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79)
제79화
79. 이제부턴 ‘마이 턴’이에요.
“햐, 조충현이 이렇게 날아가네? 너무 스펙터클해서 말이 안 나오는군.”
노송린은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주먹을 피하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강무혁이 공개한 조충현의 음모는 아직도 공용 통신망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만큼 헌터들의 충격은 상당했다.
얼마 전 불미스러운 일로 길드를 떠난 도경훈이 길드라는 조직을 배신한 것이라면, 조충현은 그에 소속된 단원들을 저버린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몬스터에게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조충현과 조금이라도 엮여 있던 헌터들의 반응이 거셌다. 혹여 불똥이라도 뛸까 두려워 조충현을 더욱 가열차게 비난했다. 빠르게 손절해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다들 정신 안 차려?! 눈앞의 오크에 집중해!
소란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보다 못한 장득구가 호통쳤다.
헌터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이미 장득구가 조충현을 어떻게 다뤘는지 소문이 퍼진 덕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더해 직접적인 폭력의 현장을 목격한 헌터들은 그 공포심을 동료들에게 전했고, 소문은 더욱 무성해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출처 없는 공포가 장득구의 말에 위엄을 더했고, 결과적으로 강무혁의 장악력을 공고히 하게 됐다.
노송린은 그 부분이 또 웃겼는지 연신 키득거렸다.
‘방식은 달라도 결국 강자의 방법을 쓰게 되는 거지. 공포만큼 확실한 수단이 없거든. 단장은 확실히 사람 쓰는 법을 안다니까. 직접 손을 더럽히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이번엔 귓가에 바람을 이는 주먹이 스쳐 갔다. 위잉, 반고리관을 달구는 아슬아슬한 일격이었다.
노송린은 거추장스럽다며 들고 있던 무기를 버렸다. 그리곤 허리에 찬 카람빗 칼을 뽑았다.
한 손에 딱 잡히는 곡선형 나이프.
안쪽과 바깥쪽 날 모두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논에 가득 고인 물에 반사된 햇빛에 번뜩였다.
“너만 잡으면 여긴 대강 마무리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반항하지 말고 곱게 죽자, 응? 너 빨리 잡고, 배신자 구경 가야 한단 말이야.”
노송린은 나이프 손잡이의 뒷부분 링에 검지를 걸고 역수로 쥐었다. 칼날이 오크 장군 눈앞에 어른거리며 현혹했다.
조금 전 노송린이 버린 검과 비교해 길이는 훨씬 짧아졌지만, 어쩐지 오크 장군은 카람빗 칼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물에 휩쓸려 맨손이 되어서도 검에 주눅 들지 않고 밀어붙이던 장군이었지만, 이번 짧은 칼은 뭔가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장군은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주먹을 무르고 신중히 접근했다.
“쿼우. 쿼어.”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여기서 끝내고 싶은데.”
주변에서 오크 장군을 지키던 호위들을 처리하고 있던 헌터들은 몬스터와 대화하는 노송린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전투에 돌입했을 때의 대장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거리에 이점이 있는 무기까지 버리고, 저런 단병으로 싸우려 하다니. 리치 차이도 나는데 말이야. 아마 스킬도 안 쓰겠지? 악취미라니까. 무기만으로 몬스터 해체하는 건. A랭크 헌터들 머릿속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자신도 A랭크가 되면 저럴 수 있을까?
이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런 건 대장이니까 그런 거겠지. 하여간 또라이라니까.”
이기영은 노송린이 오크 장군과 격돌하는 순간을 빌려 소심하게 뒷담화를 중얼거렸다.
“자, 간다!”
노송린은 바닥 가까이 몸을 낮추고 돌격했다. 오크 장군은 앞서 있던 왼발을 들어 그를 밟았다.
쿵!
노송린은 공격을 잽싸게 피하며 왼쪽 발목을 벴다. 장군이 휘청였다. 그 기세를 몰아 오른쪽 발등을 칼날로 찍었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장군은 오른팔을 휘둘렀다.
