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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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26층 (9)
“그럼 용사라기보다는 용병에 가까운 사람들이었군요.”
“예, 그렇습니다. 차원 단위로 활동하는 용병에 가깝죠. 그중에서 정의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는 일부가 용사단이라 불리는 것뿐입니다.”
그랬구만.
소환해 놓고 무작정 이런저런 부탁을 하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예 의뢰를 하기 위해 대가를 약속하고 소환하는 형식이었구나.
나 혼자 소환되었을 때 당황하던 것도 이해가 간다.
주문한 물품이 잘못 전송된 꼴이었으니.
“그럼 왜 굳이 용사라는 번거로운 직책을 뒤집어쓰는 거죠. 그냥 용병으로 일하면 안 되나요?”
세레지아는 자기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이해가 가진 않습니다만, 명예나 명성 때문이겠죠. 의뢰하는 황실에서나, 그들에게나 그쪽이 더 멋있어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전설이나 미담으로 남아 후대에 전해지기도 하고요. 일이 잘 마무리되면, 크게 우대받으며 제국의 중책을 맡거나, 황도에서 신민들의 성원을 받으며 퍼레이드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부류라면…….”
그럴 법하다고 생각되지만, 공감되진 않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연예인을 하지.
아, 이런 세계에서는 연예인들이 별로 우대받지 못하려나?
포탈을 타고 왔던 요새까지 돌아가는 길에는 세레지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세계의 상식이나 지식들을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검술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세레지아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게 편해서, 혹은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서 사용했던 동작과 자세들을 이론적으로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왜 그것이 효율적이었는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었는지, 또 어떤 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었는지.
내가 검술을 수련하던 방식은 아니었으나, 이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애초에 나는 이론 중심적으로 공부하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다.
다만, 전투에 대한 이론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을 뿐.
세레지아는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었던 내용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전직 교육자였던 사람이 가르쳐 주니, 아주 기초적인 내용에서도 배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 검을 사선으로 뿌리며, 한 걸음 물러납니다. 그리고 휘두른 검은 허리 옆에서 딱 끊어 멈춘다는 느낌으로 휘두르면 됩니다. 이 동작의 이유는.”
“큰 동작 후에 틈이 생기는 것을 노려 상대가 파고들 테니, 사선으로 검을 휘둘러 한번 타이밍을 뺏고, 다음 순간 찌르기로 맞대응하거나 한 걸음 더 물러난다는 거죠.”
“예, 맞습니다.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동작이지만, 이 검술의 특징은 발디딤입니다.”
“스텝을 말하는 건가요?”
“아뇨, 사실 스텝도 특별할 것 없습니다. 다만 발의 방향이 이쪽으로 향합니다. 특이하죠.”
“그러네요. 보통은 정방향에 발 앞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자세인데요. 그게 더 효율적이고, 더 편하고. 심지어 아무 생각 없이 착지해도 이런 방향으로 서게 되고요.”
“예,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이 방향으로 발을 향하면.”
“검에 맞을 것을 각오하고 파고드는 상대를 걷어찰 수 있겠죠. 넘어지겠지만, 잘 밀어 차며 넘어진다면 상대가 다시 달려들기 전에 일어날 시간을 벌 수 있겠네요.”
“예, 맞습니다.”
내 경우에는 밀어 차고 나서 넘어지지도 않는다.
확실히 좋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사들이 사용할 만한 기술은 아니네요.”
우선 동작 자체가 합공을 당한다는 전제하에 있고, 그 타개책의 과정에서 바닥을 굴러야 한다.
“예. 원래 있던 검술을 토대로 제가 연구해서 만들어 봤습니다. 사실 실전에서 검증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이 정도면 충분히 실전에서도 쓸 만한 동작입니다. 대단하네요.”
물론 그녀의 가르침을 내 전투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다.
나도, 내 적들도 일반적인 검술이 가정하는 틀 안에 속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론적으로 그 과정과 결과, 원인과 해결책을 이해한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다른 전투, 다른 상황에 대입시킬 수 있었다.
유익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즐겁기도 했다.
세레지아와는 성격적으도 부딪힐 일도 없었고, 관심 분야가 일치하다 보니 그녀와 함께 요새로 돌아오는 길은 유익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우리는 요새 앞에 도착했다.
* * *
쾅!
면전에서 큰 소리를 내며 닫히는 성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아무래도 세레지아 경이 부정 축재로 돈 모아 놨던 게 걸린 모양인데요.”
“설마요. 저는 먹어도 탈 나지 않을 선을 잘 지킵니다, 용사님.”
하긴 한다는 말이다.
만약 세레지아가 이전에 저지른 범죄가 밝혀진 것이 아니라면, 요새의 병사들은 왜 우리를 적대하는 걸까.
조금 전, 우리가 요새 정문으로 다가오는 것을 본 병사들은 소란스럽게 떠들더니, 성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성문이 닫혀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입장을 거부하는 걸로 보였다.
