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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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6층 (11)
“크학!”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지는 마법사를 보며,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쟤는 또 왜 저러는 거야.
잠깐 고민하다, 영혼 착취를 해제해 보았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영혼 착취를 사용해 보았다.
“영혼 착취.”
[끄으으… 그만…….]“케… 켁…….”
내 손에 들린 도플갱어의 머리통에서 나오는 신음과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는 마법사의 신음 이중주를 듣고 있자니, 한층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전에 이미 도플갱어가 복수일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하나의 도플갱어를 퇴치하고, 마음 놓고 구조대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버리다, 숨어 있던 또 하나의 도플갱어 때문에 클리어에 실패하게 될 가능성을.
하지만 나 자신이 도플갱어라는 트릭이 있었는데, 여기에 도플갱어가 복수였다는 트릭까지 함께 숨겨져 있을 줄이야.
역시 헬 난이도.
쉽게 보내면 어디가 덧나는지, 꼭 이렇게 마지막까지 꼬장을 부린다.
공동 안에 존재하던 도플갱어는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하나는 내 몸에 숨어 있던 녀석이고, 지금 저기서 마법사의 모습을 뒤집어쓴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녀석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갑자기 마법사님이 왜 이러시는 건가요?”
전투 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성기사와 기사가 다가와 물었다.
내가 도플갱어를 약화시킬 생각으로 영혼 착취를 사용하자, 마법사가 저렇게 괴로워하기 시작했다고 답해 주었다.
“으음… 역시 마법사님도 도플갱어였던 걸까요? 사도님, 죄송하지만, 그 주문을 잠시 해제했다가 다시 사용해 보실 수 있으신가요?”
기사의 부탁대로 영혼 착취를 잠시 해제하였다가 다시 사용해 보았다.
마법사는 영혼 착취가 해제되자, 숨통이 트였다는 듯 숨을 몰아쉬더니, 영혼 착취가 다시 사용되자마자 다시 신음하며 괴로워했다.
“…이런.”
성기사는 크게 상심한 듯 비틀거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렇게 충격이었나?
“뭐, 사실 마법사가 도플갱어인 건 그리 놀랍진 않구만. 난 처음부터 마법사가 도플갱어 같았다니까.”
어느새 다가온 용병이 한마디 덧붙였다.
용병의 말대로 마법사는 도플갱어로 의심될 만한 행동들을 많이 해왔다.
다른 사람들을 휘말리게 할 만한 마법을 몇 번이고 사용하려고 했었으니.
무엇보다 영혼 착취에 크게 타격을 입고 3일간 기절해 있기도 했었다.
영혼 착취가 도플갱어에게 이렇듯 큰 효과를 발휘할 줄 몰랐을 때는 단순히 마력 역류에 의한 기절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성기사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3일이나 기절해 있던 것 또한 성기사의 신성 주문이 도플갱어에게 역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지막에는 나를 기절시킬 정도의 전격 마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때는 혹시 실수인 걸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저 꼴을 보아하니 아예 날 죽이려고 날린 마법이 틀림없다.
내 몸에 숨어 있던 도플갱어도 그 마법을 보고선 같이 죽을 셈이냐고 소리쳤었고.
이거 나도 모르는 새에 한 번 죽을 뻔했네.
내가 너무 안일했다.
성기사외에는 다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하는 표정으로 마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비슷했다.
괴로워하는 마법사를 보면서도 불쌍하기보다는 역시 도플갱어였네, 싶은 생각뿐이었다.
솔직히 좀 아까 전격 마법을 썼을 때 너무 티를 냈어.
어쨌든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꼴이다.
이런 식을 도플갱어를 확인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영혼 착취는 내 주변의 ‘적’에게만 적용이 된다.
그렇기에 첫날 전투에서 영혼 착취를 사용했을 때, 내 몸에 숨어 있던 도플갱어가 영혼 착취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도플갱어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뿐만 아니라 도플갱어 또한 나를 적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체를 제공하는 숙주 정도라고 인식했겠지.
그걸 생각해 보면 저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플갱어는 시종일관 나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뭐, 당연한 얘긴가.