노송린은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뒤로 돌아갔다. 등을 뺏긴 오크 장군은 흠칫했다. 이 인간이 어딜 타고 오르는 거야? 산을 등반하듯 등을 타고 오르는 감촉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날갯죽지 부근에 카람빗 칼이 꽂혔다.
“쿠왕!”
“금방 끝나. 얌전히 있어.”
뜻은 알 수 없으나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섬찟했다. 고통보다 알 수 없는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장군의 위기를 느낀 오크들이 도우려 했지만, 헌터들이 놔주질 않았다.
오크 장군은 양손을 등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두꺼운 근육 탓인지 손이 닿질 않았다.
노송린은 마나를 머금은 왼손가락을 등판에 깊이 박아 넣고 버텼다. 반대편 손에 쥔 카람빗 칼은 등과 어깨 목 언저리를 여기저기 쑤셔댔다.
오크 장군은 어떻게든 노송린을 떼어내려 몸부림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녹색 핏물이 등과 바닥을 흠뻑 적셨다. 장군은 아예 바닥에 몸을 던졌다. 육중한 몸으로 노송린을 짓누르려 했다.
“어허, 가만있으래도.”
장군의 등이 땅에 닿기 전, 노송린은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곤 오크의 상체로 이동했다. 이어서 마운트 포지션을 잡은 그가 칼로 양쪽 어깨를 벴다.
장군의 팔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오크의 신체 구조를 정확히 알고 힘줄만 자른 솜씨였다.
거대한 오크가 훨씬 작은 인간에게 꼼짝없이 깔린 꼴은 우습다기보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이 모습은 오크에게나 헌터에게나 마찬가지였다.
노송린은 카람빗 칼을 장군의 눈앞에 들이밀며 웃었다.
“그러게 누가 덤비래? 인간 무서운 줄 모르고.”
“쿠와아아앙!”
오크 장군의 단말마가 북포천의 대미를 장식했다.
* * *
“지금쯤이면 북포천 쪽도 슬슬 결착이 날 때겠네요. 괜찮을까요?”
“강 단장 작전이 잘 실행됐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이진주는 주세아를 흘끔 곁눈질했다. 말뿐이 아니라 진짜 걱정 없다는 표정이었다.
게이트 안이라 위성 전화기도 사용하지 못해 길드 소식이 신경 쓰일 텐데도 주세아는 태연했다.
‘그만큼 단장님을 믿는다는 건가?’
함께 일한 지 불과 몇 개월 되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저리도 신뢰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길마님하고 단장님은 마치 몇 년은 함께 일한 것처럼 호흡이 잘 맞으시네요. 누가 보면,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인 줄 알겠어요.”
“…….”
아주 잠시간의 침묵을 보내고 주세아가 말했다.
“내 안목을 믿는 거예요. 길드 키우려고 뽑은 사람이니까. 밀어주는 게 당연하죠.”
“전권을 준다는 거. 말로는 쉬워도 막상 하려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제가 타이탄에 있었을 땐 넘버원, 넘버투가 허구한 날 싸워댔죠. 예전에 둘은 목숨까지 맡기는 사이였다는 데도 말이죠.”
이진주가 바라보는 시선 끝엔 마태수 부길마가 있었다. 그는 최대한 빠르게 병졸들을 처리하고 오크 로드 쪽으로 붙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오크 로드의 호위병들과 맞붙은 세력이 있었다.
주세아는 오크 로드를 잡으려 총력전을 펼치는 이들을 보곤 혀를 찼다.
“역시 빨라. 슬레이어…….”
자신이 전에 몸담았던 길드.
그들의 실력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전 직장 동료들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저만한 실력을 갖춘 공대를 운영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할까?’
어쩌면 평생 못 만들지도 몰랐다. 티어 길드의 전력이란 돈이 있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
혹 전력을 갖췄다고 해도 지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길드는 만드는 것보다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게 더욱 어려웠다.
“어? 로드가 도망치려 하네요. 아직 전력도 충분한데. 오크 치고 판단이 빠르네. 그래도 쉽지 않겠어요. 사방이 헌터니까. 어떻게 할까요, 길마님?”