물론 찔리는 부분은 많았다.
나나 세레지아나 말없이 자리를 이탈해 이곳으로 온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몰래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요새에 숨어들어 전투를 구경하기도 했고, 그 전투에 난입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문제들 때문에 성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 위에 지휘관이 올라온 것 같으니, 이야기를 들어 보죠.”
세레지아의 말처럼, 성문 위에 화려한 군복을 입은 남자가 올라왔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그의 말대로 닫혔던 성문이 도로 열리기 시작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용사님.”
“그런가 보네요.”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낙관하던 그때, 지휘관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잡아! 성검을 탈취하려다 실패한 도둑놈이다!”
엥, 도둑놈?
다시 열린 성문 너머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레지아는 그 광경을 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용사님, 성검을 훔치려다 실패하셨습니까?”
“아뇨. 한번 뽑아 봤다가, 다시 꽂아 두었는데요.”
“성검은 왜 뽑아 보셨습니까?”
“그냥… 호기심에요.”
정확히는 성검의 위력을 통해 스테이지의 난이도를 엿보고, 마왕의 힘을 추측해 보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호기심도 조금 섞여 있었고.
세레지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표정 그대로 책망하는 대신 질문을 했다.
“성검은 언제 또 뽑아 보셨습니까?”
“첫날 새벽에요.”
“뽑기 전에 허가는 받으셨습니까?”
“물론 몰래 들어갔다 왔죠.”
“그랬군요. 감시 수정은 처리하셨습니까?”
“감시 수정이 뭐죠?”
“한정된 공간을 원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수정입니다.”
CCTV 같은 역할의 마법 도구인 모양이다.
나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아뇨.”
“그게 문제였군요. 용사님, 범죄를 저지르실 때는 증거를 인멸할 생각부터 하셔야 합니다.”
“예, 다음번에는 참고하겠습니다. 그냥 호기심에 뽑아 봤다가 도로 꽂아 둔 거라고 말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닐 겁니다. 성검이 봉인된 방에 침입하는 것 자체가 중죄라고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말로 설득하려면 어찌 되었든 판결권자가 있는 황성까지는 체포되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송과 수감 과정은 제법 거칠 겁니다. 잘못이 있으니 순순히 따르는 게 맞겠지만, 저는 싫습니다.”
“그럼요?”
“그냥 도망치죠. 안 그래도 잠적할 생각이었는데, 잘됐군요.”
잘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해야 되나.
어찌 되었건 나는 스테이지 클리어를 위해 성검을 차지해야 한다.
그냥 뚫고 갈까?
무작정 돌격하기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걸린다.
나는 그 사용법을 모르니.
그렇다고 위치도 잘 모르는 황성까지 날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민하던 중 우리를 향해 달려오던 병사들이 자리에 멈추었다.
멈춰 선 병사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길을 만들었다.
그 사이로,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낯선 얼굴들이 나타났다.
화려한 갑주를 입고 장신구처럼 보이는 무기들을 찬 백여 명이 다가왔다.
“후후, 또 만났군.”
그중 선두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역시 어디서 봤던 사람들인 모양이다.
또 만났다고 하는 걸 보니.
“세레지아 경. 누군지 알아요?”
“용사들입니다, 용사님.”
아아.
첫날에 만났던 그 치들이구나.
선두에 선 용사는 그때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자인 것 같았다.
두 가지 놀라운 점이 있었다.
“성검을 훔치려다 실패하고 도망치다니. 용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던가, 이호재?”
선두에 선 용사가 내게 말했다.
놀라운 점이 세 가지로 늘었다.
“세레지아 경, 쟤네가 제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걸까요?”
“서임식 때 용사님이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그랬나?
한 가지 놀라운 점이 해결되어 다시 두 가지로 줄었다.
“흥, 도망자 놈이 요새에는 어쩐 일이냐. 혹시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우리 영광스러운 용사단은 이제 황제의 시험을 모두 마치고, 저 산맥에서 소환되고 있다는 마왕을 처치하러 가는 길이다.”
첫 번째 놀라운 점은 저 자칭 용사가 성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네.
“혹여나 이제라도 용서를 빌고, 한자리 차지해 볼 생각이라면 관두어라. 우리는 이미 마왕을 처치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고, 네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비록 그날 네가 황성에서 보인…….”
두 번째 놀라운 점은 저 종알거리는 용사가 성검을 차지하고 이곳에 나타나기까지 스테이지 시작일로부터 14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작 14일 만에 성검 획득을 위한 콘테스트가 끝난다니.
의외다.
키리키리가 언급했던 33일 정도는 걸릴 줄 알았다.
도전자인 내가 빠지면서 더 빨리 끝난 걸지도 모르겠다.
정리해 보자.
