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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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7층 (2)
[정말 괜찮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 17층을 위해 내가 몇 년을 고민한 줄 알아? 대비는 완벽해.] [네…….] [보내 준 장비들의 사용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정 불안하면 모닥불 방에서 한 회 차 버티면서 연습하고 가. 도전은 다음 회 차에 해도 되니까.]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누차 말하지만, 절대로 방심하지 마. 막상 붙어 보면 생각보다 할 만하게 느껴질 거야. 그러다 방심하는 순간 바로 죽는다. 집중해. 갑자기 욕하면서 말을 걸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심리전에 휘말리지 말고, 틈 보이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주도권 내주지 말고. 그리고 끝내기 직전이 제일 위험해. 그걸 절대 잊지 말고. 다행히 천변기 활용이 서툴던 시절이니까, 무기 쪽에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야. 보기에만 요란하니까. 전투 중에는 정령들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걸 눈치채고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어. 그리고…….] [네. 아저씨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꼭 클리어해 낼게요.] [그래… 죽지 말고.]* * *
“우선 설명부터 해 줄래?”
여전히 침울한 기색인 키리키리에게 설명부터 부탁했다.
이상하다.
분명 17층을 말도 안 되게 빨리 클리어했고, 그 때문에 황당하고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키리키리가 이렇게 동요하는 것에서 더 큰 불안감이 느껴진다.
키리키리가 이렇듯 어두운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다.
아니, 처음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키리키리가 나에게 미안해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던 적이.
1층 스테이지를 공략하고 키리키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키리키리에게 질문을 했었다.
키리키리는 대답해 줄 수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걸 무시하고 질문을 입 밖으로 내었었다.
그때 했던 질문은… 튜토리얼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이었다.
불안이 점점 더 커진다.
“잠깐만, 키리키리.”
“응, 기다릴게.”
키리키리가 대답해 주기 전, 답을 미리 알아 두고 싶었다.
그냥 키리키리가 말해 주는 것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지만, 불안함과 키리키리의 대답이 내 멘탈을 터뜨릴 만한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고 있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17층이 바로 클리어된 이유와 그것이 키리키리를 슬프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 볼까 했지만,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답을 듣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스스로 그 답을 찾는다니.
심지어 그 답을 알아내기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다니.
비효율적이며, 비이성적이다.
젠장.
그래도 불안한 걸 어떡해.
사시사철 밝고 활기찬 키리키리가 저런 태도를 보이니 위화감이 엄청나다.
당장 오늘 16층을 클리어하고 난 직후에도 키리키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신나 있었다.
내가 17층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자마자 저렇게 어두워졌지.
내가 발로 흙바닥을 푹푹 차면서, 애꿎은 잔디를 들어내기만 하자, 키리키리가 먼저 말했다.
“이제 알려 줄게. 어차피 들을 거잖아?”
그렇지…….
“17층 스테이지의 테마는 결투였어.”
“결투?”
“응, 일대일 결투. 그 상대가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아.
아아… 그런 건가.
상대가 특이하다는 말에 바로 17층의 테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17층의 테마는 도전자 간의 결투였다.
마치 경합의 장처럼.
“맞아, 그거랑 같아.”
하지만 헬 난이도 17층의 도전자는 나밖에 없었고, 결국 스테이지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대로 클리어가 달성되고, 이곳으로 이동된 것이겠지.
“으응… 조금 틀려.”
”틀리다고?”
“응……. 원래 17층의 첫 도전자는 아무런 시험 없이 바로 통과하게 되어 있어.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관문이니까. 설계 오류가 아니야. 만약 설계 오류였다면 정복 클리어가 달성되었을 거야.”
“첫 도전자는 무조건 이렇게 무사통과한다고? 그럼 다음 도전자는?”
“첫… 도전자의 환영과 싸우게 돼.”
환영? 첫 도전자의 환영이라고?
“미안한데, 키리키리, 자세히 설명해 줄래? 내가 지금 혼란스러워서 이해가 잘 안 가.”
”첫 도전자를 제외한 모든 17층 도전자는 자신보다 앞서 17층을 클리어한 도전자의 환영과 전투를 하게 돼. 그게 17층 스테이지의 관문이야.”
머리가 안 돌아간다.
뇌 한복판에 누군가가 철심을 박아 놓은 것처럼, 내 사고가 어느 지점 이상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 그 환영은? 환영에 대해 설명해 줘.”
