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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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32층
[빛의 신이 자신임을 알립니다!]…….
…끝났나?
아직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
음…….
끝난 모양이다.
빛의 신이 오러 마스터리 스킬을 자신이 선물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드디어 멎었다.
몇 분간 계속되던 메시지들은 빛의 신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다지 달갑게 여겨지는 성격은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알람이 끝났으니, 미뤄 두었던 생각을 계속했다.
31층 스테이지가 클리어되었다.
내가 증표 1,000개를 얻고, 예선을 통과함으로써 클리어 조건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역대 최강이라는 마왕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이대로 그냥 포탈을 타고 넘어가기에는 좀 아쉬웠다.
“아부부야.”
[아우부츠입니다, 용사님.]“저기서 죽어 가고 있는 악마, 뭐 좀 물어보게 깨워 볼래?”
아우부츠는 기쁨에 찬 비명을 지르며 악마에게로 날아갔다.
성검… 아니 마검 아우부츠는 적들을 제압하고 살려 두는 걸 좋아한다.
정확히 말은 안 했지만, 살아 있는 뜨거운 피를 원하기 때문인 듯싶었다.
죽으면 피도 식으니까.
그래서 치명상을 입혀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상대를 그대로 천천히 죽어 가게 내버려 둔다.
가능하다면 그 악취미를 빠른 시일 내에 교정해 볼 생각이지만, 지금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처치한 악마들 중에는 살아 있는 녀석이 없었으니까.
치유 마법으로 죽어 가던 악마의 명줄을 이어 주고, 다시 각종 마법으로 기절해 있던 악마를 깨우고 있는 성검을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악마의 비통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사님! 세팅 끝내 놨습니다. 뭐든 물어만 보시죠!]지나치게 과한 세팅임을 지적한 뒤 악마에게 질문했다.
* * *
“그러니까 천 개의 증표를 획득하면 자동으로 2차 예선 지역에 소환된다는 거지?”
“예, 예, 그렇습니다.”
내 질문에 답해 주고 있는 악마는 공교롭게도 게이트 마법을 통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악마였다.
한껏 거드름을 피우던 처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지만, 그것을 지적해 무안을 줄 수는 없었다.
왼쪽 어깨 꿰뚫고 있는 마검이, 자신의 심장 박동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상황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악마의 어깨에서 이 미친 마검을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다.
또 미친 소리를 늘어놓는 광검을 대충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악마의 설명에 따르면, 마왕에게 도전하기 위해선 몇 번의 관문을 더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관문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증표를 모으고, 나타나는 소환진을 따라야 한다.
물론 내 눈앞에는 다음 지역으로 향하기 위한 소환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 스테이지는 여기까지인 듯싶었다.
잠시 한눈을 팔자마자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하는 악마를 무시하고 포탈에 올라섰다.
온통 피와 같은 검붉은색을 띤, 그리고 실제로 악마들의 피로 칠갑이 되어 있던 공간을 벗어나 밝고 푸른 들판으로 이동되었다.
들판은 언제나처럼 푸르고, 토끼는 언제나처럼 활발했다.
“안녕! 오랜만!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네.”
“그럼 기념으로 케이크!”
마치 당연한 인사말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지막 말이 따라 나왔다.
하지만 정작 대사를 마친 키리키리의 표정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꾹 다문 입술은 씰룩거렸고, 코끝은 부산히도 찡긋거렸다.
눈동자는 비정상적인 열망으로 초롱초롱했고, 힘찬 콧김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30층 거주 지역을 거쳐 오느라 평소보다 늦긴 했다.
그럼에도 며칠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어차피 키리키리는 케이크를 사 달라고 하기 위한 명목으로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건넸을 것이다.
그녀의 소박한 잔머리에 화답해 주기 위해 케이크를 구매했다.
* * *
“그래서 다음 층이 두 번째 예선이라고?”
“응.”
여전히 케이크 삼매경에 빠져 있는 키리키리를 내버려 두고 생각했다.
