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25
x 125
튜토리얼 18층 (1)
[아저씨는 신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굳이 말 안 해 줘도 괜찮아. 나한테 함부로 이야기했다가는 그 양반들이 싫어할 거야. 받아먹을 건 알차게 받아먹어야지.] [아저씨에게 그리 좋지 않은 이야기인데도요?] [괜찮아. 내가 비록 너를 도와주고 있기는 하지만, 너한테 도움이 될 가능성을 없애면서까지 모든 걸 알려 줄 필요는 없어. 나한테 위험이 된다 하더라도.] […….] […….] [그거 아저씨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나한테 이야기 안 해 주겠다는 뜻이죠?] […그보다 이번 18층 말인데, 조심해야 해. 어쩌면 그 어떤 층보다도 위험할 수 있으니까.] [말 돌리지 마시고요.]* * *
움직임을 멈추자, 대기실의 치유 효과에 의해 몸이 깔끔하게 회복되었다.
천변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식사나 하자.
조금 남은 에그 샌드위치를 꺼내 음료수와 함께 먹는데, 이상하게 입맛이 썼다.
속도 거북하고.
어차피 대기실에서는 공복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육포나 먹자.
오랜만에 육포와 물통을 꺼내 들었다.
육포를 질겅거리고 있으니 짜디짠 염분 맛만 입안에 맴돌았다.
물 한 모금을 마셔 입을 헹구고 커뮤니티를 열었다.
식사 중에 커뮤니티를 확인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열어 보았다.
이제는 쓴맛이 감도는 입안을 물로 다시 헹구고, 커뮤니티창을 껐다.
실수였다.
어제 일이 있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한참 그 일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잠깐 열렸던 창에서 보인 내용은…….
프로게이머 시절이 또 생각나네.
한동안 안 떠올랐었는데.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던 중, 특히 은퇴가 머지않았던 시절엔 인터넷에서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 보았다.
그때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었지.
당시 인터넷 댓글에 달렸던 것처럼, 커뮤니티창에 내 욕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당황과 공포, 불안 속에서 나와 그들 사이에 세워진 벽이 느껴지는 것이 께름칙했다.
[박정아, 44층 : 뭐 해요?]박정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일은 얼추 마무리된 건가?
뭐라고 답해야 할까?
병신같이 땅 파고 있었다고 할까?
[이호재, 18층 :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어.] [박정아, 44층 : 그러게, 조금 더 같이 있다가 가셨으면 좋았을걸.]정말 그럴 걸 그랬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한동안 박정아에 대화를 나누었다.
* * *
[이호재, 18층 : 마법이 내장되어 있는 완드라고?] [박정아, 44층 : 네. 마법 완드에는 한 가지 형태마다 하나의 기초적인 마법이 저장되어 있어요.]박정아가 귀가 트일 만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천변기의 형태 중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완드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호재, 18층 : 자세한 모양새를 알려 줘. 지금 바로 시도해 볼게.] [박정아, 44층 : 네. 잠시만요, 노트에 적어 놨거든요……. 어디 있더라…….]박정아가 알려 준 완드의 모양대로 천변기를 변화시켜 보았더니, 정말로 마법이 사용되었다.
비록 상당량의 마력이 소모되었고, 16층에서 겪어 본 마법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위력이 약했으나, 이 정도면 충분했다.
우선, 마법 사용의 열쇠였던 속성력에 대해 조금 더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에 계속 마법을 맞아 보면 감이 오겠지!
그리고 애초에 내가 마법을 배우려 했던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박정아, 44층 : 이제 대마법 내성 걱정은 없겠죠!] [이호재, 18층 : 응! 완벽해! 최고야!]애초에 마법을 배우려 했던 이유는 자해에 사용해, 마법 내성을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한동안은 이 정도 위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다양한 속성 내성도 마찬가지고.
[박정아, 44층 : 흠흠! 마지막 날 밤에 알려 드리고 유세 좀 부려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하하하.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말을 한다.
그녀가 평소보다 높은 텐션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 때문이겠지.
[이호재, 18층 : 고마워.]정말로 고맙다.
잠깐의 침묵 뒤에 박정아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정아, 44층 : 그럼 고마움의 답례로 나중에 소원 들어주세요.]소원?
갑자기 웬 소원일까?
나한테 따로 원하는 게 있나?
아니, 그보다 내가 그녀에게 뭔가 줄 것이 있나?
그런 의문 속에서 ‘그럴게.’라는 짧은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박정아에게서 하나의 메시지가 더 날아왔다.