“환영은… 해당 도전자가 17층을 클리어할 당시와 완전히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 성향도, 사고와 판단도, 습관도, 아이템까지도. 완전히 해당 도전자가 17층을 클리어할 시점과 동일한 조건이야.”
[전투 집중]혼란 때문에 어지러워지는 사고를 다잡기 위해 전투 집중을 사용했다.
스킬을 사용해야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만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집중하자.
중요한 이야기라고.
키리키리의 말을 종합해 보자.
그녀의 말은 내 뒤에 올 도전자는 17층을 클리어한 시점의 나와 동일한 조건의 환영과 전투를 벌인다.
이제 막 17층에 올라온 헬 난이도 도전자와 17층 시점의 나 사이의 전투다.
…상대가 될 리가 없다.
“환영은… 환영은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어?”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환영을 설득할 수 있다면, 상황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전투 없이도 17층을 클리어할 수 있다.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도전자로서, 눈앞의 적을 쓰러뜨려야 17층을 클리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자신이 환영이라는 자각 없이.”
“…상대가 누구든?”
“응…….”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속에서 구토감이 치솟았다.
애써 속을 진정시키고, 질문을 이어 갔다.
“쓰러뜨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 줘. 정확히 어떻게?”
“처치…….”
다리에 힘이 빠진다.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주저앉았다.
처치? 처치라고?
나와 동일한 사고방식과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환영이 눈앞의 적을 처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덤빈다고?
내가 아무리 최근 들어 무의미한 살상을 꺼리고 있다지만, 아니 유의미하더라도 꼭 필요하지 않다면 살상을 피하고 있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다르다.
나는 별 거리낌 없이, 큰 망설임 없이 적을 죽이려 들 것이다.
“괜찮아……?”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자, 키리키리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내 정신은 다른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어지럽다.
산들바람 부는 소리밖에 들릴 일이 없는 들판인데, 귓가에 시끄러운 폭풍우 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가시지 않는 구토감을 참으면서 메세지창을 열었다.
[이호재, 18층: 형진아.] [이형진, 4층: 네, 형. 오, 벌써 18층 가셨네요. 17층은 수월하게 클리어하셨나 보네요. 16층은 머리 아프다고 하시더니.]…….
[이형진, 4층: 형, 말씀하세요.] [이형진, 4층: 무슨 일 있으세요?] [이형진, 4층: 형, 바쁘시면 나중에 다시 연락해 주세요. 기다릴게요.]* * *
결국 이형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24일을 흘려보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키리키리의 들판에서 시간을 보내며 고민을 거듭하자, 차츰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납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무거웠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
나 다음으로 17층에 도전할 도전자는 분명 이형진이 될 것이다.
이형진 외의 다른 헬 난이도 도전자들 중 누구도 1층을 클리어하지 못한 상황이다.
언제 1층을 클리어할 수 있을지 예측조차 하기 힘든 그들에 비한다면, 이형진의 진행 속도는 압도적이다.
이미 4층 보스룸에 도달했으니.
6층에서 큰 고비를 맞이하겠지만, 그 고비를 한 번 넘어선다면 17층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17층에 도달한 이형진과 현재의 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그걸 모르겠다.
어쩌면 17층 도전자가 된 이형진과 지금의 나는 스테이터스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형진도 17층쯤 왔을 때면 권능 스킬을 한두 개 얻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스킬과 스탯이 동등하다고 보았을 때, 이형진에게 승산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 높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도전자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초반에 탈라리아의 날개와 점멸의 보주 스킬을 얻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두 권능 스킬을 얻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그 대신 나보다 먼저 튜토리얼을 진행하고, 내게 정보를 건네주는 상층 도전자가 있었다면.
1층부터 4층까지 클리어하는 데 4회 차에서 5회 차 정도 걸릴 것이다.
길어야 6회 차다.
그 전에 죽을 일은 없다.
확신한다.
권능 스킬의 사기성을 확인한 이후, 나는 3층과 4층, 5층을 통과하면서 권능 스킬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스테이지를 통과해 본 적이 있었다.
권능 스킬이 없다는 것은 분명 전력에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보의 중요성은 그 이상이다.
내가 함정에 의해 삼도천을 들락거릴 때는 대부분 함정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함정들을 몸으로 때우면서 정보를 얻어 냈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날아오는 예측하지 못한 공격들을 눈으로 보고 반응해 피하며 올라왔다.
