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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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24)
“콜록, 콜록.”
쇳소리 섞인 기침 소리가 방을 메웠다.
그 모습을 보던 김민혁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저거, 괜찮은 거 맞아?”
자연히 우리의 시선은 침대에 누워 있는 박정아에게로 향했다.
감기 때문인지 얼굴이 빨개진 박정아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어 버렸다.
“괜찮아. 안 괜찮으면 저러지도 못해.”
내 독기의 중독 증상을 생각하면 저건 회복기 끝물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말 심각했다면 마른기침이 아니라 각혈을 하고 있겠지.
그보다 더했다면 명줄이 오락가락했을 거고.
“나 참, 뉴비도 아니고, 70층대를 공략하고 있는 도전자가 감기 몸살에 걸리는 건 또 처음 보네.”
박종식이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이지 난이도 도전자라도 20층대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감기 등의 가벼운 질병에서는 벗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박정아는 암살 위협 때문에 독 내성을 비롯한 내성류 스킬을 상당히 성장시켜 둔 편이었다.
“지금이라도 좀 좋은 방으로 옮기는 게 낫지 않아?”
박종식이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는 게 좋으려나.
“괜찮아요.”
이불 속에서 잔뜩 쉰 박정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럼 우리는 가 볼게. 누구 덕에 더 바빠져서. 수고스럽겠지만, 며칠간 간호 좀 부탁한다.”
“그래, 나는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두 사람은 박정아에게 몸조리 잘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나가면서 김민혁은 따로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민혁, 30층 : 정아가 미안하다고 무리해서 금방 일어나려고 할 수도 있어. 네가 최대한 오래 쉬게 해. 아예 한 일주일쯤 쉬게 둬.] [이호재, 50층 : 바쁘다고 하지 않았냐?] [김민혁, 30층 : 바쁘긴 한데, 감당 안 될 정도는 아니야. 이참에 쟤 좀 쉬게 해야 돼.]김민혁은 평소 박정아가 얼마나 무리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예전에는 그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주변 모든 사람을 힘들게 했는데, 최근에는 조금 나아져서 본인에게만 그 잣대를 들이댄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지는 않아도, 본인은 여전히 무리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고 한다.
[이호재, 50층 : 알았어. 마침 이럴 때 좋은 약이 있지.] [김민혁, 30층 : …뭔지는 몰라도 불안한데.]창문 너머로 숙소 건물을 나서는 김민혁과 박종식이 보였다.
뒤돌아 방의 창문을 쳐다보는 그들에게 다시 손을 흔들어 주고 침대 옆으로 와 앉았다.
이불 속에 숨어 있던 박정아의 얼굴이 밖으로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며칠 기다리자고 했잖아.”
다시 이불 속에 숨어 버렸다.
“…죄송해요.”
죄송하기는 무슨.
이불을 걷고 박정아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일반인이라면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할 고열이었지만, 박정아에겐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었다.
그냥 약 먹이고 재우면 되겠지 싶었다.
“아부부야, 방에 축복 좀 다시 걸어라. 효과 떨어질 때 된 것 같은데.”
[네…….]아부부가 대답했다.
어젯밤부터 저 상태였다.
퍄퍄, 거리면서 아무 말이나 씨불이던 아부부는 어느 순간 반대로 침울해져 버렸다.
[야,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배알이 꼴려서 그래요…….]저 새끼, 검 맞나 몰라.
[야, 세레지아를 좀 본받아라. 이럴 때도 별말 안 하잖아. 동요도 없고. 얼마나 검답냐.] [저로서도 어제는 좀 충격이었습니다.]조용히 있던 세레지아가 말했다.
아, 그러세요.
[네. 용사님 세계는 원래 그렇습니까?]세레지아가 질문을 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뭐가?] [아닙니다…….]어째서인지 세레지아도 침울해 보인다.
어항 속의 수초가 되고 싶다며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아부부를 닦달해 방에 축복을 걸게 했다.