이진주는 슬쩍 주세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직 함께 헌팅에 나선 적이 없으니 길마의 성향을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딱히 대답이 없자 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차 은근슬쩍 말했다.
“단장님 작전은 일단 도주를 막는 거였긴 한데. 잡아버리는 것도 도주를 막는 거긴 하니까. 어쩌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글쎄요. 우리만으론 힘들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잡을 각이 나오는데. 길마님하고 제가 암살조로 파고들면요. 다른 헌터는 몰라도 길마님 특성이면 홀로 탱킹도 가능하고, 아무리 로드로 진화했어도 오크는 오크니까.”
주세아가 상황을 비관적으로 판단하자 이진주는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공략법을 간단히 덧붙였다.
“그게 아니라 저쪽이 우릴 방해할 것 같아서.”
이진주는 주세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봤다.
슬레이어 길드의 본진이었다.
그곳 중심에 서 있는 남자.
“성선제…….”
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슬레이어 길드의 와룡’이라 불리는 헌터였다.
현장에서 뛸 때도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전략팀장으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엔 역대급이라고 할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었다.
“저기 옆에 서 있는 헌터 보이죠?”
“누구요? 등에 쌍검 든 사람?”
“아마 저 때문에 온 것 같은데. 기억해둬요. 슬레이어 길드 원정대 제3 파티장. 감우영. 실없긴 해도 실력은 진퉁이에요.”
감우영은 남자답지 않게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헌터가 아니라 연예인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물론 이진주에겐 외모로는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대신 주세아가 직접 꼽을 정도의 실력자라는 게 신경 쓰였다.
이진주의 시선을 느꼈는지 감우영이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주세아를 보곤 손을 흔들었다. 주세아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아는 체했다.
“길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두 분은 사이가 좋았나 봐요.”
“그걸 좋았다고 해야 하나? 나빴다고 해야 하나?”
“예?”
“저 녀석하고 제일 많이 싸웠었어요. 말싸움 말고 칼로.”
“…….”
이진주는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칼로 대화하는 친한 사이라니. 도대체 슬레이어는 어떤 길드인 거야?
‘성선제. 저격조까지 배치하다니. 그것도 원정대까지 동원할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하필 감우영일 줄이야. 까다로운데. 나쁜 성격은 여전하네.’
주세아도 오크 로드가 탐났다. 강무혁의 작전은 어디까지나 지침에 불과했다. 현장에서의 판단은 오롯이 주세아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먹을 수 있는 건 먹는 게 헌터의 방식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태극 길드와 얘기를 좀 해 봐야겠네요.”
“단장님이 조익준과는 엮이지 말라고 했는데…….”
“아마 저쪽도 지금쯤이면 똥줄이 타고 있을걸요. 아까완 상황이 달라요. 이제부턴 ‘마이 턴’이에요.”
* * *
저렴한 표현이긴 했으나 주세아의 말대로였다.
조익준은 그야말로 똥줄이 타고 있었다.
‘쳇! 이러다간 이번 분기 매출 달성은 물 건너가겠군.’
태극 길드가 지지부진할 정도로 느린 공략을 하는 건 아니었으나 슬레이어 길드의 진행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조익준은 그 나름대로 슬레이어의 독주를 막으려 여러 길드와 연합을 고려했으나 욕심에 눈이 먼 길드들이 협력할 리 없었다.
그런 가운데 조익준이 의견을 모으려 동분서주하자 슬레이어 길드는 주변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냉큼 게이트에 진입해버렸다. 그 모습에 조바심을 느낀 길드들이 뒤따라 들어가는 바람에 연합은 끝내 파투나버렸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서도 조익준은 포기하지 않고 혼란한 틈을 이용해보려 했지만, 슬레이어 길드는 애초에 빈틈을 용납하지 않았다.
실수 하나 없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쾌속으로 돌파해내고 있었다.
