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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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34층
34층으로 향하는 포탈 앞에 서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스테이지에 입장하기 전, 파티 구성원을 지정하십시오] [현재 파티 구성원 (1/1)]-이호재
31층부터 똑같은 테마의 스테이지가 이어지고 있지만, 참가 인원수는 계속해서 변동되었다.
31층은 혼자서 진행하는 솔로 스테이지.
32층은 5명의 인원이 진행하는 스테이지였고, 33층은 10명이었다.
하지만 34층은 다시 솔로 스테이지다.
같은 테마였지만, 난이도를 높여 가며 인원수를 늘렸다.
그러다 34층에 오자 다시 솔로 스테이지로 줄여 버렸다.
34층에서 마왕에게 도전하게 될 것이라는 키리키리의 조언에 따르면, 34층이야말로 더 많은 파티원이 필요한 스테이지이다.
만약 33층까지 파티의 보조역을 맡아 올라온 사람이 있다면, 34층을 혼자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 봐도 참 악랄한 구성이었다.
스테이지에 진입하기 전, 떠오른 생각을 정리했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요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으으…….]“뭔 개짓거리야, 이건 또. 인벤토리 들어갈래?”
이 미친 성검이 밑도 끝도 없이 발작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저 아니에요, 용사님! 제가 낸 목소리가 아닙니다.]“네, 네, 그러시겠죠. 요세도 여자 목소리 연습하냐?”
[당연하죠! 용사님도 그걸 좋아하시지 않습니까!]“여자 목소리가 좋지, 남자가 내는 여자 목소리를 듣고 싶은 건 아니거든.”
[아무튼 정말 제가 낸 목소리가 아닙니다! 세레지아 양입니다!]성검의 말에 세레지아가 빙의되어 있는 영혼검을 살펴보았다.
[아, 아… 음…….]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신할 수 있었다.
성검의 말대로 세레지아의 목소리였다.
힘 있고, 또박또박한 세레지아의 평소 목소리와는 달리, 나른하고 힘없는 목소리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웬 처녀 귀신 흉내를 내려는 성검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세레지아?”
세레지아를 불러보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침묵하는 영혼검을 잠시 지켜보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아우부야, 어떻게 뭐 응급조치라도 해 봐야 되는 것 아닐까?”
[무슨 응급조치입니까? 손잡이에다 대고 인공호흡이라도 해 보시게요? 뭔가 말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 저러고 있는 걸 겁니다. 말을 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 보시죠.]성검의 말대로 영혼검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고 잠시 기다려 보았다.
세레지아의 목소리는 1분에 한두 마디씩 들려왔다.
의미 없는 웅얼거림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목소리의 발음이 정확해져 갔다.
[아… 으… 용, 용사, 용사님…….]한참을 웅얼거리던 세레지아가 마침내 제대로 된 단어를 말하는 데 성공했다.
“어, 세레지아. 나 여기 있어. 천천히 말해 봐.”
[소원, 소원이 있습니다.]침묵하다 며칠 만에 목소리를 낸 세레지아가 소원을 언급했다.
혹시 그녀가 다시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검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소원을 말하는 걸까 싶어 긴장했다.
만약 그렇다면 키리키리에게서 그 방법을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상당한 비용이 들지도 모르지만, 세레지아가 그걸 원한다면 기꺼이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세레지아가 완전히 검과 동화되어, 검에 의지를 깃들게 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보다 세레지아가 계속 나와 대화할 수 있었으면 싶었다.
[용사님…….]“그래, 무슨 소원이든 편하게 말해 봐.”
[…과자.]“어?”
[과자가 먹고 싶습니다.]황당함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세레지아는 과자를 먹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했다.
성검이 설명했다.
[검과 동화되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이 발현된 모양입니다. 삶에 대한 집착이나 그런 것이 떠오르면서 생전에 좋아했던 과자가 먹고 싶었나 보죠.]보통 그러면 가족이 떠오르거나, 못다 이룬 꿈이 떠오르거나 하지 않나?
하다못해 농구가 하고 싶다거나.
느닷없이 과자라니.
