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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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26)
“좋은 생각이네.”
“그러게요.”
존 오버튼은 각국의 헬 난이도 도전자들을 모아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 왔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었다.
각국의 서버에서 혼자 고통받고 있을 헬 난이도 도전자들을 모아 함께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나와 이형진, 그리고 존 오버튼이 수다를 떨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공감이 필요했다.
헬 난이도 1층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헬 난이도 도전자는 1층에 잔류해 목숨만 어떻게 연명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나와 이형진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보고 있다.
나와 이형진을 무슨 돌연변이 천재처럼 여기면서 정체되어 있는 자신들을 정당화한다.
그들이 우리 둘 외의 헬 난이도에 도전하고 있는 다른 도전자들을 보게 된다면 뭔가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서버에도 1층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테니, 그들과 대화하며 좀 더 삶의 질을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고.
이것에 대해서는 김민혁에게 조언을 구해야겠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각국의 서버에서 고통받고 있을 헬 난이도 도전자들을 모아 멘탈 힐링을 시켜 주는 의미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각 서버 간의 갈등이나 분쟁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물론 경합은 곧 끝나겠지만,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거나 억제할 방법은 필요했다.
다시 경합이 열릴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튜토리얼 밖에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의 중심에는 자연히 헬 난이도 도전자들이 서게 된다.
아무리 주축을 이루는 것이 서버를 막론하고 하드 난이도의 랭커들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헬 난이도 도전자들을 전력에서 배제하진 않을 것이다.
최고 난이도의 도전자라는 의미 때문에라도 소수의 헬 난이도 도전자는 그 숫자 이상의 평가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정치적인 갈등의 첨병이 될 그들을 하나로 묶어 줄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두는 것에는 분명 큰 의미가 있을 터였다.
나는 헬 난이도 도전자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다.
그런 상징성을 이용하면 헬 난이도 도전자들만을 위한 모임을 만드는 데 무리는 없다.
다른 서버의 헬 난이도 도전자들을 설득해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헬 난이도의 도전자라면 다들 정보가 고플 것이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고 싶다면 내 노하우와 경험을 조금이라도 얻고 싶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존 오버튼이 그렇듯.
모임 내에서 분란이 일었을 때, 그것을 제압하고 중재할 자신이 있으니, 위험 요소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여러모로 긍정적인 면만 보이는 제안이었다.
물론 나 혼자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 우선 회의 안건으로 올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 보아야겠지만.
“흐앗!”
저 멀리서 이준석의 기합이 들렸다.
파지직, 하는 효과음이 뒤따라 들려왔다.
“참 열심히네요.”
옆에서 이형진이 말했다.
왠지 말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말투가 날카롭다.
“동의합니다.”
존 오버튼이 말했다.
그의 말에서도 이상하게 가시가 느껴졌다.
우리가 수다 떠는 데 여념이 없는 동안, 이준석은 스테이지 공략에 충실했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이랬다.
스테이지가 시작되고, 적으로 보이는 괴물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자마자 나를 비롯한 헬 난이도 3인방은 슬쩍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런 우리와는 달리, 괴물들을 보자마자 용감하게 앞으로 달려 나간 이준석은 여태 혼자 전투를 책임지고 있었다.
동료에게 전투를 도맡기는 비겁한 행동이었지만, 이형진과 존 오버튼은 기꺼이 그것을 감수했다.
나는 두 사람을 이해했다.
아무리 눈앞에 나타난 적들의 힘이 약해 보이더라도 무의미하게 힘을 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언제 예기치 못한 위협이 다가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살아남아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니까.
나는 이준석이나 이형진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려 물러섰다.
이준석이 전투를 도맡고 있는 것은 헬 난이도 도전자들이 비겁해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가 데려온 이진이라는 여성 도전자.
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이 분명한 적들을 상대로 과하게 화려한 기술들을 남발하고 있는 이준석을 보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저러다 언젠가 한 방에 훅 가지 말입니다.”
이형진이 툴툴거렸다.
앞에 나서 열심히 싸워 주고 있는 동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그의 악담에 의아함이 들어 물어보았다.
“너, 쟤 싫어하냐?”
“당연하죠.”
단호박인 줄 알았다.
옆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존에게 물었다.
“너도?”
“물론 그렇습니다.”
이형진은 몰라도 외국 서버에서 온 존 오버튼까지 이준석을 싫어한다니, 의아했다.
혹시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물어보았으나, 그런 건 또 아니라고 한다.
그럼 왜 그러냐고 재차 물어보았다.
“딱히 저 녀석만 싫은 건 아니고요. 하드 난이도 놈들이 다 그렇죠.”
“그리고 저 친구가 유난히 전형적인 하드 난이도 도전자처럼 굴어서 더 그렇습니다.”
이형진과 존 오버튼이 나란히 말했다.
이준석을 향한 개인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반감으로 보였다.
이유를 조금 더 캐물어 보았다.
“맘에 안 들잖아요. 자기들이 뭐라도 된 것처럼 뻐기고 다니고. 하드 난이도라고 부심은 또 얼마나 부리는데요.”
“네, 별로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것처럼 행세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듭니다.”
