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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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1층 (8)
[1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상점창과 경매창이 생성되었습니다.]푸르른 들판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상점창과 경매창.
이에 대해선 커뮤니티에서 제법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일단 이 두 가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자.
우선은 내 궁금증을 먼저 해소해야겠다.
드넓은 들판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쪼그려 앉아 있는 소녀에 대한 호기심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심지어 저 조그만 소녀의 머리 위에는 기다란 토끼 귀가 달려 있다.
“토끼?”
토끼… 아니 소녀는 내 중얼거림에 귀를 쫑긋거리더니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왔다.
누가 봐도 토끼 같은 그 뜀박질에 당황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 앞에 도착한 소녀는 벌떡 일어나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고 소리쳤다.
“맞아! 토끼!”
밝게 웃고 있는 얼굴에서 뿌듯함이 느껴진다.
토끼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칭찬이었다니.
보통 남자한텐 욕으로 쓰이는 말인데.
“토끼야? 인간이야?”
“토끼야!”
그래 알았다.
굳이 저 소녀의 정체성을 찾아보자면 토끼 귀가 달린 사람이라기보단 사람처럼 생긴 토끼인 모양이다.
보기엔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녀의 정체이다.
보스룸을 통과한 뒤 나타나는 공간의 주인.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말하길 NPC 상인과 같은 존재라 하였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조금씩 나눠 주고 튜토리얼 클리어 도중 모은 포인트를 받고 물건을 판다고 한다.
이지 난이도에는 보스룸을 통과하자 늙은 노마법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노멀 난이도에는 흡혈귀처럼 보이는 창백한 안색의 남자가.
하드 난이도에선 키가 3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인이 있었다고 한다.
커뮤니티에 게시된 튜토리얼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이들에게서 얻은 정보이다.
그런데 헬 난이도에는 웬 토끼 귀가 달린 여자애가 나타났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하던 중 소녀가 불쑥 물었다.
“너는 누구야?”
“이호재라고 해. 인간이야.”
뻔히 보이는 종족까지 설명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 했다.
“이호재? 이이-호오재애? 호오오오재? 그게 이름이야?”
“응.”
그렇다고 하자 소녀는 배를 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아예 바닥에 엎어져 발을 구르며 웃고 있다.
음. 한 대 때려 주고 싶은데.
깔깔거리고 있는 저 모습에서 싸가지 없는 조카 녀석이 떠오른다.
“호오재애? 호오재애! 꺄하하하하. 그게 이름이야?”
소녀의 경기 들린 웃음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그냥 편하게 바닥에 앉아 소녀가 발버둥 치며 깔깔거리는 것을 구경했다.
싸가지는 없지만, 머리에 토끼 귀가 달려 있지만, 어쨌건 소녀는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하얀 다리와 짧은 원피스 자락 너머로 보이는…….
음. 아무튼.
오랜만에 좋은 눈요깃거리를 제공받았기 때문인지 저 재수 없는 웃음소리가 그다지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응. 아주 좋아. 다리를 조금만 더 들어 보지 그래.
소녀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웃음을 그쳤다.
그러곤 처음 봤을 때처럼 쪼그려 앉았다.
그 쪼그려 앉은 자세가 새삼 토끼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깡충깡충
진지한 얼굴을 한 채 토끼처럼 뜀박질을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는 자신에 대해선 다 까먹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느닷없이 들판을 뛰어다니고 있는 그녀를 보며 황당함을 느꼈다.
영문을 모르겠네.
아, 그래. 저 녀석의 행동 양식은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랑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녀의 말대로 사람보단 토끼에 가까운 모양이다.
특히 머리 쪽이.
“야! 네 이름은 뭐야?”
어느새 제법 멀어진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소리친 것을 들었는지 소녀는 또 나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며 깡충깡충 달려왔다.
데자뷰가 느껴지는데.
“키리키리야!”
키리키리?
“키리키리? 그게 네 이름이야?”
“응!”
네 이름이 키리키리인데, 내 이름가지고 그렇게 웃은 거냐.
그렇게 쏘아 주고 싶었지만 저 한없이 당당하고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는 얼굴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렇구나. 키리키리, 나한테 뭔가 해 줘야 할 말이 있지 않아?”
“있어!”
“그럼 해 줘.”
“응!”
이 녀석의 지능은 확실히 말하는 강아지 수준인 것 같다.
“축하해! 이제 너는 상점창과 경매창을 사용할 수 있어!”
“상점창과 경매창?”
“응!”
[경매창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기실 혹은 주거 지역에서 사용하십시오.] [상점창]상점창이 열리고 여러 가지 카테고리가 담긴 메시지가 나타났다.
상점창에서는 1층을 클리어하고 받은 포인트들로 물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모양이다.
장비, 서적, 포션, 음식, 침구류도 있네. 완구도 있고.
정말 별걸 다 파는구나.
상점창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키리키리가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살 게 있으면 지금 사야 해!”
“왜?”
“대기실에선 전투에 쓸모없는 것만 팔아!”
