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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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9)
서양인들 중 헬 난이도 6층의 도전자라는 사람은 키가 훤칠한 흑인이었다.
날렵해 보이는 인상에 조금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긴 팔다리가 특징이었다.
무기는 꺼내 들고 있지 않았기에, 클래스는 짐작할 수 없었다.
18층에 도달한 나와 비교한다면 6층이 그다지 높은 층수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6층까지 살아서 올라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다.
그 대단한 흑인은 지금 눈에 핏대를 세우며 박종식을 노려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흑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박종식 사이의 말싸움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머리에 열이 오를 만도 하다.
검지손가락으로 세우고 박종식에게 경고의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박종식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호오재야아! 6층! 이 녀석 6층이란다아!”
제발… 그만 좀 해요, 종식 형…….
왜 내 이름을 끼워 넣는 건데.
나는 지금 박정아와 박종식 근처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차마 저쪽으로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유치하게 놀고 있는 건 종식 형인데, 왜 쪽팔림은 내 몫인 걸까.
고개를 돌려 박정아를 보니, 그녀도 저쪽에 연관되고 싶어하지 않는 듯하다.
“여기 헬 난이도 6층 도전자! 단 하나!”
조용조용하게(물론 어금니를 꽉 물고) 말하고 있던 흑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는 박종식의 목소리 만큼은 아니었지만…….
사태가 조금 진정되면 끼어들려고 했으나, 저대로 두면 진정되기는커녕 일이 더 커질 것 같다.
쪽팔림을 감수하고 끼어들어야겠다.
더 큰 쪽팔림이 몰려 오기 전에.
“저쪽은… 내가 정리하고 올게. 김민혁한테 이쪽 상황 알려 주고 인원 통솔 좀 맡아 줘.”
저 시궁창에 굳이 박정아까지 가서 구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서 상황 정리하고 끝내야지.
“네, 그럴게요. 그리고 박종식 조장님한테는… 좀 뭐라고 좀 해 주세요.”
뭐라고 할 거다.
나도 어디 가서 잔소리로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알려 줄 것이다.
그런 마음을 굳게 먹고 박종식에게 다가갔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보이는 것이 많아진다.
우선 서양인들 사이는 이제 완전한 선이 갈려 있었다.
갱단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밝아 보인다.
두 번째로 확인한 것은 상황이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나는 박종식과 하드 난이도의 전투 조원들이 서양인들과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유치한 말다툼을 하면서 기싸움을 하고 있는 박종식을 보며서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정작 가까이서 보니, 박종식을 비롯한 하드 난이도의 전투 조원들이 상대를 일방적으로 찍어누르는 형색이었다.
그저 생각 없이 말다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전투나 힘 싸움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양측의 전력 차이가 크기는 하다.
박종식이 데리고 있는 전투조원들은 사실상 하드 난이도의 전체 인원이나 마찬가지다.
하드 난이도의 경우에는 1층이나 2층에 죽치고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살아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투원으로 분류되기 충분하다.
그 인원이 3인에서 10인 규모로 조합을 갖추고 서양인들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뒤에는 다른 난이도의 전투 조원들도 버티고 있는 상황이고.
무엇보다 그들 모두 전투가 있을 것이라 상정하고 이곳에 온 인원들이었다.
게다가 서양인들의 그룹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당장 상황이 그들에게 불리한듯 보이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룹과 거리를 벌리고 방관하고 있다.
심지어 그룹 안의 사람들도 표정이 제각각이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제대로 나설 만한 인물은 몇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박종식은 말로 설득하는 대신 그들을 둘러싸고 윽박지르는 것을 선택한 것 같다.
왈패처럼 보이는 놈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니, 실제로 그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윽박지르던 와중에, 대표로 보이는 저 대머리 백인이 자기네들의 저력을 알려 주겠다는 듯 자기네 서버의 도전자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이 말다툼의 발단인 모양이다.
박종식은 그것에 가소롭다는 듯한 태도로 받아친 것이고.
상황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비아냥거릴 필요가 있나?
“형.”
“오우! 우리 호재가 왔구나! 그래, 호재야. 지금 네가 몇 층… 캑.”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귀청 따가운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는 박종식의 옆구리를 티 안 나게 팔꿈치로 푹 찔렀다.
“형, 쫌. 쪽팔리게 뭐 하는 거야, 이게. 누가 보면 쟤네가 아니라 형이 깡패 같아요.”
옆구리를 감싸는 박종식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박종식은 내 어깨에 팔을 얹은 그 자세 그대로 뒤로 돌았다.
“형, 전달할 내용은 다 전달한 거예요?”
“당연하지.”
옆구리가 아픈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박종식은 조용조용히 소근거리듯 설명했다.
