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10
x 210
튜토리얼 40층 (11)
[스테이지 미션이 갱신됩니다.] [클리어 조건]-이에라이 호수 지역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조사하십시오.
-조사 도중 당신과 팀을 이룬 다른 소환자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보호하십시오. 보호해야 할 소환자(2/2)
-신의 사도를 도와 근원의 괴수를 퇴치하십시오.
-근원의 괴수가 품고 있는 근원의 정수를 확보하십시오.
-?
이번에는 긴 설명 없이 클리어 조건만이 변경되었다.
저 괴물이 품고 있다는 정수라는 것은 얼추 짐작하고 있었다.
괴물이 어느 정도 약해진 이후부터 그 힘이 새어 나오고 있었으니까.
위치도 알고 있었다.
괴물의 거대한 대가리 중앙 부분이었다.
어려울 것도 없었다.
“심검.”
멀리서 심검을 사용해 거대한 괴물의 몸을 토막 내었다.
칼 들고 저 괴물의 시체를 도축해야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한세월이 걸렸을 게 분명했다.
심검을 연거푸 사용하면서 괴물의 몸을 차근차근히 해체하고 있는데, 정령왕이 옆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무시했다.
아까 정령왕이 전투 도중 내가 위협이 될 리가 없다 판단하고 무시했던 것처럼.
지금의 정령왕은 내게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
변수를 만들어 내기에는 지나치게 약화되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검의 이름이 심검이라서.
정령왕이 저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기술 이름이 여드름푯이었다면 좀 민망했을 것 같다.
곧 괴물의 시체에서 그 정수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났다.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돌이었다.
그것을 마력으로 끌어당겨 시체에서 뽑아낸 뒤 내 앞으로 가져왔다.
“정수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거지?”
정령왕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그를 돌아보면서 영혼검을 검집에서 반쯤 빼었다.
[맞다. 그게 바로 근원의 정수지.]역시 상황 판단만은 빨랐다.
정령왕은 인간 계약자를 만난 적이 많아, 그들을 보고 인간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말했었다.
누군지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잘 가르쳐 두었다.
참 흥미로웠다.
이 근원의 정수라는 것에서는 익숙한 힘이 느껴졌다.
정수에서 느껴지는 힘은 정령왕의 조그마한 머리통에서 느껴지는 힘과 그리고 내 가슴속에 숨겨 둔 힘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35층을 공략하던 당시, 고블린 왕을 처치하면서 나는 이것과 같은 종류의 힘이 새어 나오는 돌조각을 입수한 적이 있었다.
정수 안의 힘을 흡수하려 해 보았지만, 그때와는 달리 힘이 끌려 나오지 않았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스테이지 미션이 갱신됩니다.] [클리어 조건]-이에라이 호수 지역에서 발생한 이상 현상을 조사하십시오.
-조사 도중 당신과 팀을 이룬 다른 소환자들이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보호하십시오. 보호해야 할 소환자(2/2)
-신의 사도를 도와 근원의 괴수를 퇴치하십시오.
-근원의 괴수가 품고 있는 근원의 정수를 확보하십시오.
-근원의 정수를 신의 제단에 바치십시오.
[모조된 근원의 정수 34]설명 : 신의 제단에 이것을 바쳐, 공헌도를 얻으십시오.
변경된 클리어 조건보다 근원의 정수의 설명창에 집중했다.
근원의 정수 앞에는 모조되었다는 말이 붙어 있었다.
고블린에게서 얻었던 돌과의 차이점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모조되었다.
시사하는 바가 많은 말이었다.
실상 튜토리얼 내의 대부분은 무언가에서 모조된 존재였다.
세계 어딘가에 존재했던 지역, 사람들, 그리고 사건들을 끌어다 만든 것이 이 튜토리얼의 스테이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게 모조되었다는 단어는 붙은 적이 없었다.
이 모조되었다는 단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완벽히 구현해 내는 데 실패했다는 걸까.
원형을 복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키리키리에게 물어도 이것에 대해서는 대답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내가 돌의 힘을 흡수한 이후, 투표로 인해 회한의 신의 발언권이 사라진 것과도 연관이 있을 터였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
“정령왕, 이 힘과 신성력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정확히 대답할 수 없다.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해 줄 수 있다.]확실히 관계가 있긴 있구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구경은 다 했나? 그렇다면 이동하겠다.]“잠깐 기다려 봐.”
[아부부야, 일 끝난 것 같으니까, 이쪽으로 와라.] [네. 귀여운 제가 갑니다.]그놈의 귀엽다는 말은 좀 빼 줬으면 좋겠는데.
아부부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정령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힘에 욕심낼 필요 없다. 어차피 그 힘은 신이 아닌 존재에겐 무의미하다.]“그래?”
달리 말하면, 신에게는 유의미한 힘이라는 거지.
신쯤이나 되는 존재에게 의미 있을 힘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힘의 가치는 증명된다.
이상하게도 정령왕의 말투가 부드러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뒤통수를 친 내게 온화한 태도를 보일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 힘을 신들께 양도하고자 한다면, 신들께서는 그대를 크게 우대하실 것이다. 분명 그대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시겠지.]그냥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정령왕의 말은 정수가 가치 있는 것이라는 내 예상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누군가에게 쉽사리 넘길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나 자신에게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고…….]정령왕이 조심히 말을 이었다.
차분한 그의 기도 아래서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혹시 내게 넘길 생각이 있다면…….]“없어.”