‘원정대도 아니고, 정규 공대를 꾸린 것도 아닌데…. 큭! 이 차이는 꽤나 뼈아프군. 우리 단원들이 랭크에서 밀리는 건 아니야. 도대체 저쪽은 어떻게 단련했기에 우리가 뒤지는 거지?’
다른 길드들도 조익준의 심정과 마찬가지였다. 슬레이어가 괴물처럼 보였다.
오크 로드의 최종 공략 단계에 들어선 길드는 총 일곱 개.
모두 티어 아니면 A급이었다.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는 길드가 아니란 뜻이었다.
‘아니, 여덟이라고 봐야 하나?’
조익준은 자신에게 접근하는 인물을 쳐다봤다.
“상당히 고전하고 계신 것 같네요, 조 팀장님.”
“주 길마님이나 저희나 피차 고전하긴 마찬가지죠.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게이트를 먹을 기회는 오늘뿐입니다. 좋은 날 받아서 함께 일하기엔 시간이 없어요.”
“반반.”
“…….”
“레이드 지분은 그 정도로 하죠.”
“동원한 전력이 다른데. 그건 좀…….”
“저기 성선제 팀장 옆에 있는 헌터들 보이죠?”
조익준은 주세아가 가리킨 헌터들을 둘러봤다. 모르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얼굴 기억해 내려 애쓸 필요 없어요. 슬레이어는 파티장들 제외하면, 원정대 애들 신분은 대외노출을 거의 안 하니까. 게다가 저쪽 파티장은 승급한 지 얼마 안 돼서 알려지지도 않은 녀석이에요. 저 못지않은 실력자이기도 하고.”
“!!”
조익준은 상대가 원정대라는 것보다 주세아에 버금가는 실력자라는 말에 놀랐다.
“그 파티장이 누굽니까?”
“쌍검 든 녀석.”
“이름은요?”
“감우영.”
“원정대 소속들이 공략에 나서지 않는다는 건…. 저희가 접근하면 저 녀석들이 막는다는 뜻이겠군요.”
“저격조예요. 제가 선두에서 뚫죠. 저놈들이 나서면 제가 직접 마크할게요.”
“이해했습니다. 반반. 좋습니다.”
“거래 성립. 우리 잘해봐요.”
조익준은 주세아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 * *
물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한 길드 본사 건물.
강무혁은 건물 피해 상황을 보곤 피로감에 젖어 한숨을 내쉬었다.
로비 층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유리창은 죄다 깨졌고, 내부는 물에 젖어 복구하려면 비용이 상당히 들게 생겼다.
이 외에 저층에 있는 식당과 훈련장 등의 부대시설도 송두리째 수해를 입었으니 당장 길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장 큰돈을 들인 통신선은 무사하다는 정도?
이후 강무혁은 오크들을 사냥하던 공격대의 최종 보고를 받곤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더 이상의 사상자가 없어서 다행이군. 장군도 잡았으니 우려할 일도 없고.”
만사가 해결된 것 같았으나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오크 본대를 막은, 이번 레이드의 일등공신이랄 수 있는 중립파 헌터들을 만나려 했으나 문전박대당한 터였다.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동료가 죽었으니 그들 입장에선 강무혁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강무혁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며 일단 물러났다. 대화는 슬픔과 분노가 잦아들 때 다시 시도해야 했다.
‘그들 중에 퇴단하려는 헌터가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전부 다 일 수도 있고.’
전쟁은 끝났지만, 강무혁은 쉴 수 없었다.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쾅!
“오! 다 죽어가더니 이젠 괜찮네?”
문을 부수듯 차며 집무실에 들어오는 생기발랄한 여자애.
고을지였다.
“약 먹고 포션을 먹었으니까요. 오른손 뼈가 아직 붙지 않은 것 빼곤 천천히 회복 중입니다.”
“갑자기 웬 존댓말? 뭐야? 이상해?”
“……그건 그렇다 치고. 아직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네요. 고을지 씨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후, 낯 간지러. 인사는 됐고. 어차피 할아버지 명령이라 온 거니까. 감사하려면 할아버지한테 해요.”
