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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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13)
“이거 꼭… 박격포 같이 생겼는데.”
김민혁은 변화된 천변기를 살펴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포탄 같은 것도 있냐?”
“아니, 그런 건 없는데.”
설마 이렇게 생긴 형태의 둔기는 아닐 테고, 포탄류는 따로 구매를 하든지 해서 구해야 하는 모양이다.
천변기가 이런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 가능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무의식중에 변환 가능한 무기의 개념을 냉병기에 한정 짓고 있었다.
무기 설명에 드래곤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고 판타지적인 세계의 무기라고 생각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거 쓰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포탄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이 밑부분을 어떻게 조립하고 써야 될 것 같아. 아마 따로 부품을 구해야 하는 걸 거야. 나중에 관리자에게 물어보면…….”
천변기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김민혁이 중얼거리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아 오는 손가락을 마주 잡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박정아였다.
숙소로 향하기 전, 위치를 메시지로 알려 주었더니 마중을 나온 모양이었다.
“왔어?”
“네.”
별말 안 했는데도, 가까이 마주한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많이 바빴느냐고 묻자, 박정아는 그냥 괜찮다고 답해 주었다.
옆에서 음침한 시선이 느껴지길래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천변기와 함께 방치된 김민혁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 둘이서 염장질을… 어휴…….”
쟤 또 저러네.
꽁해진 김민혁의 투정을 받아 주기보다는, 그냥 반응해 주지 않는 것을 택했다.
박정아도 같은 선택을 내렸다.
“저게 그 천변기죠? 제가 좀 살펴봐도 될까요?”
“어, 그럼, 당연하지.”
박정아의 클래스는 거너이다.
총화기를 주로 다루는 그녀가 나나 김민혁보다 저런 형태의 천변기를 더 잘 다룰지도 모른다.
박정아는 김민혁에게 천변기를 받아들고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렸다.
철컥- 철컥-
“이렇게 설치하는 거였네요. 이쪽을 당기면 받침다리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구조예요. 이걸 조여서 포신을 고정하고… 이 손잡이에 마력을 불어넣고, 뒤로 잡아당기면 발사될 거예요, 아마. 사용자에게 마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을 보니, 위력이 상당하겠는데요? 그리고 여기 이 바코드 같은 문양이 포탄의 일련번호예요. 일련번호 자체는 저도 모르는 거지만, 관리자에게 이 문양을 보여 주면 알맞은 포탄을 구매할 수 있게 도와줄 거예요.”
오오. 뭐야, 멋있어.
처음 보는 물건임에도 능숙하게 사용법을 알아내고, 이것저것 조언해 주는 박정아를 보니, 그녀가 멋있게 느껴졌다.
여성이 이런 쪽에 전문가적인 면모를 보여 주니,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단순히 내 눈에 콩깍지가 쓰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무기를 많이 쓸 것 같지는 않아. 분명 이건 강력한 원거리 공격 수단이 되겠지만, 지금 당장 공략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도 않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처럼 이쪽 관련 스킬을 육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요?”
“상황에 따라 몇 번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자주 쓰지는 않을걸.”
“음… 이런 건 어떠세요?”
박정아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천변기를 권총의 형태로 만들어 냈다.
권총 형태도 있는 거냐…….
하긴 박격포가 있는데, 뭔들 없겠어.
“으음… 호신용으로 쓸 만하긴 한데, 말했듯이 나 자신이 성장하는 쪽이 더 중요해서. 아, 그래도 이 권총은 틈틈이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박정아는 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박정아는 천변기를 이런저런 형태로 바꾸어 가며, 고민을 이어 나갔다.
거의 10분이 넘도록.
별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경솔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내게 쓸모 있는 형태를 알아내기 위해 열중할 줄은 몰랐다.
“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숙소로 돌아가자.”
“그래, 정아야, 네가 알려 준 권총 형태는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그거면 충분하다니까.”
“아, 잠깐만요. 좀 기다려 보세요.”
하지만 박정아는 자신의 고민을 방해하지 말라는 듯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얘, 은근히 똥고집 있네.
아니, 은근히는 아니지. 고집이 강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자경단을 운영하면서 종종 완고한 모습을 보여 왔으니.
하지만 이런 면에서 고집을 부릴 줄은 몰랐다.
어떻게든 내게 도움이 될 방법을 생각해 내겠다는 듯, 천변기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는 박정아를 보면서 김민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냥 포기하고 인벤토리에서 의자를 꺼내 앉았다.
박정아와 김민혁에게도 의자를 하나씩 꺼내 주었으나, 박정아는 의자에도 앉지 않고 고민을 이어 갔다.
