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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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튜토리얼 40층 (?)
[재밌어 보이네요.]잠자코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던 아부부가 말했다.
내가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재밌어 보였나 보다.
“왜, 하고 싶냐?”
[못 하는 거 아시면서. 근데 되게 잘하시네요. 꼼지락꼼지락.]“이것도 남이랑 하는 놀이니까. 어릴 땐 이런 것도 지기 싫었거든. 작정하고 이기려 드니까 잘하게 되더라.”
[저런… 어릴 때부터 그랬군요.]뭐야, 그 말투는.
[막 한 판이라도 지면, 이건 무효라고 떼쓰면서 다시 하자고 우겨 대는 미운 꼬맹이였군요. 종종 있죠.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악쓰고, 소리 지르면서 깽판 치는 애들.]실감 나는 묘사였다.
나한테 지고 울면서 떼쓰는 애들을 많이 봐서인지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근데 어릴 때는 보통 그러지 않나.
“어쨌든 나는 안 그랬어.”
[에이, 뭐든 처음 할 때는 있는 법이고, 누군가와 하는 놀이는 결국 지면서 배울 수밖에 없죠. 설마 아직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건 아니죠?]“아니야, 이 자식아. 나는 이런 거로 져 본 적이 거의 없어.”
진짜였다.
누군가 공기놀이를 하며 노는 것을 본다면,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기 전에 규칙과 방법을 관찰했다.
그리고 혼자 연습해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같이 놀자고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놀이를 즐기는 것보다 이기는 게 좋았다.
승리만을 놓고 본다면, 방법조차 모른 채 누군가에게 도전하는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늬예, 늬예. 퍽이나 그러셨겠네요.]저 얄미운 입을 어찌해야 할까.
“언젠가 내가 사일런스 마법을 배우기만 해 봐라.”
[그럼 제가 디스펠하겠죠. 저보다 마법을 잘하지 못하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후, 후, 후.]이놈의 자식이 나한테 마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빌어먹을 놈.
오랜만에 어릴 적 이야기를 하니, 동네 형에게 대전 액션 게임으로 패배한 기억이 떠올랐다.
흔치 않은 기억이었다.
오락기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고 혼자 시나리오를 깨고 있는데, 그 가방을 치우고 챌린지를 거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나는 연습이 덜 된 상태였고, 그 형은 상당한 고수였다.
이기는 게 더 이상했다.
두 판을 내리 졌고, 동전이 더 없던 나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돈을 더 가지고 오락실로 돌아갔을 때, 그 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의 복수는 여태 달성하지 못했다.
그 형을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까.
프로게이머를 직업으로 삼은 데는 분명 그 기억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내 인생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친 순간이었다.
흩어진 공깃돌들을 모았다.
대충 10분 정도 가지고 놀았으니 충분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아부부의 말이 맞았다.
이럴 때는 내성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불편했다.
내성이 낮았으면 잠복기고 뭐고 바로 반응이 왔을 텐데.
대기실에서 나간 뒤 시간을 들여 시험해 보아야겠다.
나는 독기와 오러를 뭉쳐 만든 결정체를 가지고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키리키리의 조언이었다.
키리키리에게 독기의 발전 방향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한 차례 화를 낸 뒤 독기의 위력보다 안전성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위력을 높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건 그 이후의 일이라면서.
그녀는 액상화한 독기를 코팅해 보라고 조언했다.
나는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독혈을 만들어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유리고 플라스틱이고, 강철이고, 가리지 않고 녹여 대는 독기를 코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력으로도 그것을 담을 수가 없어, 고체화시킨 오러 결정으로 독기를 담아야 했다.
생각보다 오러 결정을 만드는 작업의 난이도가 높았다.
며칠 노력한 뒤에야 원하는 모양과 크기를 가진 결정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결과, 붉은 오러 속에서 검은 독이 찰랑거리는 결정체 몇 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니 보석 같기도 했다.
[예, 보석 같기도 하군요. 지옥에서 채굴해 온 보석이요. 피처럼 붉은 겉면에 시커멓고 끈적이는 액체가 찰랑이는 걸 보고 보석을 연상하는 사람은 용사님뿐일 겁니다.]아부부의 딴지는 무시했다.
이건 그냥 내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이 오러 결정체를 가지고 놀며, 손에 독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기실 밖에서 한 번 더 확인해 본 뒤엔 조금 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할 수 있을 듯싶다.
역시 키리키리의 조언이 주효했다.
더불어 그녀가 더 이상 알려 줄 게 없다고 단언했던 부분에서도 이리저리 쪼아 대면 결국 쓸 만한 조언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했다.
케이크만으로는 그 조언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도.
[김민혁, 30층 : 야, 바쁘냐.]오랜만에 김민혁이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박정아가 메시지를 보내는 편이다.
헬 난이도 인원의 관리를 이형진에게 맡긴 이후로는 김민혁과 대화할 일이 많이 줄었다.
가끔 대화를 하긴 하지만, 자경단 일로 회의하거나 보고할 일이 없어지자, 자연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호재, 41층 : 아니.] [김민혁, 30층 : …너는 언제 또 41층까지 갔냐.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번 회 차에 들어온 뉴비들에게서 정보가 입수됐어. 정부에서 도전자 가족의 생사와 소재지를 파악하고 있단다. 다음 회 차나 그다음 회 차쯤엔 정보가 들어올 거야.]거 오래도 걸렸다.
튜토리얼을 졸업하고 나간 이들이 정부와 접촉했을 때, 가장 먼저 요구하기로 했던 것이 저 가족의 생사 확인이었다.
졸업자가 생긴 지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일을 시작한 모양이다.
