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69
x 169
169화. 튜토리얼 60층 (13)
“일은 잘되고 있냐?”
연구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아니, 죽을 것 같아. 살려 줘.”
분신 놈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
“엄살 아니거든, 망할 본체 놈아.”
툴툴거리는 분신 놈을 보며 혀를 한번 차 주고 자리에 앉았다.
분신 놈이 61층에 가서 얻어 온 권능의 해석 작업이 한창이다.
이미 여러 번 해 보았던 작업이지만, 권능의 해석은 언제나 새로운 어려움을 안겨 준다.
권능은 자력으로 신격을 획득할 수 있는 수준의 존재가, 자신의 정체성의 기준이 되는 신성을 매개체로 의념을 구현화하는 것이다.
사실 마법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어쩌면 신들은 권능과 마법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마력이라는 기적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풀어내는 마법.
신성력을 매개체로 자신의 신성에 기준이 된 기적을 구현하는 권능.
마법이 가지는 위력과 범위, 인지와 영역에 대한 조건과 제약은 신이 가지는 정체성의 제약과 동일하다.
정작 권능을 사용하고 있을 신들은,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힘이겠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속 편히 사용할 수 없다.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해 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간신히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모든 권능은 신들이 내게 선물했던 권능들의 모조품이다.
개량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권능을 반복해 사용하면서 그 원리를 깨우쳤다.
의념과 신성력, 그리고 신의 정체성이 어떤 방식으로 연계되는지를 연구했다.
인위적으로 한정된 공간의 시간을 반복해서 멈추어, 한순간에 시전되는 권능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지켜보며 분석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권능을 위조한다.
마법으로.
내가 많은 신들의 사도였으며, 권능 스킬들을 몸에 밸 정도로 사용해 왔고, 신성력을 민감하게 감지해 낼 능력과 신성에 대한 높은 이해가 있었고, 마법의 극의를 깨우쳤고, 마지막으로 신성의 씨앗을 품고 있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해내고 있다.
이미 옛 저녁에 개량해 낸 점멸의 보주나, 영혼 착취같이 익숙한 권능들은 물론, 이번에 분신 놈이 가져온 권능들도 하나하나 개량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분신 놈이 훔쳐 온 권능의 수가 워낙 많은 탓에, 그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그 묘리가 복잡하더라도 그 해석과 개조가 불가능해 보이는 권능은 없었다.
“아니야. 반절 정도는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 이 미친 본체 놈아.”
“왜 해 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는 거야. 될 것 같은데.”
“자칫 잘못하면 내 머리가 터져 버릴 만한 것이 수십 개는 되잖아. 그런 건 그냥 불가능하다고 하는 거야.”
“대신 머리가 터질 위기를 한번 극복해 내면 성공할 수 있지. 그런 건 가능하다고 하는 거다.”
“이런, 미친놈.”
분신 놈이 욕을 중얼거리면서 마법진의 구동을 정지시켰다.
연구소 전역에 펼쳐져 있던 거대한 마법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끝에서 끝을 가로질러 걸으면 반나절이 걸리는 연구소의 거대한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 분신 놈이 유지하고 있던 마법진은 실로 거대했다.
물론 시전을 위해서가 아닌, 분석을 위해 펼쳐 두기만 한 거지만.
그럼에도 분신 놈은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을 터였다.
“아는 놈이…….”
“좀 쉬자, 그럼.”
“오, 진짜냐? 웬일로?”
“더 높은 능률을 위해서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니까.”
“결국 더 효율 좋게 일 시키겠다는 얘기잖아, 망할 본체 놈아.”
분신 놈은 툴툴거리면서도 바닥에 드러누워 쉴 준비를 마쳤다.
아공간에서 소설책을 꺼내 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의자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었다.
그리고 메시지창을 열었다.
[박정아, 90층 : 시간 나면 연락 좀.]너무 짤막해서 건조하다 못해, 있던 물기도 증발해 버릴 것 같은 메시지였다.
딴에는 내가 권능을 연구하는 중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겠다고 저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별로 방해 안 되니까, 길게 보내 줘도 괜찮은데.
예전 일 때문에 그런가.
내가 지은 죄가 있다 보니, 혼자 구시렁거리기도 그렇다.
[이호재, 60층 :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 무슨 일인데?] [박정아, 90층 : 밖에서 새로 정보가 들어와서. 일은 어때?]내가 아까 분신 놈에게 했던 질문이다.
일은 잘되고 있다.
“아니거든. 우리 일은 굉장한 난항을 겪고 있거든.”
