿌려뒀어. 해독제 없으면 한 시간 후에 무지막지한 고통을 겪을걸?”
“향? 혹시 아까 복숭아 냄새 나던 게 그거야?”
“응. 청산가리도 좀 섞어서 향은 나쁘지 않았지?”
“겨우 청산가리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쿠헥! 으윽, 갑자기 왜 이렇게 메스꺼워.”
“청산가리는 그냥 시약 중 하나고. 진짜는 게이트에서 뽑아온 독초지.”
“흥! 독이면 표 실장님한테 빼달라면 된다고. 우웨엑!”
“그 꼴로 한 시간 만에 북포천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가다가 바닷물에 추락할 것 같은데.”
“이 악마!”
“같이 죽자고 반항한 게 누군데 그래?”
막장이었다.
졸지에 끌려온 일본 헌터 칸지는 형제라면서 서로 칼을 들이대고 있는 한국 헌터들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그냥 도망치고 싶다.’
그는 다시 한번 우중도 출신(?) 헌터들에 대한 소문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들의 대치는 고을지가 입에서 거품을 뱉을 때까지 계속됐다.
* * *
“와아, 눈이다.”
김나리는 창밖에 갑자기 매섭게 내리치는 눈보라를 보며 마음이 들떴다.
이 정도면 얼마 지나지 않아 쌓일 게 분명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쨍강.
“앗! 을지가 선물한 BTA 머그잔이……!”
너무 들떴는지 책상 끝에 뒀던 컵을 생각지 못하고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진 컵은 산산조각이 났다.
김나리는 깨진 컵 조각을 치우며 불길함을 느꼈다.
‘으음, 을지가 준 컵이 깨지다니…. 예감이 안 좋은데?’
그렇게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김나리는 이내 피식 웃으며 걱정을 떨쳤다.
“에이, 몬스터 가지고 줄넘기도 하는 앤데. 설마 별일 있으려고.”
* * *
실로 오랜만에 낮잠이라는 걸 즐긴 강무혁은 늦은 점심을 때우기도 전에 길드를 나서야 했다. 조선소에서 온 연락 때문이었다.
그는 평소 함께 다니던 노송린 대신 표범희와 염수형을 대동하고 군산으로 내려갔다.
“두 분 바쁠 텐데, 제 보디가드 하신다고 죄송하네요.”
“죄송할 게 뭐 있나? 어차피 직원 많이 뽑아서 할 일도 별로 없어. 게다가 김명준도 조심해야 하잖아. 혼자 다니게 둘 순 없지.”
표범희는 뒷좌석에 함께 앉아있었다. 운전대는 염수형이 잡았다.
일반 직원이 듣기엔 민감한 문제가 많았기에 헌터들로만 구성한 팀이었다.
표범희가 물었다.
“그래서 조선소에는 왜 가는 거야? 무슨 문제 있대?”
“지금 중국과 일본 군함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방어 장비 부착 때문에?”
“예. 그런데 함께 들어온 헌터들하고 그쪽 감시한다고 붙어 있는 우리 쪽 헌터들이 충돌했다고 하더군요.”
“충돌?”
표범희가 눈을 치켜떴다. 평소에도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매섭게 변했다.
그녀의 성격을 아는 강무혁은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실제로 싸운 건 아닙니다. 그냥 대치 중이죠.”
“이유가 뭔데?”
“장비 자체가 전에 없던 물건이잖습니까. 그걸 한 번 확인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표범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궁금하던 참이었다.
제한 시간이 있다지만, 바다 몬스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장비라니?
헌터라면 누군들 궁금하지 않을까. 아니, 게이트 산업에 발을 들이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비밀을 들여다보고 싶을 터였다.
하지만 표범희는 그 장비의 출처에 대해 묻지 않았다. 때가 되면 강무혁이 어련히 알려주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 공개할 수 없으니까 말을 하지 않는 거겠지.’
