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32
x 232
튜토리얼 55층 (1)
“뭐야, 벌써 끝이야?”
너무 빨리 끝나 버린 것 같은데.
기대했던 것보다 싱겁게 끝나 버리니 허무하게 느껴졌다.
55층 스테이지의 테마는 간단했다.
저주에 걸린 영애를 구하기 위해, 봉인되어 있는 최악의 던전에 도전해 던전 최심부에 숨겨져 있는 보석을 회수해 오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 스테이지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건, 스테이지의 콘셉트 때문이 아니라, 스테이지에 진입하기 전 키리키리가 내게 했던 말 때문이었다.
키리키리는 금방 갔다 오겠다는 내 말에 며칠 안에 돌아오진 못할 거라고 답했었다.
그 말투가 퍽 자신 있어 보여, 나는 55층 스테이지의 난이도가 상당히 까다로운가 보다 하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싱거웠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끝없이 지하 속을 기어 다니며 방향 감각을 흐트러뜨리고, 최심부의 위치를 숨기려 애쓰던 던전은 분명 까다로웠다.
내가 아닌 다른 도전자였다면 꽤나 고생할 만한 던전이었다.
다만, 키리키리가 클리어까지 오래 걸릴 것이라 단언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스테이지에 진입한 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부부야, 혹시 주변에 숨겨진 것 있나 좀 찾아봐.”
[없어요. 그리고 이거 진품 맞습니다.]“확실해?”
[그럼요. 용사님이 마법을 잘 몰라서 그래요. 이거 맞습니다.]아부부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확실한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부부에게 벽이나 천장, 바닥 너머에 숨겨진 공간이 따로 있나 찾아보게 했다.
아부부는 투덜거리면서도 팔랑팔랑 날아다니며 주변을 수색했다.
아부부는 더 이상 검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았다.
경합 스테이지에서 크게 손상된 이후, 아직도 아부부를 수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아부부는 성검의 핵이었던 결정체만 남아 둥둥 떠다니고 있다.
검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되었지만, 검령으로서 높은 지능과 마법 능력을 갖추고 있고, 유사시 신성 마법을 난사할 수 있는 건 그대로이기에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사실 아부부를 처음 얻었을 때부터 검보다는 마법 보조기처럼 쓰고 있었기에 별 차이도 없었다.
오히려 크기가 작아져서 들고 다니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아부부 본인은 매우 괴로워했지만.
위엄이 사라졌다나, 뭐라나.
하도 투덜거려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결정체에 자색의 비단 손수건을 묶어 주었다.
처음엔 이상하다고 싫어하더니, 이제는 망토 휘날리듯 손수건을 펄럭이며 잘만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민혁에게 에고 소드를 수리할 방법을 못 찾겠다는 메시지를 받은 뒤 키리키리에게도 방법을 물어보았지만, 그녀도 당장 가능한 방법은 없다고 답했었다.
내심 수리쯤은 당연히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조금 충격이었다.
아부부는 대충격이었고.
키리키리는 30층을 넘어선 뒤 상점 창이 한번 업데이트되었던 것처럼, 60층에 올라간 뒤 다시 방법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만약 60층을 넘어선 뒤에도 방법이 없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할 리도 없으니, 그때가 되면 방법이 생기겠구나 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부부도 내게서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는지, 본인의 모습에 투덜거리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던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아부부가 자색 손수건을 펄럭이며 날아왔다.
이제 보니 저 손수건에도 때가 많이 탔다.
새 손수건을 하나 사 주거나, 저 손수건을 세탁해 주거나 해야겠다.
[없어요.]“그럼 정말 이게 진품인가.”
[그렇다니까요.]아부부가 재차 확신했지만, 나는 뭔가 미심쩍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는 이따금 난이도와 별개의 요소로 사람을 엿 먹이고는 한다.
이번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가품이 진품으로 둔갑되어 있다든가, 사실 모아야 하는 보석이 하나가 아니라든가.
“음… 미심쩍지만, 일단 가 보자.”
한번 허탕을 쳐야만 다음 단계가 열리는 종류의 스테이지일 수도 있으니까.
[아, 맞다니까요.]* * *
[55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튜토리얼, 헬 난이도 45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과 부상이 회복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84,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당신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신이 다수 존재합니다. 11,0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추가 보상으로 3,3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으음…….”
[거봐요, 진짜라니까요.]아부부의 말대로 보석은 진품이었고, 그것을 가지고 성으로 돌아가자마자 스테이지가 종료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허무한 결말이었다.
“사, 사도이시여, 혹시 다른 일정이 없으시다면 성에서 며칠 묶으시다 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푸른 보석을 받아들자마자 얼굴이 시뻘게진 채 울먹거리고 있던 성주가 말했다.
55층 스테이지는 저주에 걸린 영애를 치료하기 위한 재료인 보석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풍풍거리며 콧김을 내뿜고 있는 영감이 그 영애의 부모이자 이 일대를 다스리고 있는 성주였다.
성주는 은인을 이 야심한 밤에 그냥 보내기 죄송스럽다느니, 약소하게라도 보답할 기회를 달라느니 하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려 왔다.
아주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기세로 매달려 오는 성주의 태도에 잠시 고민해 보았다.
“예, 그러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자, 성주는 감격해 공중제비라도 돌 기세였다.
참 대하기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오늘은 시간도 늦었고, 보석을 구해 오느라 피곤하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로 성주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성주가 붙여 준 시종에 의해 방으로 안내되었다.
