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697)
제697화
#697. 날 뭘 믿고?
지금까지 밝혀진 나가왕의 전력에 대해 평하자면,
‘나만큼 단단한 몸에, 토마스의 필살기 같은 마법에도 대항할 수 있는 검은 마나, 내 전투 방식을 배워 바로 적용하는 학습력, 트롤보다 더한 치유력과 보스급 몬스터들까지 수하로 두는 지배 능력, 아무리 때려도 통증을 별로 느끼지 않는 듯한 괴물…….’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언어 구사가 가능하고, 전쟁에서 판을 짤 줄 아는 전술적 지능이었다.
‘이건 거의 인간형 드래곤이잖아?’
비로소 주세아는 토마스가 말한 최종 진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태생이 나가라서 그렇지 와이번이었다면, 정말 드래곤이 됐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드래곤처럼 하늘을 날거나 마법은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혹시 또 모르지.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나중엔 마법까지 구사할지.’
그 말인즉슨, 더는 시간을 주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한·중·일의 S랭크가 모두 모인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제거해야 했다.
주세아는 나가왕과 대치하며 슬쩍 곁눈질로 토마스를 쳐다봤다.
‘실력은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페어다.’
문제는 둘이 싸운 적은 있어도 합을 맞춰 본 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 나가왕과 보스 몬스터들의 합격에선 서로를 지켜주며 버틸 정도로 좋은 모양새를 만들긴 했으나 이는 호흡이 맞았다기보단 위기 상황에서의 임기응변에 가까웠다.
‘게다가 토마스는 정상적인 루트로 S랭크가 된 마법사가 아니야.’
그는 저랭크 마법사가 으레 겪는 안전 문제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이전 길드에서는 마법 스크롤처럼 대규모 마법 한 번 쓰고 뒤로 빠지는 도구 역할이 전부였다.
즉, 절대적인 레이드 경험이 부족했다.
지금까진 워낙 뛰어난 두뇌가 경험을 커버했으나 레이드에서 헌터의 힘은 직접 겪은 생사 대결에서 진정한 힘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토마스가 근래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임무를 단시간에 경험하면서 밀도 높은 경력을 쌓긴 했으나 대부분이 협력이 중요한 공격대가 아닌 솔로 플레이였다.
나가왕과 같은 규격 외 괴물을 상대로 함께 힘을 합칠 상황이 되자 이마저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어떤 식으로 가야 하지? 그냥 센스에 맡기고 자유롭게 싸워야 하나?’
평소와 달리 주세아는 생각이 복잡했다. 나가왕이 만만치 않은 강적이기 때문이었다. 피지컬만 믿고 싸웠다간 낭패를 당하기에 십상이었다.
“길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길마님 움직임에 제가 맞추죠.”
토마스는 그녀의 고민을 알기라도 하는 듯 말했다.
이는 S랭크 마법사가 오더를 양보한 격이었다.
보통 레이드의 주도권을 쥐는 건 마법사였기에 주세아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럼, 공략은 클래식으로 가죠. 제가 전위, 토마스가 후위. 몸빵 믿고 적절히 딜 넣어요. 어그로 인계 없이 몰아칠게요.”
레이드 경험이 적은 토마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
토마스가 들고 있는 팬디트 탈리스만이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빛바랜 메달의 녹이 벗겨졌다. 표면에 양각으로 새겨진 기이한 도형과 문양이 좀 더 뚜렷해졌다.
“준비됐습니다.”
토마스의 신호와 함께 주세아는 단검에 마나를 집중했다.
전처럼 파괴력을 중시한 형태가 아니라 한껏 압축되어 날카롭게 벼려진 마나 칼이었다.
기가스 마누스를 한계치까지 줄인 스킬 변형이었다.
‘무기가 얼마 못 버틴다. 그 전에 성공시켜야 해.’
나가왕은 주세아가 또 무엇을 가르쳐줄지 기대된다는 듯 흥미로운 눈초리로 그 광경을 구경했다.
“언제까지 여유 있나 보자.”