사람들을 다 조지는 한이 있어도 도플갱어를 찾아내 혼자 처리하겠다고 공언했었으니, 저 도플갱어로서는 어떻게든 나를 죽여야 공동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과연 두 도플갱어는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요? 두 도플갱어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을지도 궁금하네요. 마법사의 모습을 한 도플갱어가 계속 사도님을 공격하려 했던 걸 생각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요. 어쩌면 둘 중 하나라도 살아남으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엇! 사도님, 저 모습을 보아하니, 곧 도플갱어가 견디지 못하고 본모습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혹시 아직 전투를 할 만한 여력이 남아 있으신가요?”
마법사의 상태를 들여다보고 있던 기사가 물었다.
여력이 남아있느냐고?
당연하다.
“끄으으… 끄윽.”
마법사의 신음 소리가 서서히 기괴해지며 팔다리에서 뿌득뿌득 소리가 나는 것이, 곧 본체를 완전히 드러낼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성기사가 주문을 외기 시작하길래 아직 마력이 회복되지도 않았을 텐데, 무리할 필요 없다고 만류하였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무방비하게 쓰러져 있는 적에게 변신할 시간을 주는 것은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다.
하지만 난 지금 도플갱어와는 연달아 열 번을 싸워도 열 번 모두 완벽하게 이길 자신이 있다.
그렇다면 더 많은 경험치를 받을 수 있도록 변신을 기다려 주는 편이 낫겠지.
단검 형태로 만들어 두었던 천변기를 다시금 장검의 형태로 변화시키고 정신을 집중했다.
나의 약속된 승리의 검 앞에 패배란 없다.
* * *
“사도 양반, 이제 일어… 어? 일어나 계셨소?”
불침번 차례가 왔는지, 눈을 감고 누워 있던 내게 용병이 다가와 말했다.
“방금 일어났어. 불침번 차례가 온 것 같아서.”
“하아암, 난 이만 잘 거요. 오늘 싸우느라 고생 많았는데, 제일 애매한 시간에 불침번을 맡아서 피곤하시겠네. 수고하쇼.”
용병은 상당히 졸렸는지, 웅얼거리며 말을 마쳤다.
그리고 곧바로 자리로 돌아가 드러누웠다.
나는 피곤함과 무관하게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스테이지에 나와 있을 때는 보통 며칠이고 밤을 지새우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키리키리의 들판에서 낮잠을 자거나, 대기실에서 수면을 보충한다.
그렇다 보니 불침번도 그리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잘 생각이 없었으니.
게다가 나는 이 불침번 차례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 성기사의 신성 주문의 효과를 검에 두르고, 도플갱어 하나를 처치하였다.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던 도플갱어와 내 몸에 숨어 있던 도플갱어 중 내 몸에 있던 도플갱어를 처치한 것이다.
내 몸에 숨어 있던 도플갱어에게서는 내 과거를 알아보겠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으나, 도플갱어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답하지 못한 것이었다.
튜토리얼 시스템과 연관된 것을 물었을 때의 이디의 반응과 흡사했으니 확실하다.
도플갱어는 16층 스테이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전혀 말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튜토리얼 시스템과 연관이 되어 있는 정보이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도플갱어는 악마와 지옥에 대한 정보 또한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또 다른 도플갱어, 마법사의 모습을 하고 있던 녀석은 아직 처치하지 못했다.
성기사는 저녁부터 극심한 마력 소모로 인한 탈수 증상을 호소했고, 신성 주문의 사용은 내일로 미루기로 하였다.
영혼 착취를 사용하며 지속적으로 공격한다면, 성기사의 도움 없이도 도플갱어를 소멸시킬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 있겠는가?
결국 도플갱어는 머리통만 남긴 채, 모험가가 가지고 있던 마력 제어 상자에 가두고, 일행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며 감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이 새벽, 드디어 내 불침번 차례가 왔다.
다시 말해, 지금 정신이 깨어있는 것은 나와 도플갱어뿐이라는 것이다.
공동을 돌며 일행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공동 구석으로 향했다.
조용히 공동 구석에 있는 마력 제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목구비가 없는 머리통만 덩그러니 남은 상태에서도 도플갱어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끄으으…….]“쉿, 조용히 해라.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잘 들어라. 내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에 따라 네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을지, 아니면 살아서 이 공동을 빠져나갈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도플갱어는 얼굴 표면의 피부를 움직여, 소리를 내지 않고 긍정했다.
