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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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31)
[이제 저 좀 들여보내 주시죠.]아부부가 말했다.
살다 살다 아부부가 인벤토리에 들여보내 달라고 할 줄은 몰랐다.
검신이 녹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는 아니지만.
아부부의 말대로 그를 인벤토리에 넣어주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지그래. 곧 끝날걸.]어차피 인벤토리에 들어간다 해서 이미 녹아내린 검날이 복원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힘을 통제하고 있는 지금, 내 곁에 붙어 있는다면 열기에 의해 더 녹아내리지도 않을 것이다.
[고칠 수 있을까요?] [그럼, 고칠 수 있을 거야.]아부부의 말에서 그의 속상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돌아가는 대로 김민혁에게 아부부를 수리할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만약 그가 모르고 있다면 관리자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경합이 끝난 후에야 방법을 알아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꼭 고칠 수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부부를 안심시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상은 처참한 꼴을 하고 있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곳이 스테이지로서 조성된 곳이기에, 이 지경이 되어도 행성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지, 원래 행성이라면 이 정도의 폭발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였다.
사방에 들끓고 있는 폭염과 열기는 차지하더라도 비자연적인 현상에 노출된 기류는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렇게 타고, 또 탄 뒤에도 더 탈 것이 남았는지 지면 아래에서부터는 여전히 검은 연기가 자욱이 올라오고 있었다.
시밤쾅과 광검의 폭발들을 순환시켜 그 파장을 피한다는 발상 자체는 옳았다.
문제는 나 말고도 다섯 환영도 같은 방법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고리들이 서로를 끌어들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환영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에너지의 고리가 서로를 끌어들여 충돌하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되는대로 힘을 난사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고리에 담긴 힘을 더하고 또 더해 줄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 여섯 고리가 충돌했을 때 발생한 충격은 나 혼자서라면 절대로 구현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단순히 내 힘에 그 여섯 배를 더한다 해도 불가능할 터였다.
여러모로 귀한 경험이었다.
주위의 열기는 여전했다.
이전이었다면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목숨이 간당간당했을 것이다.
이전이었다면.
마력을 움직여 열기를 한쪽으로 몰아내었다.
대기를 불태우며 용솟음치고 있던 불기둥들이 차례로 밀려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름다운 장관이었지만, 그보다도 내가 이 열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감명 깊게 다가왔다.
마력으로 열기를 발생시키는 건, 마법에서 말하는 기초 중의 기초였다.
하지만 타자의 의지에 의해 발생된 열기를 다루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지배력의 문제다.
세상 모든 존재는 일정 영역 내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인간들은 물론 하찮은 벌레들까지도 그렇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허공에 불덩이를 만들어 던질 생각을 하지, 적의 몸을 곧바로 불태우거나, 체내의 수분을 끓어오르게 하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적이 가지고 있는 지배력을 침해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배력은 신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마력에 의해 영역을 확장한다.
그렇기에 마법사는 다른 마법사가 만들어 낸 불덩이를 식혀 내기보다는 장막을 쳐 그것의 투척을 막는 편을 택한다.
열기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또 적들을 위협하기 위해 만들어 냈던 고리는 온전히 내 힘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내 힘에 의해 회전했다.
하지만 적들도 같은 방법으로 서로를 보호하고 위협하게 되었을 때, 나는 환영들에 의해 발생된 힘을 제어해야 했다.
나로서는 폭발의 영향을 견딜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들의 힘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내 환영이기에, 그래서 내 마력과 흡사하다 못해 완벽히 동일했기에 시도할 수 있었고, 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건 불가능하다.]저 밑에서 전음이 들려왔다.
나와 같은 목소리를 한 전음이었다.
살아남은 내 환영의 말이었다.
[거기 있었나.]솔직히 위치를 놓친 상태였다.
힘을 움직여 나와 환영 사이를 메우고 있던 연기를 걷어 내었다.
비로소 시각에 환영의 모습이 들어왔다.
환영은 무너진 지반에 처박혀 있었다.
그의 몸은 반쯤 마그마에 잠긴 채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불가능해.] [불가능하긴 뭐가 불가능하냐.] [복제는 완벽했다. 우리는 그대와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대에겐 이 폭발에서 벗어날 여력도, 그것을 통제할 능력도 없었다.] [너희가 그랬듯이 말이지?]조금 유쾌해진 기분으로 되물었다.
환영은 잠시 침묵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그 울적한 목소리에 조금 더 유쾌해졌다.
[그대와 우리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없긴 왜 없는가.
저들은 내 몸을 복제한 신체에 빙의되었을 뿐이다.
당연히 죽음의 위기 따위는 느끼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그 차이는 크다.
매우 크다.
거기에 더해 다른 점이라면, 신체와 능력과 별개로 지닌바 재능이 다르다는 점 정도겠다.
그건 뭐, 어쩔 수 없지.
[그러는 너도 어떻게든 살아 있네.]비록 마그마에 잠겨 가고 있지만, 살아서 내게 전음을 보낼 정도의 여력은 있어 보였다.
[내 힘을 끌어왔다.]사도가 답했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 짧은 대답 속에 자신의 본래 몸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뉘앙스와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전투에선 결국 내가 이겼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 그의 본체와 마주하게 되더라도 이기는 건 내가 될 것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사도는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별 의미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곧 용암에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조용히 미소 정도만 지을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이 죽는 모습을 보며 웃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뭐, 어떤가? 내 환영에 빙의되어 있던 이들이다.
