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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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20층 (6)
“다…….”
이런, 빌어먹을.
소인족의 말을 끝까지 듣느니, 내가 찾아 나서는 편이 낫겠다.
접어 둔 탈라리아의 날개를 펴고 다시 날아올랐다.
마력을 극성으로 퍼뜨려 이디의 위치를 찾았다.
가장 먼저 이디가 지키기로 했던, 드래곤의 유산을 보관하고 있는 공동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이디는 그 근처에 있었다.
이디의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그쪽으로 날아갔다.
공동의 입구에는 소인족들이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었다.
그들을 하나하나 밀치며 들어가니, 공동 구석에 소인족 몇 명이 풀떼기를 늘여 놓고 쑥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 시야를 막고 있는 소인족들 때문에 조급해졌다.
위압 스킬을 사용했다.
소인족들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고, 북적거리던 공동은 한산해졌다.
무릎 위로는.
그리고 비로소 이디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디의 몸에는 두꺼운 붕대가 묶여 있었고, 여기저기 약을 바른 흔적이 있었다.
“케륵. 대장, 이제 왔나?”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붕대가 감긴 상처 근처를 살펴보았다.
“케륵, 케륵. 이거 참, 창피하게 되었다.”
상처를 살펴보자, 이디가 창피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붕대를 살짝 들춰 보자, 상처 부위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무언가가 보였다.
상처 부위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기운.
여러 번 보았던 것이다.
12층에서, 9층과 10층에서.
이건 이디의 권능 스킬이다.
“변명을 해 보자면, 너무 잡생각이 많았다. 케륵. 키메라들의 혐오스러운 외견도 영향이 있었고. 그리고 특이한 사지를 가진 만큼, 특이한 무기를 쓰더군.”
“특이한 무기?”
“케륵, 저기 키메라들 시체 밑에 깔려 있을 것이다. 나중에 상대할 일이 있으면 조심해라, 케륵.”
오늘 하루 동안 상대한 키메라들 중 특이한 무기를 쓰는 녀석은 없었다.
대부분 맨손으로 달려들거나, 기본적인 형태의 양산품만을 사용했다.
간혹 실력이 좋은 정예 키메라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진짜배기 놈들은 오늘 전장이 아닌 이곳을 습격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리고?”
“케륵.”
“이디?”
“저들은 저 목걸이만 있으면 더 이상 괴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 정말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저 키메라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간이었을 적의 이야기를 하더군. 듣다 보니… 손이 느려졌, 케륵.”
착잡했다.
동시에 어지러웠다.
이디를 이렇게 다치게 하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문제였다.
키메라, 그리고 소인족과 용아병에 얽힌 이야기로 보아, 저 목걸이는 다수의 존재를 한 단계 진일보시켜 줄 수 있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문제다.
단순히 더 큰 힘이 아닌,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던 종의 격을 높여 준다는 것이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소인족, 키메라보다 높은 격을 가진 존재는 무엇인가.
용아병과 인간보다 낮은 격을 가진 존재는 무엇인가.
단순히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어 주는 것인가?
아니, 무의미한 가정이다.
더 강한 힘, 깊은 지혜와 빼어난 외면을 가질 수 있지만, 정체성은 그런 식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키메라 하나가 완벽히 인간의 몸을 되찾고 사회로 녹아들었다 치자.
가정을 일구고 직장에서 일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산다면, 아무도 그가 키메라였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자신만을 제외하면.
과거의 자신인 키메라는 그 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이따금 자신에게 말을 걸 것이다.
하나의 개체로서도 어려운 일을 수천만 단위로 함께 움직이는 놈들이 해낼 수 있다고?
불가능하다.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괴물이 아닌 키메라로서의 자신을 수용하거나, 불태워지거나.
키메라들은 용아병이 되고자 하는 소인족들을 비웃었다.
무의미한 소망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던가.
신은 그 모습을 보며 어떤 감상을 가질까.
드래곤이 소인족을 보며 느낀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내 공격에 내가 찔리고 말았지, 케륵. 멍청하게도. 어쩌면 저들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말을 삼켰다.
대신에 다른 질문을 내밀었다.
“…권능 스킬이지?”
“그렇다, 케륵.”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붕대부터 뜯을게. 확인을 좀… 해 봐야겠어.”
손끝에 마력을 두르고, 붕대를 벗겨 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붕대를 벗겼지만, 이디는 고통스러웠는지 신음을 흘렸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엘릭서 병을 꺼냈다.
“케륵, 케륵. 대장.”
“왜?”