[박정아, 44층 : 꼭 들어줘야 돼요, 오빠.]보내려던 메시지를 지우고, 잠시 멈춰 있었다.
박정아의 성격상 저런 대사가 가능하던가?
나에게 반말을 해 보라는 요구에 얼굴을 붉히고 덜덜 떨면서 말을 더듬던 아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나를 부를 때는 여전히 조장님이라고 부른다.
조장님이라고 부르기 애매할 때는 아예 주어를 생략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오빠라니.
잠깐의 공백 이후, 박정아의 공황 상태가 엿보이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정아, 44층 : ㄴ아ㅜㄹ누리ㅏ 아, 죄송해요. 제가 미쳤… 제가 조금 취해서… 아ㅣㄴ 이거 유정 언니가 보낸 거예요. 제가 쓴 거 아니에요.]그 메시지를 보고 혼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메시지는 다른 사람이 대신 보내 줄 수 없다.
취하긴 취했나 보네.
그리고 취한 그녀 옆에는 연애 코치가 한 명 붙어 있는 모양이다.
이번 경합 도중, 일본 쪽에서 도전자들도 취할 수 있는 술이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경합이 마무리되면, 마지막 날 멤버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기로 했었다.
일 때문에 결국 무산되었지만.
박정아는 이유정과 함께 경합 뒤풀이 삼아 그 술을 마시고 있는가 보다.
그 뒤로도 한동안 횡설수설하는 박정아의 메시지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남은 대기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계속 술을 마셔, 취할 대로 취한 박정아가 자러 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내며 대화가 끝을 맺었다.
대화가 끝나자, 나는 본격적으로 스테이지에 들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대기 시간이 종료되는 저녁 12시가 되기 직전, 잠든 줄 알았던 박정아가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왔다.
[박정아, 44층 : 죄송해요.] [잠시 후, 튜토리얼 18회 차가 시작됩니다.] [18회 차, 0일. 0시 0분]18회 차가 시작됨을 알리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모닥불 방을 거쳐 18층 스테이지로 향했다.
* * *
18층의 스테이지는 밝은 해변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멋진 해변을 끼고 있는 관광 도시가 18층 스테이지의 배경이었다.
건물들은 대개 하얀색으로 칠해진 석조 건물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밝고 화려한 색상의 짧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건축물과 사람들의 의상, 그리고 길거리에 늘어선 상품들을 볼 때, 지구의 중세 시대보다는 조금 더 발전한 수준으로 보인다.
특징으로는 사람이 더럽게 많았다.
무슨 공휴일이라도 되는 것인지, 해변가뿐만 아니라, 도시의 거리 전체에 사람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위험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풍경에 당황했다.
사람들이 너무나 서슴지 않고, 내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당혹스러웠다.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피하려 했으나, 아무리 걷고 걸어도 인적이 드문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당황 속에 도시를 걸어 다니고 있는데, 뒤늦게 메시지가 나타났다.
[18층 관문이 시작됩니다.]설명 : 이이반 대륙 최고의 휴양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오에오 섬은 아름다운 해변으로도 유명하지만, 10년에 한 번 열리는 그랜드 파라말 축제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침 그랜드 파라말 축제가 시작되는 날, 이 아오에오 섬에 도착한 탐색자여, 안타깝지만 그대에게는 축제를 즐기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의 의뢰인은 아오에오 섬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을 한 사람을 찾아내 처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임무를 완수하세요.
표적은 남보라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고 있습니다.
얼굴은 평범하게 생겼습니다.
키와 몸무게는… 잘 모르겠군요.
표적의 인상착의는 분명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클리어 조건]30일 이내에 표적을 찾아내 처치하십시오.
메시지를 읽고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월리를 찾아라, 였다.
어릴 때 정말 많이 했었는데.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누구한테 욕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스테이지의 배경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찬찬히 읽고 있자니,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세상에, 이렇게 개 같은 임무 메시지가 있다니.
인상착의가 도움이 되긴 개뿔이.
얼굴은 평범하고, 키와 몸무게를 모르면 그냥 옷차림으로 사람을 찾아내야 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옷의 색상만 알려 줬을 뿐, 어떤 옷인지도 말을 안 해 주었다.
비키니인지, 티셔츠인지, 코트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 정보가 도움이 될 거라고?
건투를 빈다고?
누군가에게 이 울분을 토해 내고 싶다.
