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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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튜토리얼 18층 (6)
[18회 차, 19일. 16시 20분]보라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똑같은 얼굴이다.
고민했다.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걸 반복할 수 있는가?
그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가?
아니었다.
손에 힘을 줘 남자의 목을 분질렀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튜토리얼, 헬 난이도 18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과 부상이 회복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3,00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당신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7,5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2,5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플레이 기록을 바탕으로 추가 보상을 지급합니다.] [죽음의 신이 추가 보상을 대신해 자신의 권능 중 일부를 선물하고자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영혼 수집 Lv.Max를 획득하셨습니다.] [백신전의 모든 신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느림의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모험의 신이 당신을 응원합니다.] [결투의 신이 침묵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을 보고 크게 기뻐합니다.] [생명의 신이 당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고통의 신이 당신을 향해 미소 짓습니다.] [헌신의 신이 당신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드디어 끝났다.
클리어의 보상이고 뭐고, 자리에 쪼그려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보라색 상의에 검은 하의.
간단한 의상 착의의 표적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수는 총 여섯.
그들 모두 인간이라기보다는 인형처럼 무표정하고 무감각한 반응을 보여 주었고, 여섯 명의 얼굴과 신장이 완벽히 똑같다는 점을 보아, 복제 인간 같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 알아내기 위해 자세히 캐내고 싶지는 않았다.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표적이 죽기 전 보고 있던 지도를 확인했다.
아오에오 섬의 지도였다.
지도에는 빨간 선이 이리저리 표시되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자 선이 나타내는 바를 알아낼 수 있었다.
표적들의 동선이었다.
3일과 13일, 23일과 30일에 표적이 한장소에 모인다.
위치는 일전의 광장이었다.
…아주 훌륭한 정보였다.
진작 골목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이 비밀 아지트를 발견해 냈다면, 30일까지 기다렸다가 표적들을 깔끔히 일망타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후회와 자책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입술과 혀를 씹으며 참아 보았지만, 피와 함께 신음이 흘러나왔다.
굳이 이 아지트를 찾아내지 않았어도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이왕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기로 했으니, 클리어 조건은 잊고 깔끔하게 놀았더라면.
표적의 위치를 알아낸 직후 탐색을 종료했다면.
표적을 도발하기보다는 차라리 깔끔하게 원거리에서 처치했다면.
그렇게 멍청히 내 존재를 표적에게 각인시키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른 멍청하고 안이한 행동들이 모여 이 참사를 만들었다.
내 잘못이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다.
나는 이미 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
발밑에 나타난 포탈을 힐끗 보고 걸음을 옮겼다.
아지트 밖은 아직 환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걷기 불편했다.
한 걸음에 한 번씩 발에 시체가 걸렸고, 바닥은 흥건한 피로 끈적였다.
그렇게 불편하게 걷다가 거리에서 파라말이 담긴 잔을 발견했다.
누군가 마시다 남긴 파라말이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 아오에오 섬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파라말이었으니.
잔을 들어 남은 파라말을 마셔 보았다.
달았다.
아이스크림을 녹인 맛 그대로였다.
그것뿐이었다.
파라말은 이제 달달한 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지지도, 다른 사람과 나를 이어 주지도 못했다.
이어 줄 사람이 없었으니.
하지만 파라말을 마시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거리를 걸으며 눈에 파라말이 들어올 때마다 그것들을 들이마셨다.
파라말의 단맛 끝에 그것의 효과가 다시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날은 정말 많은 파라말을 마셨다.
너무 많이 마셔서 몇 번이고 토해 낼 정도로.
* * *
[18회 차, 20일. 10시 00분]거리에는 더 이상 남은 파라말이 없었다.
마시고 토하고를 반복하며, 쉼 없이 마셔 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파라말을 찾았다.
더 마시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향의 카페였다.
카페 지하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파라말 창고가.
향과 함께 창고에서 파라말을 마신 기억이 있기에 곧바로 그곳으로 찾아갔다.
향의 카페에 들어서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 카페에서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하루 시작을 알리는 일과로 카페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향을 만나고, 아침을 먹었다.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한 카페 안을 걸어 창고로 향했다.
지하 창고로 향하는 좁고 어두운 통로를 걷자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향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창고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자물쇠를 손으로 쥐고 힘을 줘 대충 뜯어낼 수 있었다.
창고 안에는 커다란 나무통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모두 파라말을 담고 있는 나무통이다.
잔을 하나 꺼내 들고, 나무통에서 파라말을 떠 마셨다.