“그거 비싼 거 아닌가? 괜히 낭비하지 마라.”
이디의 말에 발밑이 쑥 꺼지는 것 같았다.
마치 단단한 지면이 물처럼 변해 그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이디는 5층 보스룸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런 이디를 20층에서 소환해 중요한 역할을 맡겼던 이유는 그녀를 믿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녀를 보고 싶었기에 소환한 것이기도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테이지의 마지막 관문으로서 단일 출현했던 것이 이디이다.
몇몇 스테이지를 함께 클리어하며, 5층 시절보다 크게 성장하기도 하였다.
20층의 난이도가 높겠지만, 나는 이디가 그것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12층에서 이디가 소환되었을 때, 그녀는 여유로웠다.
이디는 두 가지의 권능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5층에서 사용했던, 몸을 연기로 변화해 적의 공격을 피하는 회피기.
또 하나는 5층에서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9, 10, 12층에서는 사용할 수 있었던 공격기다.
검은 죽음의 기운을 두르고 상대를 공격한다.
문제는 이 죽음의 기운이 몸에 엉겨 붙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약이 있지만, 무적기에 가까운 회피기와 시간이 걸리지만, 필살이 가능한 공격기.
20층뿐만 아니라, 더 높은 층에서도 나는 이디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그녀의 그 능력이 그녀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었다.
12층에서 이미 이디와 실험을 해 보았다.
내 손끝을 베어 죽음의 기운을 남겨 보았다.
엘릭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결국 손가락을 잘라 내어 죽음의 기운을 떨쳐 낸 뒤, 엘릭서를 마셔 손가락을 재생시켜야 했다.
같은 방법으로 이디를 치료해 볼 수는 있겠지만, 이디가 다친 부위는 손가락이 아니었다.
가슴과 배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상처는 분명 내장기 깊숙이까지 박혀 있다.
손을 들어 자세히 살폈다.
상처가 너무 깊다.
죽음의 기운이 없더라도 치명상이 될 상처다.
절개는 불가능했다.
“케륵, 이건 내가 봐도 가망이 없다.”
내가 봐도 그랬다.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 든 생각을 떨쳐 냈다.
언젠가부터 죽음이 확실시되는 사람을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다 출혈, 쇼크, 호흡 곤란, 마비, 내장 파열. 그러한 증상들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시체로 보인다.
곧 죽을 것이니, 시체나 다름없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반격할 여지가 없으니 사실상 시체라고.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다시 삼켰다.
하나를 삼키니, 다른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눈물을 대충 훔쳐 내고 물었다.
“아프지는… 않아?”
“케륵, 케륵. 걱정되나? 알지 않는가, 이것에는 고통을 주는 효과가 없다. 그저 베인 정도의 통증만 느껴지는군.”
잠시 침묵했다.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은 열었지만, 흘러나오는 말은 없었다.
“케륵, 어차피 전투는 아슬아슬했다. 바보같이 내 권능에 당한 것이 치명적이었지만, 다른 상처도 많다. 아슬아슬했지. 물론 그랬다면 치료할 수는 있었겠지만, 당장 내일의 전투부터는 내가 별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치료는 할 수 있었겠지.
나는 이디를 전투만을 위해 부른 것이 아니다.
사실 이디에게 청한 도움들은 모두 그녀를 소환하기 위한 핑계였다.
그냥 내가 돌아왔을 때, 같이 식사하고 대화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케륵, 케륵. 차라리 잘되었다.”
떨리는 손을 뒤로 감추면서 입을 열었다.
“이디… 이디, 너무 걱정 하지 마. 내가 바로 다시 소…….”
두서없이 말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얼굴 옆에서 살랑거리는 이디의 꼬리가 보였다.
“케륵. 정신 좀 차려라, 대장. 내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디의 꼬리에 한 대 얻어맞았지만, 그녀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장, 왜 나를 걱정하는 건가?”
“…뭐라고?”
“대장, 혹시 내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나?”
다시 침묵했다.
“대장,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이따금 외면해 왔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계속 침묵했다.
“대장, 나는 이미 죽어 있다.”
정말로 나는 침묵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장은 어떠한가.”
* * *
긴 침묵이 흐르던 중 이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케륵, 우선 기절한 소인족들을 밖으로 내보내라. 저대로 두면 질식사할지도 모르겠다.”
이디의 말대로, 공동 여기저기에 기절해 있는 소인족들을 밖으로 옮겨 두었다.
“다 옮겨 두었어.”
“케륵, 기절해 있는 이들에게 모포라도 덮어 주고 와라.”
