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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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49층 (2)
건물 안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그들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다.
굶주린 듯한 모습과 병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이 성지에서 몇 달간 숨어 있었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간 몸을 추스르고 있었던 걸까.
최소한 식량은 문제없이 확보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건물은 천장이 높은 성당이 연상되는 구조였다.
입구 반대편에는 단상과 함께 상징물들이 늘여져 있는 것이, 역시 신전답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단상으로 올라갔다.
이왕이면 그냥 편한 자리에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위치는 내 우월감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키고 그를 통해 안정감을 준다.
“자, 여러분.”
그래도 교주 같은 말투는 따라 하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친구가 초코파이를 준다고 했을 때, 그 녀석을 따라 교회에라도 가 보았다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순서대로 읊었다.
“이제 한동안은 안전할 겁니다.”
사람들은 멀뚱멀뚱 지켜보았다.
뭔가 극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내고 싶은데.
참… 말주변이 안 따라 준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식량은 충분히 있으신가요?”
침묵 속에 듬성듬성 예… 혹은 아, 아니요… 하는 말들이 섞여 나왔다.
의견이 갈린다.
식량 상황을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혹시 여러분 중 대표로 대변하실 분은 없나요?”
다시 침묵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두리번거리며 쳐다볼 뿐, 냉큼 나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의외였다.
보통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확실한 리더가 중심을 잡고 있다.
구심점을 향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군중심리도 있었고, 이런 위기 상황에 제대로 된 리더 하나가 생존율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존자 무리엔 리더는커녕 앞에 나서는 행동대장이나 연장자로서 조언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구성을 살펴보았다.
기이하게도 여성과 어린아이, 그리고 노약자가 대부분이었다.
피부가 푸른색인 어느 종족은 반대로 여성체가 튼튼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그 종족만은 유달리 왜소한 남성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묘했다.
종족 구성원 중 신체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이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종족의 존속을 위해 본능적으로 약자들을 우선시해 보호한 걸까.
단순한 우연일까.
“누구든 대표로 나설 사람을 한 명 정하세요. 저는 잠시 나가서 밖을 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 자리를 피했다.
지나칠 정도로 사람들이 수동적이었다.
그동안 별의별 상황과 다 마주쳐 보았지만, 이렇게 얌전한 사람들을 지키게 된 건 처음이었다.
위기는 사람의 생존 본능을 자극한다.
보통 이런 종류의 위기를 앞둔 사람은 얌전히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날뛰게 된다.
그래서 보통 이런 경우에는 답도 없이 난동을 부리는 미친놈을 만날 확률이 이렇게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을 마주칠 확률보다 월등히 높다.
이곳의 사람들은 뭔가 이상했다.
만약 원인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알아내고 해결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겠다.
건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아부부가 날아다니며 다리를 건너려는 괴물들을 도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스테이지의 클리어 목표를 되새겨 보았다.
사람들을 보호할 것.
이건 당연한 거다.
다음은 근원의 괴수를 처치할 것.
이게 문제다.
아무런 조력자 없이 처치하라는 걸 보니, 괴수의 전투력 자체는 높지 않을 것이다.
근원의 괴수가 행성을 밀어 버린 방법도 본인의 힘이 아닌 전염체라는 괴물을 이용한 것이었으니,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전염체가 행성 전역을 지배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단 한 기 있는 근원의 괴수를 찾아 죽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잘못하면 이거 몇 회 차 넘게 계속될 수도 있겠다.
어려운 스테이지였다.
사람들을 지키는 한편, 행성 어딘가에 짱박혀 있을 근원의 괴수를 찾아 나서야 한다.
아무리 아부부를 남겨 다리를 지킨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나서 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최소한 그들이 희망을 가지고 내 귀환을 기다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저렇게 썩은 동태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건물 안에 가둬 두었다간 하나하나 자살하기 시작할 것이다.
꽤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광경을 여러 번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최근 헬 난이도 1층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헬 난이도 1층은 말 그대로 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정부를 통해 헬 난이도로의 입장을 금지했다지만, 실수로든, 만용으로든 한 명씩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헬 난이도 1층의 인구수가 서른을 넘어섰었다.
그만하면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자경단은 그들끼리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피폐해져 갔고, 나아가기보다는 갈수록 퇴보하기만 했다.
하나로 뭉쳐 서로를 위안해 주기보다는 분열하고 서로를 미워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그 이후 릴레이라도 하듯, 한 회 차에 두어 명씩 자살자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었다.
이제 1층에 남은 사람은 고작 다섯 명뿐이었다.
그들이 느끼고 있을 절망은 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나도 겪어 보았던 것이니까.
세상과 고립되어 대기실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체류 기간이 끝나고, 스테이지로 추방되면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된다.
아무리 스테이지 초입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린다지만, 그게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통로의 끝에서 혼자서 한 달의 시간을 버텨 내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조금 나아가면 심장을 노리고 날아드는 화살 함정이 있다.
1층 도전자가 스테이지 초입에서 어두운 전방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어둠에 숨어 있는 죽음이다.
나는 처음 화살에 맞아 대기실로 돌아온 뒤, 곧바로 두 번째로 함정에 도전하기 위해 나아가던 순간을 기억한다.
정말 죽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그 공포를 이겨 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험의 신이 처음으로 내게 관심을 가졌던 순간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들은 나보다 더 큰 공포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1층의 도전자들이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그곳에 침전되어 지내던 시간만큼 공포도 더 크게 쌓였을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고 나면 또다시 대기실에 갇힌다.
그나마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3일간 아무것도 안 하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육포만 뜯고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회의감을 줄 것이다.
