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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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26층 (8)
[빛의 신이 크게 감동합니다.] [빛의 신이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천공의 신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파종의 신이 당황합니다.]정신이 들었다.
언제부터 자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감각이 희미해지면 이런 문제가 있다.
마치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몽롱했다.
우선 살아 있는 감각을 확인해야 한다.
손끝을 비벼 보았다.
감각이 죄다 죽은 건 아니었다.
더불어 손과 팔도 움직인다.
왼쪽만.
‘인벤토리.’
언제나 생각해 왔지만, 인벤토리는 정말 좋은 기능이다.
권능 스킬에 비견될 만큼.
덕분에 시각과 청각이 모두 죽은 상태에서도 원하는 것을 꺼내 들을 수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엘리서 병의 뚜껑을 대충 뜯어내었다.
그리고 내 입이 있을 만한 위치에 그것을 들이부었다.
목이 이상하게 꺾여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한 병을 모두 부어 넣고 조금 기다렸다.
몸의 전반적인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엘릭서는 내 입으로 잘 들어갔다.
절반 정도는 입가로 흘러내렸지만.
인벤토리에서 엘릭서 한 병을 더 꺼내 마셨다.
이번에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모두 마셨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귀에 날카로운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유리를 긁는 듯한 이명의 뒤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강한 빛에 멀어 버렸던 안구도 복구되었다.
눈꺼풀 너머로 붉은빛이 보였다.
조금 더 기다리자, 내 몸을 완전히 자각할 수 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여 보고, 구석구석 관절과 근육을 살폈다.
그리고 이제는 괜찮다는 확신을 가지고 눈을 떴다.
눈에서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약간 뿌옇게 보이는 시야에는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시야의 초점이 맞기를 조금 더 기다렸다.
주변을 불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에 불꽃이 들러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지면에서는 강한 열기가 느껴졌다.
내 몸과 갑옷에도 불꽃이 붙어 있었다.
대충 손으로 비벼 껐다.
마왕이 소환되었던 제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산의 정상이었던 주변 일대는 평탄한 고원처럼 변해 있었다.
그것도 딱 내 공격 범위만큼만.
마치 지우개로 그림 일부를 지운 풍경화처럼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광검의 여파는 일대의 지형을 바꿔 놓을 정도로 강력했다.
내가 한 일이지만,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성취감에 뿌듯해졌다.
마왕은 확실히 소멸했다.
두 가지 근거가 있었다.
우선 이 일대 자체를 날려 버린 내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마왕이 그것을 버텨 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분명 마왕에게서 느껴졌던 힘은 굉장했으나, 광검의 여파를 견뎌 낼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 근거는 조금 더 명확했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단번에 레벨 업을 다섯 번이나 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 회 차에 한 번 하기도 어려운 레벨 업이다.
마왕을 처치한 것이 아니라면, 얻을 수 없는 수준의 경험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51레벨이 넘었겠다.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이호재 (인간)]Lv.52
확실히 51레벨이 넘어 있었다.
하지만 스탯이나 스킬의 상승은 없었다.
레벨 업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51레벨이 넘었음에도.
다시 말해, 나는 최소 101레벨까지는 레벨 업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지금의 성장 속도로 보아, 그 이후에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키리키리의 말대로, 레벨 업 보상은 이제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나 자신의 확인을 마치고, 다른 이들을 살펴보았다.
마왕은 소멸했다.
그의 불길한 마력이 허공을 떠돌고 있었으나, 그가 사용하려 분출했던 기술의 잔재일 뿐이다.
마인족들은… 무언가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급한 산비탈을 우르르 내려가다가, 단체로 굴러떨어진 듯하다.
어쩌면 내 기술의 여파로 산사태가 일어났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세레지아를 보았다.
그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의외였다.
나는 그녀가 있는 방향을 등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기술은 정면을 향해 직선적으로 폭사되었다.
후방에 있던 그녀가 저렇게 중상을 입을 거리는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웠다.