이디의 말대로 공동 밖에 눕혀 둔 소인족들에게 모포를 덮어 주고 돌아왔다.
“케륵, 케륵.”
“다 했어.”
“수고했다, 대장. 이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서 부탁 하나와 조언 하나를 남길까 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케륵,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계속 고민해 왔지만, 역시 어려운 주제다.”
이디는 잠시 케륵거리며 고민하다가 운을 떼었다.
“아까 하던 말을 이어 보자. 케륵, 나는 이미 죽어 있다.”
이디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지만, 그 말은 천천히 송곳이 되어 나를 찌르기 시작했다.
“하나의 생명에 하나의 영혼. 우리 부족에 전해지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가. 하나의 영혼이 여러 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어쩌면 생명도, 영혼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케륵.”
“이디…….”
“대장은 언제나 나한테 미안해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 했었지만. 케륵, 나는 대장한테 죽은 적이 없다. 내 죽음은 그 이전에 있었지. 케륵.”
10층에서 한번 했던 이야기다.
“물론 난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렇…….”
이디의 말이 멈추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시간을 보냈다.
시스템은 그녀가 그 이상의 말을 하는 것을 불허한다.
꽉 물린 어금니 아래서 피 맛이 낫다.
“…케륵, 넘어가야겠군. 후우.”
잠시 심호흡을 한 이디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장이 튜토리얼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사실처럼 대한다는 건 알고 있다. 단순히 클리어를 위해 스쳐 지나가는 무생물이 아니라 진실로. 마치 연극처럼. 마치 이곳이 진실한 세계이며, 우리가 진실한 생명인 것처럼. 그래서 이곳에서 만나는 인연에 기뻐하고 슬퍼한다. 적들을 죽이며 괴로워하고. 케륵. 다시 도전하면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을 테지만. 케륵.”
침묵했다.
이디도 잠시 말없이 있었다.
서로 침묵을 자각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이디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저 무시하면 편할 것이다. 없는 존재이니, 생각 없이 베어 넘기고 지나치면 편하겠지. 하지만 대장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불안한 것이지? 케륵. 대장 또한 우리처럼 어느 날 죽었고, 영혼만 남아 이곳을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랬다.
시간을 보내며 다소 옅어진 의심이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느끼고 있다.
나 또한 무대 위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또 돌려야겠다. 케륵.”
이디는 잠시 입맛을 다시더니, 손을 들어 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은 아직 조금 떨리고 있었다.
“케륵. 대장, 미안한 이야기지만, 현실을 직시해라. 나는 공산품이다.”
공산품.
듣는 순간, 저 밖에 쓰러져 있을 소인족들이 생각났다.
“대장을 알고 있는 이디는 나 하나이지만, 5층에서 도전자들을 죽이고 있는, 그리고 반대로 죽어 가고 있는 이달타르는 과연 몇 명이라고 생각하는…….”
모를 리가 없었다.
나도 수없이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주제였다.
이디의 표정이 다시 멍해졌다.
의도적으로 금지된 말을 하다가 제재를 당할 때면, 찌르는 듯한 두통이 느껴진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디는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운이 좋았지. 대장 덕에 내 처지를 자각할 수 있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대장에게 정말 감사한다.”
이디는 잡고 있던 내 손을 내려놓고,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면서 케륵거리며 웃었다.
“미안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케륵.”
신들이, 그리고 튜토리얼의 시스템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디는 우회적으로라도 그 이야기를 말할 수 없고, 연상시킬 수 없다.
남은 것은 내가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유추해 내는 것이다.
“이제 조금 더 염치없 어질 시간이로군. 케륵.”
선선히 웃으며 이디는 나를 불렀다.
“대장.”
“…왜.”
“나는 대장을 좋아한다.”
이디는 케륵거리며 웃었다.
“대장도 그렇겠지. 나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최소한 친구로서, 동료로서.”
나는 이디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과 조언이 있다. 아무래도… 조언을 먼저 해야겠다. 어제 대장의 성장에 대해 들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케륵, 나는 그 성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뭐?”
“케륵, 케륵.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대장의 비교 대상은 대장 자신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대장은 정말 지금의 성장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가?”
내 성장 속도는 충분히 빠르다.
시스템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더불어 다른 도전자들은 애초에 나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디의 말을 조용히 새겨들었다.
어젯밤, 이디에게 내 성장 경과를 알려 주었다. 제법 상세히.
그녀가 그것을 듣고도 부족하다 여겼다면 부족한 것이다.
“다음은 부탁이다. 케륵.”
“뭐든 말해.”