“당연히 그래야죠. 그래도 고을지 씨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말로만?”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고을지는 갑자기 몸을 배배 꼬더니 엄지와 검지를 붙여 원을 만들며 말했다.
“그, 돈을 좀…. 내가 아직 학생이라서….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길드엔 가입하지 못하게 해서리…. 그렇다고 내가 많이 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우리 오빠들 굿즈하고 이번 앨범을 사야 해서….”
“…….”
“사실 그거 다 사는 건 얼마 안 하는데. 팬 미팅 추첨 때문에 앨범에 들어가 있는 티켓이 좀 많이 필요해서리…. 그래서 용돈으로는 좀 부족하거든…. 에이, 씨! 내가 이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하는데, 말도 안 하고. 치사하게 굴 거야? 내가 살려줬잖아. 수고비 좀 달라고오.”
급기야 깽판을 부리는 고을지를 보면서 강무혁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무소속…. 눈앞에 호박이 덩굴째 들어왔군.’
갑자기 고을지의 협박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줄 거야, 말 거야? 내가 원래 이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아닌데. 우리 오빠들 팬 미팅이 얼마 남지 않아서 좀 급해서 그래. 그러니까─”
“할아버님도 아십니까? 이렇게 삥 뜯고 다니는 거?”
“아니, 삥 뜯는다니? 내가 누구 길드 도와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
욱하는 고을지를 보며 강무혁은 눈을 빛냈다.
‘역시. 실력에 비해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 혹시나 했더니.’
이쯤 되면 확실해졌다. 고을지는 한병구 협회장이 키우는 칼이라는 게.
“어떤 그룹입니까?”
“응?”
“좋아한다는 오빠들. 그 아이돌이 어떤 그룹이냐고요.”
“BTA라고. 그 세계적인 가수…. 그, 그건 왜? 유치하다고 놀리려는 거지?”
“잠시만요.”
갑자기 강무혁은 수화기를 들어 내선을 연결했다.
“표 팀장님, BTA라고 아십니까? 예. 남자 아이돌. 아아, 전에 계셨던 엔터 회사 소속이라고요? 마침 잘됐네요. 전에 그 회사 사람들 몬스터한테 구해 준 적 있다고 했죠? 혹시 BTA 팬 미팅 티켓 얻는 거 가능할까요? 아니요. 제가 아니고. 오늘 우리 도와준 여학생이요. 예, 예. 한 번 알아보고 연락 주세요. 길드협력처 회선 쓰셔도 됩니다.”
“지, 지금 무슨…….”
강무혁은 전화를 끊고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희 쪽 팀장이 엔터 업계 쪽에 힘 좀 쓰시는 분입니다. 몇 년 전에 무슨 콘서트 때인가 몬스터가 난입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관계자들이며 아이돌이며 여럿 구했거든요. 개인적으로 누나, 언니 하는 친구들도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여주 국제 페스티벌?!”
“그때 인연으로 방금 전화한 팀장님이 잠시 그쪽에서 일했었습니다.”
“지, 진짜예요? BTA 오빠들 팬 미팅 티켓?!”
“티켓은 고맙다는 표시고. 저희 길드 가입 특전으로 BTA와의 식사권. 어떻습니까?”
“어디에 사인하면 되죠?”
* * *
“협회장님, 3번 회선에 전화 연결됐습니다.”
“응? 웬 전화가?”
-할아버지!
“어이쿠, 귀야. 녀석,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할애비 쉬는 시간은 어떻게 알고 딱 맞춰 전화했누. 그래, 북포천 간 일은 잘됐고?”
-나 아이언윌 가입했어! 그렇게 알아 둬!
“뭐, 뭐? 그게 무슨…….”
뚜우─ 뚜우─ 뚜우─
“가, 가, 가, 강무혁 이눔 시키! 물에서 건져줬더니 손녀를 빼가? 내 이놈 주리를 틀 테다!”
“회장님, 안 됩니다. 여기 회의 아직 안 끝나셨습니다. 으헉! 1, 2 보안팀. 회장님 발작하신다. 어서 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