분신 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이호재, 60층 : 물론 잘되고 있지. 그리고 메시지 좀 길게 보내. 시간 나면 연락 좀이라니. 너무 건조하잖아.] [박정아, 90층 : 혹시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 그랬지.]예상했던 이유였다.
괜스레 씁쓸해졌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이호재, 60층 : 전혀 방해 안 돼. 오히려 더 자주 메시지 보내 줬으면 좋겠는데.] [박정아, 90층 : 괜찮아? 요새 뭐 한다고 바쁘다며.] [이호재, 60층 : 괜찮아. 그리고 내가 바쁜가, 네가 바쁘지. 너야말로 일은 좀 괜찮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연구하다가, 원할 때 쉬고 놀 수 있는 나와는 달리, 박정아는 시간에 맞춰 끝마쳐야 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상담이나 의견 조율 등의 사소한 문제들마저 그녀에게 집중되고 있어, 그녀는 정말 심각하게 바쁘다.
오히려 내가 메시지를 기다리는 일이 더 많을 정도로.
김민혁이 밖으로 나간 뒤로는 시간적 여유가 일주일에 몇 시간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박정아, 90층 :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상냥해? 안 어울리게.] [이호재, 60층 : 싫어?] [박정아, 90층 : 아니, 좋아.]“이런, 미친…….”
분신 놈이 욕지거리를 해 댄다.
무시했다.
[박정아, 90층 : 갑자기 왜 안 하던 예쁜 짓을 하실까. 죽을병 걸린 건 아닐 테고, 바람이라도 피우셨어?] [이호재, 60층 : 용용이랑 분신 놈이랑 셋이 사는데, 무슨 바람이야.] [박정아, 90층 :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대하면, 바람 피웠다는 증거라던데.] [이호재, 60층 : 누가 그래?] [박정아, 90층 : 커뮤니티에서.]얘도 연애를 글로 배워서 그렇다.
나도 뭐 다를 건 없지만.
한동안 박정아와 시답잖은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영양가 없는 대화였지만, 즐거웠다.
옆에서 듣고 있는 분신 놈이 몸을 배배 꼬며 괴로워하기 시작할 무렵, 박정아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박정아, 90층 : 이준석이 G급 괴수 공략에 실패했대. 정확히는 공략 직전, 이준석이 공략 불가를 선언하고 자리를 이탈했다는 정보야.]의외였다.
“의외네.”
분신 놈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준석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기 직전, 내게 말해 주었던 레벨은 201.
100레벨 초반이 최대치인 현재 지구의 각성자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격차가 존재한다.
그래서 낙관했다.
이미 지구의 각성자들이 사냥에 한 번 성공했던 G급 괴수라면, 이준석이 공략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이준석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공략을 준비했겠지.
[이호재, 60층 : 혹시 이준석이 혼자 시도한 공략이었어?] [박정아, 90층 : 아니. 한, 중, 일의 각성자도 상당수 차출되었고,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과 미국이 주축이 되어 준비한 공략이야.]공략에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미국 동부 연안에서 있었던 G급 괴수 토벌은 무사히 성공했다.
당시 동원되었던 각성자 전력과 미 해군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나, 어쨌든 괴수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전력을 준비했다는 전제하에, 이준석의 가세는 분명 승률을 5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 터였다.
내 생각을 박정아에게 전해 주었다.
[박정아, 90층 : 그럼 취소할 만하지. 50퍼센트면 높은 승률은 아니잖아. 희생자 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공략을 취소하고 다음 기회를 노릴 만한 승률 아니야?]그런가.
내가 위험과 희생에 대해 너무 가벼이 여겨서 그런 걸까.
“당연하지, 이 미친 본체 놈아. 그런 의미에서 성공률 10퍼센트도 안 되는 작업을 계속하게 강요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넌 어차피 안 죽잖아.”
분신 놈의 투정을 무시한 채 메시지를 보냈다.
[이호재, 60층 : 혹시 미국 동부에서 있었던 G급 괴수 공략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어?] [박정아, 90층 : 없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언론을 통해 공표된 정도의 데이터야. G급 괴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전달되지 않았어.] [이호재, 60층 : 아카데미 라인은?] [박정아, 90층 : 언론에 풀린 것과 똑같은 정보만 가져왔어.]아카데미 라인.
한국 정부는 튜토리얼의 존재가 밝혀지고 난 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체력 단련과 전투 훈련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특수한 엘리트 교육 시설을 설립했다.
정부는 특별히 신체 능력과 판단력이 우수한 사람들을 선별해, 튜토리얼에 대비한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아카데미의 훈련생이 제때 튜토리얼로 들어오리라는 보장은 없다만.
넋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실제로 가끔 아카데미의 훈련생이 튜토리얼에 들어오기도 하고.
