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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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20)
“다른 건 안 물어봐?”
50층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를 다 듣고 난 뒤, 키리키리가 내게 물었다.
“다른 거?”
“응.”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키리키리에게 물어봐야 할 게 뭐가 있지.
최근에는 남에게 질문을 강요당하는 일이 잦다 보니, 올바른 답을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헹. 강요하는 거 아니양.”
섭섭하다는 듯이 말하는 키리키리에게 물었다.
“아이템 바꿀 때가 되었던가?”
무기로 쓰고 있는 성검이나 영혼검은 바꿀 생각이 없었다.
성능 자체도 충분했고, 무엇보다 이제는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내 힘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굳이 더 강력한 무기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갑옷 종류의 아이템은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있다.
성장을 위해 리스크를 높이는 것과 안전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건 다르다.
갑옷을 개비할 때가 되어 그러는 건가 해서 물어보았지만, 키리키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닝.”
“그럼 포션이 다 떨어졌든가. 확인 좀 해 볼게.”
인벤토리를 열어 남은 소비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포션류의 수량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최근에는 포션을 마실 일도 별로 없다 보니, 자연히 남게 된다.
“휴지… 충분하고. 케찹. 마요네즈. 아, 마요네즈가 없네.”
40층 이후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고, 그들에게서 대접을 받는 스테이지가 이어지고 있다.
자연히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받는 일도 잦았다.
음식이 맛있을 때도 있지만, 맛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럴 때마다, 몰래 뿌려 먹기 위해 몇 가지 소스를 가지고 다니는 편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키리키리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뭔데, 그래.”
키리키리는 대답에 앞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니양. 모르면 됐어. 굳이 정보값을 치르고 알려 줄 필요는 없는 거 같으니까.”
키리키리가 이렇게 말하니, 왠지 오기가 생겨 알아내고 싶어졌다.
둘이서 스무고개 하듯 문답을 주고받으며 정답을 알아내려 했지만,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
* * *
[50층 대기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대기실에 들어와 환영 문구를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 딱 반 왔다.
100층 중에 50층.
2년이 넘어, 3년이 조금 안 된 이 시점에 고작 반밖에 못 왔다는 것이 황당했지만.
기어코 여기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밖으로 나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진행 속도로 보면 1년도 안 걸릴 것 같지만, 헬 난이도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시간을 잡아먹는 함정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선 언제나 근면 성실하게 자기 발전을 위해 힘써야 했다.
마법 공부를 위해 아부부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었다.
[읭? 이전 층은 클리어하셨나 보네요. 다시 대기실입니까?]“응.”
아부부는 이제 완전히 도전자처럼 말하고 있었다.
언제 날 잡고 그가 인지하고 있는 범위를 알아내 봐야겠다.
아부부와 공부를 시작하려는데, 바닥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딱 내 발밑에 나타났다.
[32회 차, 0일. 0시 0분] [경합의 장이 개최됩니다.] [입장하십시오.] [강제 소환까지 남은 시간: 29분 59초] [입장 후, 항시 퇴장이 가능합니다.]“뭐여. 이건.”
* * *
[이호재, 50층: 뭐야. 이게.] [김민혁, 30층: …뭐긴 뭐겠냐, 이 자식아. 경합의 장이잖아.] [이호재, 50층: 근데 이게 왜 지금 열려. 전에 통보도 없었잖아.] [김민혁, 30층: …있었어. 관리자들이 통보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너한테 얘기해 준 적도 있었잖아. 33회 차! 오늘! 3차 경합의 장! 몇 번을 얘기해도 대충대충 대답하는 게 수상하더라니, 기억도 못 하고 있었냐!]얘기했었다고?
난 왜 기억이 없지.
[김민혁, 30층: 전에 네가 요청했던 대로, 이번에는 자경단 차원에서 네가 해 줘야 할 일은 없어. 이제는 나름 시스템이 잡혀서 알아서 굴러가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알아서 입장하면 될 거야.] [이호재, 50층: 알았어.]대기실의 침대에 누워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김민혁과 박정아에게 경합에 대한 정보를 받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키리키리가 말해 주려던 정보도 경합에 대한 걸까.