정말 죽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그리 좋으십니까?]아부부의 말에 그렇다고 답해 주었다.
정말 좋았다.
이만큼 위험천만한 대결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통쾌하고 기분 좋은 승리 또한 그랬다.
그 결과로써 얻게 된 내 성취에 뿌듯해했고, 또 만족했다.
좋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기쁨과 환희를 느끼며 좋아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신체와 마력이 완전히 회복됩니다.] [결과를 산출하는 중입니다.] [획득한 점수 : 6,900,390점] [현재 등수 : 1등] [다음 스테이지가 진행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몇 점이야, 저게.
누적 점수로 사은품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까 이준석이 설명한 것에 따르면, 점수는 단순히 등수를 결정할 뿐이라 했다.
[팀원들이 스테이지에서 퇴장하셨습니다.] [현재 남은 팀원 (1/6)] [스테이지 진행을 계속하시겠습니까?]다들 나가 있나 보다.
다행이었다.
내심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쨌든 살았으면 된 거지, 뭐.
시스템이 그들을 미리 내보낸 걸까.
어쩌면 일행이 먼저 스테이지에서 나가서 기다릴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다.
‘아니요’를 누르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모험의 신이 당신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느림의 신이 당신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결투의 신이 당신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죽음의 신이 당신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죽음의 신은 당신에게 사도의 시련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죽음의 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시련을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사도직을 부여받습니다.] [빛의 신이 당신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빛의 신은 당신에게 사도의 시련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빛의 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시련을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사도직을 부여받습니다.] [천공의 신이 당신에게 사도직을 제안합니다. 천공의 신은 당신에게 사도의 시련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천공의 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시련을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사도직을 부여받습니다.]종종 내게 반응을 보이던 신들의 메시지가 지나가고, 그동안 한두 번 정도밖에 보지 않은 신들까지 사도직을 제의해 왔다.
스테이지에서 종종 보이던 파종의 신도 있었고, 나와 사이가 안 좋은 자연의 신도 있었다.
의외였다.
폭발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다 보니 힘을 다루는 능력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 한꺼풀 벗어 던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신들이 이렇게까지 열렬히 반응할 줄은 몰랐다.
조금 전 내가 이룬 경지의 상승이 어느 중요한 선을 나누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단지 추측만 해 오던 내 힘을 확인하고, 미뤄 두었던 판단을 내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다 몇몇 신이 동시에 제안을 건네니, 너도나도 제안한 것이다.
실상이 어느 쪽이든 내가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별 교류가 없던 신이나 사이가 안 좋은 신들은 그렇다 쳐도, 내가 사도가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느림의 신조차 제안을 해 왔다는 게 놀라웠다.
무슨 생각일까.
이것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없으니, 이대로 넘어가야 하려나.
키리키리가 말하길, 49층 이후 신들과 대면할 수 있는 스테이지는 없다고 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경합 이후에 49층에 도전했을 텐데.
하필이면 딱 49층을 클리어하고 난 이후에 이런 일이 생긴다.
쯧쯧, 혀를 차면서 허공에 생긴 포탈에 다가갔다.
나가기 전, 인벤토리에서 옷가지를 꺼내 입었다.
이전에 착용하고 있던 갑옷들은 죄다 넝마가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몸을 확인했다.
시스템의 치료 덕에 몸에 흉이 남지는 않았다.
주변의 열기는 가벼운 옷가지를 태우기에 충분했으나, 나는 이제 이 열기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포탈을 구동시켰다.
물론 나가기 전, 사도직을 제안해 오는 메시지들은 하나하나 ‘아니요’를 눌러 거절해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막차는 옛날 옛적에 떠나갔지 싶다.
잠시 후, 포탈을 통해 거주 지역의 광장으로 이동되었다.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운 광장 한복판.
다시 세계가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인지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지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단편적이나마 지배력의 침해에 대한 단서를 얻은 지금, 내가 알게 된 것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사람들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주변을 마력으로 감싸, 그 힘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다면 진정한 의미의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태우거나 얼리고, 빛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몇 가지밖에 알지 못하는 마법들이었지만, 그것들을, 지배력을 무시하고 타인에게 사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정말 궁금했다.
“케에엑!”
“그래, 살아남아서 다행이구나.”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는 개구리에게 화답해 주었다.
광장에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개구리뿐인가.
다른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다.
“케에엑!”
“그래, 고마워.”
개구리가 건네는 축하의 말에 안 그래도 좋았던 기분이 더 좋아졌다.
다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도 기뻐 보였다.
뭐가 저리 좋은지, 평생 처음 있는 일인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인 것처럼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연스럽게 18층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덮어 두고 싶은 기억이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 되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연상되고는 한다.
그때 나는 어떻게 했었더라.
괜히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케에엑!”
“그래, 너무 소란스럽지? 숙소로 돌아가자.”
개구리는 시끄러운 게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혼자 이 광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피곤한지도 모르겠다.
시끄러웠지만, 동시에 평화로운 거리를 걸었다.
걸으며 내가 방금 뱉었던 말을 계속 입안에서 굴려 보았다.
돌아가자니.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
내가 돌아가야 할 방향은 그곳이 아니었다.
여전히 기쁘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다지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