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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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21)
“뭐 해, 엎어.”
“…뭐?”
남자는 아직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멍청한 소리를 했다.
이왕이면 스스로 엎드릴 때까지 기다려 주고 싶었지만, 본인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걸 내가 어찌해 줄 수는 없었다.
“갑자기 그게 무…….”
“엎어.”
더이상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강제로 엎드리게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냥 남자의 위에 마력을 올려놓고, 그 힘으로 내리누르면 되었다.
상당히 쉽고 간편했다.
스테이지에서도 단일 개체의 약한 적을 제압하려 종종 사용했던 방법이기에, 이제는 제법 요령도 생겨 마력 소모도 적었다.
남자는 말도 못 하고 바닥에 바짝 붙어 있었다.
보통 이렇게 짓누르면 제대로 신음 소리조차 못 내게 된다.
가끔 껙껙거리는 소리가 나긴 하지만, 이건 본인이 내고 싶어서 내는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이대로 방치하기로 했다.
부디 이 시간을 통해서 눈치가 조금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남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이해는 한다.
허세 부리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라는 구성이지 않은가.
튜토리얼에서 한정된 공간, 매번 보는 사람들에게 갇혀 있었을 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해는 한다.
근데 남자의 말투에 빡치는 나 자신도 이해한다.
말을 저따위로 하는데 안 빡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빡친 만큼 풀고 싶을 뿐이다.
“그렇지?”
[케에엑!]내 중얼거림에 옆에서 괴물이 그렇다고 외쳤다.
쟤는 아까부터 뭔데 저러고 있냐.
괴물은 개와 개구리를 반쯤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대가리는 양서류처럼 반들거렸는데, 팔다리는 복슬복슬한 털로 덮여 있는 게 개와 다를 게 없었다.
유난히 커다란 눈동자가 연신 움직이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겁이 많은 괴물인 듯싶었다.
“저, 저기.”
“응?”
여자를 잊고 있었다.
당황 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진이 물었다.
“저, 저기, 그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퍽 이해하기 쉬운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설명해 주기로 했다.
“저 괴물은 튀어나오자마자 눈치가 좋아서, 상황 보고 알아서 기는 거고, 이놈은 눈치 없이 기분 나쁘게 해서 힘으로 눕힌 거고.”
내가 했지만 참 간결하고 알아듣기 쉬운 설명이었다.
더 잘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내 어휘력에 이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어, 어떻게요?”
그 와중에 방법이 궁금한가?
대충 원리를 설명해 주었다.
“그게 어떻게 되나요? 개인 장악력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나요?”
“장악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부터 내리누르기 때문에 마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예 방법까지 캐물을 기세인 이진에게 대충 둘러대었다.
다짜고짜 장악력을 운운하는 것을 보니 이론 쪽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지금 도전자들의 수준으로는 건드릴 수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영역일 텐데.
설명하는 걸 좋아하더니, 학구열도 뛰어난 여자였다.
보아하니 개구리처럼 엎드린 남자나, 마찬가지로 엎드려 있는 진짜 개구리 괴물에게는 별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 정도면 사기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니요. 용사님, 허세 쩌시네요.]“시끄러워.”
“네?”
깐족거리는 아부부와 옆에서 반문하는 여자를 무시하고 자세를 숙였다.
남자를 내리누르고 있는 힘을 조금 덜어 주고 말했다.
“어때, 좀 버틸 만하냐?”
물론 버틸 만해 보이진 않았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할 수 있을 만큼 힘을 줄여 놨는데.
태도가 여전히 불량했다.
자세를 펴 일어나며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참에 내가 교육 좀 해줄게. 그딴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려면 응당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지. 내가 알려 주는 훈련법을 매일 따라 하면 힘은 갖기 싫어도 갖게 될 거야.”
물론 10분 안에 힘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지겠지만.
그것까진 내 알 바가 아니지.
* * *
“야, 잘못했어, 안 했어?”
[케에엑!]“아, 너 말고.”
[케에엑!]“그래, 알았다고. 시끄러우니까 잡음 넣지 마라.”
옆에서 자꾸 케엑거리고 있는 괴물을 한번 쏘아보았다.
상황 판단이 빨라 지능이 제법 높은 줄 알았는데, 그냥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난 것뿐이었다.