이런 훈련생들은 언론에 풀린 곳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고, 튜토리얼 내 도전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메시지를 기억해 오기도 한다.
[박정아, 90층 : 우선 이번 회 차에 클리어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G급 괴수의 관련 정보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밖에 전달해 둘게.]이준석의 실패는 제법 심각한 문제다.
다른 사람들은 G급 각성자가 생겼으니, 한번 해보자. 안 되면 그냥 취소하고, 라는 생각으로 준비한 공략이겠지만, 이준석은 다를 것이다.
밖에 나가기 전, 나누었던 대화에서 이준석은 혼자서도 능히 G급 괴수를 사냥할 수 있을 거라 장담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G급 괴수의 데이터를 그대로 믿는다면, 분명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이준석이 공략을 포기했다.
그 이유는 뭘까.
만약 우리가 가지고 있던 그 데이터가 사실이 아니라면.
실제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이 있었다면.
혹은 공략의 성공 자체가 거짓이라면.
G급 괴수의 위험도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기준이 없다.
이전의 공략이라는 기준점을 신뢰할 수 없게 된 이상, G급 괴수의 힘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생각을 모두 정리했다.
결론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준석이 공략을 포기한 근거.
G급 괴수의 정확한 데이터.
정보가 부족했다.
언제나 그랬듯.
고민을 끝내고 나니, 문득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준석이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준석에 대한 바깥소식을 전해 듣다니.
정말로 묘한 기분이었다.
[이호재, 60층 : 정아야, 우리가 지금 몇 살이지?] [박정아, 90층 : 스물아홉.] [이호재, 60층 : 어? 너도 이제 서른은 넘지 않았어?] [박정아, 90층 : 스물아홉 살이 된 이후로는 나이를 세지 않았으니까, 스물아홉.]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억지야.
* * *
한동안 박정아와 메시지로 수다를 떨다가 메시지창을 닫았다.
휴식을 끝내고, 분신 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일 안 하냐.”
“좀만 더 쉬자. 아니, 그냥 오늘 하루만 쭉 쉬면 안 될까.”
아주 일하기 싫어 죽는구만.
“일하기 싫은 게 아니라, 진짜 죽을 것 같아서 그런다.”
방바닥에 누워 비적비적 다리를 휘저으며 말하는 그 꼴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마법 수련 좀 해 두라니까. 너 그러다가 용용이한테도 따라잡힌다.”
“따라잡혀도 상관없거든. 용용이는 너처럼 매정하지 않아서, 나보다 강해져도 날 잘 챙겨 줄 거거든.”
내 분신이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정말로.
향상심이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나는 기본적으로 노력을 통해 발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남들에게 뒤처져 있는 것을 못 견딘다.
더불어 아무 일거리 없이,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걸 매우, 매우 싫어한다.
언제나 뭔가를 하고 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분신 놈의 인격은 내 인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정확히는 튜토리얼 안에서의 내 기억과 그것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격이다.
튜토리얼 바깥에 대해 잘 모르고, 안에서의 치열한 기억만을 품고 있는 분신이라면, 오히려 더 수련에 목을 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저 녀석에게 저렇듯 향상심이 결여되어 있는 이유는 명확했다.
자신의 발전에 대한 거부반응이겠지.
아무리 향상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형성된 인격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타인이 강제하고, 또 강요한다면.
그것도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거부반응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나는 용용이 불러 올게. 벌써 저녁 시간이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
그렇게 말하며 연구소 출구로 향하는 분신 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착잡함이 느껴졌다.
미안함도 같이.
오늘은 왜 이렇게 미안한 기억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걸어가던 분신 놈이 걸음을 멈추고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뭐 할 말 있냐?”
나름 링크를 닫고 생각했는데, 감정이 또 새어 나간 모양이다.
“아님 말고.”
다시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말해 두지 않으면 앞으로도 말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내가 미안했어.”
걸어가던 녀석의 발걸음이 멈췄다.
멈춰 버린 등에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민망함에 괜스레 턱이나 코를 매만졌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마침내 답을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면 됐다.”
그는 연구소의 문을 열고 나가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과가 너무 늦잖아, 이 망할 호재 놈아.”
그리고 쾅, 소리 나게 연구소의 문을 닫고 가 버렸다.
민망함이 그치질 않았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기 전, 내게 느껴졌던 그의 감정은 불쾌나 분노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따듯하고 밝은 것이었다.
정말로 민망함이 그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 텔레파시를 보냈다.
고맙다.
판타지 소설 속의 주인공을 동경하는 내 동생.
이호치는 곧 답신을 보내왔다.
[진심으로 닭살 돋으니까, 그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