그녀가 숨어 있던 수풀이 죄다 타 버렸기에,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숨어 있던 곳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쓰러져 있었다.
비로소 그녀가 다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기술을 사용하기 직전,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만큼 거리를 좁혔기에, 내 기술에 더 강하게 노출되었다.
급히 이동하느라 본인의 몸을 보호하지도 못했다.
그런 이유였다.
세레지아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화기가 몸 안으로도 침투해 있었다.
덕분에 체내의 마력 또한 엉망이었다.
호흡은 불규칙하고, 사지의 일부는 발작적으로 경련했고, 또 일부는 시체나 나무토막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숨넘어가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인벤토리에서 엘릭서 한 병을 더 꺼내 그녀의 입으로 흘려 넣었다.
오늘 엘릭서 많이 쓰네.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화상 치료용 연고을 꺼내 그녀의 얼굴에 발라 주었다.
아끼지 않고, 연고 한 통을 다 썼다.
이제는 내가 쓸 일이 없는 약이기도 하고, 혹여나 이 일로 그녀의 얼굴에 흉이 지지 않았으면 했다.
치료를 마치자 시장기가 몰려왔다.
인벤토리에서 육포를 꺼내 씹었다.
배고파서 무언가를 먹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확실히 ‘광검’은 아직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사용할 실력은 있지만, 그것을 감당할 힘은 없었다.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던 마왕은 물론 제단과 산마저 그대로 날려 버린 강력한 기술이지만, 나 또한 그 힘에 노출된다.
무식하게 튼튼한 몸뚱이와 정신력, 화기 내성이 없었다면 광검은 공격기가 아닌, 자폭기라고 불러야 했을 것이다.
마왕의 힘에 비례해, 내 능력을 상승시켜 주었던 적수 지정, 불굴, 탈라리아의 날개 같은 권능 스킬들이 아니었다면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버텨 내기는커녕, 성공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투의 신이 뿌듯해합니다.] [모험의 신이 행복해합니다.] [느림의 신이 섭섭해합니다.]아, 물론 느림 신이 선물한 시간 유폐 또한 큰 역할을 해 주었다.
[느림의 신이 콧방귀를 뀝니다.]삐졌네.
느림의 신도 생각보다 자주 삐지는 편이다.
모험의 신과 다른 점이라면, 금방 풀어지는 모험의 신과는 달리, 느림의 신은 기분이 풀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느림의 신이라 그런가?
아무튼 소심한 신들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고, 광검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다.
내가 처음 광검을 시도했던 것은 24층 대기실이었다.
당시, 광검의 사용에 실패하면서, 내 오른팔과 복부가 그대로 터져 나갔었다.
대기실 안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충분히 위험했다.
사용할 당시에는 자신감이 충만했고, 머리에 열이 오른 상태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용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위험한 행동이었다.
반성하자.
아무리 목숨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그것 또한 내 패배를 의미한다.
아무래도 마왕의 힘에 지나치게 흥분했었다.
그동안 전력으로 움직이며 때려잡을 정도의 적들은 만나 보았었다.
하지만 전력으로 부딪치더라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 적은 처음이었다.
광검의 사용 직전, 마왕에게서 느껴졌던 힘은 19층에서 만났던 대모의 배 이상이었다.
그래서 흥분했었다.
지금은 반대로 평소보다도 더 차분한 상태다.
마치… 현자 타임이 온 것처럼.
거대한 만족감 뒤에 찾아온 차분함에는 약간의 자괴감과 후회가 섞여 들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기도 하였다.
이제 완전히 회복된 모습의 세레지아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숨은 이제 고르게 쉬고 있었다.
맥박도 정상.
뇌에도 이상이 없다.
마력의 순환도 평소 그대로.
이거 아무래도 그냥 잠든 것 같은데.
혼자 한숨을 한번 내쉬고 세레지아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 이제는 휑하니 조용해진 산을 내려갔다.
* * *
돌아가는 길에는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굳이 급하게 갈 필요가 없었다.