희마하게 코끝을 감돌던 독기의 향이 지워졌다.
“요새는 자해 같은 거 안 하시나요?”
가만히 있던 박정아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한 지 좀 됐지. 왜?”
“아뇨… 그냥. 혹시 제가 방해가 되지 않나 해서요.”
개인적인 수련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아니었다.
애초에 나도 좀 쉴 생각으로 경합에 입장하기도 했고.
정말 시간을 촉박하게 배분할 생각이었다면, 이미 스테이지로 돌아갔을 것이다.
“뭔가 신기하네요. 전에는 항상 성장을 위해 뭔가를 하고 계셨었는데.”
“지금도 하고 있어.”
“네?”
수련은 당연히 항상 해야 하는 거다.
지금도 대화하면서 한편으로는 허공에 오러를 띄워 굴리고 있었다.
“그럼… 어젯밤에도?”
“…어젯밤에는 안 했지. 위험하잖아.”
[위험했죠.] [굉장하기도 했고요.]오늘따라 죽이 척척 맞는 세레지아와 아부부의 말을 무시했다.
오러를 다루는 건 찰흙 가지고 노는 것과는 다르다.
함부로 다루다가 실수라도 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박정아는 뭐가 좋은지 실실 웃었다.
웃으니까 보기는 좋았다.
인벤토리에서 약초 가루를 꺼내 그릇에 담고 물에 개었다.
미리 갈아 두길 잘했다.
물에 충분히 풀어 낸 뒤 박정아에게 건네주었다.
“마셔.”
“제 후각은 마시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요.”
“원래 몸에 좋은 약은 다 그래. 마셔, 얼른.”
박정아는 단숨에 들이켰다.
맛이 지옥같이 쓸 텐데.
예상대로 박정아는 오만상을 쓰며 캑캑거렸다.
얼른 인벤토리에서 음료수를 꺼내 주었다.
내가 마셔 봐서 아는데, 정말 토해 내고 싶은 맛이다.
“뭐예요, 이게?”
“산군초.”
내가 독기에 중독되어 골골거리고 있을 때, 묭묭이가 가져다준 약초였다.
해독 효과에 보양, 거기에 수면 효과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약초였다.
상점창에서 팔길래 조금 사 두길 잘했다.
“이제 한동안은 잠만 자게 될 거야. 자고 일어나면 훨씬 나아질 거고.”
“잠든다고요?”
“응.”
내가 그랬던 것처럼 며칠씩 의식도 못 차리고 잠들진 않을 것이다.
양을 조절했으니까.
하루 이틀 잠만 자면서 가끔 일어나 식사하는 정도는 될 것이다.
아마.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앉아 박정아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누구를 간호해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예전에 묭묭이를 돌봐 주었을 때 이후로는 처음이다.
“잠이 안 오는데요.”
박정아가 말했다.
잠들지 않으려고 눈 치켜뜨고 있는 거 다 보이는구만.
뭘 잠이 안 와.
박정아는 나보고 이야기를 해 달라 하였다.
무슨 이야기냐고 물으니, 그냥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듣고 싶다고 했다.
40층대 스테이지들을 클리어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기로 했다.
맨날 괴물만 쳐 죽이던 이전 스테이지들보다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은 스테이지들이었기에 해 줄 이야기가 많았다.
박정아에게도 흥미가 있을 만한 이야기들이었고, 또 이래저래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박정아는 잠들어 있었다.
어떻게든 잠들기 싫어 입안 쪽을 깨물고 이불 밑에서 다리를 꼬집고 별짓을 다 하더니, 결국은 이렇게 잠들어 버렸다.
흐트러져 있는 이불을 끌어 올려 제대로 덮어 주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향했다.
아까부터 바깥이 어수선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숙소 건물 정문에 자리 잡고 있는 개구리 괴물이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건물 앞에 떡하니 개구리 녀석이 앉아 있으니, 소란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녀석 무슨 해태 동상처럼 가만히 있네.