과자로 제사상이라도 차려 줘야 되나.
* * *
[34층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34층 관문이 시작됩니다.]설명 : 당신은 마계 ?? ???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백 년에 한 번씩 지역 내 모든 악마를 한공간에 몰아넣고, 대회의 우승자만이 마왕에게 도전할 기회를 얻는다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 ???는 언제나 강력한 마왕을 배출해 왔습니다.
현재 ?? ??? 지역을 사백 년째 지배하고 있는 현 마왕은 ?? ??? 지역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당신은 본선을 통과해 ?? ??? 예선 지역 내 가장 우수한 도전자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었습니다.
이제 본선 통과자들과 겨루어 그들 중 가장 강한 자임을 확인하고, 마왕이 기다리는 도전의 장으로 나아가십시오.
마지막으로 ?? ???의 지배자에게 도전해 당신이 ?? ???에서 가장 강력한 악마라는 사실을 증명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결선 무대 통과.
내가 소환된 곳은 널따란 공터였다.
공터는 31층부터 늘 그래 왔듯, 검붉은색으로 가득한 지하 공간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을 꼽자면, 32, 33층과는 달리 이곳에는 단 한 명의 악마만이 눈에 보였고,
“여어, 신참, 안녕?”
그 태도가 매우 느긋했다는 것이었다.
내게 인사를 건넨 악마는 바닥에 옆으로 누은 채,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허점투성이의 자세였지만, 그 허점을 공략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악마는 나와 싸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투지도 경계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많이 의외인데.”
“뭐가.”
“이 밑 구간의 악마들은 대부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이렇게 평화로운 광경은 생각지도 못했어.”
눈앞에 누워 있는 악마뿐만이 아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넓은 공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악마들 모두 무기력하게 누워 쉬고 있었다.
내가 마력을 넓게 퍼뜨려 그들을 탐지했음에도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 모인 악마들 모두 천문학적인 수의 악마를 죽여 가며 이곳까지 올라왔음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의아한 상황이었다.
“그럴 수 있지.”
뒤이어질 악마의 말을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악마는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담배만 피워 대었다.
“…내가 듣기로, 여기선 증표를 더 모으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그렇지.”
“그럼 여기선 뭐 하는 거지? 그냥 바로 마왕에게 도전하러 가면 되는 건가?”
악마는 내 질문을 듣고도 딴청을 피웠다.
입에 물린 담배가 다 타들어 가고 나서야,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뭐… 어쨌든 안내역을 맡았으니, 기본적인 건 설명해 주마. 여기선 증표를 모을 필요가 없어. 마왕에게 도전을 원하면, 그 즉시 소환진이 나타날 거다. 그게 끝이야.”
“그럼 여기선 뭐 하는 거지?”
조금 전 했던 질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반복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질문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악마들끼리 겨루면서 자신의 힘을 가늠하는 거지. 더불어 마왕에게 도전하기 전, 실력을 더 가다듬기도 하고.”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지, 뭐.”
잠시 기다렸지만, 악마는 그렇지, 라는 말 뒤에 이어질 설명을 하지 않았다.
결국 재차 질문해야 했다.
“왜 이렇게 태평한 거지?”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어. 여기 모인 악마들은 마왕에게 도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했었어. 대련을 반복하며 서로의 힘을 확인했지. 그리고 우리 중 가장 강한 악마가 누군지 정했지. 그렇게 선정된 악마는 마왕에게 도전했고.”
“그런데?”
“그런데는 무슨 그런데야. 도전하는 족족 악마들이 죄다 마왕에게 죽어 나간 거지. 말했지만, 마왕에게 도전한 악마들은 이곳에서도 가장 강했어.”
그렇기에 포기했다.
“정진하기보다는 포기했다는 거네.”
자신들보다 강한 악마들이 마왕에게 도전했지만, 모두 죽어 나갔다.
이곳에서 다른 악마들과 대련하며 실력을 끌어 올려도 결국 마왕에게 죽을 게 뻔하니, 도전하지 않는다.