딱 잘라 말했다.
내 대답에 정령왕도 입을 딱 다물었다.
[귀여운 제가 왔습니다!]마침 그때, 아부부가 날아왔다.
오자마자 또 귀여운 타령을 하는 아부부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부부는 갑자기 웃어 대는 내게 의아함을 내비쳤고, 옆에 있던 정령왕은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어쩐지 너무 친절하다고 했다.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묻는 것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고, 묻지 않은 것조차도 설명해 주었다.
근원의 괴물과 함께 싸우려 했던 것도 이해가 갔다.
자신의 힘을 보이면서 나를 구해 줄 기회를 보고 있었겠지.
이후에 괴물과 싸우면서, 초장에 지나치게 화려한 힘을 남발하면서 빠르게 기력을 소모했던 것도, 뒤통수를 친 내게 다시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려던 태도도 이해가 갔다.
결국 원하는 것이 있었다.
이 인간적인 정령왕 덕에 한 가지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근원의 정수는 신이 아닌 존재에겐 의미가 없고 신에게만 효력이 있다지만, 정령왕은 이 힘을 원했다.
정령왕은 확실히 신이 아니었다.
신성력의 기운이 풍기긴 했으나, 그것은 그가 아닌 자연의 신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근원의 정수는 신은 아니나, 신에 근접한 자 혹은 신과 관련된 자에게는 마찬가지로 큰 가치가 있었다.
[이동하겠다.]정령왕의 말에서 거친 감정이 묻어나왔다.
이제껏 들어 본 적 없는 그 퉁명스러운 말투에 다시 한 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릿속으로 신을 떠올려라. 제단으로 이동한다.]그의 말대로 잠자코 신을 떠올렸다.
스테이지 내내 시시아와 야타에게 계약했다고 말했던 느림의 신을.
[백신전의 아흔아홉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자연의 신이 화를 삭입니다.] [혼돈의 신이 즐거워합니다.] [죽음의 신이 아쉬워합니다.] [결투의 신이 침묵합니다.] [모험의 신이 섭섭해합니다.] [빛의 신이…….]눈앞에 주르륵 나타나던 메시지들이 어느 순간 딱 끊겨 버렸다.
그리고 내 몸은 검은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사방에서는 빛 한 줌 보이지 않았고, 천장도, 바닥도, 벽도 없는 공간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정령왕이 말했다.
[영원히 유영하는 자의 신전이라니. 하필이면 이곳인가. 나는 가겠다.]갑작스럽게 가겠다고 선언하는 정령왕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나는 느림의 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다. 강물 앞에서 노래할 생각도 없다.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가라, 앞으로.]정령왕은 그 말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두고 가 버리면 어쩌라는 거야.
마음속으로 항의해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부부야, 이 상황이 이해가 가냐?”
[아뇨,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움직여 보시죠.]“어디로?”
빛도, 중력도 느껴지지 않아 앞뒤, 좌우, 위아래가 모두 구분이 가지 않는 곳에서 나는 그 어떤 지침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공간 안에서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용사님이 생각하기에 나아가는 방향이라 생각되는 곳으로요.]잠시 고민해 보다, 아부부의 말대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눈앞에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석문의 모습은 1층 스테이지의 보스룸 앞에 있던 석문과 흡사했다.
조금 들여다보자, 그것이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떠 보았다.
이제 거대한 석문은 조그마한 문으로 변해 있었다.
프로게이머 시절, 자주 보았던 경기장 부스의 문이었다.
다시 눈을 깜빡이자, 부스 문은 학교의 교실 문으로 변했다.
묘하게 낯선 것이, 내가 다니던 학교의 교실 문이 아니라 수능을 보러 갔던 어느 학교의 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눈을 깜빡일 때마다 문은 원룸의 현관문으로, 아버지가 누워 있던 병원 병실의 문으로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어 나갔다.
내가 생각하는 문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하고 다시 눈을 깜빡였다.
문의 형상이 사라지고, 그 앞에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로 들어서자, 검은색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보였다.
반듯한 직사각형의 제단에 근원의 정수를 올려놓았다.
[반갑다.]어둡고 공허한 세상이 울려 만들어 낸 소리가 말이 되었다.
거대한 존재감 앞에 잠시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느림의 신이십니까.”
[그렇다.]그때 아부부가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아부부는 검날을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향하더니 내게 외쳤다.
[용사님, 도망치십시오. 제가…….]아부부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졌기에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말없이 그의 자루를 쥐고 인벤토리로 던져 넣었다.
[천공의 신의 장난감이구나. 누구보다 위에 있으려 하는 자는 언제나 단면만을 볼 수밖에 없지.]느림의 신이 말했다.
나는 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아부부가 단면만을 보고 그 외의 것을 보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 단면이 지나치게 흉악할 뿐이었다.
나는 아부부가 그 와중에도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재밌는 판단이구나.] [선의에는 희생이 동반되어야 한다니, 헌신의 신이 좋아하겠군.]실제로 그렇긴 했다.
스테이지를 공략하면서 무수히 많은 생명을 죽여 대던 와중에도 헌신의 신은 나를 향한 관심을 접지 않았다.
두려웠다.
저 압도적인 힘이.
정령왕과 마주쳤을 때와는 분명 달랐다.
덤벼 볼 생각도, 저것과 내 힘을 비교하며 재 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우주를 들여다보았을 때의 기분만 들었다.
[그렇다면 너 자신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