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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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35층 (5)
샘물에서 걸어 나와 옷의 물기를 짜내었다.
[24일, 2일. 6시 25분]생각보다 공략이 수월했다.
고작 25분 만에 4층 스테이지의 치유의 샘물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난이도와 별개로 동선이 긴 함정 스테이지들에 비해 한결 빠른 진행이었다.
보스룸 앞의 거대한 석문이 열리고,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산 중턱이었다.
다행히 길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산을 올라가다 보면 고블린들의 요새가 나타난다.
길을 따라 걸으며 위를 올려보자, 밤하늘에 별들이 빼곡히 보였다.
유난히 별들이 환하게 잘 보이는 곳이다.
그때도 그랬듯, 저 경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밤하늘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굳이 빠르게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고블린 왕이 있는 도시까지 가려면 시간이 빠듯할 것이다.
도시의 내성 한복판에 있을 고블린 왕을 네 시간 만에 처치하는 건, 시간상 꽤나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아무런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고블린 왕을 처치하라든가, 뭔가를 하라는 메시지가 없다.
그냥 나를 이 세계에 떨어뜨려 놓고 이대로 방치하고 있다.
3층 보스룸을 끝까지 진행한 후에도 클리어되지 않았을 때, 예상했던 일이다.
이 35층에서는 스테이지마다 개별 미션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럼 난 여기서 뭘 해야 할까.
남은 시간 동안.
어느새 요새의 성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성벽의 높이가 상당했다.
그때는 점멸 스킬로 가볍게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올라가기 막막했다.
마력을 쏟아부어 뛰어오를 수는 있겠지만, 요란한 소리가 동반될 것이다.
당연히 고블린 병사들에게 들킬 것이다.
성벽을 기어 올라가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성벽 위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거기! 인간!”
[아케민 대륙 공용어 Lv.10을 획득하였습니다.]엉?
“이 시간에 여기는 무슨 볼일이냐!”
쟤 지금 나한테 소리친 거지?
얼떨떨하게 성벽 위, 고블린 병사를 바라보았다.
병사는 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거리가 있어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고블린들은 밤눈이 밝았다.
사람과 달리, 이 정도 거리는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지금과 달리 은밀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막연히 이 자리에서 들키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하고 몸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은밀 Lv.17 을 획득하였습니다.]급히 몸을 감추는 것에 대해 신경 쓰자, 뒤늦게 은밀 스킬이 생겼다.
하지만 성벽 위 고블린은 이미 나를 발견한 상태였다.
잠시 고민하다가 성벽 위 고블린에게 대답했다.
“길을 잃었다!”
당당하게 외쳤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고블린 병사는 고개를 몇 번 가로젓고 성벽 위에서 사라졌다.
병사가 사라진 것보다도 다른 게 신경 쓰였다.
고블린 병사와 대화를 하니, 아케인 대륙 공용어라는 스킬을 획득했다.
이건 내가 이 아케인 대륙의 공용어를 이미 익히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 바벨 이전의 지식 스킬을 가지고 있던 때문인 듯싶었다.
그동안 바벨 이전의 지식 스킬은 내가 모르는 이계의 언어를 번역해 주는 마법적인 스킬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전혀 모르는 언어를 듣고, 말하고, 쓸 수 있음에도, 나는 그 언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고블린의 말을 듣자마자 이해했다.
그리고 시스템은 저 언어를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판단하고, 스킬을 추가시켰다.
만약 바벨 이전의 지식 스킬이 단순한 번역 스킬이 아니라, 해당 언어의 지식을 내 머릿속에 박아 넣는 스킬이었다면 가능하다.
한번 머릿속에 들어와 기억한 언어는, 다시 들어도 떠올릴 수 있으니까.
정말 그런 걸까.
나중에 키리키리에게 물어봐야겠다.
커다란 석문 구석에 달린 조그마한 쪽문이 열렸다.
열린 쪽문 너머에서 고블린 병사가 말했다.
“들어와라.”
잠자코 병사의 말대로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요새 안은 꽤나 조용했다.
내 머릿속 기억과 불일치되는 풍경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조용하네.”
“당연하지. 시간이 몇 신데.”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말을 하는 고블린을 보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 시간에 산에서 길을 잃은 거냐.”
“글쎄.”
“목적지는?”
고블린 병사는 조사를 한다기보다는 아는 친구에게 일상적인 걸 물어보듯 말했다.
신분을 묻거나 증표를 요구할 줄 알았지만, 고블린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쪽문을 닫고 요새 안으로 나를 안내하는 고블린에게서는 아무런 경계를 느낄 수 없었다.