사람들은 개구리가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해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주변에서 개구리를 구경하거나 만져 보기만 했다.
다행히 개구리를 공격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냥 동물원의 동물들을 구경하는 정도였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전과 비교해서.
뭐라고 해야 할까, 독기가 없어졌다.
이전에는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들 위험한 곳을 구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다들 어느 정도 날카로웠고, 벽이 있어 보였다.
그런 벽들을 허무는 것이 자경단과 김민혁이 가진 목표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유순해진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다른 세상 같아 보여서.
“개구리야.”
[케에엑!]창문 너머로 개구리를 부르자 개구리가 대답했다.
저 녀석은 아무리 봐도 개구리보단 개에 가깝다.
보통 누군가의 정체성은 몸체보다는 머리가 결정짓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저 녀석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굴러 봐.”
내 말에 개구리가 구르기 시작했다.
그냥 무작정 구르는 건 아니었고, 내가 전에 갈구던 남자의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 했다.
사람들은 개구리를 보고 재밌어 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묘기를 부리는 강아지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반응이었다.
[왜 또 불쌍한 개구리를 학대하고 그러십니까.] [학대라니, 저게 얼마나 효과 좋은 운동법인데.]물론 근육통이 좀 생기겠지만.
그건 평소에 운동을 안 한 탓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개구리를 멈추게 하고 인벤토리에서 고기 몇 덩어리를 던져 주었다.
개구리는 고기를 잘 받아먹었다.
속으로 고기가 아니라 벌레를 줘야 하나, 하고 고민했었는데,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고기를 받아먹는 개구리를 보고 또 좋아했다.
이러니 돌고래 사육사가 된 듯한 기분이다.
사람들이 개구리에게 먹을 걸 줘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개구리에게 해로운 것만 아니면 괜찮다고 답했다.
사실 개구리에게 해로운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개구리가 알아서 거르겠거니 했다.
사람들은 각자 인벤토리에서 이런저런 음식을 꺼내 개구리에게 주었다.
개구리는 향이 너무 강한 음식들은 거부했지만, 생고기나 야채 등은 곧잘 받아먹었다.
[정말 의외네요.]“뭐가.”
[생각보다 잘 어울리셔서요, 사람들이랑. 역시 동향이라 그런가요?]“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에 사람들을 마주쳤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두 번째 경합 때였다.
그때의 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영원히 사람들과 섞이지 못할까 봐.
튜토리얼을 벗어나 지구에 돌아가서도 여전히 겉돌게 될까 봐.
그런 심리의 바탕은 사람들과 섞이고 싶다는, 그리고 달라지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튜토리얼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졌다.
자연히 성장과 공략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고, 갈수록 안일하게만 움직였다.
내심 스테이지 공략을 실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떤가요?]또 아부부가 내 생각을 읽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다음번에 키리키리를 만나면 꼭 물어봐야겠다.
“다르지. 사람들과의 거리 자체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멀어졌어.”
내가 생각하는 거리는 더 멀어졌음에도, 아부부가 보기에는 가깝게 느꼈다는 것이 재밌었다.
[어떻게요?]어떻게 멀어졌냐니.
설명하기 곤란했다.
잠시 고민하다 스테이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비교해 설명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스테이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다르게 대했어. 실제로 내게는 다른 존재였으니까.”
같을 리가 없었다.
스테이지에서 만난 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들은 언제고 떠날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디의 말마따나 그들은 갇힌 존재였다.
물론 경합 직후에 진입했던 18층이라는 예외가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너무 많이 무너져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가요?]“같지. 똑같이 대하고 있어. 다를 게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멀어졌다.
마치 스테이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듯, 다른 도전자들을 대하고 있다.
스테이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나는 웃고 떠들 수 있다.
함께 식사하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또 그들과 공감한다.
공략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등 뒤로 침대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지. 나도 사람이니까. 똑같이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못 보더라도 더 반가운 사람은 있기 마련이야.] [그런가요. 고마운 사람들이네요.]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