다음 도전자는 2주 안에 성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또 성검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마왕의 처치를 위해 파견되는 것은 백여 명이 조금 넘는 용사단이 전부다.
거기에 성검 하나.
성검은 분명 굉장한 위력을 가졌다.
마왕의 힘과 비견될 정도로.
하지만 그 위력이 만들어 낼 결과는 성검을 휘두르는 검사의 역량에 달렸다.
무기라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성검과 저 용사의 힘을 종합해 보면…….
턱도 없다.
용사단 전원이 마왕에게 몰살당할 것이다.
물론 저기에 도전자들의 힘이 추가되어야겠지만… 아무래도 조금 어려워 보인다.
머릿속으로 정리한 내용을 간추려 결론을 지었다.
26층 클리어를 위한 키워드들을.
14일 안에 성검을 획득할 것.
파티 내에 반드시 재능 있는 검사 하나가 포함될 것.
용사단과 제국의 조력은 없는 셈치고, 마왕을 상대할 것.
마왕을 도발하지 말고 그가 역소환될 때 곱게 보내줄 것.
이 정도면 되려나.
도전에게 사교적인 강점이 있다면 용사단의 화합이나 제국의 도움을 끌어낼지도 모르겠다만,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정리를 끝내고 나니, 옆에서 세레지아가 내 손의 옷깃을 잡아끌고 있었다.
세레지아가 눈짓하는 것에 따라 시선을 돌리니, 얼굴이 시뻘게진 용사가 있었다.
그 뒤의 다른 용사들도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아, 생각을 정리하느라, 나도 모르게 저들의 말을 무시한 모양이네.
“미안, 잠깐 딴생각하느라 못 들었어. 뭐라고?”
용사가 씩씩거리며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들의 복장이 모두 바뀌어 있다.
내가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간다.
며칠 새 조금이지만 살도 올랐고, 얼굴도 매끈해 보인다.
여성 용사들의 경우에는 피부가 눈에 띄게 뽀얗고, 하얗게 보였다.
황성에서 관리라도 받은 건가.
용사로서 소환된 것이니, 극진히 대접받기는 했을 것 같다.
이리 보니 왜 이번 스테이지는 회 차가 끝나도 리셋되지 않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만약 리셋되지 않는다면, 도전자들은 의도적으로 클리어하지 않으면서 30일간 호사를 누리다 클리어에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이, 이 건방진 놈이! 끝까지 나를 무시…….”
용사의 호통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벤토리에서 천변기를 꺼내며 바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곧장 전투태세에 돌입한 것은 용사의 호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소리치며 자신의 오른손을 성검의 자루에 올려 둔 까닭이었다.
만약 그가 일반적인 검을 뽑아 내 눈앞에서 흔들었다 해도, 나는 별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기분은 나쁘겠지만.
하지만 저 성검은 다르다.
대충 뽑아 휘두르는 것만으로 충분히 내 목숨을 위협할 만한 무기였다.
동시에 저 성검을 허리에 찬 용사는 내게 있어, 적이라는 범주 안에 들 만한 존재가 되었다.
용사에게 접근하자마자 장검 형태의 천변기를 그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천변기는 용사의 갑주에 부딪히자마자 그대로 두 동강이 나며 부러졌다.
느닷없는 무기의 파손에 당황스러웠지만, 그와 별개로 몸은 차분히 대응했다.
부러진 천변기를 버리고, 몸을 옆으로 틀며 용사의 발검 경로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용사의 손목을 잡아챘다.
용사는 성검을 뺏기지 않으려 급히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나는 무리하게 성검의 자루를 뺏어 드는 대신, 왼쪽 손바닥에 날카로운 오러를 형성해 용사의 손목을 잘라 내었다.
손목 채로 뺏어 든 성검의 칼자루를 쥐자, 뒤에 있던 다른 용사들이 달려들었다.
용사에게서 성검을 빼앗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뒤에 있던 그의 동료들이 동시에 달려드는 것을 보니, 이들의 수준도 그리 낮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그들을 보며, 반걸음 물러나며 성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아니, 내리그으려 했다.
[안녕하십니까, 용사님.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런 반 푼이 놈이 아닌 용사님 손에 들리니, 이제야 좀 살 것 같군요. 원래는 주문을 외우셔야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성검의 종알거림과 함께 검격이 내쏘아졌다.
그 힘에 놀라, 용사들을 향하던 검의 궤도를 급히 위로 틀어 올렸다.
검격은 용사들이 아닌, 그 너머의 성벽을 향해 그어졌다.
그리고 두부 썰리듯 깨끗이 잘려 나간 성벽의 일부가 그대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도, 나와 세레지아를 잡기 위해 성문을 나섰던 병사들도 그것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무너지는 성벽에 매몰되는 병사들을 보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어떠십니까, 용사님. 제가 최고죠? 그렇죠? 이런 검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이제 안 버리고 가실 거죠?]“…아니, 이게 성검이야, 마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