목적지라.
요새 너머에 있는 고블린들의 도시의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도시.”
“그렇겠지. 무슨 일로? 역시 교역이지?”
“알아볼 게 있어서.”
고블린은 내가 알아보고자 하는 것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교역을 위해 시장 조사차 파견된 상인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고블린은 대신에 다른 것을 물었다.
“언제까지 가야 하지? 내일 오후에 도시로 가는 마차가 있다. 원한다면 태워 줄 수 있다만.”
지나치게 친절하다.
그 상냥한 마음씨 때문에 위가 쑤실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한창 4층을 진행하던 시절의 내 행보였다.
그때 나는 네 방위의 요새를 모두 불태우고, 고블린들의 병사들을 학살했었다.
그렇게 병사들의 수를 줄이고 줄이다가 도시에 침입했었다.
[회한의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뭐, 원하던 게 이런 건가.
고약한 취미네.
“미안하지만,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대신 도시로 가는 길을 좀 알려 줬으면 하는데.”
“지금?”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이 제법 촉박해서.”
고블린은 내 대답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캑캑거리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휴, 여태 숲을 헤매다가 또 바로 길을 나선다니, 인간들의 상단은 너무 빡빡해.”
[키파인 지역 토착 고블린 어 Lv.10을 획득하였습니다.]방금 전까지 고블린이 나와 대화하던 언어는 외국어였나 보다.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더니, 고블린의 토착 언어를 습득했다.
“좋아, 대신 잠시 저기 올라가서 기다려.”
고블린이 가리킨 건 망루였다.
도시 방향을 보고 있는.
“경치가 제법 좋거든. 달빛도, 별빛도 밝은 날이니, 도시가 어렴풋이 보일 거야. 장관이니까 잠시 구경하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고블린은 어디론가 가 버렸다.
지도라도 가져다 주려는 걸까.
안 그래도 되는데.
망루 위로 올라가니, 고블린의 말대로 멀리 도시가 달빛에 비쳐 보였다.
얼마 전 세웠던 목표가 흔들리고 있다.
키리키리는 내게 무리해서 달려들지 말라고 했었다.
35층 스테이지는 전투를 통해 돌파해 나가는 스테이지가 아니라고.
그게 이런 뜻이었던 걸까.
그동안 항상 주어졌던 클리어 목표가 사라지니, 이 세계에서 내가 이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애매해졌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어쨌든 전투다.
이 위에는 만나자마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적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런 적들의 힘은, 약해진 내 몸으로 감당하기에 충분히 버겁다.
그들을 만나기 전, 최대한 빨리 성장하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 저 망루 밑에 있는 고블린들은 레벨 업을 위해 최적의 적수가 되어 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호의적인 저들을 공격해야 할까?
얼마 전, 내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자문했었다.
내 대답은 아니다, 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강자니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자격이 있으니까.
지금도 그런가?
몇 시간, 며칠의 시간만 지나면 나는 위험천만한 고층 스테이지로 옮겨질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시간에 쫓기고 있는 만큼, 내게 여유를 부릴 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강자의 위치에 서 있다.
회한의 신이 이 스테이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내게 한 가지 확신을 주었다.
내 강함은 더 이상 튜토리얼에 기인하지 않는다.
물론 튜토리얼이 나를 성장시킬 계기와 방법을 준 것 맞지만, 나는 그것을 온전히 흡수했다.
내일 당장, 2년 전으로 돌아가 방구석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어렵지 않게 내 경지를 복구해 낼 수 있다.
물론 튜토리얼 밖에서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5년, 10년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35층 스테이지는 내게 그런 확신을 주었다.
늘 품어 왔던 불안이었다.
아무리 내가 잘났다고 떠들어 봐야 신들이 준 능력이고, 힘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힘이 사라졌을 때, 내가 다시 초라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안이 거두어졌다.
내가 가진 힘은 상태창에 표시되어 있는 권능이나 스킬들 높은 스탯이나 레벨이 아니었다.
덕분에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강자다.
어디에 있건.
상대적으로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대한 적들이 곁에 즐비하더라도, 내가 강자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회한의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고맙기도 해라.”
“별말씀을.”
고블린이 돌아왔다.
큼지막한 배낭 하나와 함께.
“지도는 필요 없겠지? 저 밑으로 이어지는 가도를 쭉 따라가면 된다. 보통 말을 타고 반나절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리고 이건 과일이랑 빵, 음료를 좀 넣었다. 가면서 먹어라.”