타이탄 시절 함께 일할 때부터 강무혁은 한결같았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정 없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표범희는 다르게 생각했다.
정이 없다기보단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할 뿐.
실제로는 꽤 마음이 약한 사람이 강무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대치를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서대치의 형인 서대길의 죽음에 마음의 빚이 있기에 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신경 쓰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관심 없는 것 치고는 서대길의 일지를 빌려 서대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수고를 한 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프리랜서로는 개인의 성장이 더는 힘든 시점에 아이언윌로 영입했다.
서대치의 능력이 그만큼 좋아서 데려온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하긴 했지만, 표범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서대치가 능력이 없더라도 단지 도와주고 싶어서란 이유 하나로도 충분할 텐데 말이야.’
강무혁은 능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설령 친분만으로 헌터를 뽑았어도 주세아가 뭐라 하지 않으리란 게 표범희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서대치와 연관돼 떠오르는 생각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조선소 현장 지키는 애들이 원정대 소속이었지?”
“예. 이진주 헌터도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원정대가 아직 다른 데보다 꿀리는 게 많다곤 해도, 좀 과한 전력이네?”
“저쪽도 만만치 않아서요. 황룡과 일광에서 직접 왔습니다.”
“와, 이건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슬레이어 아니면 명함 내밀 곳이 몇 군데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슬레이어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문제죠.”
“아직 뚫리지 않았다지? 그 자식들 시비에 버티는 게 용하네.”
“이진주 대장이 강단이 있거든요. 실력도 있고. 그래도 연락이 온 걸 보면,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정도가 한계일 겁니다.”
표범희가 심각하게 말했다.
“강 단장, 이 정도면 슬슬 원정대도 개편해야 하는 거 아니야?”
“…….”
강무혁의 침묵은 많은 걸 시사하고 있었다.
“단장도 지금 원정대가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다는 거네?”
“예.”
“안다니 말할게. 나 이번 나가 전쟁 이후에 커뮤니케이션팀 나갈 거야.”
“현역 복귀하려는 겁니까?”
“응. 저 앞에 곰 아저씨도 서포트팀에서 나올 거고.”
강무혁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염수형을 지긋이 쳐다봤다.
“이미 얘기를 나눴나 보군요.”
“그래. 언제까지 과거에서 살 순 없잖아. 길드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면서 생각이 많았어. 강 단장 무리하는 것도 봤고. 그러니 이제부턴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더라고.”
“두 분이 전면에 나서준다면, 저야 한시름 덜 수 있어 좋죠.”
“그동안 기다려줘서 고마워. 사람 마음 정리라는 게 쉽지 않더라고.”
“고마울 게 뭐 있습니까? 저 역시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는데.”
강무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소전쟁 때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건 표범희도 알고 있었다
가족을 잃는 것.
표범희도 같은 아픔을 공유했기에 얼마나 힘들고 처절한지 잘 알았다.
그런 이유에서 그녀는 강무혁을 존경했다.
나이도 자신보다 어리고, 헌터도 아니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픔에도 강무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염수형의 경우엔 가족이 아닌 동료들이었으나 그 아픔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다.
말없이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각오하고 표범희와 의견을 같이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강무혁이 말했다.
“자리 준비해두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표범희가 대답했다.
“아까 말했듯 원정대.”
“원정대 자리는 못 줍니다. 그건 이진주 대장 몫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대신 그 소속 놈들을 솎아내야겠어. 공격대 하나 만들 거야. 나가 전쟁 이후에 합병한 길드들 다 모을 거지? 거기서 실력 좋은 애들로 다시 원정대 꾸려. 티어 길드 급은 아니더라도 최소 A급은 돼야지. 게이트 공략할 거잖아. 나머지 잡초들은 내가 밑바닥부터 키울게. 부공격대장은 염수형으로. 오케이?”
강무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전쟁 후에 더 바빠질 것 같군요. 승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