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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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31층 (3)
고민에 잠긴 채 지도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했던 방에 습격자들을 보낸 자들이 모여 있다는 방이다.
[39]고작 7명만이 체류할 수 있었던 이전의 방과는 달리, 제법 많은 인원이 지낼 수 있는 방이었다.
그만큼 전투원도 더 많고, 더 강했다.
방을 지킬 전력이 있다는 뜻일 테니.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데, 문지기로 보이는 악마가 가까이 다가왔다.
딱 봐도 호의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넌 뭐야! 이 방의 인원은 다 찼다. 뒈지기 싫으면 딴 길로 돌아가.”
“딴 길로?”
”그래, 이 방을 거쳐 지나가는 것도 금지다.”
지도를 펴 주변 길을 확인해 보았다.
이 방을 거치지 않는다면 제법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사실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이 방에 볼일이 있으니까.
방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 소리와 짙은 피 냄새를 보아, 맞게 찾아왔다는 확신이 든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당장 여기서 꺼져! 우리는 크라고르 그룹과도 동맹을 맺고 있다. 괜히 여기서 시비를 걸었다간 곱게 죽지 못할 거다!”
역시 맞게 찾아온 모양이다.
문지기가 친절히 알려준 덕에 확인하는 수고가 줄었다.
“아부부야.”
[아우부츠입니다, 용사님.]검집에서 성검이 빠져나왔고, 다시금 비행을 시작했다.
적이 다섯 명이든, 서른일곱이든 오러를 두른 채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성검 앞에선 무의미했다.
방 안의 악마들이 모두 무력화되기 전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성검이 의도적으로 살려 둔 문지기 악마에게 다가갔다.
벽에 박혀 있는 성검에게 어깨를 꿰뚫린 악마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크라고인가 뭔가 하는 그룹은 어떻게 찾아가야 하지?”
반쯤 패닉에 빠진 악마는 내가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켰지만, 어떻게든 진정시켜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게 할 수 있었다.
위치를 알아낸 후에는 성검에 꽂혀 있던 악마도 깔끔히 처리했다.
방 안에는 붙잡혀 와 고문을 당하고 있던 것처럼 보이는 악마 셋이 더 있었다.
그들에게 포션 몇 개를 내주었다.
빈 방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객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룹의 보복 또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다 처리할 테니.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세 악마는 그저 덜덜 떨고만 있었다.
내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들이 내 말을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시 방을 떠나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미뤄 두었던 고민을 재개했다.
나 자신을 타인처럼 살펴보았다.
정확히는 내가 살아온 기억을 되돌려 보고, 그것을 타인처럼 지켜보았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의 사고와 가치관을 유추하듯 나 자신을 분석했다.
예전에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되돌아보며, 내가 어떻게 변해 왔고, 또 변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긴 회상의 끝에 한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나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했다.
그런 기억이 많았다.
아니던가?
남을 도왔다는 사실은 남을 돕고자 했다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아닐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내 과거를 되짚어 보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어느새 크라고르 그룹이라는 놈들이 체류 중인 한 방에 도착했다.
조금 전 만났던 악마는 크라고르 그룹은 열 개가 넘는 크고 작은 방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곳은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었다.
[24]규모는 아까보다 조금 더 작았다.
“너, 거기 멈춰 서라. 그렇게 피 칠갑을 하고 어딜 들어오려는 거냐.”
“여기가 크라고르 그룹이 있는 방이 맞지?”
”그… 렇긴 하다만,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지? 혹시 방장님을 만나러 온 건가?”
이번에도 맞게 찾아왔다.
“아부부야.”
[아우부츠라니까요!]성검이 방 하나를 청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내가 걸어서 방을 가로지르는 시간보다 짧게 걸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다음 방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미 그룹에 소속된 방들의 위치들을 모두 알고 있기에 달리 정보가 더 필요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약자를 돕기보다는 다른 것에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느 선을 넘어, 내게 적이라 인식되는 사람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했다.