친절한 고블린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야?”
고블린은 내 말에 조금 난처해했다.
“그냥, 뭐, 신기하기도 하고, 여태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는데, 바로 떠나야 한다니 딱하기도 하고.”
“신기해?”
“인간을 보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서. 보통 인간 상인들은 저쪽 요새 문으로 다니거든.”
마치 익숙지 않은 외국인을 보는듯한 신기함이었다.
태도는 매일 출근길마다 인간을 마주치는 듯 익숙해 보였는데, 아니었나 보다.
고블린에게 배낭을 건네받았다.
“고마워.”
“별말씀을.”
한 번 들었던 말을 다시 한 번 들었다.
고블린은 도시 방향의 쪽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고블린의 시선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자리에 멈춰 서서 잠시 몸을 풀었다.
원래 도시까지 꼭 갈 생각이었던 건 아니다.
요새에서 도시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고, 내게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고블린 왕을 굳이 처치할 필요도 없어졌으니.
하지만 도시로 가야 할, 그리고 고블린 왕을 봐야 할 이유가 새로 생겼다.
고블린 왕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다.
35층이 시작된 이후로도 나는 마력을 전력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위험하기도 했고, 정신적으로 피로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으로 좋지도 않았다.
마력 증진을 위해 떼어 놓아야 할 마력도 있었다.
무엇보다 위험했다.
다시 말하지만,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를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마력을 팔다리나 허리 근육에 집중하는 대신, 몸 전체로 퍼뜨려 회로를 돌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력을 이용한 신체 일부의 경화나 강화, 보호가 아니다.
신체의 각성이었다.
팡!
땅을 박차자, 화살이 쏘아지듯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차갑게 날선 새벽바람이 얼굴로 쏟아졌지만, 그것을 견디며 계속 달려 나갔다.
고블린들의 도시를 향해서.
* * *
“푸헥, 후우.”
숨을 내쉬자, 강아지가 사레들려 헥헥거리는 소리가 절로 났다.
최대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싶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발밑에 기절해 있는 고블린들이 깨어나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했다.
다행히 둘 다 조용히 꿈나라에 가 있었다.
흐아.
진짜 힘들었다.
요새와 도시 사이에 있는 평원을 가로 지르고, 성벽을 기어올라 도시에 침투했다.
같은 방식으로 내성에도 침입했다.
그리고 고블린 왕의 침실 앞까지도.
이전에 침입했던 장소가 고블린 왕의 침실이었기에,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아올 수 있었다.
보초를 서고 있는 고블린 병사들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17레벨의 은밀을 잡아낼 수 있다면, 4층에서 등장할 리가 없다.
15레벨 이상의 은밀은 단순히 얌전히, 그리고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넘어 마력으로 기도를 숨기고 바로 앞에 서 있는 남의 이목에서 벗어나는 수준이다.
[24회 차, 2일. 7시 15분]말을 타고 반나절 걸릴 평원을 가로질러, 도시의 외성과 내성을 넘고 이곳 최심부까지 도달하는 데 고작 50분 걸렸다.
정말로 밑천까지 다 끌어다 썼다.
격한 운동의 여파로 붉게 달아오른 몸에서는 허옇게 김이 나고 있었다.
남은 마력을 사용해 빠르게 진정시켜 볼까 생각해 봤지만, 그냥 몸이 알아서 식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침실에 들어섰다.
방 안은 조금 습하고 더웠다.
약간 냄새도 났다.
커다란 방이었기에 바로 고블린 왕을 찾을 수는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청각을 이용했다.
고블린 왕이 숨소리를 찾으면 쉽게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력에 의해 강화된 청각은 미세한 소리조차 놓치지 않는다.
방 안의 모든 소음을 자각할 기세로 감각을 곤두세운 귓속에 숨소리가 들려왔다.
문제가 있었다.
숨소리가 셋이다.
나를 포함해서 셋.
침대 위에서 거친 숨을 토해 내고 있는 고블린이 둘이었다.
그제야 몇 가지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왜 왕의 침실 주변에 경비가 이렇게 적은 것인지.
방은 왜 이렇게 덥고 습한지.
냄새는 왜 이렇게 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고블린 왕은 밤일 중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고블린 왕의 어린 자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령으로 보였던 고블린 왕의 모습도.
하얀 수염이 가슴께까지 오시던데, 거 정정하기도 하셔라.
예상치 못한 난감한 상황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한참을 오도 가도 못하고 고민, 고민하다 결국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