어쩐지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상점창을 대기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보스룸 뒤에 상점 NPC라고 불리는 인물이 왜 있는지가 궁금했다.
전투에 관련된 물건은 이곳에서 구매해야 하는 모양이다.
무기는 아직 조금 더 써도 된다.
방패는 화살을 막다 보면 종종 넝마 꼴이 되곤 했으나 막는 것 자체에는 별로 무리가 없었다.
대기실에 입장하면 원상태로 복원되기 때문에 아직 시급하게 바꿔야 할 정도는 아니다.
칼은… 뭐 아직 제대로 써 본 적도 없으니.
그나저나 이거 오래 걸리겠네.
상점창에 있는 물건의 리스트가 너무 많아서 천천히 읽어 보는 데만 한세월 걸릴 것 같다.
“아 키리키리.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30일 동안 1층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대기실로 돌아가.”
그 말에 일순간 굳어버렸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굳이 1층을 클리어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으음… 글쎄.”
“얼버무리지 말고 자세히 말해 줘.”
“첫 회 차가 끝나면 인벤토리에 있는 육포랑 물이 사라져. 이후엔 먹을 것을 포인트로 상점창에서 구입해야 해. 굳이 클리어하지 않더라도 회 차가 끝나면 포인트는 조금씩 생기지만 어쨌든 튜토리얼에서 도전한 만큼만 생기니까. 결국은 도전을 해야만 해.”
그 말에 바로 이해가 되었다.
“물론 대기실에 있으면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지만 너도 알다시피.”
“24시간이 지나면 대기실에서 추방되지.”
“응 맞아.”
“그러면…….”
“안 돼.”
갑자기 키리키리가 자기 귀를 눌러 잡고 눈을 꼭 감았다.
뭐야, 갑자기.
“말해 주면 안 돼.”
“왜?”
느닷없이 뭐가 안 되는 일이고 뭘 말해 주면 안 된다는 것인가.
“내 역할은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거야.”
진짜냐. 너 그거 할 수 있겠냐. 어렵지 않겠냐.
“하지만 제한이 있단 말이야.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 큰 성과를 얻은 사람, 그리고 내 맘에 드는 사람에게만 말해 줄 수 있어.”
“근데 너 여태 이것저것 말해 주고 있었잖아.”
“응. 이제 하나 남았어! 그러니까 물어보지 마. 말해 줄 게 하나 남았으니까.”
젠장, 질문에 횟수 제한이 걸려 있는 건가.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은데.
이 튜토리얼의 정체와 목적.
나를 이곳으로 초대한 목적, 방법.
과연 현실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지, 가능성과 그 방법.
키리키리 본인의 정체.
궁금한 것이 한 보따리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저 횟수 제한에 걸리지 않는 한 어지간한 질문에는 대답해 줄 것 같다는 점이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선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겠다.
“후우… 그러냐. 고맙다. 나한테 말해 줄 게 뭔데?”
근데 혹시 네 역할에 대해 설명한 것도 하나의 ‘정보’로 취급돼서 기회 하나가 날아간 거 아니지?
괜히 물었다간 마지막 기회가 날아갈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상태 이상 포션을 사!”
“상태 이상?”
상태 이상이란 혼란, 기절, 공포, 화상, 동상, 독, 질병 등 말 그대로 신체나 정신에 이상 상태를 유발하는 것들이다.
보통 게임에선 메즈기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어떤 게 얼마나 필요한데?”
“많이! 최대한 많이!”
가능한 많은 수의,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상태 이상 포션이 필요하다는 키리키리의 말에서 2층 스테이지의 테마를 상상할 수 있었다.
상태 이상 페스티벌이겠네.
또 내성 스킬이 잔뜩 오르겠구나. 아하하.
키리키리의 조언대로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포션과 몇 가지 아이템을 추가로 구매했다.
상점창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와중에도 키리키리는 아이템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평을 알려 주면서 구매에 도움을 주었다.
이런 정보는 그냥 말해 줘도 되는 거냐고 묻자 키리키리는 상점창에서의 아이템 구매에 대한 간단한 정보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아이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설명해 주면서 키리키리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즐거워했다.
천성적으로 남을 돕거나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아는 것을 자랑하길 좋아한다든가.
“음… 마지막으로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키리키리.”
“안 돼!”
이번에도 키리키리는 아무것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긴 귀를 내리누르고 눈을 꼭 감고 외쳤다.
저런다고 저 큰 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릴까.
“튜토리얼에서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꼭 감겨 있던 키리키리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키리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키리키리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시종일관 밝고 생기 넘치던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비친 것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이었다.
입을 열려 했지만 잠시 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키리키리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키리키리.”
“으응…….”
“고맙다. 쇼핑 도와줘서. 난 이만 가 볼게.”
“으, 응!”
대기실로 이동하겠냐는 메시지에 응답하자 몸 주위가 환한 빛으로 물드는가 하더니 부유감과 함께 몸이 떠올랐다.
온통 하얗게 변해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왠지 키리키리가 깡충깡충 뛰며 손을 흔드는 광경이 보였다.
“잘 가! 빨리 와! 죽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