그랬던 것 같다.
정보값이 비싸다는 말도 그렇고.
생각을 정리하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키리키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도전자들도 지켜보고 있다.
만약 나와 연결된 다른 도전자가 내게 정보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 굳이 그 정보를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내게 알려 주려 했다는 건, 김민혁과 박정아를 포함한 자경단의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정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가 경합에 연관이 되어 있을 수 있다.
[김민혁, 30층: 이런. 갑자기 불안한데. 우리가 놓친 정보가 있을 줄은 몰랐어. 정확히 무슨 정보인지는 모르는 거지?] [이호재, 50층: 응.] [김민혁, 30층: 일 안 시키기로 해 놓고, 벌써부터 이러는 게 미안하지만. 최대한 빨리 입장해 줄래? 혹시 모르니까. 우리 쪽에서도 놓친 정보가 뭔지 최대한 알아볼게.] [이호재, 50층: 알았어.]김민혁과의 대화를 마치고 무장을 점검했다.
빼놓고 가는 것이 없는지 확인을 마치고, 포탈 위에 올라섰다.
[강제 소환까지 남은 시간: 13분 22초]어느새 포탈이 열린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후. 후. 후. 기대되는군요. 용사님과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요? 복마전이 따로 없군요.]아부부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글쎄, 그러지는 않을걸.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동향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 가깝다.
아부부의 오해를 정정해 주기보단, 포탈 위에 서 시동어를 읊조렸다.
“이동.”
나를 둘러싼 공간이 일렁거렸다.
이 감각을 잡아낼 수 있게 된 지는 제법 오래되었지만, 이 경험을 마법에 접목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공간 계열의 마법에 입문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아직은 까마득했다.
[경합의 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경합 1일 차, 0일. 0시 17분]이동된 공간은 한적한 숲속이었다.
의외였다.
이전에 치러졌던 경합들은 30층과 60층의 거주 지역과 흡사한 지역에서 진행되었었다.
이번에도 90층 거주 지역과 같은 곳에서 진행될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숲 지형으로 이동되었다.
무엇보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 빼곡히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주변에 보이는 건 여자 하나에 남자 하나.
이렇게 둘뿐이었다.
[이호재, 50층: 뭐냐, 이건.] [김민혁, 30층: …야. 솔직히 말해 봐. 너, 평소에 내 메시지 다 읽은 척만 하고 씹지?]사실이었다.
김민혁의 반응에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주변에 서성이던 여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조금 뒤늦게 다가온 남자와도 인사하고, 그들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요청했다.
여성은 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안내문 안 보셨나요? 자경단에서 저번 달부터 알려 줬던 내용인데요.”
안 봤다.
커뮤니티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뭘 읽어 봤을 리가 없다.
“일단 그냥 출발하죠? 나머지는 가면서 들으시고요. 어차피 길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제가 다 처리할 테니까요.”
한 걸음 뒤에 빠져 있던 남자가 말했다.
보기로는 이십 대 초반.
튜토리얼에 들어온 이후, 도전자들은 자연적인 노화를 겪지 않게 되었다.
그것을 감안하면, 남성의 나이는 보이는 것보다 두어 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우선 내 얼굴을 모르니까.
그 사실만으로도 남자도 여자도 최근에 들어온 도전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 일단 가죠. 가면서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 * *
숲길을 걸으면서 일행이 된 여성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이진이라고 소개했다.
진이라는 외자의 이름을 듣고 자연스레 가명이라 생각했지만, 본명이라고 한다.
나는 내 이름을 굳이 소개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이진이라는 여성이 설명하길, 이번 경합의 장은 이전의 경합에 비해 컨텐츠가 많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보상도 늘었고, 경합 기간 자체도 한 달로 매우 긴 편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경합이 열리는 장소까지 가려면, 무작위로 선별된 팀원 두 명과 그곳까지 도달해야 해요.”
“왜 이런 무의미한 과정이 추가되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커뮤니티에선 아직 파티 플레이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플레이어들을 위한 컨텐츠가 아니냐는 말이 많았어요.”