이제는 아무런 효능도 없는 음료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마시고 혀가 얼얼할 정도의 단맛이 느껴질 때마다, 얼마 전까지 느낄 수 있었던 그 감각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마시는 중에 잠깐이었지만.
그리고 착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말을 마시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날은 하루 종일 파라말만 마셨다.
마신 만큼 토해 냈다.
* * *
[18회 차, 23일. 17시 30분]아오에오 섬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파라말을 주조하고 그걸 통해 사람들을 조종하려 했던 이들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표적들이 그러했듯, 파라말을 마신 사람들에게 명령하는 목소리를 섬 전체에 울렸다.
생존자를 찾으려 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들에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들과 마주하자마자 공격했다.
그들의 목적이나 달리 숨겨진 정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타고 온 범선은 불태웠다.
그리고 카페 지하의 창고로 돌아갔다.
이날도 파라말을 마시고 토하며 시간을 보냈다.
* * *
[18회 차, 29일. 7시 30분]언젠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이 아오에오 섬을 떠날 때는 홀가분할 것이라고.
홀가분해지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테니.
그 생각대로 된 것 같다.
울면서 파라말을 마시고 토하기를 며칠.
더 이상 파라말을 마시고 싶지 않아졌다.
후회와 자책도 들지 않았다.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감정을 너무 쏟아부은 나머지 아무 감정도 일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공허했다.
머리도, 가슴도.
한참 울고 났을 때, 멍하고, 허탈하고, 동시에 조금은 개운한, 그런 기분이었다.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감정했다.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우선은 창고에서 나왔다.
포탈을 통해 스테이지 밖으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우선은 내 상태를 조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몸의 감각을 손끝부터 찬찬히 확인했다.
문제는 없다.
정신은… 모르겠다.
당분간은 정신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잘 보살피는 것이 좋겠다.
스테이터스창을 열고, 성장 경과를 확인했다.
레벨도 몇 올랐고, 스킬 레벨도 제법 올랐다.
예전이었다면 이득이라고 좋아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감정은 일지 않았지만, 등골을 타고 서늘함이 느껴졌다.
팔뚝과 양 볼에는 소름이 돋았다.
아직 완전히 비워 내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긴, 어떻게 다 비워 내겠는가.
앞으로도 계속 따라다닐 것 같다.
18층 클리어 보상으로 획득한 영혼 수집 스킬을 확인했다.
자에 대한 불쾌감만이 짙게 남아 있다.
: 죽음의 신이 긴 고민 끝에 최근 그가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도전자에게 선물한 권능이다.
신중하면서도 성급한 죽음의 신은 벌써부터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
모든 권능 스킬이 그렇듯, 설명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스킬인지 모르겠다.
이름으로 보아 영혼을 수집하는 스킬이겠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
키리키리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창문 너머 거리를 내다보았다.
당장 이 섬에 수십만의 영혼이 있다.
시험 삼아 사용해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아직 정확한 효과도 모른다.
괜한 호기심으로 잠시 피가 멎은 상처를 굳이 후벼 파고 싶지 않았다.
생각을 마치고, 한 발자국 옆에 떨어져 있던 포탈 위에 올라섰다.
“이동.”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푸른 들판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미안행!”
들판으로 이동하자마자 키리키리가 소리를 빽 지르며 날아들었다.
육탄으로 달려드는 그녀에 부딪혀, 뒤로 주저앉아 버렸다.
“뭐 하는 거야, 키리키리.”
키리키리는 내 몸을 꼭 끌어안은 채 찡찡거렸다.
“히잉, 내가 내 할 일을 못 했어.”
일을 못 했다니.
아, 18층에 대한 조언을 안 해 준 것 때문인가?
사실 그 일은 내가 대기실로 성급히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스테이지 공략에 별 조언을 듣지 않았기도 했고, 17층 클리어 이후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았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키리키리의 잘못이 아니라, 내 불찰이다.
“아니야, 내 잘못이야. 내가 붙잡고 얘기해 줬어야 해.”
정말 괜찮은데.
며칠 전이었다면, 그녀를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원망이나 안타까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키리키리, 그보다 영혼 수집 스킬의 설명 좀 부탁할게.”
“히잉, 알았엉.”
키리키리가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하지만 내 몸을 끌어안고 있는 팔은 풀지 않았다.
다음 층에 대한 조언도 부탁했다.
키리키리는 18층엔 큰 위험이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덧붙여 감기 걸렸을 때의 대처 방법과 간병 요령에 대해 알려 주었다.