마왕은 이미 처치했고, 성으로 돌아가 성검만 획득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키리키리와의 내기였던 33일까지도 아직 한참 남았다.
그리고 굳이 천천히 갈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면, 있었다.
마왕을 처치하기 위해 사용한 광검.
그 광검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직 그것을 버텨 내지는 못하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실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광검을 사용한 이후의 감각을 계속 유지하며 그때의 기억이 반복해서 떠올렸다.
조금 더 쉽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따금 길바닥에서 식사한 뒤에는 자리에 앉아 몇 시간씩 명상을 반복했다.
시간 유폐 스킬이 있었기에, 5분의 시간만 주어져도 수 시간 동안 차분히 명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을 때, 세레지아가 깨어났다.
그 당시, 나는 들판 한복판에 앉아 육포와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자주 식사를 하지 않지만, 일전의 전투에서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한 탓에 주기적으로 음식을 섭취해야 했다.
체력 포션으로도 피로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기에, 몇 시간에 한 번씩은 걸음을 멈추고 음식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심지어 레벨 업을 했는데도 피로가 유지되었다.
무협지에 나오는 선천지기인가 뭔가 하는 게 소모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키리키리에게 물어보기로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리에 눕혀 두었던 세레지아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세레지아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마왕을 처치하고 산을 내려와 제국의 요새로 돌아가던 길이었다고.
내 설명을 모두 들은 세레지아는 느닷없이,
무릎을 꿇었다.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세레지아는 특유의 당당한 무표정으로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싫어요.”
“왜죠?”
“저야말로 묻고 싶네요. 왜죠?”
“그런 검을 보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살아생전 그 검을 단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또 휘말려 죽을 뻔하려고요?”
”한 번, 아니 두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습니다.”
너무나 당당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죽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세레지아에게 조금 질려 버렸다.
세상은 넓고, 미친… 뭐 아무튼 그랬다.
“그보다 왜 자리에 가만히 계시지 않고 가까이 다가왔던 겁니까? 세레지아 경, 정말 죽을 뻔했던 거 알아요?”
“처음에는 마왕의 힘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용사님을 데리고 도망치려 했습니다. 아무래도 용사님은 계속 싸우려는 것처럼 보여 말리려 했습니다.”
“…그래요? 그다음은요?”
”용사님이 준비하는 검에 모이는 힘을 보고 말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슬글슬금 다가갔었죠.”
“덕분에 죽을 뻔했고 말이죠.”
“결과적으로 그 검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또 살았으니 이득이었습니다.”
이득은 무슨.
소모된 엘릭서 값을 생각하면 분명 손해다.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옆에서 세레지아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용사님, 반응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뭐가요?”
“혹시 감동받았습니까?”
“네?”
”제가 용사님을 걱정해서 그리로 가려 했다는 말에 감동했습니까?”
아니요.
아니거든요.
지금 있던 감동도 다 사라질 지경이거든요.
“혹시 감동하셨으면, 제자로 받아 주시죠.”
“싫거든요.”
“왜죠? 제가 바라는 건 많지 않습니다, 용사님. 그저 근처에서 용사님의 검을 볼 기회만 주시면 됩니다. 그 대가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겠습니다.”
뻔뻔스럽게 이유를 묻는 세레지아에게 할 말이 없었다.
왜냐니.
당연히 안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 스테이지를 떠날 수 없으니까.
“저 빨래랑 청소도 잘합니다, 용사님.”
“요리는요.”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요리는 못하는 모양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몸도 괜찮으신 듯하니 슬슬 출발하시죠, 세레지아 경.”
“정말 안 됩니까?”
“예.”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는 조만간 이곳을 떠날 것이고, 그때 세레지아 경을 데려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리를 움직여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해가 떨어진 검은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였다.
우주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세계.
그 세계들의 흔적을 무대로 하는 튜토리얼의 스테이지들.
감상이 묘해졌다.
우주 너머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그런 세상들을 돌아다니고 있는 입장에서 저 밤하늘은 지구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주었다.
“세레지아 경이 정말 죽기라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죠.”
괜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