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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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35층 (10)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으허허허, 너무하긴, 편법으로 통과하려는 자네가 너무하네.”
나무문에 착 달라붙어 온몸으로 길을 막고 있는 수도승이 말했다.
생각했던 대로, 시간 내에 33번 방까지 도달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한 가지 편법을 생각해 냈다.
별거 아니었다.
그냥 방 안의 수도승을 무시하고 다음 방으로 도망가는 거였다.
방금 전 지나쳐 온 25번 방을 그렇게 지나쳤다.
그리고 25번 방의 수도승이 소리치는 걸 들었는지, 26번 방의 수도승은 저렇게 문을 틀어막고 있었다.
“33번 방에는 무슨 볼일이 있길래, 그리 급한가?”
“33번 방에 무슨 볼일이 있겠어. 주지를 만나려는 거지.”
“그렇다면 천천히 방을 통과해 만나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자네가 33번 방까지의 모든 방을 무사히 통과한다면 말이지. 으허허.”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아주 얄미웠다.
저 크게 벌린 입으로 파리 한 마리 들어갔으면 원이 없겠는데.
“시간이 없어 그래. 진짜로 없다고.”
시간이 없음을 호소했지만, 그 말로 수도승이 비켜 줄 거라 생각되진 않았다.
지금껏 지나쳐 왔던 수많은 수도승이 내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이 수도승도 그랬다.
“으허허허, 그렇구만. 세상은 사람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지. 으허허허.”
어지간하면 포기하지 않고 뚫고 나가겠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어떻게든 주지 앞에 도착하더라도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플랜 B를 선택할 시간이다.
“오, 드디어 결심이 섰는가? 어떤 결심인가?”
마음을 굳힌 나를 보고 수도승이 반색하며 물었다.
“일단.”
“음?”
“한판 하자.”
“으허허허, 나야 좋지. 그럼 시작하세.”
수도승이 발을 구름과 함께 13층에서의 스물여섯 번째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으허허허, 좋구만, 줗아.”
뭘까.
이 이기고도 진 기분은.
여기저기 피를 흘리면서도 좋다고 웃는 수도승을 보니, 도무지 누가 이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물론 내가 이겼다.
방구석으로 가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음? 다음 방으로 넘어가지 않는가?”
“시간이 없다니까 그러네. 누구들 덕분에.”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지와 만날 수 없다면, 주지의 힘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단서를 발견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방까지 나아가고 싶었지만, 26번 방 정도면 충분히 가까웠다.
“으허허허, 그거 미안하게 되었군.”
“미안하면 좀 조용히 있어 봐. 제발 웃지 좀 말고.”
내 말에 수도승은 소리 없이 웃었다.
소리를 죽여 웃거나, 작게 킥킥거리는 게 아니라, 똑같이 호방하게 웃고 있는데 소리만 음소거가 되어 있었다.
약 올라 미치겠네.
예전에 수도승들을 만났을 때는 이렇게 익살스러운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클리어 목표와 그에 관련된 설정이 없어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태도가 달라진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결국에는 서로의 입장과 입장이 타인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은 관두고 눈을 감았다.
주지의 힘은 이곳에서도 선명히 느껴진다.
힘은 나를 압박하는 동시에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동시에 33번 방에 있는 주지는 이 힘으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당시, 나는 이 모든 게 주지가 마력을 다루어 만들어 낸 현상으로 이해했었다.
그래서 주지가 말도 안 되는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며 놀라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마력이 아니다.
몇 가지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있었다.
키리키리가 말했던 기세라는 것.
그녀는 내가 마력을 숨기며 나 자신의 기세도 함께 숨기게 되었다고 했다.
그건 자연스러운 발전 방향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혼자였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힘과 마력을 아껴 두어야 했다.
하지만 마력의 소모 없이 기세를 방출할 수 있다면, 키리키리는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했었다.
주지의 방 안에서 시련을 겪으며 일순간이나마 내 의식을 33번 방에서 1번 방까지 확장한 적이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동안 나는 주지의 힘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대모를 만났을 때, 마왕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굉장한 압박감을 느꼈었다.
물론 그 압박감에 흥분하고 달려들려 했지만, 그 압박감은 분명 일반적인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보아도 비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만약 그것을 기세라고 본다면.
그것은 단순히 힘을 뿜어내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강렬한 존재감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보통 존재감은 그것을 느끼는 대상을 주체로 본다.
호랑이 앞에 선 사람이 공포를 느끼는 건, 그 사람이 호랑이에 대한 공포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지만, 모골이 송연해져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가 서 있었다든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사람이라든지.
무대 위에서 유난히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가수라든지.
물론 이 또한 받아들이는 사람의 선입견이나 호들갑 정도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사람이 평균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리고 이곳에서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그 존재감 또한 커진다면.
키리키리는 내가 기세를 숨기고 있다고 하였다.
나도 모르게 마력을 숨기고 아끼는 과정에서 함께 숨기게 된 기세.
다시 말해, 숨기려 하지 않는다면 기세는 굳이 숨겨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 감이 잡히지 않지만, 기세를 숨기지 않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기세를 의도적으로 더 내보이고 가공하는 것이다.
이건 주지와 대모 정도를 참고할 수 있겠다.
역시 주지를 만났어야 하는데.
아쉬운 대로 멀리서 느껴지는 주지의 힘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더불어 내 속에 느껴지는 힘도.
그때 내 간격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존재감을 느끼고 눈을 떳다.
“뭐야.”
“굉장한 집중력이구만. 여러 번 불렀었네. 그 와중에 딱 선을 넘어오자마자 알아차리다니. 이게 자네의 간격인 모양이구만. 으허허허.”
