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199
x 199
튜토리얼 61층 (3)
걸으면서도 소설책을 읽고 있는 호치 놈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무리 내 핀잔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책을 꺼내 들었다 하더라도, 평소의 호치라면 재밌게 책을 읽을 것이다.
그만큼 호치는 소설책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 동안 책을 읽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 호치는 책을 꺼내 들고 있을 뿐,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책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시선은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의 모습은 마음이 심란해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의아한 일이었다.
그를 심란하게 할 만한 일은 많지 않았다.
나와 달리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대개 무시하고 지내는 호치의 성격상 더더욱 그랬다.
그는 튜토리얼의 스테이지들도, 신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별개로 그에게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신들에게서 권능을 훔쳐온다는 미친 짓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세상 밖에 있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결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데 그래.”
호치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침묵했다.
기다려 보았지만, 호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내 물음을 듣기 전과 똑같이 책을 읽는 시늉을 하면서 앞으로 걷고 있을 뿐이었다.
책에 집중해서 내 말을 듣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려나 싶었다.
나도 무리해서 그의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호치의 동요는 높은 확률로 결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결계에 다다르면 알게 될 일이었다.
혹시 결계가 아닌 다른 것 때문에 심란해하고 있더라도, 찾아보면 그 원인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계에 거의 다다랐을 때, 비로소 호치가 입을 열었다.
마치 그사이 공백에 있었던 침묵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세레지아 양이 드러났어.”
호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했다.
호치의 대답에 곧바로 응답하지 못했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무심결에 멈춰 설 뻔한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태연을 가장하고 싶었지만, 호치에게 내 동요를 숨길 수 없었다.
나도, 호치도 침묵했다.
“신경 쓰지 마.”
결계의 문 앞에서 호치가 말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호치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다행이라는 안도와 함께 과거의 잘못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일었다.
“호치야.”
“어, 왜.”
“불편하면 먼저 가 있어. 내가 처리하고 갈게.”
내 말에 호치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았다고 대답한 뒤 뒤돌아 거주 지역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잠시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감정의 동요만으로 폭주하는 힘이 새어 나오던 시기는 지나갔다.
하지만 결계를 복구해야 하는 지금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건 이래저래 위험성이 높다.
오늘은 이래저래 죄책감을 느끼는 일이 많다.
죄책감을 너무 느껴서 명치가 따끔거릴 정도다.
60층에 갇혀 정체되어 있던 시절,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핑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내가 걸고 있던 간절함과 정성은 그대로 증오와 광기가 되었다.
그렇게 미쳐 가는 와중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개념은 완전히 벗어 버렸다.
오로지 효율과 결과만을 바라보며 자행했던 실험들은, 지금에 와서는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할 법한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실험 대상은 내 몸과 정신이었고, 실험이 계속됨에 따라 나는 더 피폐해지기만 했다.
정말 하다 하다 지쳐서 모든 걸 놓아 버리고 다시 매달리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여러 번 죽고 다시 태어났다.
5년의 세월이었다.
60층에 갇힌 뒤 이연희가 1층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이.
그리고 그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거의 매 순간을 시간 가속 속에서 살아왔다.
최소한 수백 년이다.
어느 순간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놓아 버렸으니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개량된 시간 가속의 성능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 미친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만 실험을 시도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 내 눈에 보이던 모든 것을 가져다 실험을 시도했다.
드러나지 않게 잘 묻어 둔 것도 많고, 완전히 소멸되어 사라진 것들도 많다.
뒤늦게나마 해결한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수십 차례에 걸쳐 무너지고 다시 지어진 거주 지역과 이연희에게 선물했던 목걸이, 그리고 저 호치 녀석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라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과거의 기억들이 앞으로의 내 행보를 방해하지 못할 거라는 것 또한 확신한다.
다만, 나는 그 과거를 후회했다.
* * *
결계 중심부에는 거대한 검 대신 여성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 결계 중앙에 덩그러니 보이고 있으니, 그 모습이 상당히 기괴했다.
아무리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도 그랬다.
“세레지아.”
“네, 용사님.”
예전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
“오랜만이네.”
“정말 그렇습니다.”
세레지아가 맞는 것 같았다.
감지되는 권능 또한 시간 역행 이외에는 다른 게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결계의 핵심 축이 되고 있던 세레지아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좋아 보이시는군요. 방법은 찾으셨나요?”
그녀의 말에 그녀의 기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슬슬 위장이 콕콕 찔리는 것을 넘어 쥐어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찾았어.”
“다행입니다. 무슨 일로 제 예전의 자아를 깨우신 겁니까?”
세레지아의 말에 조금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사실 내가 깨운 게 아니야.”
세레지아에게 결계에 가해진 신의 권능에 대해 설명해 주고, 이 현상을 이해시켰다.
내 말을 들은 세레지아는 그저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그렇다면 결계에 문제는 없겠군요.”
“그렇지. 그저 과거로 역행한 네 상태를 다시 돌리면 끝나는 일이야. 권능을 파훼하는 게 까다롭긴 하지만, 못 할 일은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복구해 주십시오.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있는 건,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결계에 가해진 권능을 파훼하기 시작했다.
결계 중앙에 떠오른 세레지아의 얼굴은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결계가 완전히 복구되기 전, 세레지아가 말했다.
“다행입니다. 좋아 보이십니다, 예전처럼.”
“그래, 다행이지. 고마워.”
세레지아가 말하는 예전이란, 아마 그녀를 허리에 차고 스테이지를 공략하… 아니, 세레지아를 허리에 찼다니까, 왠지 좀 이상하다.
어찌 되었건 그녀와 함께 스테이지를 공략하던 그때를 말하는 거겠지.