주세아가 달려들었다. 동시에 토마스의 마법이 발사됐다. 전과 달리 평범한 화염 마법이었다. 구 모양의 불덩이가 공기를 태우며 날아갔다.
주세아는 토마스의 마법이 먼저 닿을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화염구가 나가왕의 안면에 꽂혔다. 여전히 본능적으로 주춤하는 모습이었으나 황금 불새처럼 위기의식을 느끼진 못했는지 가볍게 팔뚝으로 털어냈다.
하지만 나가왕은 약한 화력임에도 화염구를 쉽게 떨치지 못했다.
【우흘라】
마나를 유지 후 고정해 나가왕의 시야를 가린다.
‘힘겨루기할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다.’
대부분 헌터들은 정통적인 마법사의 역할이 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실제로 마법사의 역할은 그보다 다양했다.
딜링뿐만 아니라 서포터로서의 역할도 가능했다. 심지어 극히 일부는 탱킹도 했었다.
그 극단적인 예가 대전쟁기 대표 마법사인 봉인의 마법사였다.
리바이어던을 봉인했다는 타이틀이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실제로 그는 멀티 플레이어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토마스는 봉인의 마법사 이후 실로 오랜만에 등장하는 멀티플 마법사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탈리스만이 마법 변형을 보조해줘서 마법 쓰기가 수월해졌어. 좀 더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겠어.’
토마스의 마법이 끈질기게 나가왕의 시야를 가리자 주세아도 이내 기회를 포착했다.
느슨하게 접근하던 조금 전과 달리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돌진했다. 그녀는 단검을 역수로 쥐고 나가왕의 심장을 노렸다.
나가왕은 시야가 방해받았음에도 섬뜩한 살기를 감지하곤 주먹을 내질러 찔러 들어오는 단검을 쳐냈다.
주세아는 단검의 경로가 바뀌었음에도 회수해 다시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밀어붙여 억지로 찍었다.
푸구국!
단검이 나가왕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칼과 살이 만나 낸 소리라고 하기엔 기괴하고 소름 돋는 소리였다.
나가왕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인상을 찡그리며 단검을 뽑아내는 대신 주세아의 안면을 가격했다.
어차피 이 정도 상처는 금세 나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조금 따끔한 정도.
이전과 달리 강력한 힘을 앞세워 공격한 게 아닌 탓에 우습게 보느라 공격을 허용했으나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의 방어력이 뚫렸다는 게 신경 쓰이긴 해도 감수할 정도는 되었다.
나가왕에게 크게 한 방 맞은 주세아의 몸이 휘청였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네댓 걸음 물러나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입술이 찢어져 핏물이 가볍게 맺혔다. 오랜만에 보는 핏물임에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가왕은 주세아의 표정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단검 때문이었다.
단검 날이 사라진 채 손잡이 부위만 남아 있었다.
“!!”
나가왕은 얼른 어깨로 시선을 돌렸다. 단검 날이 그대로 부러져 박혀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날을 잡아 뽑았다. 날이 손쉽게 뽑혔다.
“!!”
나가왕은 다시 한번 놀랐다. 손가락에 잡혀 나온 건 칼날 끄트머리 조각뿐이었다.
그제야 어깨에서 묵직하고 불편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내가 몸이 튼튼해서 잘 아는데… 어여차! 아프지 않다고 무적이 아니란다.”
주세아가 일어섰다. 어느새 그녀의 양손엔 비수가 들려 있었다.
나가왕은 자신의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에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토마스는 방금 주세아가 벌인 일을 곧장 알아챘다.
‘마나를 극도로 압축해 나가왕의 단단한 몸에 생채기를 냈어. 이후엔 온 힘을 다해 찔러 넣었고.’
여기까진 단순히 힘을 썼을 뿐인 무식한 공격에 불과했으나 이다음에 벌인 짓은 그야말로 고차원의 마나 운용이었다.
‘박힌 칼날에 있던 마나를 퍼트려 단검을 깨트렸다. 체내로 비산하도록.’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몸 안에서 피해를 입으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혈관과 내장이 모두 피부만큼 강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저건 치유력도 소용없어. 몸 안에 잘게 부서진 칼날 조각들을 모두 빼내지 않는 이상은…….’
