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43
x 143
튜토리얼 20층 (3)
먼저 주위를 살펴보고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이디가 인사했다.
“케륵, 오랜만이다, 서방.”
“서방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케륵, 케륵. 이런 좁은 방에서 나를 소환하다니, 드디어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난 모양이다. 다행히 침대는 큰 편이군. 아들이 좋은가, 딸이 좋은가?”
이디의 말에 어울려 주는 대신, 천변기를 막대기 형태로 바꾸어 이디의 머리를 노렸다.
이디는 고개를 움직여 가볍게 내 공격을 피해 냈다.
“케륵, 역시 대장은 부끄럼쟁이다.”
이디는 잠시 케륵거리며 웃다가 내게 질문했다.
“대장, 이곳은 안전한 곳인가?”
“일단은. 아군의 본거지야. 아직 확실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렇군. 시간이 괜찮다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한다. 케륵.”
이디의 말대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곳에서 내가 달성해야 할 목표와 스테이지의 세부 설정에 대해.
“혹시 소인족들에 대해 알아?”
“케륵, 소인족이라는 말은 키가 작은 유사 인류들에게 붙는 보편적인 말이다. 그들에게 별다른 특징은 없던가?”
물론 굉장한 특징이 하나 있었다.
내가 만난 소인족들의 특징에 대해 말해 주었다.
“케륵, 케륵. 보기 힘든 종자들을 보게 생겼군.”
“그 소인족들에 대해 알고 있어?”
“물론이다. 케륵, 우선, 그들 앞에선 그들을 소인족이라 칭해서는 안 된다.”
“그래?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용아병.”
용아병?
내가 아는 용아병은 저런 반벙어리 난쟁이들이 아닌데.
상상하고 있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다.
그런 내 감상을 말했더니, 이디는 또 케륵, 케륵, 하고 웃었다.
“당연하다. 용아병은 그 자체로 위대한 존재다. 그들이 소인족이라 불릴 리가 없지.”
그럼 저들은.
“용아병은 아니지만, 용아병이고 싶은 존재들인 건가?”
“맞다. 본질적으로 그들과 용아병의 탄생 과정은 동일하니까. 창조주도 같고. 물론 그것은 리자드 맨과 뱁새가 똑같이 알에서 태어나는 것 정도의 공통점이다.”
“음… 그럼은 보통 뭐라고 불리지? 아, 그러니까 그들이 듣지 않는 곳에서.”
“대장이 말했지 않았나. 소인족이라 불린다.”
이디는 소인족이란 보통 키가 작은 유사 인류를 통칭하는 말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 저 소인족들은 그들을 뜻하는 정확한 명칭조차 없다는 뜻이다.
그들만이 자칭하는 용아병이라는 이름을 제외하면.
“케륵, 저들은 태생적으로 드래곤의 수발을 들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대장이 전에 이야기해 주었던 전기로 움직이는 청소 기계나 빨래 기계에 가까운 존재들이지.”
세탁기나 청소기를 말하는 건가.
12층에서 이디와 토굴 생활을 하던 중 이디에게 현대 문물에 대해 잠깐 설명해 줬던 적이 있었다.
특시 가사 쪽에 관련된.
“그럼 전투 쪽으로는 별 볼 일 없겠네.”
“당연하다. 케륵.”
역시 영약을 먹어야겠다.
이디에게 내 의사을 전하고, 영약을 흡수하는 동안 방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케륵, 알았다. 하지만 대장, 그런 것이 있었다면 이곳에 오기 전, 안전한 곳에서 미리 먹어 두는 편이 낫지 않았겠는가?”
이디의 말에 조용히 눈만 굴렸다.
뭐라고 대답할 말이 곤궁해졌다.
“케륵, 케륵. 많이 느슨해졌다, 대장.”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없는 말을 지어내 변명하는 대신 인정했다.
그동안 많이 느슨해졌고, 안일해졌다.
판단은 느려졌고, 정확하지 못했다.
나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 * *
오후 중에는 계속 영약을 흡수하고 그 힘을 갈무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케륵, 다 된 건가?”
“아니, 아직은. 힘의 흡수는 끝났지만, 아직 몸이 적응을 못 했어. 오늘 밤까지는 적응을 마칠 수 있을 거야. 내일 전투를 시작하면 확실히 끝낼 수 있을 거고.”
