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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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19)
이찬용.
한국 서버의 최상층 도전자.
첫 번째 경합이 있기 전까지는 나와 함께 서버 최강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던 도전자이다.
곧 튜토리얼 100층을 클리어하고, 현실로 나가는 것이 확실시되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밖에 있을 지인들에게 전할 말들을 부탁했다.
자경단은 아예 지인들에게 전할 안부를 넘어, 정부에 전할 전언이나 방침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 그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튜토리얼 이지 난이도 89층.
90층 거주 지역까지 한 발짝만이 남아 있고, 100층마저도 머지않았지만, 이찬용은 그 89층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파죽지세로 89층까지 올라선 그가, 멈춰 서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89층은 그저 도전자 본신의 실력을 시험하는 층이었다.
이찬용의 목표는 오로지 하루빨리 튜토리얼을 벗어나, 가족들을 찾는 것뿐이었다.
공략에만 집중했고, 성장을 도외시했다.
사실 스테이지 공략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레 성장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찬용은 자경단과 그를 후원해 주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스테이지 공략에 필요한 정보를 모아, 완벽한 공략법대로만 진행하였다.
최고 수준의 아이템과 소비형 포션 등을 물처럼 쓰며 진행한 그는 결국 89층 스테이지가 요하는 수준의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이찬용 본인을 최고층 도전자로 만들었을 집념과 집중력, 공략법을 찾아내는 사고 등은 분명 대단한 것일 테지만, 89층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튜토리얼의 스테이지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단지 살아남는 것만을 미덕으로 삼으라는 듯 말하다가, 어느 순간 생존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을 시험한다.
남을 의심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선, 남과 협동이 필요한 스테이지가 등장한다.
이렇듯 각 층이 요구하는 것이 제각각이다.
이찬용이 몇 회 차에 걸쳐 89층에 막혀 있던 동안, 한참 뒤처져 있던 후발 주자들이 어느새 84층까지 도달했다.
그들이 곧 이찬용을 따라잡을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이찬용을 완전히 떠나 버렸다.
그렇게 이찬용은 잊혔지만, 이찬용 본인은 어땠을까?
대기실에선 외로움을 곱씹고, 스테이지에선 넘어설 수 없는 벽에 절망하고 패배감을 느끼는 나날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 심정은 누구보다 내가 잘 이해한다.
6층에서 한번 겪어 보았으니.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기계적으로 일정을 수행하듯 도전을 반복한다.
아니, 어쩌면 이찬용은 무력감에 도전조차 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경합과 같은 이벤트는 매우, 매우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 열리는 이 이벤트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심정을 이해하고 동감하는 한편, 그에게서 실망과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찬용은 누구보다 빛나던 사람이었다.
밖에 있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스테이지를 공략해 나갔었다.
새로운 세계에 떨어졌다는 사실에서 공포를 느끼기보다, 확고한 목표를 두고 정진하는 그의 모습은 분명 영웅적이었다.
지인이나 가족들이 걱정되는 도전자들은 이찬용의 모습을 보면서 그 뒤를 쫓았었다.
나도 그랬었다.
열다섯.
두 개에서 세 개의 파티를 구성할 수 있는 인원이다.
그 구성원 전원이 한국 서버에서 손꼽히는 랭커이며, 조합 구성도 괜찮다.
잘 짜인 파티는 단순히 그 구성원의 수만큼이 아닌,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레이드 몬스터조차도 피해 없이 사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잘 짜인 파티 플레이다.
그렇기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전히.
호주의 대머리와 흑인을 죽이는 데 시간이 잠깐 소모되었고, 그사이 그들은 포지션을 잡고 나를 둘러싸는 데 성공했다.
비록 내가 예상하는 것 이상의 힘을 보여 주긴 했으나, 집단전으로 몰고 가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씁쓸해졌다.
첫 경합이 시작되기 전, 김민혁이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힘을 과시해 범죄를 예방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로 시작한 제안은 역으로 힘을 숨기는 것이 어떠냐는 말로 끝을 맺었다.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의 말대로 힘을 적당히 숨겼다.
어차피 내 힘을 다 드러낼 일도 없었으니.