시종의 뒤를 따라가며 비로소 성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이전에는 던전으로 바로 날아가느라 성을 제대로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널찍한 복도를 따라 그림이나 조각상 등의 예술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저녁임에도 밝은 조명들이 복도를 환하게 비추고 있어, 전시품들을 구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카펫을 밟는 듯한 푹신푹신한 질감의 바닥재나 높은 천장만 보아도 성의 호화로움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창밖으로 보이는 성의 야경이었다.
성에는 지구의 고층 빌딩을 연상케 하는 높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 그런 건물들 하나하나가 밝은 조명과 장식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런 건물들을 가장 높은 성주의 탑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지구 시가지의 야경 같았다.
창문을 열고 그 너머로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니, 지금 있는 이곳도 20층쯤 되어 보였다.
과학과 마법을 함께 발전시키면 이런 모습이 되는 건가 싶었다.
사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며 멋진 전경을 마주한 적은 많았다.
그걸 제대로 감상할 여유가 없어서 문제였지.
그동안 공략에만 너무 몰두해 이런 멋진 광경들을 흘려보냈다고 생각하니, 좀 아쉬웠다.
* * *
“이거 화장실은 어디쯤에 붙어 있는 거야.”
“안내가 필요하십니까?”
“아니… 됐어.”
시종을 돌려보내고 다시 방을 돌아보았다.
크기가 너무 커서 그냥 방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방 전체를 둘러보려면 시간깨나 걸리지 싶었다.
돌아다니며 화장실과 주방의 위치만 확인하고 눈에 보이는 침대에 누웠다.
푹신푹신한 침대에 눕자 몸의 힘이 절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아부부야, 이거 마법이지?”
[네. 침대에 이것저것 달려 있네요. 고작 침대에 장착하긴 지나치게 까다로운 마법들입니다. 굉장하네요.]침대에 사용자의 피로를 풀어 줄 수 있는 마법을 장착해 두다니.
생각지도 못한 사치였다.
상점창에서도 이런 침대는 안 팔 텐데, 이거 하나 가져갈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용히 있던 세레지아가 나를 불렀다.
[용사님.]“응. 왜?”
아부부나 내 말에 대꾸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세레지아가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기에 곧바로 대답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않으십니까? 포탈은 이미 생성되었습니다만.]잔소리였다.
몸에 걸치고 있던 갑옷들을 인벤토리에 넣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영혼검도 침대 맡에 밀어 두었다.
“좀 쉬려고.”
[네?]55층 스테이지를 이미 클리어했지만, 이곳에서 며칠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정말로 휴식이 필요하기도 했고, 곧바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던 키리키리의 말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왕 쉴 거라면 휑한 대기실이 아니라, 이런 곳에서 쉬고 싶었다.
내일 아침이면 수발들어 줄 사용인들도 온다는데, 나도 대접을 받으며 그냥 뒹굴거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듯 마법을 건축이나 실생활에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이곳을 조금 더 겪어 보고 싶었다.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도전자들이 하나둘 지구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도전자들을 통해 지구에도 마법이 보급될 것이다.
마법을 이용해 높은 생활수준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이곳에 대해 조금 더 알아 두고 싶었다.
세레지아에게는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알겠습니다.]세레지아가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부부의 검신이 녹아버린 이후, 일행에서 에고 소드 포지션을 독점하고 있어서인지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몸을 비비적거리며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자주 했던 말이다.
다른 차원의 문화와 정보를 더 알고 싶으니, 사람들과 더 대화하다가 클리어하겠다.
조금 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겠다.
나 혼자 계속해서 되뇌던 핑계였다.
사실 그때는 그런 것에 별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강박적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던 나에게 멈춰 설 이유를 만들어 주어야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이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김민혁이 여유가 된다면 이런 정보들을 모아 달라는 부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는 정말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당장 나 자신을 재촉한다고 다음 경지가 보일 것 같진 않았다.
경합 스테이지에서 사도들과의 전투를 통해 나는 많은 숙제를 얻게 되었다.
심검 등 오러를 활용하는 기술들이 나와 동급이거나 더 우위에 있는 상대에겐 너무나 뻔히 보인다는 단점을 고치기 위해 오러의 운용을 조금 더 신속하고 은밀하게 해낼 수 있게 해야 했다.
사도들과의 전투 중 실마리를 얻게 된 힘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필요도 있었다.
타인 혹은 사물의 지배력 침해라는 이 능력은 이미 한 번 깨우쳐, 사용하고 난 뒤에도 다시 시도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그런 숙제들을 완수해 내기 위해 지난 몇 달을 수련에만 전념하며 시간을 보냈다.
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수련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시간 유폐 스킬을 계속해서 사용해 시간을 느리게 만들며 수련했다.
숙제들을 모두 마친 지금, 다음 경지로 올라서기 위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해 나를 몰아세우거나 조급해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실마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아야 할 때였다.
나는 많이 바뀌었다.
강박적으로 물과 육포만 먹고 키리키리의 들판이 아니면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잠시 숨을 돌릴 때조차 내 몸에 불꼬챙이를 찔러 넣고 신경줄을 파헤치던 그때와는 다르다.
그런 튜토리얼에서의 생활이 너무 잘 맞아,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밖에 나가기 싫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뭉그적거릴 때와도 다르다.
고작 며칠의 휴식으로 나태해지지도, 물러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긴 쉴 때가 되긴 했죠. 너무 오래 달렸어요.]아부부가 말했다.
“그래, 그냥 쉴 때 됐으니까 쉬는 거지, 뭐.”
몇 달 열심히 달린 뒤 하루 이틀 쉬는 거다.
당연한 휴식이었다.
그 당연한 휴식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며 정당화하고 있는 내가 새삼 재밌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