앞서가던 남자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저 새끼는 밑도 끝도 없이 기분 나쁘게 구네.
너, 원 스트라이크다.
그와 별개로 이진이 했던 말 중에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었다.
“플레이어요?”
“네.”
생소한 단어에 의문을 표시했지만, 이진은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플레이어?
너무 당연하게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다시 물어보기 좀 민망했다.
대신에 김민혁 찬스를 사용했다.
[이호재, 50층: 야, 플레이어가 뭐냐.] [김민혁, 30층: …제발. 노땅같이 왜 그러냐. 요새 커뮤니티에서 도전자들을 부르는 말이잖아.]김민혁은 스테이지를 공략하는 도전자를 플레이어, 거주 지역이나 특정 스테이지에서 체류하고 있는 도전자들을 npc 등으로 부른다고 설명해 주었다.
[김민혁, 30층: 야, 나 진짜, 진짜로 심각하게 바쁘니까. 그런 건 가능하면 너랑 같이 가고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봐. 아니면 이따가 밤까지만 기다려 줘. 그래. 말 나온 김에 오늘 밤에 한번 봐야겠다. 내가 상식 교육 같은 거 좀 해 줄게.]상식 교육이라니.
그렇게 말하니까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이처럼 들리잖아.
[김민혁, 30층: 아니라고 생각하냐?]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김민혁의 팩트에 메시지를 꺼 버렸다.
이진은 누군가에게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는 걸 좋아하는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떠들어 댔다.
이번 경합에는 단순 대결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컨텐츠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제한 시간 동안 미궁을 가장 많이 공략해 내는 것으로 경쟁한다든가, 파티 플레이로 타임 어택 스테이지를 공략한다든가.
컨텐츠가 정말 많았다.
“시간상 다 도전해 보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커뮤니티에선 다들 두 개나 세 개 정도 도전해 보는 게 적당하다고 하던데요.”
이번 경합은 이전과 많은 부분이 달라진 것 같았다.
이전의 것들이 콜로세움의 검투와 같았다면, 이번 경합은 종합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이진의 설명만 들으면 그렇게 느껴졌다.
“어떤 거에 도전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이번에는 굳이 도전하는 일 없이, 며칠 지내다 스테이지로 돌아갈 예정이다.
물론 별문제가 없다면.
굳이 한 달이나 이곳에 지내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고, 이제는 우승 상품으로 준다는 아이템이나 영약 한두 개 먹어 봐야 별 차이도 없다.
그냥 아는 사람들 만나고 쉬다 갈 거라고 이진에게 말해 주었다.
“왜요. 한 개라도 도전해 보세요. 이런 건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언제 또 있을지도 모르고요. 경험 삼아 해 보세요. 위험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들었어요.”
이진의 말에 앞서가던 남자가 비아냥거렸다.
“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신 분 같은데, 그냥 냅두세요. 장비는 번지르르한 거 보니까, 랭커 중에 빽이 있나 본데. 알아서 하겠죠.”
음… 잠시 고민해 보자.
이번 건 스트라이크로 봐야 할까.
그렇다면 투 스트라이크다.
아직 쓰리 스트라이크까지는 카운트가 하나 남아 있다.
하지만 기분이 나빴다.
그래. 이번 공은 빈볼이었다 치자.
[케에엑!]그때 숲 한복판에서 못생긴 괴물이 튀어나왔다.
개와 개구리를 반쯤 섞어 놓은 듯한 괴상한 괴물이었다.
“거, 뒤로 빠져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드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 와중에도 나를 보며 물었다.
“뭐요? 불만 있어요?”
”엎어.”
[케에엑!]못생긴 괴물이 곧장 바닥에 엎드렸다.
납작 엎드린 채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지능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아무리 바벨 이전의 지식 때문에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지만, 그 찰나의 순간 힘의 격차를 파악하고 처신하는 모습이 아주 바람직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괴물을 번갈아 쳐다보며 혼란스러워했다.
이놈은 괴물보다도 지능이 낮구나.
수고스럽지만, 다시 한 번 말해 주었다.
“뭐 해. 너도 엎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