마왕 후보 선발 대회의 두 번째 장소가 32층 스테이지라고 한다.
그렇다면 언젠가 마왕에게 도전할 기회도 생길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랬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너무 쉬울 것 같은데. 그 위에 올라가도 올폰만 한 녀석은 없을 것 아냐?”
“없징.”
역시나 그런가.
애초 31층 스테이지에서 올폰을 만나고, 그를 처치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변두리에서 서식하는 약한 악마들을 학살해 1,000개의 증표를 모으는 편이 훨씬 쉽다.
더군다나 올폰 앞으로 불려 가더라도, 그의 인정을 받은 채 다음 지역으로 건너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올폰이 직접 그런 악마들이 있었다 말했으니.
31층 스테이지의 클리어를 위해선 올폰의 수하들에게 최대한 발각되지 않을 것.
혹시 발각되었을 경우에는 최대한 소환을 피할 것.
소환되었을 때는 올폰의 인정을 받을 것.
이 정도로 31층 스테이지의 공략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공간에서 수첩을 꺼내 메모해 두었다.
나중에 이형진에게 보내 줘야 한다.
이형진은 최근 9층 후반부를 진행하고 있다.
가끔 보고받는 것만으로도 하품 나올 만큼 느린 진행 속도였지만, 어떻게 안 죽고 9층 막판까지 도달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11층까지만 클리어하고 나면 한동안 솔로 스테이지가 이어진다.
그 이후 스테이지들부터는 한결 수월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키리키리.”
이제 케이크를 다 먹고, 그 접시를 핥고 있는 키리키리를 불렀다.
“응? 응!”
내 목소리에 반응해 접시 옆으로 고개를 내미는 키리키리의 표정을 보아하니, 혹시 케이크 하나를 더 사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싶었다.
미안하지만, 난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부른 거다.
“아… 그거.”
“응, 세레지아.”
키리키리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스테이지에서의 행보를 지켜볼 수도 있다.
그래서 굳이 구구절절 내 당황스러움과 궁금증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성검의 말이 맞아.”
“결국 어떻게 되는 건데?”
“검이 되겠지, 분명한 의지를 가진.”
“지금도 세레지아는 에고 소드라고 봐야 되지 않아?”
키리키리는 홱홱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아냐, 에고 소드는 그런 게 아니야. 그리고 의지를 가진 모든 검이 에고소드인 것도 아니고.”
“그럼?”
키리키리가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시간을 끄는 것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걸 그녀도 알 것이다.
이럴 때, 키리키리는 설명의 과정에서 말투나 단어의 오용으로 내가 설명을 잘못 이해할까 우려해, 미리 머릿속으로 생각을 한 번 정리한 뒤에 말해 준다.
고마운 배려다.
“호오우재애는 평범한 검들만 써 와서 모르겠지만, 명검급의 검 중에는 의지를 가진 검이 종종 있어.”
“에고 소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응. 이지를 가진 채 대화를 하거나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검에 의지가 깃드는 거지. 그리고 보통 그 의지는 주인의 의지에 동조하며 효과를 발휘하지.”
“어떤 효과인데?”
“그으게… 딱히 뭔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이런 건 검사가 직접 사용해 봐야 느낄 수 있을 거야.”
이제 보니, 신중을 기하기 위해 고민한 것이 아니라, 키리키리도 이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다.
직접 써 봐야 알 수 있다, 라.
“영혼검에 깃든 영혼은 호오우재애와 성향도 맞고, 빙의된 채 검술도 많이 펼쳐 왔고, 친밀도도 높으니, 아마 긍정적인 효과를 낼 거야. 뭘, 어떻게, 얼마나 낼지는 나도 모르지만.”
키리키리의 말을 듣다 보니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그때 영혼검을 추천해 줬던 거야?”
세레지아의 영혼을 수집한 채 들판에 왔을 때, 키리키리는 영혼검의 구매를 권했었다.
세레지아의 영혼이 검에 깃들었을 때, 나와 상성이 잘 맞고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서 영혼검을 권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키리키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닝.”