조금 진정이 되어 침착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두 개다.”
“미안해하지마. 두 개가 아니라 더 많아도 괜찮아.”
“케륵, 케륵.”
이디가 할 부탁의 부담보다는 부탁 때문에 이디가 민망해하는 게 더 싫었다.
“사자 소환 스킬의 사용 횟수는 몇 번 남았는가?”
“…두 번.”
“…생각보다도 더 적게 남았군. 생각보다 더 염치없어질 것 같다. 케륵.”
“무슨 일인데.”
“이제 나를 소환하지 마라, 대장.”
오늘 이디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 말만큼 충격적이진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뜻이냐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디, 그게 무슨 뜻이야.”
이디는 눈을 돌리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이디!”
“…대신, 대신에 말이다. 나중에 내가 수많은 이달타르 중 하나가 아닌, 유일한 이디가 되었을 때, 내게 걸려 있는 제약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소환해 줄 수 있겠는가?”
그제야 고개 숙인 이디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애초에 리자드 맨의 얼굴은 두상 때문에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사자 소환 스킬이 쓰기에 따라서 정말 유용한 스킬이라는 것도…….”
“알았어, 이디. 그렇게 할게. 걱정하지 마.”
평소와 다른 말투로 횡설수설하는 이디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이디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케륵, 케륵.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대장이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대장에게 필요했던 건 그저… 음, 아니, 아니다.”
“뭔데?”
이디는 고개를 계속 좌우로 천천히 돌려 가며 내 눈을 피했다.
상당히 부끄러워했다.
그러고 보니 이디가 내게 부탁이나 요구를 한 것은 5층 이후 처음이다.
그녀가 말해 준 종족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흔치 않은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케륵, 케륵. 시간이 촉박할 줄 알았는데, 조금 남았군. 심박 속도가 느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대장.”
“왜?”
“좀 차분해졌는가?”
“아주.”
“참 특이한 대장이다, 케륵. 그럼 남는 시간 동안 우리 이야기나 조금 더 하는 게 어떤가?”
“그러자. 무슨 이야기를 할까?”
“케륵, 케륵. 무슨 이야기이긴, 아무 이야기이지. 싫은가?”
“좋지.”
뭐라도 먹으며 대화를 했으면 했지만, 이디는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상관없는 일이었다.
먹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 * *
이디가 했던 말들의 의미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결국 원하는 것을 뒤에 다 이야기해 주었으니.
이디가 원하는 것은 명확하다.
특정 조건하에 그녀를 다시 소환할 것.
튜토리얼 시스템의 제약에서 그녀가 완전히 벗어나게 된 상태에서 소환할 것.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간 이후에 소환하라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다 하더라도, 튜토리얼 헬 난이도의 5층에는 여전히 이달타르가 존재한다.
시스템에서 그녀 개인을 빼내든가, 그것이 안 된다면 튜토리얼 내에 갇혀 있는 모든 존재를 해방시킨다.
그렇게 된다면 조건이 충족된다.
방법은 모르겠다.
시스템에 대해선 아직 모른 것투성이다.
그것에 대해 원하는 만큼 안다 하더라도 그 작동 원리까지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은 확실히 알겠다.
[백신전의 모든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이디는 내 성장이 부족하다고 했다.
내 성장은 분명 모자라지 않다.
시스템의 가이드라인을 이미 뛰어넘었고, 파티 플레이를 요하는 스테이지에서도 큰 난관을 겪지 않고 있다.
아마 무난할 것이다.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는 것은.
하지만 내가 그 이상을 원한다면, 내 성장은 분명 부족하다.
역시 이디는 나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디가 내게 부여해 준 시련은 튜토리얼의 그것보다도 훨씬 흥미로웠다.
공동의 중앙에 부유하고 있는 목걸이를 보았다.
둥둥 떠다니는 목걸이를 잡아채 목에 걸었다.
목걸이를 후방에 두고 적들을 막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내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인데.
목걸이를 내가 직접 소지한다면, 하나밖에 없는 전력을 둘로 나눈다는 미션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지는 데다, 키메라들을 끌어모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자, 어리벙벙한 얼굴로 서 있는 소인족들이 보였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이다.
더 이상 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투영시켜 보며 불쾌해하진 않는다.
신들이 나를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여러 차례 들었다.
어느 신의 사도가 되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것에 내 의사는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태어났다.
튜토리얼은 술에 빠져 천천히 죽어 가고 있던 내 삶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불행이었지만, 동시에 행복이었다.
나는 튜토리얼에 감사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기보다는, 이곳을 벗어난 이후를 걱정했다.