내가 이제 와서 감기에 걸릴 일은 없으니, 19층에서는 감기에 걸린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슬슬 답답한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일어나면 키리키리가 알아서 떨어지지 않을까 했지만, 키리키리는 내가 일어나도 내 몸에 매달려 있었다.
코알라처럼.
“이제 떨어지지 않을래?”
“않을랭.”
“떨어지면 케이크 줄게.”
“알았엉!”
키리키리는 칼같이 떨어졌다.
키리키리에게 조각 케이크를 하나 사 주었다.
“호오우재애는 안 먹어?”
“응. 한동안 단거는 못 먹을 것 같네.”
말 그대로 위에서 역류할 만큼 파라말을 마시다 보니까.
단맛에 완전히 물려 버렸다.
“히잉, 너무 자책하지 마.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그냥 시련일 뿐이야.”
키리키리는 나를 위해 해 준 말이겠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나를 걱정해 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그래도 18층에서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네.
남에게 솔직히 감사할 줄도 알게 되었고.
“아니야, 너는 원래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당당했어.”
느닷없이 칭찬이다.
“보통 다른 존재가 자기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두렵고 꺼림칙한 일이야. 하지만 너는 신이나 내가 네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어. 자기 자신의 사고에 당당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야.”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부끄러운 생각도 많이 하고 그걸 남에게 숨기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래도 뭐,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기는 하다.
“호오우재애는!”
키리키리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눈을 뜬 키리키리가 나를 마주 보고 이야기했다.
“손가락이 예뻐.”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키리키리의 말을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앞서서 한 내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위해 내 칭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3분 가까이 고민해서 나온 칭찬이 손가락이 예쁘다는 거냐.
조각 케이크를 뺏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호, 호오우재애느은!”
키리키리가 눈에 띄게 허둥거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조금 전처럼 눈을 감고 열심히 고민했다.
나도 기대가 좀 된다.
과연 어떤 칭찬을 해줄까?
“이름이 재밌엉!”
역시 케이크를 뺏어야겠다.
* * *
키리키리에게 인사하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한참 그녀와 떠든 덕분에 조금 들떴던 분위기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대기실의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감정이 무뎌졌다.
혹시 이것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당장은 나쁠 것이 없었다.
아오에오 섬에서 나는 정말 바닥을 보였다.
미친놈처럼 울면서 별 추태를 다 부렸다.
그 상태가 계속되는 것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다.
편하기도 하고.
격한 감정 상태를 유지한다는 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고된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불안하네.
내 현재 정신 상태에 대해 진단해 보았다.
제삼자가 하는 것처럼.
얼핏 보기에는 해탈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 가진 오욕칠정을 모두 버리고, 자기 자신의 감정에 초탈한 상태.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래, 마취 상태 같다.
정신적으로 마취된 것이다.
심각한 고통으로 감각이 마비되듯,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보니,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니까.
튜토리얼에 막 떨어지고 나서, 매 순간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와 사람들의 죽음을 알리는 숫자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언젠가부터 감정이 무뎌졌었다.
나 자신을 무미건조하게 대했었다.
마치 게임 속 아바타를 보듯.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튜토리얼에 들어온 이후부터, 그리고 바로 최근까지의 일이다.
대충 어림잡으면… 12층에서 이디를 소환해 함께하기 전까지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너무 물러지고 안일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다.
감정을 죽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생존에도 성장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너무 풀어졌던 것일 뿐.
그렇게 정리했다.
고민을 마치고 나자, 비로소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둘러봐도 달리 별다를 건 없었다.
대기실이 대기실이지, 뭐.
조금 다른 게 있다.
경합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극심한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다.
괴로웠고, 슬펐다.
지금은 그렇지는 않았다.
역시 나쁠 것 없는 상태다.
하지만 적막감은 남았다.
시야에 아무런 움직임이 비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대기실에 움직이는 건 나밖에 없으니.
내가 숨 쉬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숨을 멈추고 있자, 내 맥박이 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두근- 두근-
정말 작은 맥박 소리의 존재감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느껴졌다.
그 맥박 소리에 맞춰 어두운 대기실의 압박감이 내게로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어둡고 텅 빈 대기실이 무언가로 꽉 찬 것처럼 느껴졌다.
적막감에 매몰될 것만 같았다.
적막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었다.
인벤토리를 열고 천변기를 꺼냈다.
서걱- 서걱-
적막한 대기실에도 내 마음속에도 듣기 싫은 살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