[모험의 신이 억울해합니다.]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그러고 보니 17층을 마치고 키리키리의 들판을 떠나기 전, 키리키리가 18층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17층 테마에 듣고 멘탈이 깨져 있던 상황이라, 설명이고 뭐고 대기실로 돌아갔었다.
젠장, 그때 키리키리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 둘걸.
최근 스테이지 공략에 키리키리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 보니, 키리키리의 조언을 너무 가벼이 여겼다.
젠장… 일단 찾아보자.
* * *
와, 미치겠네.
사람이 너무 많다.
어린이날의 에버랜드도 이 정도는 아니다.
2002 월드컵 경기 날, 광화문 광장의 인파가 딱 이 정도로 몰렸던 것 같은데.
시야에 꽉 차게 들어오는 사람들 중 표적이 있더라도 내가 그걸 골라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음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따가운 햇볕에 습한 날씨까지 더해져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뭐가 좋은 건지 좋다고 떠들고 있다.
종종 거리 한복판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러면 주변에 걸어 다니던 사람들이 덩달아 춤을 추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같이 춤을 추고.
또 그 뒤에 있던 사람들도 춤을 춘다.
그렇게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춤을 춘다.
그렇게 사람들이 단체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 거리가 아예 막혀 버린다.
움직일 방법이 없기에, 춤이 멈추기를 기다려야 한다.
30분 정도 기다리면 춤이 멈추는데, 조금 걷다 보면 또 새로운 춤꾼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춤이 반복된다.
이게 뭔 개 같은 축제야.
댄스, 댄스 중노동이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다고 웃는다.
노래를 부르며, 무언가를 마시며, 춤을 춘다.
굉장히 신나고 행복해 보이지만,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공감되지 않는 타인의 기쁨에서는 단지 짜증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지쳐 갈 때쯤, 나도 모르게 내 옆을 지나가던 여성의 손목을 잡았다.
별생각 없이 잡았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멍 때리고 있던 도중 내 눈앞에 움직이는 것이 보였기에 잡았다.
내게 손목을 잡힌 여성은 싫어할 법도 한데, 밝게 웃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참에 궁금한 점을 한 가지 물어보았다.
“그랜드 파라말 축제는 도대체 언제 끝납니까?”
여성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아! 그랜드 파라말 축제에 대해 잘 모르는 걸 보니 외지인이시군요!”
“네, 뭐…….”
따져 보자면 외지인이 맞다.
“그랜드 파라말 축제는 한 달 동안 계속돼요.”
그녀의 말에 발밑이 쑥 꺼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 달이라고?
클리어 조건이 30일 안에 표적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나는 이 축제가 오늘, 길어야 3일 정도 진행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내내 진행된다니.
절망스럽다.
“아무래도 그랜드 파라말 축제를 즐기실 줄 모르나 보네요. 저랑 같이 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가요. 파라말 축제를 즐기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 우선 이거 한 모금 마셔요.”
여성이 손에 든 음료수 병을 하나 건네주며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그녀가 내민 음료수 병에는 푸른 형광색 음료가 들어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다들 하나씩 들고 있는 음료수이다.
그보다 지금은 음료수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헐, 뭐야. 나 지금 여자한테 헌팅당하는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납치, 내장, 팔려 감 등등의 부정적인 키워드도 잠깐 떠올랐다.
머릿속에 고민과 번뇌가 스쳐 지나갔다.
그냥 갈까?
이 여자를 따라가서 축제를 즐겨 볼까?
막상 즐겨 보면 재밌을지도 모른다.
마침 내 정신 상태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딱히 위험한 스테이지도 아닌 것 같다.
표적을 찾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만, 위험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안전한 스테이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헬 난이도에서?
어차피 클리어를 위한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며칠 놀고 찾아봐도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아예 한 달쯤 푹 쉬고, 다음 회 차에 재도전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 여자를 따라갈까?
그런 유혹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일이 있어서요.”
그래도 거절을 하고, 여자와 헤어졌다.
내가 아무리 외로운 상태고, 관심과 애정이 고프다지만, 무작정 풀어져서 노는 건 아닌 것 같다.
여긴 튜토리얼 스테이지 안이다.
안전하다는 것도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축제인지, 이 사람들은 뭐가 재미있다고 춤을 추고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
풀어지지 말자.
눈여겨보았던 높은 건물 앞까지 도착하자, 어느새 점심이 지날 무렵이었다.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 옥상에 걸터앉았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기에 주변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여기서 차분히 표적을 찾아보자.
그날 해가 저물고 밤이 올 때까지 옥상에 앉아 거리를 지켜보았지만, 표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