그리고 두 번째 경합이 시작되기 전, 커뮤니티에서는 상위 랭커와 나 사이의 격차가 많이 줄어든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왕왕 나왔다.
초기에 열렸던 첫 대화합 당시의 압도적인 격차는 아니라는, 이제는 제법 승산이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들.
파티 플레이로 대항하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고, 오히려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말하는 대로, 저들도 나를 상대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착각이다.
괴이한 녹색의 마법 화살이 날아왔다.
탈라리아의 날개로 몸을 감싸고, 오히려 그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마법 화살과 내가 충돌하자마자 넓게 녹색 안개가 흩뿌려졌다.
독이다.
우선은 무시했다.
접근하자마자, 마법사에게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는 자들이 있었다.
전위를 담당하고, 후열을 보호하는, 소위 말해 탱커들.
그들의 역할은 적의 어그로를 끌고, 최대한 오래 죽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검을 휘둘러, 정면의 전사의 팔을 베어 냈다.
흑인처럼 몸 전체를 양단할 의도였으나, 전사는 눈치껏 몸을 비틀어 냈다.
직후 옆에서 몸으로 덮쳐 오는 전사가 있었다.
왼쪽 팔꿈치로 턱을 가격해 무력화시키고, 발목 쪽으로 들어오는 갈고리를 차분히 피해 냈다.
다시 검을 움직여 팔이 베인 채 다시 달려드려 하는 전사의 아래턱을 베어 내고 탈라리아의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주변에 붙은 전사들을 떨쳐 내고, 검에 마력을 둘렀다.
완전히 오러로 정제되지 못한 마력이 잔뜩 담긴 검을 그대로 허공에 휘둘렀다.
마력이 정면으로 방사되었고, 후열의 적들은 즉시 보호막을 정면 전개해 막아 내었지만, 그 충격의 여파로 적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전열에 큰 틈이 생기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날개가 크게 움직일 때마다 날개의 끝, 날카로운 수정에 적들의 팔다리가 베어져 나간다.
날개가 내려쳐지면 사람 한 명이 그대로 넘어진다.
오러를 두른 검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방패나 보호막 따위에 막히는 일 없이 매번 피분수를 일으켰다.
적들의 공격은 내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검과 창날들은 내 갑옷과 피부를 뚫고 들어오지 못했고, 드물게 날아오는 마법은 대부분 날개에 가로막혔다.
적들은 빠르게 움직이며 진형을 계속해서 바꾸려 했다.
앞뒤, 좌우로 내 공격에 최대한 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동시에 내 신경을 흐트러뜨리려 노력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내 빈틈을 만들려 했으나, 허점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단지 스펙과 스킬의 차이가 아니었다.
물론 권능 스킬의 압도적인 성능과 레벨 차이가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실력의 차이가 더 컸다.
이 실력의 차이란 본질적으로 경험의 차이다.
6층에서 11층까지.
파티 플레이를 요하는 여섯 스테이지를 혼자 통과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전투를 했다.
적을 베고, 부수고, 터뜨리고, 물고, 때렸다.
매일, 매 시간, 매 분 동안.
30일 동안 진행되는 회 차 동안 30일을 꼬박 스테이지에 체류했고,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전투에 몰두했다.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에는 전투 중 얻은 깨달음이나 새로운 스킬을 연습하며 보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머릿속에는 독기만 남긴 채 전투에 모든 시간을 바쳐 그 구간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들과 나 사이엔 그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너무나 컸다.
하나씩, 하나씩 적들이 줄어 간다.
그리고 영혼 착취 스킬의 효과로 적이 죽을 때마다 몸에 마력과 활력이 돌아온다.
그런데 그 효과가 평소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정신적인 쾌감마저 느껴졌다.
게다가.
[죽음의 신이 매우 기뻐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의 행동에 흡족해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의 행동에 행복해합니다.]적을 죽일 때마다 죽음의 신이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전에도 영혼 착취를 사용하고 적을 죽인 적은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대상이 살아 있는 인간이라서?
그러고 보니 사람을 죽이는 건 처음이다.
아무도, 그리고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사실 내 손으로 직접 인간을 죽인 적이 없었다.