적을 처치해야 할 필요가 있는 튜토리얼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속이고 등처 먹으려는 자들을.
설령 그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지 않더라도, 내 주변의 타인이 피해를 본다면 기꺼이 나서려 했다.
물론 그 결과가 늘 좋지는 않았지만.
약자들보단 적이 되는 자들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고는 하나, 약자들을 돕고자 하던 마음 또한 진심이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내 약점을 해결해야 하는가, 안고 가야 하는가.
그것이 고민이었다.
약점을 해결한다고 가정하자.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선 우선 미뤄 두고.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고, 선인 악인도 가리지 않고 있는 대로 죽여 대면 확실히 클리어에 유리하기는 할 것이다.
위험요소도 줄어들 테고.
지금 당장의 상황만을 보아도, 내가 눈에 보이는 악마들을 모두 죽였다면 나는 이미 천 개가 넘는 증표를 획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모은 증표는 107개뿐이다.
빠르고 안전한 공략과 성장을 위해 아무것도 가리지 않게 된다면.
높은 확률로 내 정신이 박살 나겠지.
약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반대로 그만큼 위험해지겠지.
이걸 잘 생각해 보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안일한 마음이 초래할 위험과 붕괴된 도덕성이 가져다줄 위험을 균형추에 올리고, 어느 쪽이 무거운지를 알아보는 거다.
* * *
“으아아악!”
“대장, 대장! 다 죽기 전에, 항복해야 합니다! 대장? 야, 대장 어디 있어!”
“저기, 혼자 튀고 있잖아, 이 병신아! 잡아!”
“야! 거기, 대장 붙잡아!”
“저 새끼 붙잡기는 늦었어, 이 멍청이들아. 우리끼리라도 싸워야 돼.”
“누가 누구보고 멍청이라는 거야. 저걸 상대로 어떻게 싸우라고…….”
[키이야하하하하! 더 불타올라라! 몸속의 피가 끓어오르도록! 네놈들의 피를 더 따끈따끈하게 만들어라!] [홀리 라이트! 버닝 필드! 파이어 월! 포이즌 프로그!]하늘을 날아다니며 마법을 난사하던 성검이 독 안개 스킬을 사용하자, 그 주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독 안개에 인화성 가스가 포함되어 있던 모양이다.
물론 성검은 폭발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악마들도 높은 허공에서 발생한 폭발에 큰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난데없는 굉음과 눈을 찌르는 빛은 그들의 공포를 가중시켰다.
[273]제법 많은 악마가 지내고 있던 크라고르 그룹의 본거지였지만, 성검은 그들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면서 처리했다.
본거지까지 오는 와중에, 크라고르 그룹에 속한 악마들이 행한 악행들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악마들이 불쌍해 보였다.
미쳐서 발광하고 있는 성검을 보았다.
아무래도 정리가 다 끝난 모양이다.
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악마들은 모두 처치했다.
제법 큰 규모의 방이었고, 악마들 개개인이 가진 힘과 실력 또한 뛰어났다.
하지만 내게는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혈겁을 즐기고 있는 성검 하나에 몰살당할 정도라면, 내가 직접 나서도 별 위험은 없을 것이다.
확실하다.
이곳은 내게 위험하지 않다.
이미 충분한 힘을 쌓아 두었고, 그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어떤 난관이 나타나더라도 허무하게 죽지 않을 자신이.
역시 내게 위험 요소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내 주관을 포기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저버리는 건 약자가 살아남기 위함이다.
나도 그랬다.
살아남기 위해 내 팔다리를 단검으로 저미고, 모닥불에 손을 집어넣었다.
더 빠른 성장을 위해 나는 내 신체와 정신을 혹사해야 했다.
나보다 강자였던 이디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가 보이는 호의를 이용해 도리어 그녀를 공격했다.