익히 알고 있는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의 특징이었다.
존 오버튼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다른 서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 중에는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그것을 과시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최근 자경단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는 문제였다.
커뮤니티에서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이 지나치게 자신들을 과시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글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노말 난이도의 랭커들이 주축이 된 자경단 내에서 파벌이 갈리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하드 난이도 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박종식이 있지만, 같은 하드 난이도 랭커여서인지 적극적으로 그들을 제재하는 데 한계가 있어 보였다.
김민혁이 내게 이준석을 봐달라 부탁했던 것도 그런 문제들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문제였지만, 나는 이게 이지나 노말 난이도의 도전자들이 불편해할 일이지, 헬 난이도 도전자가 기분 나빠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형진과 존 오버튼의 말을 들으니, 오히려 저 난이도 도전자들보다도 더 불쾌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국 서버는 아예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의 의중에 따라 전체 서버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경합에 들어와 보니 아주 가관이더군요.”
“제발 커뮤니티에다가 자신들을 무슨 지옥 같은 역경을 뚫고 살아 돌아온 역전의 용사처럼 묘사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거 보다 보면 오글거려서 진짜…….”
“오글이라는 말이 해석되지는 않지만,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 그걸 또 자기들끼리 정말 고생 많았다고, 큰일 했다고 보듬어 주는 꼴을 보면 역겹기 그지없죠.”
“아주 지들끼리 서로 똥꼬 빨…….”
음…….
우선 여기서 끊자.
이형진과 존 오버튼은 한참 동안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에 대한 불평을 쏟아 내었다.
나중에는 별 이유도 없이 원색적인 악담까지 늘어놓았다.
듣다 보니, 이들의 불만이 단순히 자신들보다 낮은 난이도의 도전자들이 뻐기고 다니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들의 불만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함께 스테이지에 도전하고,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료들.
비교적 덜 위험한 난이도.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다른 서버의 헬 난이도 도전자들도 다 그렇게 생각할까?”
“그럼요.”
“당연합니다.”
헬 난이도의 도전자들을 모아 모임을 주최해야 할 이유가 더 늘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을 좀 채워 줘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경합에서나 열릴 수 있는 모임이지만, 최소한의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면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형진아, 그리고 존 너도 다른 난이도 사람들을 보면서 비교하지 마. 안 좋은 버릇이다, 그거. 특히 헬 난이도에서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가지지 못한 걸 생각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가 중요하지.”
이래저래 길게 말해 보았지만, 이형진도 존 오버튼도 딱히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말해 놓고 보니 너무 꼰대처럼 말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꼭 알아 주었으면 하는 말이었고,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어차피 헬 난이도에 들어온 이상 다른 난이도로 이동할 방법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헬 난이도 도전자들이 부쩍 많아지지도 않을 거고, 난이도가 대폭 하락해 공략이 수월해지지도 않을 거다.
오히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이들이 정말 지옥 같은, 좆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그들의 행동뿐이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랬다.
내 설교 때문에 들떠 있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두 사람이 과하게 열을 내며 하드 난이도 도전자들을 성토하던 것도 오랜만에 서로에게 공감을 받으며 흥분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속내에 잠들어 있던 생각이 수면 위로 불쑥 올라온 것이겠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 * *
전투가 끝나고 이준석이 다가왔다.
한 스테이지가 거의 끝날 때까지 혼자 힘을 썼지만, 이준석의 얼굴에서 불만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돋보일 기회를 주어 고맙다는 듯 밝은 표정이었다.
“이 앞은 팀을 셋으로 나눠서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아마 세 갈래로 나누어져 스테이지 막판에 합류하는 것 같은데요?”
이준석이 가리키는 앞쪽에는 세 갈래의 길이 보였다.
그냥 한쪽으로 다 함께 가면 안 되냐고 물으니, 이준석은 세 갈래의 길 끝에서 세 개의 증표을 모아야 마지막 관문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 설명이 제법 상세했다.
이 녀석, 이 스테이지에 대해 알고 들어온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너랑 이진 씨랑 한쪽으로 들어가고.”
“네, 그럴게요.”
안 그래도 그럴 거였다는 듯 냉큼 대답하는 이준석을 보며 확신이 굳어졌다.
“나랑 형진이랑 한쪽으로 가자.”
“저는 혼자 가야 합니까?”
존 오버튼이 말했다.
“아니.”
고개를 돌려 여태껏 잠자코 있던 개구리에게 눈짓했다.
“케에엑!”
개구리는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한쪽 앞다리를 치켜들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역시 눈치 빠른 개구리였다.
“개구리랑 가. 둘씩 짝이 딱 맞잖아.”
개구리와 팀을 이루라는 말에 존 오버튼은 죽상이 되었다.
개구리랑 다니는 것도 나름 편한데.
말도 잘 듣고, 눈치도 빠르다.
여차하면 올라탈 수도 있다.
몸통은 개구리가 아니라, 개의 그것이기 때문에 복슬복슬하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힘을 보고 싶어서 여기…….”
“케에엑!”
“봐, 개구리가 너랑 가고 싶다잖아. 개구리랑 가.”
“…아니, 그래도…….”
“케에엑!”
“그래,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