“이제 보니 공돌이 같은 면이 있었네.”
으음…….
김민혁의 중얼거림에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박정아를 처음 만났을 때는 감정조차 존재하지 않는 차가운 로봇 같은 사람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점이 대단하다고 느끼기는 했으나, 오히려 께름칙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면이 많이 줄었다.
표정도 다양해지고, 인상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사고방식도 많이 바뀐 것이 보인다.
커뮤니티에서도 박정아가 많이 사람 같아진 것 같다는 게시글과 댓글들이 올라올 정도였다.
예전에는 정말 사람 같지가 않았다는 글들도 함께.
확실히 과거의 일 때문에 강박적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몰아세우던 시절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보기에도, 옆에 있기에도.
지금 보이는 이런 고집적인 면도 그런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예전이라면 이런 것에 시간을 오래 소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고집을 부리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서서 내게 필요한 형태를 찾아주겠다고 부산을 떨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고집이 그녀가 튜토리얼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본래의 성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의 고집도 그냥 고집도 좋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박정아의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보다 보니 어린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여,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이건 내 감상이었고, 옆의 김민혁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나를 보고 질색했다.
“됐다! 이건 어떤가요?”
박정아가 자랑스럽게 내민 것은 팔뚝만 한 길이의 쇠꼬챙이였다.
“뭐야, 바비큐 꼬치냐?”
박정아는 옆에서 딴죽을 거는 김민혁을 살짝 째려보고, 내 손에 꼬챙이를 쥐어 주었다.
“여기 손잡이 부분에 살짝 튀어나온 부분에 마력을 흘려 넣으면요… 이렇게.”
그 순간,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꼬챙이 끝에 전류가 튀었다.
“어때요?”
“일종의 전기 충격기구나. 뭐, 호신용으로 쓸 만하겠네. 그런데 이 녀석이 이런 호신용 무기를 쓸 일이 있겠어?”
옆에서 김민혁이 꼬챙이에 대한 자신의 평을 말했지만, 나는 그 박한 평가에 동의할 수 없었다.
“최고야!”
“그렇죠? 이거 하나면 전기 내성 스킬 올릴 걱정은 없어요! 심지어 마력량으로 위력도 조절할 수 있고요.”
“완벽해! 내가 가장 필요로 하던 무기야. 정말 고마워!”
“…호신용이 아니라, 자해용일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 * *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 눈을 떠 보니, 박정아가 침대 머리맡에 앉아 단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상태로 눈이 마주치자, 박정아는 단검을 든 채 미소를 지었다.
식겁했다, 정말.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안 자고 뭐 해.”
“마저 주무세요. 저는 이거 좀 보다가 잘게요. 아, 경합 끝날 때까지 저 이거 하나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 전까지 다른 형태들을 더 찾아보고 싶어요.”
자다가 깨서 천변기의 다른 형태를 찾아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왜 안 되겠어. 그럼 나야 고맙지. 그래도 그거 가지고 논다고 밤새면 안 돼. 내일도 일 많다며?”
“네. 조금만 더 해 보고 잘게요.”
* * *
경합의 장 2일 차에는 개인전의 본선이 진행되었다.
무작위로 매칭되는 상대와 대결을 펼쳤던 예선 2차전과는 달리, 본선은 대진표대로 진행되는 토너먼트였다.
한 번에 네 개의 경기장에서만 경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참가자의 수가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2일 차 온종일 진행되었다.
나는 아침 일찍 진행된 두 번의 경기에서 가뿐하게 승리를 거둔 이후, 쭉 관중석에서 관람만 하고 있다.
내 다음 경기는 오후에나 진행될 것이다.
관중석의 분위기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어제저녁에 불상사가 있기는 했지만, 하루의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고작 하루의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평소에 대기실 혹은 스테이지에 격리되어 지내는 도전자들에게 원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루는 분명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경기 내용은 대부분 평화로웠다.
중세 기사들의 결투도 이렇게 평화롭고 온건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기를 들고 상대를 공격하고 있지만, 다들 치명상이 될 만한 부위는 피했고, 상대가 조금 크게 다쳤다 싶으면 공격을 멈추고 괜찮은지 물었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말이지.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심하는 게 당연하겠지.”
김민혁의 말대로다.
관중석에서 경기장에 서 있는 참가자들의 말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사람도 수많은 경기장 중 하나를 콕 집어 그 경기장에 감각을 집중해야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은 어제 루카스가 처벌된 경위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처벌된 사람이 확실히 상대를 의도적으로 괴롭혔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증거가 없는 건 마찬가지야. 너랑 자경단원 몇 명이 그놈의 말소리를 들은 게 전부니까. 그냥 이대로 넘어가는 게 깔끔해. 굳이 행사의 이유를 하나하나 알려 줄 필요도 없고. 사실 그래서는 안 되기도 하고.”