“다 설명하고 알았다는 대답도 받아 냈어. 내키지 않아 하는 걸, 무기까지 들이대면서 협박해서 받아 낸 거야.”
그 와중에 협박은 또 본격적으로 했나 보네.
“그럼 할 일은 다 한 건데, 왜 유치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어요?”
“저것들, 기를 좀 죽여 놔야 할 것 같아서.”
으음…….
그 유치한 말다툼이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박종식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박종식은 솔직한 사람이다.
사고를 먼저 쳐 놓고 나중에 그것을 합리화하는 말을 하기보다는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할 사람이다.
“설명 좀 해 주세요.”
저들의 국적은 호주라고 한다.
박종식은 호주인들의 대표로 나선 이들을 대하면서 자신이 느낀 점을 설명해 주었다.
“내가 보니까, 쟤들은 그냥 동네 양아치 같은 것들이야.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센 힘으로 주변 사람들 겁주고, 그런 행동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쭐해하는 거야. 거기에 법도 경찰도 없는 곳에 갇혀 있으니, 신나게 못된 짓도 했겠지.”
그 의견에는 나도 동의한다.
“저런 놈들을 상대할 때는 기를 팍팍 죽여 놔야 돼. 저놈들의 위치를 최대한 밑으로 처박아 놔야 한다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저것들을 찌질하고 만만하게 보기 시작하고, 또 대항할 생각을 갖는 거지.”
진짜로 동네 양아치 상대하듯 상대하고 있었구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다.
저들은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초인이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힘을.
그렇다고 박종식의 말에 바로 반박할 만한 방법론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지만.
박종식은 이어서 저들을 윽박지를 때마다 뒤에 있던 호주 사람들도 덩달아 표정이 밝아졌고, 조용히 고소해했다고 말했다.
그 모습에 더 열심히 깔아뭉겠다고 한다.
“우리 애들도 재밌어 했고.”
박종식의 생각은 이해했다.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고 납득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 왜 나를 그렇게까지 끼워 넣는 거야. 쪽팔리잖아.”
킬킬거리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박종식을 한번 째려봐 주고 뒤로 돌았다.
확실히 대표로 말하고 있던 대머리나 다른 깡패들은 바짝 눌려 있는 모습이었다.
왠지 그 모습에 심통이 낫다.
이러면 나중에 잔소리를 이어 하기가 애매한데.
아까 박종식과 신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때보다 상황이 조용해진 지금 더 불안해하는 것 같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적의를 불태우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헬 난이도의 6층 도전자라는 흑인이었다.
콧김을 씩씩거리는 것이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가 최대 피해자네.
약간의 미안함과 헬 난이도 도전자에 대한 반가움을 담아 인사나 해 두기로 하였다.
“헬 난이도 6층이라고? 네가…….”
그러고 보니 네가라는 단어는 nigga와 발음이 똑같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뭐 상관없겠지. 번역이 되니까.
…아닌가?
흑인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구겨져 있다.
왜 조금 전보다 더 빡친 것처럼 보이지?
아.
내가 생각하느라 말을 끊어서 ‘네가’가 번역이 안 됐구나.
“뒈져라, 이 개자식아!”
한국적으로 번역된 욕설을 뱉으며 흑인이 내게 달려들었다.
번역 수준이 상당하다.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을 낚아채 등 뒤로 꺾으면서 옆구리에 한 방 먹여 줬다.
흑인은 꽥! 소리를 내더니, 단번에 조용해졌다.
잡고 있던 손목을 놔주니, 흑인은 바닥에 쓰러져 부들부들 경련했다.
아, 이거 참.
요새 오러 블레이드를 연습 중이라 그런지, 반사적으로 주먹에 오러를 두르고 찔렀다.
하필 옆구리를 정확히 찔러 넣어서… 아, 이 녀석 내장 터졌겠는데.
“괜찮냐?”
안 괜찮아 보였다.
“형, 저 친구 나중에 포션 좀 줘. 내가 잘못한 거니까 포션 정도는 줘야지.”
알았다며 끄덕이는 박종식에게서 눈을 돌려 대머리를 바라보았다.
“이름은?”
“…데이비드.”
자신을 데이비드라고 소개한 대머리는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믿고 있던 흑인이 한 방 맞고 뻗은 것에 제법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경합의 장이 진행되는 6일간 모든 범죄가 금지된다는 말은 들었지? 경기 도중의 주의 사항도.”
“들었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말이 짧아.
조용히 대답만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아니꼬웠다.
“그럼 다시 한 번 확답해라. 앞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없을 것이며, 우리가 범죄를 단속하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이 녀석들은 조금 전 만나 보았던 수염 아저씨와는 달리, 범죄를 막기보다는 앞장서서 범죄를 저지를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대머리… 데이비드는 대답을 하기에 앞서 자신의 옆쪽에 있는 사람을 슬쩍 보았다.