오늘 전까지는.
막상 저지른 살인은 별 감상을 주지 못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별의별 괴물들을 다 죽여 보았으니.
그렇다면 이 차이는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만난 존재들과 살아 있는 인간들의 차이라는 것인가?
그럼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만난 다른 이들은 살아 있지 않다는 건가?
그 차이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이 쾌감이 그다지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쾌하다.
불쾌한 정신적 쾌감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가뜩이나 불쾌했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사… 살려 주라, 호재야.”
피투성이가 된 채 내게 살려 달라고 비는 이찬용을 보니, 머릿속의 피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주변에 남은 적은 하나도 없었다.
영혼의 외침에 이끌리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기권하고 관중석으로 도망쳤고, 적들은 모두 죽였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찬용을 남겨 둔 이유는 뭘까?
그의 모습에서 내 과거의 모습을 보았을까?
어쩌면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내 능력의 한계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저렇게 되지 않을 자신이 내게 있는가?
“호재야, 내가, 내가 잘못했다. 욕심 때문이 아니었어. 그냥 잘 모르고 그랬어. 잘 몰랐어, 정말이야. 그냥 세력전이라는 경기에 참가해 보고 싶었다. 절대로 너희 뜻을 거스르려 했거나…….”
어쩌면 그에게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다잡을 시간이 아니었을까?
이해와 대화가 아니었을까?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도 괜한 자책감과 후회감이 든다.
“너도 알잖아. 호재야, 나는 원래 이런 데 관심이 없…….”
마지막으로 불쾌한 쾌감을 느끼며, 천변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 * *
찝찝함 속에 세력전이 마무리되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관중석과 경기장 밖에서도 전투가 일어났다.
자경단은 관련자를 죄다 처벌해 오던 전례와 달리, 제보와 관찰을 통해 확신범이라 확정한 적들만 처벌하고 나머지는 경고를 주는 정도로 그쳤다.
예전과 비교하면 조금이나마 완화된 처벌 수위였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죄다 핼쑥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언제나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벌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그 문제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박정아와 김민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나는 굳이 거기에 끼고 싶지 않아 빠르게 경합의 장을 떠나기로 하였다.
박정아는 마지막 날, 자신이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귀환이 가능해지는 6일 차가 되자마자 대기실로 돌아왔다.
아쉬웠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밝은 분위기에서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 있고 싶었다.
더 즐겁고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다음 경합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더더욱.
앞으로 언제 그들과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그 헤어짐이 이런 식이라니.
또 행동 뒤에 후회가 남는다.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대기실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텅 빈 대기실의 침대 위에 앉았다.
다시 나 혼자만이 남아 있는 세계다.
물론 커뮤니티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의 대화가 활발했고, 이 헬 난이도 저층에는 이형진을 비롯한 다른 도전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느껴졌다.
공허한 대기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본래 이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특별한 이벤트로 잠시 저곳에 다녀온 것이다.
그게 잘 인지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이 재수 없게 떨어진 독방이고, 당연히 나는 저쪽의 사람들과 재밌게 지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경합 전보다도 더 외롭게 느껴진다.
고작 6일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사람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끼면서 정신이 물러진 걸까?
3일간 진행되었던 저번 경합과 비교해 3일이 늘어난 것뿐이지만, 그 차이가 너무 크게 와 닿았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경합에서 일찍 돌아온 선택이 다시 한 번 후회되었다.
경합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떠들었던 사람들.
16층에서 만나 며칠간 함께 지냈던 일행. 성기사, 기사, 용병, 모험가, 마법사(도플갱어였지만).
13층에서 결투를 펼치고, 전투 방식과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수도승들.
12층에서 쭉 함께했고, 튜토리얼 안에서 전투와 공략이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었던 이디.
그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들 중 누구와라도.
스킬창을 열고, 사자 소환 스킬의 설명을 다시 읽었다.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이디를 소환해 볼까, 잠시 고민했다.
잠시 후, 나는 고민을 관두고 인벤토리에서 천변기를 꺼내 조용히 자해를 시작했다.
그렇게 대기 시간이 끝나고, 빨리 스테이지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