[케에엑!]“그래,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는 건 알았으니까, 이제 좀 닥치고 있어. 지금 얘한테 말하고 있잖아.”
[케에엑!]비로소 입을 다문 괴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에게로.
좀 전만 해도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는데, 괴물과 대화하는 잠시 동안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다.
나름 체력과 회복력이 괜찮았다.
물론 내 훈련을 견뎌 낼 정도는 아니었다.
남자는 이제 마치 땀으로 목욕을 한 것처럼 바닥에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휘청거렸다.
한 시간쯤 반복 운동을 계속하자, 아무리 초인의 몸이라 할 수 있는 도전자라 해도 저런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예전에 하던 맨몸 운동을 그대로 시켰으니, 지금쯤 내장까지 떨리고 있을 것이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쇼크가 올 수 있으니, 포션을 하나 마시게 해야겠다.
물론 다 갈구고 나서.
“야, 잘못했냐, 안 했냐.”
“자, 잘못했습니다!”
남자가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한 시간 동안 계속된 갈굼 끝에 남자는 옆에서 공포 어린 눈으로 나를 힐긋거리는 개구리 괴물과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진작 이랬으면 참 좋았을 것을.
그나저나 아직 씩씩한 목소리가 나오네.
덜 굴렀네.
“근데 왜 그랬어?”
“그…….”
“아직도 대답이 바로 안 나오지? 다시 엎어.”
남자는 부리나케 바닥에 엎드렸다.
이 짓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몸에 익는지 동작이 아주 전광석화 같았다.
그 부산스러운 동작에 흙먼지가 좀 날렸다.
잠자코 있던 성검이 말했다.
[생각보다 잘 갈구시네요.] [그러냐.] [네. 용사님 성격에 거슬리는 건 죄다 베어 버리지, 이렇게 누굴 갈구는 건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저는 머리통을 참수하려고 엎드리게 한 줄 알았습니다.]응, 그래.
네가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겠다.
[너도 이렇게 갈굴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워. 네가 인간의 몸으로 변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왜요, 애교가 부족해서 그래요? 하잉? 뀽?]…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었다.
이 미친 성검을 갈굴 수는 없었지만, 벌을 줄 수는 있었다.
청각에 유해한 소리를 지껄인 대가로 아부부를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10분쯤 지나, 열심히 구르고 있던 남자를 다시 일어나게 했다.
그리고 다시 물어보았다.
“이제 좀 반성이 되냐?”
남자는 헐떡거리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야, 사람이 말하는데 말이야, 기분 나쁘게 피식거리기나 하고. 그러면 되겠냐?”
“안 됩니다!”
“근데 왜 그랬어?”
“그게…….”
”다시 엎어.”
* * *
결국 남자는 구르다, 구르다 기절해 버렸다.
억지로 깨워서 다시 굴리기도 애매했고, 얼추 화가 풀리기도 해 이쯤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눈을 까뒤집고 있는 남자의 입으로 포션 한 병을 흘려 넣은 뒤 개구리 괴물의 등에 올려 두었다.
“옮겨 줄 거지?”
[케에엑!]그래, 그럴 줄 알았다.
본의 아니게 말 잘 듣는 짐꾼을 얻었다.
숲길을 걸으며 이진에게 경합에 대한 설명을 계속 들었다.
그녀는 이전보다 더 열성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일본, 호주랑?”
“네. 참가하는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까 숙소로 사용되는 지역을 그런 식으로 구별했나 봐요.”
두 번째 경합 당시 함께 참여했던 일본과 호주와 같은 거주 구역을 공유하게 되었다.
일본은 몰라도 호주 도전자들 중엔 아직 감정이 안 좋은 친구들이 있을 텐데.
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이번 경합은 참가 인원도 많고, 진행되는 콘텐츠도 많아서인지, 숙소로 사용되는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어 있었다.
경합에 참가하고 싶다면 거주 지역에서 팀을 꾸리고 참가 신청을 한다.
그 이후 나타날 포탈을 통해 이동해야 비로소 경합에 참가하게 된다고 한다.
설명만 들어도 번거로웠다.
그렇게 경합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숲길을 계속 걸었다.