남자임에도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 곱슬머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데이비드도 알았다고 대답했다.
얼씨구.
그 와중에 리더는 따로 있는 모양이네.
덥수룩한 곱슬머리를 기억해 두었다.
* * *
한국, 일본, 호주의 모든 튜토리얼 도전자가 광장에 모여 있다.
박정아는 그들을 모아 놓고 앞으로 6일간 모든 범죄 행위가 금죄됨을 알리고, 자유 시간과 경기 중, 그리고 관람 중의 주의 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는 박정아가 올라서 있는 단상 옆에서 김민혁과 수다나 떨고 있었다.
“일본은 바로 옆 나라니까 그렇다 쳐도, 호주는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같이 엮인 걸까?”
당연히 모른다.
김민혁의 질문을 깊게 생각하는 대신, 인벤토리에서 막대 사탕을 하나 꺼내 물었다.
“너 원래 간식으로는 육포 같은 것만 먹지 않았냐? 간식뿐만 아니라, 입에 넣는 건 육포랑 물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언제 적 얘기냐, 그게. 요새는 다양하게 먹고 있어. 아, 그리고 이 사탕은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야.”
“그럼?”
“관리자가 나한테 마법 같은 걸 쓴 것 같다고 했잖아. 그거야.”
“사탕이 먹고 싶어지는 마법도 있냐?”
“있더라.”
그때 광장 한편에서 누군가 욕설을 중얼렸다.
“지랄. 까고 있는 소리…….”
가끔 저런 녀석들이 있다.
핀 포인트로 위압 스킬을 사용해 입을 다물게 했다.
박정아의 연설과 안내에 대한 반응은 국적에 따라 명확히 갈렸다.
한국 서버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자경단이 나서서 이렇게 오지랖 떠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보니.
쟤들은 외국인들과 섞인 와중에도 저러는구나, 하며 신기해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일본 서버의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험악하게 돌아갔던 광장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범죄를 금지하고 건전한 경합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협조해 달라는 연설에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있었고,
자경단을 보며 오히려 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제가 되는 반응은 대부분 호주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호주 서버는 전체적으로 양아치 같은 놈들의 발언권이 강해 보였다.
때문에 연설 내용에 반발하는 녀석들이 꾸준히 나왔고, 나는 계속해서 위압 스킬을 사용해야 했다.
어찌 되었건 우리처럼 서버 전체를 통제하는 단일 세력은 없어 보이네.
일본 쪽은 아예 인원 전체가 파티 규모 단위로 쪼개져 있는 것 같다.
그나마 인망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수염 아저씨가 나서고 있지만, 서버 전체를 대표한다기보다는 파티나 그룹에서 한 명씩 대표를 뽑고, 그 사람들과 수염 아저씨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저 녀석들은 대화합의 날도 제대로 겪어 보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나중에 알아보자.
호주는 제법 큰 규모의 그룹이 몇 개 있었다.
주류로 보이는 그룹들이 불량한 행색을 보이고 있는 점이 문제지만.
아까 보았던 대머리와 흑인 더벅머리가 속한 그룹이 가장 커 보인다.
숫자가 가장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수준이 제일 높다.
“야, 근데 저기 일본 애들 말인데, 왜 이렇게 일본도를 많이 차고 있냐? 저거 초보자가 다루기 어렵지 않냐?”
“어려워.”
겁나게 어렵다.
시작 무기를 고를 당시, 나는 검을 한 번 잡아 보고 그대로 선택지에서 빼 버렸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다루기 쉬워 보이는 단병을 찾았다.
심지어 저 일본인들이 들고 있는 일본도는 길이가 상당했다.
저건 초심자가 그냥 들고 휘두를 만한 것이 아니다.
하드 난이도에 막 진입한 사람이 저 일본도 하나 달랑 들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대로 객사할 확률이 통상적인 사망률의 두 배는 나올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다냐?”
“쟤네는 저 일본도를 시작 무기로 고른 게 아닌 것 같아. 그런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 패션용으로 따로 구매한 걸 거야.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일본도를 집어넣고, 실제로 쓰는 무기를 꺼낼지도 몰라.”
“패션용? 글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제대로 된 무기 하나에 포인트가 얼만데.”
“저 봐 봐. 일본도 들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인벤토리에 안 넣고 허리춤에 차고 있잖아. 저게 유행일지도 모른다니까.”
시답잖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박정아의 연설도 끝이 나고 있었다.
“…자의적으로 규칙의 한계선을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만, 경합이 진행되는 6일간 모든 범죄 행위는 금지됩니다. 이 규칙만을 성실히 지킨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정작 우리도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 규칙이지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