“지옥과 악마에 대해서 설명해 봐.”
물론 도플갱어는 설명하지 못했다.
“원 아웃. 한 번의 기회가 날아갔어. 두 번 더 나를 실망시키면, 너는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죽는 거야.”
[아… 이건 그러려던…….]“닥치고. 시끄럽게 소리 내지 마.”
사실 소리를 내건 말건 상관은 없다.
단지 시끄러운 소리에 성기사가 일어나면, 악마의 이야기를 듣는다며 싫어하겠지만, 그뿐이다.
그리고 오늘은 도플갱어와의 격한 전투가 있었던 만큼, 일행 모두 쉽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도플갱어는 지옥과 악마에 대한 정보를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 도플갱어에게 던전 밖, 인간 대륙의 이야기를 물을 수도 없다.
모르는 이야기를 물어 무엇 하겠는가.
이 도플갱어에게 물어볼 것은 하나뿐이다.
바로 마법사의 기억과 지식.
마법사의 모습을 한 채로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으니, 마법을 가르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때보다 낫다.
도플갱어는 벙어리처럼 글을 써 알려 주지도 않고, 마탑이라는 제약에서도 벗어나 있다.
아, 갑자기 열 받네.
“영혼 착취.”
[켁… 왜… 왜? 그만…….]“너 이 새끼, 도플갱어 주제에 마탑이니 뭐니 하면서 정보를 숨겨? 이 싹퉁머리 없는 새끼. 네가 마탑이랑 무슨 상관이야? 말은 왜 안 해? …생각해 보니 괘씸해서 안 되겠다.”
도플갱어가 물리적인 타격에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화풀이 삼아 도플갱어의 머리에 꿀밤을 몇 방 먹여 주었다.
중지를 세운 채로, 마력을 두르고, 있는 힘껏.
도플갱어는 영혼 착취에 노출된 채로 마력을 두른 공격에 얻어맞자, 제법 고통스러웠는지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발… 억! 억… 원하는 걸 말해 주겠다. 말해 주겠다……. 그만…….]도플갱어가 애원하자, 영혼 착취를 풀고 말했다.
“투 아웃. 이제 기회는 한 번 남았어. 한 번만 더 나를 실망시키면 그대로 죽는 거다.”
[어, 억울하… 아니다. 내가 잘못했다. 뭐든 말하겠다…….]“이제 말할 필요는 없고. 너 이걸로 글 쓸 수 있냐?”
인벤토리에서 연필을 하나 꺼내 보이며 물었다.
[글… 글? 글을 쓰라고?]“어. 못 해? 못 할 것 같으면 말해. 괜찮아.”
도플갱어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확실히 머리가 나쁘진 않다.
못한다고 했으면 그대로 쓰리 아웃이 확정된다.
도플갱어에게 생에 미련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든 글을 써야 할 거다.
[할 수 있다…….]그렇게 대답한 도플갱어는 얼굴 표면의 피부를 꾸물꾸물 움직였다.
얼굴 옆, 피부의 살덩이가 조금씩 팽창하더니, 신생아의 작고 쭈글쭈글한 손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역시 변이가 가능했군.
취침 시간 전, 성기사는 아직 도플갱어에게 신체를 변이할 정도의 여력은 남아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니 아무리 상자에 가둬 두었다 해도,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 도플갱어를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여기까진 계획대로 순조롭다.
“자, 그럼 이제 그 연필로 글을 써 주는 거야. 뭐에 대한 글인지는 말 안 해도 알지? 마법에 대한 글이다.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마법에 대한 모든 정보를 글로 옮겨 적는다. 알았지?”
[…저기, 저 짐에는 마법사가 가지고 다니던 마법책이 들어 있다. 차라리 그걸…….]“시끄러워. 토달래? 죽을래, 아니면 그냥 시키는 대로 쓸래?”
[쓰겠다…….]도플갱어의 말대로, 마법사의 짐에는 마법책이 들어 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저 마법책들은 스테이지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지도 못한다.