중간중간 숨겨져 있는 함정이나 마법진을 발견하기도 했고, 또 다른 개구리 괴물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괴물들은 기절한 남자를 업은 채, 내 옆을 걷고 있는 개구리 괴물과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어디론가 급히 도망쳤다.
“저 괴물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으세요?”
“대충은.”
이진이 내게 물었다.
몇 시간 함께 걸었다고 좀 친해져 편하게 질문을 주고받았다.
“완전히는 아니야. 저놈들이 말을 대충하고 있거든.”
“왜요?”
“내가 자기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지.”
바벨 이전의 지식 스킬은 양방향으로 호환이 된다.
개구리 괴물은, 이진의 말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내 말은 또렷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해 내가 그들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걸 추측하는 것이다.
정말 그런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진에게 그렇게 설명해 주며 확신이 짙어졌다.
내 설명에 옆에서 개구리 괴물이 움찔움찔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참가 안 하실 건가요? 경합마다 상품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안 할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경합에서 나오는 상품이 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쓸 만한 무기가 나오는 아이템 상자나 스탯을 조금 올려 주는 영약 종류일 것이다.
지금의 내게는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특히 영약 종류는 먹어 봐야 뭐가 달라졌는지 체감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조금이라도 몸에 좋겠거니 하고 먹는 비타민씨 사탕 먹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굳이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차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다른 도전자들과의 경쟁이 기대되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나름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기대를 접었다.
다른 도전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괜히 긴박감을 느껴 보겠다고 다른 도전자와 경합에 나서기라도 했다가 실수로 죽이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아쉽네요. 함께 참가하면 상품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
혹시 경합에 참가하더라도 이진과 함께 팀을 짤 일은 없을 거다.
굳이 참가하게 되면 박종식의 팀에 합류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없더라도 그 팀이 우승을 차지할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이진은 도중에 나에 대한 감을 잡았는지, 내 이름이 이호재가 아니냐고 물어보았었다.
그리고 나는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고.
이후 이진은 경합에 함께 참가하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하고 있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그녀가 내 이름을 듣고도 별 동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흥미를 보이고, 나아가 나와 팀을 짜 상품을 노릴 생각을 했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나는 내 이름을 밝히면 그녀가 무서워하거나 꺼리면 꺼렸지, 이렇게 반가워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묘하게 혼란스러웠다.
한동안 전면에 나서지 않아서인가.
너무 오랫동안 노출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순히 그녀가 초창기 도전자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냥 그녀가 유달리 특이한 사람일 수도 있는 거고.
어찌 되었건, 나를 무서워하지 않으니 대화하기는 편했다.
경합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커뮤니티나 다른 도전자들의 동향 등도 물어보았다.
굳이 김민혁에게 다시 물어볼 필요가 없도록.
그렇게 서너 시간을 더 걷다 보니, 숲길이 끝나고 포탈을 마주할 수 있었다.
포탈을 보고 이진이 말했다.
“이 포탈을 타면 아마 거주 지역으로 이동하게 될 거예요.”
김민혁에게 다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김민혁은 포탈 쪽으로 사람을 보내 두겠다고 응답했다.
아직 별일 없으니 천천히 와도 괜찮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나는 그를 찾아가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포탈을 통해 이동된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거주 지역 같았다.
거리를 따라 꽤나 근사한 벽돌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 90층 거주 지역과 같은 외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별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깔끔하네.”
[케에엑!]뒤에서 개구리 괴물이 정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놈은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등에 업혀 있는 남자를 끌어내리고 개구리 괴물을 다시 포탈을 통해 돌려보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팡! 팡팡!
깜짝 놀라 올려다본 하늘 위에는 형형색색의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불꽃놀이였다.
뭐여, 이건.
경합의 장에 웬 폭죽이야.
시스템적으로 준비된 폭죽은 아닌 듯싶었다.
숙소 건물 위에서 폭죽이나 발화 도구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으니까.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제법 장관이었다.
전투 중에 발생하는 불이나 섬광과는 달리, 알록달록한 불꽃들이 차례대로 떠오르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불꽃놀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잠시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빛의 신이 신나합니다!] [빛의 신이 자신의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리고자 합니다.] [투표가 시작됩니다.] [찬성 : 1표, 반대 98표] [빛의 신이 무안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