김민혁의 말에 나도 알았다고 대답하고 넘어갔다.
“오, 이형진 경기 이제 시작하나 보네.”
“어디?”
김민혁이 가리킨 경기장을 보니, 확실히 이형진이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모양이다.
상대는… 첫날 보았던 호주 서버의 헬 난이도 도전자였다.
오우, 대박 매치네.
저 흑인은 헬 난이도의 6층 도전자라고 들었다.
이형진은 여전히 4층에 머무르고 있었고.
“재밌겠네.”
6층 도전자의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초입이라면 5층을 클리어한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고, 중반을 넘어섰다면 5층 밑의 도전자와는 한 단계 다른 실력을 보여 줄 것이다.
그리고 이형진은 자신보다 높은 층의 헬 난이도 도전자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지더라도 경기를 통해 이형진의 약점이나 문제점을 발견하고 보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잠시 기다리자 경기가 시작되었고, 이형진과 흑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와 김민혁만 이형진의 경기를 주목하고 있던 것이 아닌지,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진표를 보고 이 대결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제법 많은 것 같다.
나야 대진표를 안 봐서 몰랐지만.
“너는 누가 이길 것 같냐?”
“내가 어떻게 아냐.”
김민혁의 질문을 건성으로 넘기고 경기를 지켜보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집중은 오래가지 못했다.
경기 시간이 10분을 넘어 30분, 1시간을 향해 달려가자, 관중석의 누구도 경기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심하네.”
“그러게.”
심하다.
이형진과 호주 흑인 도전자와의 대결은 아주 극단적이었다.
극단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만약 관중석에 모인 사람들이 관람료를 냈다면 경기장에 물병이 날아들었을 것이다.
이형진과 흑인은 계속해서 간만 보며 서로의 실수를 기다렸다.
그리고 또 기다렸다.
가끔은 눈싸움하듯 서로를 노려보았고.
다시금 기다렸다.
그러다 간격 밖에서 닿을 듯 말 듯한 공격을 몇 번 시도해 보고는 또 기다렸다.
이게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메이웨더와 메이웨더가 붙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저 정도면 이형진의 판정승이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어쨌든 더 낮은 층이잖아.”
글쎄,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김민혁의 말에 동의하기는 애매했다.
“내가 보기에 저 대결은 이형진이 자기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버티기를 시도해서 이렇게 질질 끌리는 게 아니야. 그냥 둘의 스타일이 너무 똑같은 거야.”
그리고 두 사람 모두 회피와 속도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자연히 서로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넣고자 했고, 둘 모두 제대로 된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냥 기 싸움만 이어 나갈 뿐.
“뭐… 음… 사실 저런 스타일이 아니면 헬 난이도에서 살아남기 힘드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너는 저런 스타일 아니잖아.”
“나랑 비교하는 건, 쟤네들한테 너무 가혹한 일이고. 이제는 아예 자존심 싸움이 된 것 같은데. 먼저 참을성이 바닥나 달려드는 쪽이 패배하는. 실제로도 먼저 달려드는 쪽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고. 내가 보기에 저거, 점심 전까지는 안 끝난다.”
이형진을 위해 저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경기장에서 눈을 떼고 인벤토리를 열어 천변기를 꺼냈다.
“뭐 하냐?”
“뭐 할 것 같냐?”
천변기를 전기 꼬챙이 형태로 만들고, 그 끝을 팔뚝에 가져대자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살갗이 타올랐다.
아랑곳하지 않고 꼬챙이 끝으로 팔뚝을 꾹꾹 눌렀다 떼기를 반복했다.
꼬챙이가 닿을 때마다 전류에 의해 팔이 약하게 경련한다.
상처 부위에서 피가 새어 나오길래, 그곳에 꼬챙이를 가져다 대고 지졌더니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역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가 올라왔다.
피딱지가 생겨 피가 흐를 염려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그 부위를 꼬챙이로 콕콕 찔렀다.
내 모습을 본 것인지, 주변에서 웅성거림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니, 아픈 건 난데, 비명은 왜 지르는 거야.
“아, 이 미친놈이. 너 때문에 외국 사람들이 무서워하잖아. 한동안 안 그러더니, 왜 또 그러는 거야? 아니, 왜긴 왜겠어, 그 형태를 알려 준 박정아 때문이지. 아오, 진짜.”
남 내성 스킬 올리는 데 보태 준 거라도 있는지, 투덜거리는 김민혁을 무시했다.
이번 경합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꼭 전격 내성 스킬을 얻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