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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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35층 (8)
[24회 차, 2일. 13시 30분]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나는 기절 내성도 없었다.
덕분에 예상한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샘물 위에 동동 떠 있었던 모양이다.
검게 물든 샘물에서 걸어 나왔다.
오염된 샘물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저 시꺼먼 게, 전부 내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뭐야, 저게.
피부로 똥을 싼 것도 아니고.
샘물과 멀찍이 떨어져 변화를 정리했다.
우선 목표로 했던 마력 회로의 성장은 성공적이었다.
딱 예측했던 만큼의 변화가 있었다.
그보다는 신체의 변화가 더 컸다.
시야를 포함한 오감이 보다 뚜렷해졌다.
피부와 근골 또한 부실했던 이전과 달리 기본적인 내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방구석 생활의 폐해로 생겼던 관절의 뒤틀림도 사라졌고, 근육의 유연성도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그에 더해 체력과 근력 스탯도 제법 올라 있었다.
무엇보다 마력을 느끼고 감지하는 감각이 예리하게 살아 있었다.
정말 무협지에 나오는 환골탈태라도 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실제로 환골탈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레벨을 올리며 오랜 시간 훈련과 성장을 반복하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평범한 폐인의 몸뚱이를 고작 몇 시간 동안 여기까지 성장시킨 것이었다.
신체의 재구성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기절하기 전 느꼈던 고통을 동반할 만한 일이었다.
덤으로 고통 내성도 많이 올랐고, 기절 내성도 1레벨이지만 얻을 수 있었다.
목표치를 약간 웃도는 성과를 얻었다고 보면 되겠다.
무엇보다 마음이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몸에 든 나쁜 것들을 죄다 토해 내서인지, 마음도 몸처럼 가볍고 고요했다.
기절하기 전,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던 고민거리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그것들을 차분히 마주 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걸어가면서 마력을 운용해 보았다.
회로를 점검하고 손가락 끝에 오러를 피워 내는 것으로 확인을 마쳤다.
역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35층에 진입하기 이전의 몸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 정도면 더 이상 부족함에 허덕거릴 일은 없다.
마력으로 피부에 남아 있는 오물들을 털어 내고 젖은 옷을 말려 내었다.
악취가 굉장했지만, 그 또한 털어 내었다.
평소 이런 일이 있을 때는 탈취제를 사용하거나 아예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지만 인벤토리도, 아이템도 없는 지금, 이렇게 하나하나 말리고 냄새를 날려 버려야 했다.
나름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 꼴이 드디어 사람 꼴이 되었다는 확신이 든 뒤, 비로소 샘물을 떠나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곧 5층 보스룸 스테이지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문을 마주하자, 다시금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것을 여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그냥 이곳에서 시간을 때우다 6층으로 넘어가는 것이 맞을까.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만약 이 문을 열지 않는다면, 만약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 판단을 계속해서 아쉬워할 것이다.
내 망설임은 이디와 관련된 문제였지만.
후회는 이디와 별개의 문제다.
이건 내 문제였다.
손에 힘을 주어 힘차게 문을 열었다.
거대한 석문이 열리고,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나를 반겨 주었다.
“오랜만의 도전자로군. 케륵, 케륵.”
* * *
전에 5층 보스룸에 왔을 때처럼, 눈앞의 적을 처치하라는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앉아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녀와 마주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 달타르.”
“케륵?”
무심코 튀어나온 내 말에 이달타르의 눈이 번들거렸다.
물론 이달타르의 눈깔은 언제나 번들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번들거렸다.
“내 이름을 알고 있군. 케륵, 케륵. 내 동족들에게 들었나?”
그녀를 무심결에 이디라고 부를 뻔했다는 사실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달타르라는 본명과 이디라는 애칭은 그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었다.
“케륵, 그렇다면 나에 대해 딱히 좋은 말은 못 들었겠군그래.”
이달타르는 흔치 않게, 이 튜토리얼 시스템에 대해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는 존재였다.
이 5층 보스룸에 혼자 갇혀 있어야 하는 신세이니, 어느 정도의 제반 지식은 필요할 만도 하였다.
당연히 이 보스룸 밖에 자신의 동족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내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이디는 오랜만의 도전자라고 말했다.
“나 이전에 이곳에 왔던 방문자가 있었어?”
그녀가 나 이전의 방문자를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었다.
“케륵, 케륵.”
이디는 케륵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왜?”
“그편이 더 그럴싸하지 않은가. 케륵, 케륵.”
이디는…….
아니, 이달타르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 케륵거리면서 웃었다.
자꾸 내 속에서 눈앞의 이달타르와 고룡의 사당에서 죽어 가던 이디가 겹쳐져 보였다.
제약에 자유가 구속되어 있고,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기억조차 조작되어 있고, 그나마 남은 과거도 떠올리려 노력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모두 알고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별수 없다는 듯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들이 눈앞에 겹쳐졌다.
이런 혼동 속에서 분노와 슬픔이 왈칵왈칵 치솟아 올랐다.
그 감정들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했다.
눈앞의 이달타르도 이디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감정에 휩쓸려서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이 분노와 슬픔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지, 감정에 잡아먹혀 날뛰고 싶은 게 아니다.
“케륵, 너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도 된다. 무엇 때문에 내 사정에 그리도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만.”
“케륵, 케륵, 이번 도전자는 꽤나 상냥한 편이로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녀의 말이 오히려 나 자신을 더 깊은 감정의 구덩이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목을 고르고 말했다.
“큼, 흠, 남의 생각을 섣불리 때려 맞히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닌데.”