껄껄 웃고 있는 수도승은 정확히 내 간격 안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계속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니 수도승이 설명해 주었다.
“자네가 말했던 시간이 다 되었네. 가 봐야 되는 것 아닌가?”
[24회 차, 6일. 18시 59분]확실히 시간이 다 되었다.
14층으로 이동되기 직전이었다.
이만큼이나 지난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나도 많은 공부가 되었네.”
“응?”
“자네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오락가락하며 그 모습을 바꿔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귀중한 경험이었지. 조금 버티기 힘들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네. 감사하지.”
곁에서 내가 뿜어내는 힘을 관찰하고 있었구나.
생각해 보니 나 혼자 관조하기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알려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았다.
“귀한 경험을 받았으니, 그만한 사례를 해야겠지.”
“아니, 뭐 따로 안 줘도 돼.”
어차피 가져가지도 못하고.
무기 같은 것도 딱히 필요 없다.
“내 뭐라도 귀한 걸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이 영단 밖…….”
수도승의 말이 끊기고 내 몸이 이동되었다.
14층 스테이지였다.
“으아아아!”
영단!
영단을 줄 거였으면 빨리 줘야지!
영단은 그냥 먹고 오면 되는 건데!
젠장.
시간이 30초만 더 있었으면 영단 하나 꽁으로 먹는 건데.
허탈한 마음에 바닥에서 주저앉은 채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다음 할 일을 확정했다.
우선은 수련을 계속한다.
다음으로 내 수련 성과를 확인하고, 그 결과를 알려 줄 조력자가 필요하다.
조력자가 될 만한 사람이 있는 스테이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장 가까운 건 역시 16층이었다.
던전 안에 들어온 여러 사람 사이에 도플갱어가 하나 섞여 있던 그 스테이지.
제법 수준 높은 사람들이 여럿 나오는 데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할 일 없이 빈둥거려야 하는 16층 스테이지야말로 조력자를 구하기에 적합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16층까지 이동될 테니, 그동안 수련이나 더 해 두자.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 * *
“라이트.”
마법사의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공동 안에 불빛이 비추었다.
챙 넓은 고깔모자에 나무 지팡이를 든 나이 든 남자의 외형.
기억하는 그대로의 마법사였다.
공동 안에 보이는 건 성기사, 기사, 마법사, 용병, 모험가, 그리고 나까지.
총 여섯 명이었다.
“도플갱어! 도플갱어가 사라졌어! 도망친 건가?!”
용병이 소리쳤다.
저 소음 공해처럼 들리는 목소리도 그대로였다.
“도플갱어는 아직 이곳에 있을 터. 조심하시오. 아직 내 신물이 이 공간에 악마가 존재함을 경고하고 있으니.”
성기사가 도플갱어의 존재를 알리는 것 또한 똑같았다.
모험가가, 도플갱어가 투명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음을 지적했고, 마법사가 투명 감지 마법을 사용해 주위를 확인했다.
생각해 보니 저 마법사가 도플갱어였잖아.
애초에 무언가를 감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마법사였으니, 도플갱어 입장에서는 마법사를 처치하고 그 모습을 뒤집어쓰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기는 했다.
설마 신성력을 품고 있는 성기사의 몸을 차지할 생각은 못 했을 거고.
기사는 근접 전투력이 너무 높아 어둠 속에서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보니 그럭저럭 해답이 보인다.
그때는 감도 안 잡혔는데.
내가 고민하는 와중에도 사람들 간의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도플갱어는 사람을 죽이고 그 모습을 빼앗는다고 합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천장이 무너지던 와중 한 명이 도플갱어에게 당한 모양이군요. 그새 모습을 빼앗기다니, 놀랍군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실력자인데요. 역시 상위 악마 종입니다.”
저 기사 녀석의 설명충스러운 해설도 여전했다.
이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사람들을 돌아보는 와중에 마법사와 눈이 마주쳤다.
마법사는 당황스러워하며 눈을 돌렸다.
전에도 이랬다.
그리고 모험의 신이 나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본다는 메시지가 나타났었지.
여기저기서 마법사가 도플갱어라는 정황이 튀어나오고 있다.
정답을 알고 봐서 그런가.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그래서 누가 도플갱어냐는 주제로 나아갔다.
마법사가 던전 공략 중 내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운을 띄웠고, 기사와 용병이 열심히 몰고 갔다.
가장 시끄러운 두 사람 모두 내가 도플갱어라고 지목하니,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고 최대한 빨리 나를 공격해 제거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콕 집어 나를 지목했다.
전보다 더 빠른 결론이었다.
이번에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더 수상해 보였을 것이다.
기사와 용병이 검을 뽑아 들었고, 그 뒤로 모험가와 성기사, 마지막으로 마법사가 가장 뒤에 섰다.
“이 간악한 악마! 네가 뒤집어쓰고 있는 그 모습의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를 죽여 그 시체를 신께 공양하고 그 몸의 원주인의 한을 풀어 줄 것이다! 네 사악한 영혼은 신의 불꽃 아래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될 것이다!”
성기사가 외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기사가 말했다.
물론 도플갱어를 향한 말이니 내가 기분 나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빴다.
“으아아아! 국왕 전하를 위하여!”
식상한 대사를 외치며 달려드는 기사를 필두로 일행이 전투에 돌입했다.
물론 힘으로 모두 진압해 주었다.
* * *
“믿지?”
“예, 믿습니다.”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말했다.
옆에 명치를 움켜쥐고 뻗어 있던 용병이 ‘이 미친놈이?’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역시 이 기사는 태세 변환이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