“그래?”
“응.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앞으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해선 나도 잘 몰라.”
“그렇구나.”
잠시 키리키리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단편적이나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아마 튜토리얼에 관련된 수많은 정보에 대한 것이겠지.
예를 들면 다음 층에서 뭐가 나올 거라는 등의 정보들.
다음으로 불확실성이 가미된 미래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세레지아라는 변수와 나라는 변수가 영혼검으로 묶였을 때 나오는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이게 과연 키리키리 개인에게 해당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모든 관리자와 신들도 그래.”
“…그래?”
“예지와 관련된 힘을 가진 신들이 볼 수 있는 것도 단편적인 미래의 단서일 뿐이야. 느림의 신이라면 무언가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신들 또한 미래를 확정하지 못한다.
귀중한 정보였다.
무슨 의미냐 하면, 비싼 정보라는 뜻이다.
“지금 나한테 말해 줘도 되는 거야?”
“응.”
“설명해 줘.”
“남의 안배를 따라가고 있는 입장에서, 그 안배를 한 존재가 미래를 확정 지어 두었다면 어떨까.”
내가 방금 머릿속에 떠올린 의문이었다.
“절망적이겠지. 그건 호오우재애에게 분명 안 좋게 작용할 거고. 그래서 미리 조언해 준 거야. 그렇지 않다고.”
역시 고마운 말이었다.
“덧붙이자면, 35층까지는 별 조언이 필요 없으니, 정보의 여유가 있기도 하고.”
말을 마친 키리키리는 살포시 눈을 감고, 턱을 높이 치켜들었다.
입가에는 빙그레 미소를 걸고 한껏 우쭐거리고 있다.
키리키리는 자기 스스로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고 있다 느낄 때마다 저렇게 혼자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뭐, 좋은 조언이었고, 정보 값에 대한 고려 또한 충분했다.
우쭐할 만한 일이었다.
“고마워, 키리키리.”
키리키리는 별 내색하지 않았지만,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한층 더 기고만장해졌다.
그녀의 코끝도, 어깨도 모두 5센티미터 정도씩은 더 올라갔다.
키리키리의 거센 콧김이 얼굴에 닿았다.
마치 선풍기 바람처럼 내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는, 참으로 거센 콧바람이었다.
키리키리의 그런 모습이 재밌어, 혼자 한참을 웃었다.
* * *
[32층 스테이지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31층 관문이 시작됩니다.]설명 : 당신은 마계 ?? ???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백 년에 한 번씩 지역 내의 모든 악마들을 한공간에 몰아넣고, 대회의 우승자만이 마왕에게 도전할 기회를 얻는다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 ???는 언제나 강력한 마왕을 배출해 왔습니다.
현재 ?? ??? 지역을 사백 년째 지배하고 있는 현 마왕은 ?? ??? 지역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대회에서 우승해, 당신이 ?? ??? 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도전자라는 사실을 증명하십시오.
마지막으로 ?? ???의 지배자에게 도전해 당신이 ?? ???에서 가장 강력한 악마라는 사실을 증명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지역 대회의 2차 예선 구간 통과.
키리키리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32층의 테마는 31층과 다를 바가 없다.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단지 모아야 하는 증표의 양이 달라졌을 뿐이다.
클리어를 위해 모아야 하는 증표의 수는 총 10만 개.
숫자가 터무니없이 높아졌지만, 1차 예선을 통과해 2차 예선 지역에 있는 악마들은 모두 천 개가 넘는 증표를 가지고 있다.
그걸 감안하면 오히려 더 수월할 것이다.
비록 그 방식은 비슷했지만, 32층 스테이지는 31층 스테이지와는 조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 방과 이어지는 통로들로 구성된 31층과는 달리, 32층은 거대한 공동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2차 예선으로 진입한 악마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장소를 하나로 통일한 듯싶었다.
그리고 한공간에 몰아넣어진 악마들은, 아주 바람직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내가 나타났음에도 이곳에 있는 수많은 악마 중 누구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무관심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너무 바쁠 뿐이었다.