언젠가 그녀가 해 줬던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남의 감정을 잘 읽어 내는 편이다. 케륵. 어릴 때부터 동족들에게 배척되어, 먹고살려면 남의 이목을 신경 써야 했던 탓에 익숙하지. 대전사가 되어 신에게 힘을 받은 이후로는 거의 완벽하게 남의 감정을 읽어 낼 수 있게 되었지.”
그녀에게 힘을 준 신이 누구냐고 묻지는 않았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함을 알고 있다.
“케륵, 무슨 이유로 내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오늘의 이 만남이 즐거웠으면 한다. 이 시간이 끝나면 기억하지 못할 일이라도, 지금 당장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 그러지.”
그녀의 말이 맞았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었다.
“그래서 말이다. 케륵, 케륵.”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이달타르가 돌연 케륵거리며 수줍어했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그녀가 앞으로 할 말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
“혹시 나와 짝짓…….”
“안 해.”
“케륵.”
역시 또 그거냐.
그 말 하려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자는 둥 하는 말을 한 거냐, 설마.
그녀가 말한 즐거운 시간이라는 것이 내 생각과 조금 다른 의미라는 걸 깨닫자, 그녀가 했던 말이 다르게 들렸다.
“케륵.”
즐거운 시간은 개뿔, 이달타르는 세상이 무너진 듯 울상을 짓고 있었다.
“뭘 또 그렇게 풀이 죽고 그러냐. 이거 내가 잘못한 거냐? 내가 잘못한 거야? 그렇게 불쌍한 표정 지어도 안 할 거거든.”
내 말에 이달타르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표정을 폈다.
“케륵, 동정심 유발 작전도 안 통할 줄이야. 아깝다.”
* * *
이달타르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었다.
여성 리자드 맨… 리자드 우먼들은 유난히 내게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 리자드 맨 종족은 강자, 그리고 승자가 모든 상황에서 우위권을 갖는다.
이전에 이달타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나보다 강자였고, 당당히 내게 짝짓기를 요구했었다.
물론 나는 거절했고, 이달타르는 그 사실에 속상해하고 어이없어 했다.
리자드 맨이라는 종족이 그렇다.
강자는 존중받아 마땅하기에, 강자의 요구는 대부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한다.
짝짓기 상대를 고르는 기준 또한 강한 힘이 전부다.
그렇기에 강자는 상대에게 편하게 요구할 수 있다.
반대로 약자는 죽을힘을 다해 마음이 드는 상대에게 달려들어 승리하려고 한다.
승리를 통해 당당히 요구할 권리를 갖기 위해서.
혹은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분전해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설명만을 놓고 보면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가 싶다.
실제로도 리자드 맨이라는 종족 자체가 머리에서 나사가 좀 많이 빠진 종족이다.
이달타르 정도면 굉장히 침착하고 이성적인 편이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예전에 나는 리자드 맨의 암수를 구별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히 구별할 수 있게 된 지금, 여성 리자드 맨들이 유난히 내게 공격적인 것을 보고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그냥 생긴 게 마음에 든다고?”
“케륵, 케륵. 이상형이다. 잘생겼다.”
이런, 미친.
이달타르가 말하기를, 그냥 내 얼굴이 리자드 우먼들에게 먹히는 생김새란다.
리자드 맨에게 통용되는 잘생긴 인간의 얼굴이 도대체 무슨 얼굴이냐, 도대체.
“딱 그대의 얼굴이다. 케륵.”
아무래도 리자드 맨들 사이에서는 내 얼굴이 연예인급으로 먹히는 모양이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문득 예전에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그때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고 칭찬한 것 때문에 그녀가 내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말을 들어 보니, 착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든, 그녀는 달려들 태세가 만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케륵.”
이달타르가 어깨에 걸쳐 두었던 창을 쥐었다.
“하지 않겠는가?”
목소리를 잔뜩 깐 그녀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목적어를 생략하지 마라!”
“중의적인 의미였다. 케륵. 어차피 내가 이기면 할 거 아닌가?”
“안 해!”
“케륵, 케륵, 케륵.”
이달타르는 재미있다는 듯이 케륵거리며 웃었다.
“결투도 안 할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 할 생각이지.”
그녀만 한 대련 상대는 쉽게 찾을 수 없다.
강한 힘에 능숙한 창술, 교활한 판단력.
거기에 이름 모를 신의 권능까지 지니고 있다.
상층으로 올라가도 그녀보다 강한 상대는 있었어도, 그녀만큼 유익한 대련을 할 수 있는 상대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즐겁게 이야기하며 떠드는 것 이상으로 몸을 부딪치며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
애초 전사로서 태어나는 리자드 맨 종족이다.
짝짓기가 연관되어 있지 않더라도 언제나 전투를 선호한다.
“케륵, 무기는 없는 모양이군.”
“안타깝게도.”
대신 양쪽 손등 위로 길게 오러를 뽑아내었다.
마력의 소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무기 위에 마력을 맺히게 하는 건, 매 순간 끊임없이 마력을 소모한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히 정제된 오러는 형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에는 그리 많은 마력을 소모하지 않는다.
양쪽 손등 위로 뽑아져 나온 클로의 길이와 두께, 예리함을 확인했다.
질럿이 따로 없었다.
“케륵, 대단한 도전자였군.”
이달타르가 기껍다는 듯이 말했다.
“케륵, 하지만 방심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의 나는 평소에는 쓸 수 없었던 힘을 꺼내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부디 허무하게 죽지만 말거라.”
“쓸 수 없었던 힘이라고?”
“케륵, 케륵.”
더 말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숨겨진 힘이 더 있었던가.
그녀는 특이한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키고, 자신의 몸을 연기로 만들어 무적 상태가 된다.
거기에, 저주에 가까운 힘을 무기에 둘러 공격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모르는 힘이 더 있다니.
그녀는 정말 어느 신의 전직 사도라는 되는 걸까.
“좋아,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