나와 이형진에게는 그런 차이가 있다.
본질적인 실력의 차이가.
17층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이형진과 아무런 정보가 없는 17층 시점의 내 환영.
아무리 생각해도 승패의 무게 추는 내 환영 쪽으로 기운다.
게다가…
사실 나는 지금 내 힘의 한계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음먹고 생사결을 치른다면, 어느 정도의 적까지 상대할 수 있을까?
모른다.
마지막으로 죽기 직전까지 몰려 가며 싸웠던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6층 초입, 7층 막바지에서 한 번, 13층에서 한 번.
그 이후로는 없었다.
내 방심 때문에 위험해졌던 적은 있더라도, 상대하기 벅찬 힘을 가진 적 때문에 위기에 몰린 적은 없었다.
자연히 내 한계까지 끌어내며 싸운 적이 없다.
13층 주지의 방에서는 감각과 집중력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주지와의 전투 자체도 그리 필사적이지는 않았다.
몸 상태가 워낙 안 좋은 상태에서 시작된 전투였기에, 결과적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긴 했었지만.
아니, 무엇보다 주지의 방 자체가 13층의 난이도는 아니다.
13층의 클리어 조건은 15개 방의 돌파였고, 주지의 방은 33번째 방이었다
젠장.
머리가 또 복잡해진다.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잖앙.”
옆에서 잠자코 내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던 키리키리가 말했다.
“미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거양. 미래에 일어날 불행에 절망하기보다는 그 일에 대비하는 편이 옳아.”
그런가.
무심코 17층에 도달한 이형진이 내 환영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단정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도 질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으니, 떠오르는 결과가 절망적일 수밖에 없지.
그보다는 이형진이 17층에 도달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내 환영을 이길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게 도와야 한다.
중요한 건 그 방법과 과정이겠지.
지금 시점의 내 힘을 분석하고, 그것을 상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형진을 성장시키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내 환영이 가지고 있을 이형진에 대한 정보는 4층에 도전하고 있을 이형진이다.
그 정보의 괴리가 가지는 틈을 찌를 수도 있을 것이다.
방법도, 시간도 충분하다.
그리고 이형진은 이제 4층에 도전하고 있는 도전자다.
17층에 올라오는 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그리고 그때 그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몇 시간에 걸쳐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생각이 단숨에 정리되었다.
이상할 정도로.
키리키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아 바닥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낙서의 내용은 알아볼 수 없는 기괴한 문자였다.
지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형진에게 17층으로의 도전을 포기하고 평생 대기실과 스테이지를 전전하며 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그의 성장에 더 신경을 써 주고, 무사히 17층을 클리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될 일이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언제는 쉬운 일이 있었나, 이 헬 난이도에.
“키리키리, 만약 내 다음 도전자가 내 환영을 쓰러뜨리면, 그다음 도전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세 번째 도전자는 두 번째 도전자의 환영과 결투를 펼치게 돼.”
…그런 식으로 진행되면, 가면 갈수록 미션이 어려워지는 거잖아.
나중에 가면, 17층이 그 위층 미션보다 현격히 어려질 텐데.
이거 설계 오류 아니야?
“오류는 아니야……. 그것도 설계자가 의도한 거니까.”
키리키리의 대답에 이제 막 진정되고 있는 머리에 다시 열이 올랐다.
무슨 미친 생각으로 스테이지 설계를 이따위로 한 거야.
진짜 내가 최근에는 그럭저럭 기를 펴고 살아서 한동안 욕을 안 했던 것이 억울해질 지경이다.
무슨 생각으로 17층을 설계했든, 의도가 무엇이든 참으로 개 같은 놈의 개 같은 발상이다.
[모험의 신이 당신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느림의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봐라, 모험의 신도 동의한다잖아.
오랜만에 모험의 신과 의견이 일치했다.
아니, 처음인가?
흐아.
생각은 정리되었지만, 기분은 그리 상쾌하지 못하다.
짜증스럽게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아, 피 난다.
젠장, 손아귀의 힘이 너무 세졌어.
또 잠시간 한숨을 푹푹 쉬다가, 결국 메세지창을 열었다.
* * *
[두 번째 경합의 장이 개최됩니다.] [입장하십시오.] [강제 소환까지 남은 시간: 14분 5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