최소한 세레지아가 그때를 좋은 추억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용사님.”
“응.”
“방법은 찾으셨습니까?”
“찾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확신이 담긴 내 대답에 세레지아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나도 마주 웃어 보였다.
오히려 세레지아와 만난 후, 마음이 더 진정되었다.
결계가 복구되자, 세레지아는 곧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결계 위에 꽂힌 태산처럼 거대한 검.
저것이 세레지아의 본모습이었다.
사람이 아닌 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세레지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검으로 생각한다는 증거였다.
새삼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레지아가 바라던 검술의 지향점은 다변하는 검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속도와 판단력, 그리고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검의 끝은 저렇듯 압도적인 중량과 힘을 나타내었다.
과정과 결과의 상이함에 어색한 부조화를 느꼈다.
* * *
세레지아와 만나 이야기한 지 3주가 지났다.
그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용용이가 깨어났다.
나도, 호치도 그 사실에 기뻐했다.
용용이도 기뻐했다!
용용이가 잠에서 깨어났을 뿐이지만, 거주 지역의 분위기는 한결 밝아졌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맑아지는 듯했다.
하루 종일 나와 호치 모두 용용이에게 붙어 있었고, 용용이도 온종일 셋이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에 신나 했다.
그리고 오늘은 용용이가 잠들었을 때 나 혼자 다짐했던 대로 용용이를 데리고 61층으로 소풍을 나갔다.
용용이는 60층을 벗어나 처음 가 보는 곳으로 놀러 간다는 사실에 크게 흥분했다.
어제 아침부터 외출복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자신의 크로스백을 이런저런 잡동사니로 빵빵하게 채운 채 오늘을 기다렸다.
용용이는 61층에 도착하자마자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마치 산책 나와 신이 난 강아지 같은 모습이라 귀여웠다.
61층의 척박한 환경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입구 구간에서 한 시간쯤 놀다가 얼음 여왕의 궁전으로 향했다.
* * *
“저 아이가 네 아들이구나. 알았다.”
얼음 여왕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교 부리는 손주를 보는 눈이었다.
“도전자로 키우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저렇게나 귀여울 줄은 몰랐구나.”
할멈은 호치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용용이를 보면서 말했다.
두 사람이라면 마법을 쓰든, 뭘 쓰든 눈사람 이상의 것을 창조해 낼 수 있지만, 둘은 열심히 눈을 굴리고, 손가락으로 얼굴 표정을 그려 가며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아빠! 이것 봐! 삼촌이 당근 가져왔어!”
호치 녀석이 챙겨 온 당근으로 눈사람 코를 만들던 용용이가 외쳤다.
용용이는 눈사람의 코를 만들어 줄 재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순수하게 좋아했다.
그나저나 호치 녀석도 용용이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 같다.
당근 챙겨 올 생각은 또 어떻게 한 거지.
“보기 좋구나. 정말 좋아.”
“고마워, 할멈.”
“누님.”
얼음 여왕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누님은 무슨 누님인가.
단군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세울 때도 살아 있었을 양반이.
누님이라고 부르느니, 차라리 전 여왕이라고 부르는 편이 속 시원하다.
“누님.”
“음… 그건 좀…….”
“누님.”
“알았어. 누님.”
내 말에 할멈은 기껍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파묻으며 거대한 얼음 문이 열렸다.
“여기 다 모여 있었구만!”
거대한 용암 거인이 얼음 궁전 내부로 들어왔다.
거인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에도 얼음 궁전은 무너지지도, 녹지도 않았다.
거인도 그 사실에 개의치 않고 우리 주변으로 와 앉았다.
자리에 앉았을 뿐이지만, 땅이 무너지는 듯한 진동이 울렸다.
“왜 여기서 모이는 건가! 내 용암의 전당에 모여도 될 것을!”
“우리 용용이가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걸 좋아해서.”
“오! 이 아이가 그 해츨링인가 보군!”
영감은 신기하다는 듯 용용이를 이리저리 쳐다보았다.
용용이는 낯선 시선에 몸을 움츠리고 경계했다.
영감은 미소를 지으며 할멈의 옆에 가 앉았다.
“영감도 기분 좋아 보이네.”
내 말에 영감이 기분 좋게 웃었다.
저 영감의 웃음소리는 지나치게 컸다.
나는 미리 알고 대처했지만, 용용이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내게 달려와 안겼다.
“귀 아파!”
그 모습에 용암 거인이 다시 껄껄 웃었다.
“그 긴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 비로소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같은 세계에 갇혀 있는 건 매한가지이나, 행동의 자유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수밖에. 다시 한 번 감사하마, 왕이여.”
“감사는 무슨. 내가 해야 할 일인데.”
“그래서 말인데, 이 세계에선 언제쯤 나갈 수 있는 건가.”
굳이 잘 놀고 있는데, 이렇게 진지한 문제를 꺼낸다.
대답해 주지 않으면 대답할 때까지 물어볼 것을 알기에 순순히 대답해 주기로 했다.
“얼마 안 남았어.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오! 그런가! 그 도전자가 거의 도착한 모양이군그래!”
이연희는 얼마 전, 35층을 클리어하고 36층에 도착했다.
무사히 큰 고비들도 넘겼고, 큰 사고가 없다면 어렵지 않게 60층까지 도착할 것이다.
“거의 다 오기는 했지. 하지만 그녀와 별개로 이곳에서 나갈 날이 머지않았어.”
“도전자와 별개로 말인가? 어떻게?”
“뭘 어떻게야. 힘으로 부수고 나가는 거지. 앞으로 반년, 길어야 일 년이야. 그 안에 도전자가 도착하지 않으면 우리끼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