4층에서 고블린들을 죽일 땐 부상자와 투항자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그들이 징병된 민병임을 추측하면서도.
그때는 그게 옳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죽었을 테니.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
확실히 아니다.
나는 지금 현 위치에서 강자의 자리에 서 있다.
이만한 여유가 있는데, 굳이 필요 이상으로 악랄해지고 나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어야 할 필요는 없다.
굳이 나를 적대하지 않는 악마들을 모두 죽여 필사적으로 증표를 모을 필요는 없다.
증표의 수가 모자라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처치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물론 수단을 제하는 만큼 위험부담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더 높았으면 하고 바라는 중이다.
그만한 위험부담은 오히려 환영이다.
분명 언젠가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적과 위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다시 약자의 위치로 떨어진다 해도, 나는 어떻게든 그 난관을 다시 넘어설 것이다.
그때를 위한 힘이고, 노력이다.
그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내가 옳다 생각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한 힘이다.
그러기 위한 스테이지 클리어다.
그렇게 생각했고, 또 다짐했다.
[후, 후, 후, 파멸의 종소리가 울린다아! 용사님, 정화 의식이 천공의 축복 속에 끝이 났습니다. 후, 후.]내 앞으로 날아온 성검이 검신에 묻은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주변에는 확실히 숨이 끊어지지 않아 비명을 흘리는 악마들이 즐비했다.
극악무도하다 알려진, 그리고 실제로도 극악무도한 크라고르 그룹의 악마들이 여기저기 처박히고 널브러져 죽어 가고 있었다.
내 도덕성의 선은 저 깊은 땅속에 처박혀 있는 것 같지만.
그나마도 안 지키는 것보단 낫겠지.
지금처럼만 하자.
고민을 끝내고 나니, 상쾌했다.
[헌신의 신이 누군가를 안쓰러워합니다.] [모험의 신이 그럭저럭 만족합니다.] [느림의 신이 크게 기뻐합니다.]* * *
“저, 전 이곳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어, 억지로 이곳에 끌려와 있던 겁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쇼.”
“알아, 나도.”
벌벌 떨고 있는 악마를 보면서 성검에 묻은 악마의 피를 닦아 내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대충 검집에 꽂아 두고 싶었지만, 그러면 냄새난다.
“저, 정말입니다, 정말이에요.”
벌벌 떨면서 자신의 결백을 말하는 악마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당신의 말을 믿고 있다는 걸 알려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다.
크라고르 그룹의 본거지에는 그룹과 연관이 없는 악마가 몇 있었다.
물론 그 악마들은 모두 기절한 상태이고,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악마는 눈앞의 악마 하나뿐이다.
“호, 혹시 증표를 원하십니까?”
내가 말없이 있자, 따로 바라는 게 있다고 생각했는지 증표를 언급했다.
사실 증표보다는 정보를 원했다.
크라고르 그룹의 방에는 그룹과 무관하게 잡혀 있는 악마가 몇 명씩 있었다.
나는 그룹이 방의 체류 인원수를 낭비하면서까지 다른 악마들을 가둬 두고 있던 이유가 궁금했다.
“으흑… 제가 가진 증표는 이게 전부입니다. 부디 선처를…….”
돌연 바지춤 깊숙한 곳에 손을 집어넣어 증표 하나를 꺼내 드는 악마를 보고 급하게 뒷걸음질 쳤다.
왜 더럽게 증표를 저런 데다 숨겨 두는 거야.
미치겠네.
주머니도 달리지 않은 저 속 어디에 돌조각을 숨겨 두었는지 짐작도 되지 않…….
아니, 짐작 가는 곳은 있다.
바지춤으로 들어간 손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려 주는 손목과 팔꿈치의 굽혀진 각도.
악마는 증표를 꺼내면서 조금 괴로워했으며, 약간의 비명 섞인 신음 소리를 내었다.
마지막으로 저 악마는 남성이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저런 똥 냄새 나는 증표는 만지고 싶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