내심 튜토리얼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디가 알려 주기 전에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소인족들과 나 사이에 새로운 공통점이 한 가지 생겼다.
대신 명확히 다른 차이점도 생겼다.
뭐라고 떠듬거리는 소인족들의 말을 들어 주는 대신, 탈라리아의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산을 벗어나, 평야 지대로.
평야를 가득 메우고 있는 키메라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과연 저 수가 몇이나 될까.
[백신전의 모든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신들이 나를 지켜보건, 말건 낙하를 시작했다.
각도는 수직, 속도는 전속력으로.
나는 내 전력을 모른다.
한 번도 시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래서 늘 답답했다.
나에 걸맞은 적이 나타나지 않아, 힘을 끝까지 끌어 쓸 일이 없었다고.
하지만 힘의 한계는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불굴] [철벽] [감각 강화] [전투 집중]스킬을 사용했다.
마력을 있는 대로 뽑아내 몸을 보호했다.
쾅!
지면에 부딪히자마자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상태를 확인했다.
팔다리, 머리, 내장기, 마력 회로 모두 정상이다.
내 몸의 내구성은 탈라리아의 날개의 한계 속도를 이용한 충격력을 상회한다.
낙하 지점 근처에 있던 키메라들은 충격에 기절한 것처럼 보였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키메라들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
“으아아아아아!”
[영혼의 외침] [영혼 착취] [위압]미처 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키메라들조차 영혼의 외침 스킬에 휘몰려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리가 없었다.
검에서 오러를 최대한 길게 뽑아냈다.
장검의 검신보다도 두 배는 더 긴 오러가 생성되었다.
방패에도, 갑옷에도 오러를 둘렀다.
이전의 전투 스타일은 버려야겠다.
앞으로 강하게 대시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와 부딪힌 키메라가 터져 나갔다.
그 뒤의 키메라들도 줄줄이 뒤로 밀렸다.
장검을 크게, 되도록 크게 휘둘렀다.
오러의 형성으로 이전과 비교해 서너 배 이상의 길이를 갖게 된 장검은 단번에 키메라들의 거체를 절단해 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키메라들도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지만, 나 또한 그들을 향해 달렸다.
마력과 체력을 최대한 아끼며, 안전하고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대처한다는 이전의 방식을 버렸다.
마력과 체력을 아낌없이 쓰고, 과감하게 앞으로 달려든다.
나는 이미 충분한 방어력을 갖추었다.
마력과 체력이 부족할 리도 없다.
적극적으로 적을 처치한다면, 마력과 체력이 고갈되는 것보다 영혼 착취의 효과로 회복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으아아아아!”
평야를 가득 메우고 있는 키메라 모두를 불러 모을 생각으로, 쉬지 않고 영혼의 외침을 사용했다.
촤악, 하고 피 분수가 뿜어진다.
돌처럼 단단히 압축된 형태였던 오러가, 검과 방어구의 끝에서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검에 묻은 피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오러에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오른다.
그 탄내가 코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피의 악취와 적들의 비명 속에서.
“으아아아아!”
나는 살아 있다.
* * *
[튜토리얼, 헬 난이도 20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과 부상이 회복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4,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4,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3,7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6,3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백신전의 모든 신들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느림의 신이 만족합니다.] [모험의 신이 당신을 응원합니다.] [결투의 신이 만족합니다.] [죽음의 신이 기뻐합니다.] [헌신의 신이 누군가를 안쓰러워합니다.] [생명의 신이 당신을 불쾌하게 여깁니다.] [빛의 신이 당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고통의 신이 즐거워합니다.] [천공의 신이 당신을 괘씸하게 여깁니다.] [플레이 기록을 바탕으로 추가 보상을 지급합니다.] [결투의 신이 추가 보상을 대신해, 자신의 권능 중 일부를 선물하고자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결투의 신이 당신에게 사도의 운명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모험의 신이 당황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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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헬 난이도 22층을 완벽히 클리어하셨습니다.] [백신전의 모든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천공의 신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균형의 신이 당신을 다시 봅니다.] [모험의 신이 매우 불안해합니다.] [느림의 신이 콧방귀를 뀝니다.]* * *
[튜토리얼, 헬 난이도 23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
[튜토리얼, 헬 난이도 24층을 완벽히 클리어하셨습니다.] [당신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9,4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6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백신전의 모든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백신전의 모든 신이 당신에 관한 몇 가지 약속을 수용했습니다.] [모험의 신이 안절부절못합니다.] [느림의 신이 조금 불안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