그들의 몸은 바쁘지 않았다.
천에 달하는 악마를 죽이고, 천 개의 증표를 모아 2차 예선 지역에 진출한 악마들은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곳에는 단체가 없다.
수백이 넘는 악마 모두가 다른 모두에게 적이다.
강대한 마력을 품고 있던 올폰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곳에 있는 모든 악마 하나하나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긴장, 투지, 살의, 공포, 불안, 흥분, 환희.
거센 감정들이 요동치고, 그 감정들 뒤로 흉계를 숨긴다.
서로를 감시하고, 일어나지 않는 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악마들의 대치는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형성되었을까.
이 대치가 얼마나 지속되어 온 걸까.
어쩌면 격렬한 전투 직후, 모두가 숨을 고르는 그 시점에 내가 소환된 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투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수백이 넘는 악마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상황에서 먼저 수를 던진 사람은 화를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차례를 미루고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움직이기를.
이 대치가 깨지기를.
자신만의 노림수를 준비해 둔 채.
참 재밌는 상황에 소환되었다.
이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공동의 중앙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악마들이 들썩거린다.
정면에 보이던 악마가 내 움직임으로 인해 가려진다.
악마는 순간적으로 생긴 사각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지, 내가 걸음을 옮겨 사각이 지워질 때까지 기다릴지를 고민한다.
서로의 공간 지배력을 겨루던 마력의 경계가, 내 움직임으로 인해 요동친다.
시야와 마력에 방해가 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잠깐의 흔들림은 집중력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틈은, 모든 기세를 끌어 올려 대치하고 있는 적에게 아주 거대한 구멍으로 보인다.
손쉽게 상대의 목숨을 취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크아아악!”
“캬악!”
“잠, 잠깐! 컥…….
“캑! 허… 이럴 순 없어. 웬 미친 신참 하나 때문에, 억…….”
“캬아아!”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정체된 대치가 깨어지고, 전투가 일어난다.
악마 몇이 죽어 나간다.
유쾌한 기분이었다.
마치 태풍의 눈이 된 듯한 기분이다.
어느새 공동의 중앙에 도착했다.
그대로 잠시 서 있었다.
공동은 어느새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틈을 보인 악마들은 잡아먹혔고, 그 악마들을 잡아먹느라 틈을 보인 악마들도 잡아먹혔다.
지금 남아 있는 악마는 내 움직임에 동요하지 않고 사방을 향한 견제를 유지한 악마들이다.
그리고 나.
나는 이 대치 상태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 없다.
오히려 화려하게 박살 내고 싶다.
인벤토리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올폰과 그 수하들을 처치하고 얻은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증표.
그걸 하나하나 모으다 지쳐 대충 아공간 주머니에 쓸어 넣어 두었다.
공동의 중앙에 서서 손에 든 아공간 주머니를 뒤집었다.
검붉은 증표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금세 바닥에 쌓이는 증표의 수가 수십, 수백에 수천을 넘어 수만에 다다른다.
그럼에도 아공간 주머니에선 끝없이 증표들이 쏟아진다.
이곳에 모인 악마들의 목표가 무엇이겠는가.
10만의 증표를 모아 다음 예선 지역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지금 내 발밑에 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증표 무더기는 그들의 눈과 마음을 한순간 잡아채었다.
그들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동요는 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 내었다.
모든 악마의 기세가 일순간 흐트러졌고, 악마들은 서로의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동시다발적인 전투는 더 많은 빈틈을 만들어 냈고, 더 많은 전투로 이어졌다.
사방에서 악마들의 비명과 고함이 울려 퍼졌다.
욕망과 공포.
가장 절박한 감정들이 충돌했고, 그 부산물로 피와 죽음이 흘러내렸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용사님, 용사님! 저도요! 저도요! 저도 끼워 주세요!]사탕 달라고 팔짝팔짝 뛰며 졸라 대는 아이처럼 성검이 보챘다.
허리춤에서 성검을 뽑아 들고 악마들의 격랑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32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