“케륵, 전투 전에는 어떻게든 다 끝내 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나는 위기가 다가오면 오히려 능력치가 올라가는 타입이라.”
“케륵, 케륵.”
이디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진짜로 그런 걸 어쩌겠는가.
이디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소인족 하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것들은 노크도 안 하나.
들어온 소인족은 이디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 말을 시작했다.
“리…….”
아, 저거 또 시작이네.
“자…….”
이디는 소인족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말을 시작했다.
“케륵. 그렇다, 리자드맨이지. 몰래 숨어든 것이 아니라, 여기 이 대장이 날 소환한 것이니 오해는 마라.”
“드…….”
“나도 위대한 드래곤의 권속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오, 벌써 저녁 시간이었군.”
“맨…….”
뭐여, 이게.
“이디, 그냥 그렇게 혼자 떠들어도 돼?”
“케륵, 케륵. 역시 대장의 그 통역 스킬이 저들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케륵, 설명하기 어렵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저들의 말은 원래 첫음절이나 두 번째 음절에 대부분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다…….”
응?
그럼 ‘리…….’ 하고 중얼거린 첫마디에 ‘오, 리자드맨이다. 여긴 어쩐 일이냐. 어떻게 들어왔냐.’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인가?
내 생각을 물어보자 이디는 긍정했다.
“그렇다, 케륵.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는 말은 대부분 별 의미 없는 말이다.”
“저…….”
거 지방 라디오 켜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이디와의 대화 중간중간 끼어드는 소인족의 느린 말이 너무나 신경을 거슬렀다.
“그러니까 첫음절에 모든 뜻이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는 의미가 없는 말인데, 내 통역 스킬은 그것을 전체 문장으로 판단하고 길게 늘여 번역한다는 거지?”
“녁…….”
“그렇다. 역시 이해가 빠르다, 대장. 케륵, 케륵.”
“왜 그런 비효율적인 화법을 쓰는 거지?”
“식…….”
“용언이 보통 그런 식으로 사용된다.”
“용언이라……. 드래곤의 화법을 따라 쓰는 거였구나.”
용언이라면 바벨 이전의 지식이 제대로 통역하지 못하고 혼동을 일으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바벨 이전의 지식 스킬은 낮은 스킬 레벨 때문인지, 아니면 스킬의 한계 때문인지, 그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허술한 면을 많이 보여 준다.
우선 마법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룬 어를 이해할 수 없고, 16층 성기사가 말해 준 고대어 중에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많았다.
기사가 이야기해 준 사투리나 은어들도 통역하지 못했다.
“사…….”
“그럼, 이디 너는 어떻게 그 말을 알아듣는 거야?”
“케륵, 나도 리자드 맨이다. 용언의 기초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데서 연관성을 찾게 되네.
드래곤이나 리자드 맨이나 도마뱀과……. 뭐, 어쨌든 비슷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
“대장, 식당의 위치는 알고 있는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의 위치는 요새의 내부 지도에서 확인해 두었다.
“그럼, 식당으로 가자.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대장을 기다리고 있다는군.”
“준…….”
아까부터 소인족이 종알거리던 말이 그것이었나 보다.
“그래, 가자.”
나와 이디가 방을 나와 식당으로 향하자, 소인족도 우리 뒤를 쫓아왔다.
“비… 되…….”
물론 느릿하게 중얼거리면서.
* * *
이 세상에 언어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다.
제정신이 박힌 언어학자라면 누구나 내 말에 동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백여 명의 소인족이 식사를 하고 있는 대식당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리… 자…….”
“그…….”
“드… 맨…….”
“보…….”
“은… 오… 랜…….”
“다…….”
수십 명이 같은 장소에서 저렇게 말을 하고 있으니, 뭔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중 몇 명은 음식을 먹어 가며 불규칙하게 말을 이어 나갔기에, 전혀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화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이디에게 맡긴 채 식사에 집중했다.
소인족들의 음식은 대체로 나물 위주였다.
맛은 없었다.
“드래곤에게 이런 음식을 만들어 주면 화내지 않을까?”
소인족들과 대화를 하고 있던 이디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혹시 소인족들이 들으면 화낼지도 모르니.
“케륵, 드래곤은 음식을 안 먹는다. 굳이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
먹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건, 먹지 못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음식을 만들어 주니까, 그냥 안 먹고 마는 게 아닐까.