육포와 물만 먹고 산다는 것도 정신에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대기실의 치유 효과가 몸을 회복시켜 주겠지만, 건강과 별개로 미각은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12층에서 이디가 해 준 요리를 먹기 전까지 줄창 육포와 물만 먹던 당시의 내가 이상한 거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었다.
자경단에게 아이템을 지원받아 공략을 시도해 보려면 2층까지는 자력으로 올라가야 한다.
경매창은 1층을 클리어한 이후에 활성화되니까.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
그곳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은 바로 자살이었을 것이다.
죽고 나면 게임 오버가 나오고, 메인 화면으로 돌아가는 게임처럼.
한 번 죽고 나면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망상.
혹은 이 지옥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편하리라는 낙관.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야 그냥 안타깝구나, 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관리하고, 또 가깝게 관계를 맺고 있던 이형진이 문제였다.
자살이 막 시작되던 즈음부터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 보기 위해 노력하던 이형진은 최근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그가 직접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메시지를 통한 대화로도 그가 느끼고 있는 자기혐오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형진 또한 자살할 이들과 마찬가지로 헬 난이도에 고립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다만, 나처럼 앞으로 조금씩이나마, 느리게나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1층 도전자들과의 차이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형진이 지금 있는 스테이지가 13층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한동안 클리어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13층에 반복적으로 도전하며 유의미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13층의 수도승들은 도전자에게 우호적이고, 값진 조언들을 아낌없이 해 준다.
부디 수도승들이 이형진에게 위로가 될 만한 조언을 해 주길 바랐다.
내가 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밖으로 나오니, 날파리처럼 날아다니고 있는 성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박했지만, 한 번 날아다닐 때마다, 그리고 한 번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전염체들을 무더기로 도륙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나를 발견한 아부부가 가까이 날아오며 내게 물었다.
“개판이지, 뭐. 좀 쉬어. 이제부터는 내가 할게.”
[네. 안 그래도 마력이 간당간당하던 참이었습니다.]뒤쪽으로 물러나는 아부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아부부가 해 줘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아부부야, 미안한데, 결계 좀 쳐야 되는데.”
[결계요? 그건 왜요, 또.]“한 방 터뜨리게.”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아부부가 푸념하듯 말했다.
[그거 좀 안 하면 안 됩니까? 저 마력 없다니까요.]“응, 안 돼.”
내 말에 아부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더니(욕일 것이 분명했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최대한 멀리 가서 싸세요.]아니, 뭐 먼 풀숲에서 똥 싸고 오라는 듯이 말을 하냐.
생각해 보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닌지라, 그의 말대로 멀리서 터뜨리기로 했다.
연신 투덜거리고 있는 아부부를 뒤로하고 다리 반대편을 향해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전염체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전염체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야생동물로 보이는 것들도, 괴물의 형상을 한 것들도, 인간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전염되어 변이된 괴물들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좀비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허공을 주욱 그었다.
“심검.”
보이지 않는 오러의 칼날이 전염체들을 가로로 갈라놓았다.
전열의 전염체들이 반으로 갈려 우수수 쓰러지는 모습에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세레지아가 말했다.
“멋있잖아.”
그리고 남들이 보면 내 손짓에 의해 전염체들이 토막 난 거라고 생각할 것 아냐.
굳이 따지자면 그런 의미가 있는 거지.
전염체들은 앞의 동료들이 반 토막 나는 것을 보고도 주저 없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런 멍청한 판단력이 오히려 그들의 강점이었다.
쪽수만 믿고 달려드는 졸들에겐 광역 마법이 답이었다.
“파이어 월.”
바닥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던 전염체들은 불에 구워져 통구이가 되었다.
마법으로 전염체들의 접근을 잠시 막아 놓은 사이, 영혼검을 뽑아 들어 전방을 향해 날려 보냈다.
수백 미터쯤 날아가 바닥에 박힌 세레지아가 물어 왔다.
[할까요?]“응, 개방해.”
내 대답과 동시에 영혼검에 봉인되어 있던 영혼들이 세상에 풀려났다.
영혼 수집을 통해 모아 두었던 영혼들이다.
나는 그들을 통제할 수 없었지만, 영혼검과 동화되어 있던 세레지아는 가능했다.
영혼검에서 빠져나온 영혼들은 각자 전염체에 달라붙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전염체의 수가 몇일지는 모르겠으나, 영혼검에 봉인되어 있던 영혼들의 수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근방에 있는 전염체의 수가 십억 단위를 넘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영혼들이 전염체에 잘 달라붙은 것을 확인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영혼 착취]죽음의 신이 선물한 권능 스킬.
6층을 클리어하고 얻은 이후, 정말 주구장창 잘 써 온 스킬이다.
적을 약화시키고, 그 적을 처치했을 때 체력을 회복시켜 준다.
그리고 정신체나 영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전염체들에게 달라붙어 있는 영혼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혼들이 고통에 몸부림쳤고, 그 여파는 전염체들에게도 미쳤다.
자신들의 혼에 억지로 달라붙은 영혼들이 괴로워하는데 영향이 안 갈 리가 없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혼에 청테이프를 붙였다가, 그것을 단번에 확 떼어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무슨 원리인지는 나도 모른다.
훈련 중 죽음의 신이 메시지로 던져 준 단서와 키리키리의 조언으로 이런 기술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뿐이었다.
이 기술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응용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많던 전염체가 죄다 바닥에 쓰러져 비틀거리며 경련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시야가 트였다.
캑캑거리는 소리를 내며 버둥거리고 있는 전염체 몇을 발로 툭툭 차 보았다.
외부의 충격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이 정도면 결계를 준비하고 있는 아부부를 귀찮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영혼검을 회수하고, 탈라리아의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큰 거 한 방 터뜨리기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비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