도전하지 않으니,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하나둘 포기하다 보니, 결국엔 다들 노력을 그만두게 되었다.
흔한 이야기다.
“그렇지, 뭐.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지루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
기시감이 들었다.
프로게이머 시절, 다른 구단의 숙소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프로 리그 최하위 등수에 곧 해체될 거란 소문이 분분했던 구단에.
그때 그 구단의 선수들 꼴이 딱 이러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패배가 예정되어 있어 아무리 도전하더라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 도.
이들은 노력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노력하지 않는다.
타성에 젖어 멍청하게 시간만 허비한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치미는 모습이었다.
굳이 이들을 공격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이들은 적도 사냥감도 아니었다.
성장을 위한 샌드백조차 되지 못했다.
길 한편에 널브러진 시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바로 마왕에게 도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눈앞에 소환진이 나타났다.
튜토리얼의 포탈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보였다.
“신참, 바로 도전하러 가게? 가지 말지, 죽을 텐데. 마왕 자리가 그렇게 탐나? 그냥 여기서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게 어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행사가 끝나면 한자리 얻을 수 있을 텐데.”
악마가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말했다.
과연 저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처음 보는 내 목숨을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흙바닥에 누워 지렁이처럼 꿈지럭거리고 있는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걸까?
어차피 안 되는 일이라고, 이쪽이 더 효율적이고 편한 길이라고.
그렇게 자위하고 싶은 걸까.
악마의 의미 없는 만류에 대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말없이 소환진에 올라섰다.
소환진에 올라서자, 내 주위가 빛에 휩싸였다.
* * *
빛이 잦아들고 시야가 회복되자, 달라진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내 눈높이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거대한 옥좌가 있었고, 그 옥좌에 앉아 있는 거대한 악마 하나가 보였다.
[34층 마지막 관문에 진입하셨습니다.]“참으로 오랜만의 도전자로군. 어서 와라.”
높은 옥좌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악마는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26층에서 만났던 마왕이었다.
“너도 결국 재활용 신세구나.”
“그게 무슨 의미지?”
이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26층에서 등장했던 ‘마왕’과 34층의 마왕이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같은 호칭을 가지고 있었고, 악마들에게서 들은 마왕에 대한 정보와 내가 직접 본 마왕의 모습 또한 일치했다.
그래서 충분히 예측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내 손으로 죽인 상대가, 그 일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저기 살아 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저 마왕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일 테니까.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뿌리쳤다.
튜토리얼에 구속된 마왕의 운명이 기구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그녀와 동일시해 여길 필요는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내 무료함을 달래 줄 도전자가 나타난 건 분명 기쁜 일이나, 궁금하구나. 어쩌다 너같이 약한 녀석이 이곳까지 올라온 거지?”
마왕의 말에 헛웃음이 찼다.
옥좌에 앉아 있는 마왕에게선 아무런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에 만났던 올폰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방금 전 만났던 악마 또한 마찬가지겠지.
당연하다는 듯 결과를 확정 짓고, 결과 이전에 일어날 과정을 시시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굉장한 오만함이었다.
신조차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악마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말해 보아라. 어차피 결과는 자명하니, 죽기 전에 원 없이 이야기나 해 보거라. 내 무료함을 달래 준다면, 이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 죽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재밌는 일이었다.
26층에서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분명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저 마왕은 지금의 나를 보고도 저렇듯 방심하고 있다.
26층에서 나를 보았을 때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벌레를 눌러 죽이듯 쉽게 처치할 수 있을 거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방심의 대가로 역소환될 위기에 처했고, 무리해서 본신의 힘을 끌어오려 했다.
그리고 죽었다.
다시 한 번 같은 결과가 반복되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26층에서는 마왕이 본신의 힘을 소환하는 타이밍에 맞춰, 광검을 사용해 그를 단숨에 처치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싸우지 않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있다.
저 마왕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여력을 남겨 둘 만한.
그래서 마왕의 전력을 끌어내도록 유도할 만한 여유가 있었다.
차분히 저 마왕을 화나게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답을 찾았다.
“아부부야.”
[아우부츠입니다, 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