그러니 저 내용을 준비한 종이에 옮겨 적어야 한다.
하지만 문자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저걸 일일이 베낄 수 있겠는가?
이 16층 스테이지가 종료되기 전에?
당연히 못 한다.
그러니 도플갱어에게 필사를 시키는 것이다.
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다.
[어디에… 어디에 글을 써야 하는가?]좋아, 아주 좋아.
도플갱어의 말에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인벤토리 구석에 잠들어 있던 커다란 공책들을 하나씩 꺼냈다.
자경단에 지원품으로 보내기 위해 사 둔 공책들이다.
권당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공책이 총 15권.
총 페이지 수는 만 오천이 넘는다.
심지어 페이지의 크기는 A2 사이즈였다.
“자, 지금부터 아침이 오기 전까지 이 공책들을 모두 빼곡히 채운다. 할 수 있겠지?”
[…….]“대신 공책을 모두 잘 채워 넣으면 안 죽이고 살려 줄게.”
[정말… 정말인가?]“그래. 그러니까 빨리 시작해.”
도플갱어는 잠시 침묵하더니, 거절하더라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곧 연필을 움직여 공책에 필기를 시작했다.
자동 프린터기가 따로 없다.
연필 움직이는 모습이 아주 현란하다.
인벤토리에서 오랜만에 육포를 꺼내 씹으며, 도플갱어가 공책에 필기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도플갱어가 딴짓하지 못하게 감시하면서도, 가끔 한마디씩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쓴 내용 또 쓰지 마라.”
“티 안 나게 글자 크기 키우지 마라.”
“띄어쓰기 공백은 최소화해라.”
“줄 띄어 쓰지 마라.”
“도표는 눈에 들어올 크기 정도면 충분하다.”
“다시 말하지만, 쓴 내용 또 쓰면 죽는다.”
“글씨 개판으로 써도 죽는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예쁘게 써라.”
중학생 때 학교에서 깜지 숙제를 내주던 주임 선생님의 대사를 되풀이하며 도플갱어를 채찍질했다.
내 다음 불침번 차례인 모험가와 기사를 깨우지 않았기에, 도플갱어는 기상 시간으로 정한 아침 7시 직전까지 필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도플갱어는 몇 시간 안 되는 시간 동안 13권의 공책을 빼곡히 글자로 채워 넣었다.
말도 안 되는 굉장한 필기 속도였지만, 결국 도플갱어는 15권의 공책을 채울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미션 실패네.”
[잠깐, 잠깐! 이건 처음부터 시간상…….]“자, 다시 상자 안으로 들어가라.”
도플갱어의 머리통을 마력 억제 상자 안으로 밀어 넣고, 다시 자물쇠를 잠그고 뚜껑을 덮었다.
이제 일행을 깨우고 밥 먹어야 할 시간이다.
나머지는 밥 먹고 마저 쓰게 하자.
그렇게 16층 스테이지의 6일 차 아침이 밝았다.
* * *
아침 식사가 끝나자, 언제나처럼 기사의 수다 시간이 찾아왔다.
평소에도 수다스러웠던 기사지만, 정체를 숨기고 있던 도플갱어의 위협이 사라지자 한층 더 말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일행들도 많이 풀어져 있었다.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문제가 해결되자 마음이 편해졌는지 쉽게 웃고 떠들었다.
이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니, 일행은 아예 갑옷들도 다 벗어 두고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일행 중 마법사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마법사는 이 공동에 일행이 처음 갇혔을 때 이미 습격당해 죽었을 것이다.
일행은 그 사실에 뒤늦게 충격을 받거나 슬퍼하는 대신, 담담히 사실을 인정했다.
성기사의 주도하에 그녀를 위한 기도를 하고, 그녀의 유품이 된 배낭을 챙겨 마탑 사람들에게 전하자고 결정한 것이 전부였다.
식사 후, 도플갱어를 협박해 다시 공책을 채우게 시키고,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성기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오늘 아침 내내 모두가 한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성기사만은 계속 불편한 표정이었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지 연신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내게 다가오자, 그 용건이 궁금해졌다.
성기사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간 괜찮으면, 잠시 내 이야기 좀 들어 주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