여기까지 생각하니 토마스는 주세아가 쓴 방법이 어디서 빌려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클래식이라더니 이것도 옛날 방법을 쓴 건가?’
게이트 시대가 길어질수록 몬스터 사냥법도 다양해지고 깊이가 더해졌다.
요즘에야 몬스터를 잡을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대형 몬스터나 보스급을 잡을 때는 사냥법이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개발된 게 ‘내부 파괴법’이었다.
몬스터의 안쪽으로부터 데미지가 쌓이게 하는 사냥법.
주세아처럼 쇳조각을 넣든, 독을 넣든 몬스터의 몸 안에 온갖 해롭고 극악한 것들을 집어넣어 죽이는 방법이었다. 단순하지만, 그만큼 효과가 확실했다.
‘오랫동안 사선에서 단련해 S랭크를 단 헌터는 무섭구나.’
토마스는 주세아가 마냥 나가왕에게 당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계속 정면으로 부딪쳐가며 나름의 공략법을 찾은 것이다.
‘이제야 알겠어. 나가왕이 아무리 길마와 비슷한 방어력이라도 무적은 아니야. 길마는 그걸 알고 있었고.’
나가왕과 주세아의 경험 차이는 명백했다.
주세아는 헌터가 된 이래로 지금까지 자신의 특성이 가지는 장단점을 명확히 알고 실험해보며 이 자리에 올라왔다.
작은 생채기로도 방어를 뚫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나가왕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토마스가 시야를 방해하던 예의 불길을 다시 피워내자 나가왕이 움찔했다.
주세아는 옷소매로 피가 난 입술을 쓱 훔쳤다.
“아직 많이 남았어. 기대해도 좋아.”
주세아는 허리와 허벅지 발목 곳곳에 찬 비수와 단검들을 손바닥을 펼쳐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집요한 눈길이 나가왕의 전신을 끈적하게 옭아맸다.
“몸 단단한 거 믿고 함부로 나대지 마라. 그러다가 골로 가.”
나가왕은 진화를 마친 이래 처음으로 오싹함을 느꼈다.
* * *
배달을 마친 고을지는 치열한 전투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S랭크들의 싸움이었다.
그녀도 도울 수 있었으나 이곳 레이드에선 낄 데가 없었다.
‘엉덩이 무거운 양반들 데려다 놨으니 어련히 알아서 잡겠지.’
동북아 게이트 안보의 미래를 결정짓는 역사적인 전투였기에 싸움에 끼지 못하는 건 아쉬웠으나 고을지는 다른 임무가 있었다.
‘난 여기보다 지상조가 무사한지 확인해야지.’
위험한 상황이라면, 바로 그쪽 전투에 참전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아님에도 광범위 공격이 가능하고, 서포터가 아니나 몬스터들을 붙잡아둘 수 있었다.
방어에만 집중하면 한 지역을 커버할 수 있고, 때론 초고속 이동도 가능했다.
위기에 처한 헌터를 구할 수도 있고, 주요 지점에 강력한 전력을 투하할 수도 있었다.
고을지만큼 강력한 텔레키네시스트의 존재만으로도 레이드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노 씨나 미스터 조도 별일 없겠지?”
고을지가 이곳 싸움에 관심이 없는 건 무엇보다도 아이언윌 단원들의 안위가 걱정되어서였다.
매번 일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으나 어쨌든 그녀에겐 학교 외에 처음으로 소속감이라는 걸 가져본 보금자리였다.
이젠 집보다 아이언윌 본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북포천이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차? 단장님이 내린 오더가 또 하나 있었지?”
고을지는 공중에 잠시 멈춰서 어떤 임무를 먼저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단장은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재량껏 판단하라고 하긴 했는데…….’
심지어 자신을 믿는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날 뭘 믿고,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오더를 내렸지?’
이런 의문이 들긴 했으나 어쨌든 마음대로 하라고 한 셈이니 마음 가는 쪽을 먼저 처리할 생각이 들었다.
“일단 ‘왕싸부’부터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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