[김민혁, 30층 : 아무래도 졸업자 중 몇 명이 정부에 불만을 품은 모양이야. 타국으로 나가려 한다는 소문이 돌아 매국노니, 뭐니 욕을 먹고 있다네. 그것 때문에 정부에서 부랴부랴 일을 시작한 게 아닐까 해.]대충 밖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건 거기서 거기니까.
아무리 괴물이 나타나고 쑥대밭이 된 세상이라도 바뀌지 않을 것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민혁, 30층 : 뭐, 따로 할 말은 없냐? 너무 무덤덤한데.] [이호재, 41층 : 됐어. 딱히 할 말 없다.] [김민혁, 30층 : 알았다. 그럼 다음에 보자.]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김민혁의 메시지가 끝을 맺었다.
가족의 생사를 알게 되었다는 것에 새삼 어떤 감상이 떠오르진 않았다.
아무리 한국의 피해가 적은 편이라지만, 사망자 수는 백만 단위를 넘어섰다.
그 많은 피해자 중 내 가족만 빠져 있을 거라 낙관하는 건 도둑놈 심보였다.
물론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확인을 위해 아부부를 불렀다.
“아부부야.”
[네, 용사님.]“너도 가족이 있었냐?”
[뭡니까, 그 말은? 저 고아 출신 아닙니다.]아부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뜸 물어보니 기분이 상했나 보다.
“그럼 가족 이야기 좀 해 봐.”
[가족 이야기요? 제가 어릴 때… 아니 검이 되기 전의 이야기이니 이것도 굉장히 먼 과거가 됐네요. 어디 보자…….]아부부에게 과거 이야기를 시켜 보았다.
아부부는 딱히 비밀도 없었고,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자체를 즐거워했기에 별 불만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체로 아부부가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아부부는 검을 수련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가족보다 검에 집중했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아부부의 이야기에선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 나왔다.
나는 아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했다.
나는 왜 아부부와 같은 감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지금, 왜 이렇게까지 무덤덤한 것인지.
* * *
[튜토리얼, 헬 난이도 40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잘 가라, 수고했다.]자연의 신의 배웅을 받으며 포탈에 올라섰다.
자연의 신의 신전을 빠져나와 키리키리의 들판으로 이동되었다.
이동 직후, 잠시간 사라졌던 신들의 시선이 돌아왔다.
[만신전의 수많은 신이 당신을 지켜봅니다.]시선의 숫자는 이제 3천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항시 이 많은 시선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불쾌하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존재만큼 꺼림칙하지는 않았다.
“키리키리.”
“안녀엉!”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폴짝폴짝 내게로 뛰어오고 있는 키리키리를 보았다.
여전히 천진난만한 그녀의 미소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히히, 거봐, 이번엔 조금 늦게 왔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해맑고, 귀엽고, 순수했다.
키리키리를 바라보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풀어졌다.
분명 그녀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금조차도 그러했다.
이제는 이 감정의 변화가, 나 자신의 호감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헬 난이도에 떨어져 혼자 고립된 나에게 동아줄이 되어 준 것이 이 키리키리와 60층의 아저씨였다.
둘 중 누군가 없었더라면 나는 절대 이곳 40층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이다.
키리키리가 있어서 매 층을 클리어한 이후 그녀와 만날 것을 기대할 수 있었고, 그녀를 꼭 껴안고 울 수도 있었다.
케이크와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도 떨고, 어린애처럼 뛰놀 수도 있었다.
키리키리는 내게 있어 부모이기도 했고, 선생님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고, 언니이기도, 동생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저렇게 순수한 얼굴로 내게 미소 짓고 있는 게 다 거짓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내 생각을 읽고 있으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해맑은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더 끔찍했다.
방실방실 웃고 있는 키리키리를 마주하니, 각오가 꺾이는 기분이었다.
그녀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나는 그것조차 못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키리키리.”
“응, 왜?”
내 생각을 읽고 있지 않느냐고.
내가 뭘 물을지 정도는 알고 있지 않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싶었다.
제발 차라리 그녀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으면 했다.
“예전에 튜토리얼 내에서의 정보 통제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있었지?”
“응, 그랬지.”
“그때 이야기해 줬던 게 프라이버시. 포인트와 정보 값을 소모해 특정 정보를 자신의 프라이버시로 설정하면,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남의 프라이버시를 들여다볼 수 없다고. 그러니 숨기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프라이버시로 설정하라고.”
키리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정보는 많이 풀려 있다.
초창기 이후, 한국 서버에서 개최된 대화합의 날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 프라이버시 설정이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프라이버시에 대해 내가 모르는 사항은 없었다.
나는 아저씨가 숨겨 둔 비밀 몇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아저씨의 프라이버시를 볼 수 있을 만큼의 정보 값을 지불했기 때문이 아니라, 헬 난이도의 도전자에게는 공개되어 있는 프라이버시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자연의 신에게 들었어. 그 외의 하나가 더 있다고. 단 한 사람, 특정 인물에 대한 정보 통제를 위한 방법이.”
키리키리는 다음 말이 궁금하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었다.
이제는 저 해맑은 얼굴이 무섭기 시작했다.
굳이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도 아는 얘기니까.
이야기를 빠르게 진행시켰다.
최대한 빨리 이 대화를 끝내고 싶었다.
“혹시 내가 관리자에게 그 트리거를 말한 적이 있냐고 묻더라.”
눈을 질끈 감았다.
등 뒤로 떨리는 손을 맞잡고 다음 말을 내뱉었다.
“키리키리,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지 말해 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감고 있던 눈을 억지로 떴을 때, 키리키리는 여전히 나를 보며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