이 말은 이디에게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소인족들이 들으면 높은 확률로 화를 낼 말이니.
“케륵,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고룡의 유산을 보여 주기로 했다.”
”아, 그래, 잘됐네.”
“그리고 대장이 오늘 저녁 식사를 정말 마음에 들어 한다고 말해 두었다.”
왜 굳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대장의 표정이 너무 썩어 가는 것 같아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기에, 대장은 원래 맛있는 걸 먹으면 표정이 찌그러진다고 둘러대다 보니 그리되었다.”
쩝…….
만들어 준 음식을 먹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내가 일차적으로 잘못했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 * *
식사를 마친 후, 고룡의 유산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소인족을 따라 걸었다.
소인족들은 모두 동일인으로 보여서 식별은 불가능했지만, 우리를 안내한 소인족은 오늘 아침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소인족이라 말했다.
그걸 들어도 딱히 해 줄 말은 없었다.
“그…….”
뭐라 뭐라 소인족이 말하고 있었지만, 이디에게 모든 대화를 맡겨 둔 덕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소인족도 내가 아닌 이디와 대화하니, 속이 편해 보였다.
통역을 위해서라도 이디를 소환하길 잘한 것 같았다.
그 말을 이디에게 하자, 이디가 케륵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케륵, 이제 와서 소환의 이유를 찾은 건가?”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생각보다 이디가 날카롭게 대응해서 놀랐다.
“케륵, 케륵. 대장은 다 좋은데 눈치가 좀 없다.”
눈치가 없다는 이디의 말대로 나는 이디의 기분이 상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때문에 뭐라 말도 못 하고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조용히 걷다 보니, 어느새 요새 뒤편에 도착하게 되었다.
요새 뒤편에는 석벽에 의해 가려진 조그마한 전당이 있었다.
텅 빈 전당의 중앙에는 목걸이 하나가 두둥실 허공에 떠 있었다.
부유 마법 같은 건가.
“저게 드래곤의 유산인가 보지?”
“케륵, 그럴 것이다. 저 목걸이의 자세한 내력에 대해선 자세히 말해 줄 수 없다는군.”
목걸이의 효과나 가치 같은 건 몰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저 목걸이를 트릴로지 연합이라는 놈들에게서 지켜 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럼, 이디 네가 여기서 저 목걸이를 지켜도 되냐고 물어봐 줄래?”
“내가 말인가? 나는 전선에서 싸우는 게 낫지 않겠는가?”
“아니, 후방을 주의하라는 정보가 있었거든. 그리고 우리는 이 목걸이를 지켜야 하고, 아무래도 뒤편으로 습격자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네가 지켜 줬으면 해.”소인족은 다행히 별 반대 없이 승낙했다.
이디뿐만 아니라, 다른 소인족 병력도 대거 투입해 경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이디를 거쳐서 들었다.
그렇게 그날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함정으로 생각되는 것이나, 불안해 보이는 점은 없었다.
방어는 나름 철저했고, 소인족과의 불화도 없었다.
그냥 방어에만 전념하면 되는 스테이지로 보였다.
하지만 소인족이 나에게, 그리고 이디에게 생각 이상의 신뢰를 보이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이상했다.
물론 이디야 종족적으로 연관성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나까지 쉽게 믿어 주는 건 도리어 의심쩍었다.
“어떻게 생각해?”
“케륵,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드래곤의 소인족들이 어떤 자들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단순히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용아병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것밖에 모른다. 더군다나 트릴로지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으니, 어떻게 추측해 볼 만한 여지가 없다.”
“역시 그런가.”
“경계를 늦추지 말고, 정보를 더 모아 보는 것이 좋겠다. 케륵. 내일 전투가 시작되고, 트릴로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 뭔가 보이지 않겠는가.”
결국 이디도 낮에 나 혼자 도달했던 결론을 똑같이 내놓았다.
내가 생각한 것과 같았으나, 이디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보다도 더 큰 신뢰를 주었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날 밤은 수면을 취하기보다는 이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나나 이디나, 둘 다 안전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은 곳에선 쉽게 못 자는 사람들이다.
이야기는 대부분 이디와 헤어진 후, 13층부터 20층까지 올라오면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디에게 털어놓듯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 자신도 몰랐던 내 생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디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이따금 잘했다고 칭찬해 주거나, 조용히 위로해 주곤 하였다.
역시 이디가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