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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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3)
사람 얼굴이 이리 가까이 있으니, 부담스럽기에 앞서 무섭기까지 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박정아의 눈동자는 어쩐지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피해 보려 했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인지라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게요…….”
어렵사리 말문을 떼었지만, 박정아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듯했다.
조용히 내 눈만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눈이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혼란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손을 들어 내 입을 막을 수 있었다.
손등에 맞닿은 박정아의 입술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의 가느다란 숨결도.
박정아는 이 손 안 치우냐는 듯 오히려 더 강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다면 뒤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내 등 뒤는 벽으로 막혀 있었다.
등에 힘을 주어 어떻게 벽을 밀어 보려 했지만,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젠장, 이거 도대체 뭐로 만든 벽이야.
옆으로 도망가려 해도 내 양쪽에는 벽을 짚고 있는 박정아의 손이 있었다.
결국 나는 도망치지도 못하고 손으로 박정아의 입술을 막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있어야만 했다.
길고 길었던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박정아가 내 손등에서 입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흐아. 뭐야, 이게.
지나친 긴장과 혼란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빠져 벽에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박정아는 그런 나와 몇 걸음 떨어져,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짜 아닌가 보네.”
“…네.”
아니라니까!
왜 사람 말을 듣지도 않고 돌격부터 하는 건데!
그렇게 소리쳐 내 억울함을 내비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나와 떨어진 박정아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걷어차면서.
작은 방 안에 비치되어 있던 의자와 책상, 꽃병에 전등까지.
온갖 것들이 박정아의 발길질에 부서지고 깨지고 날아다녔다.
마구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침착하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차례로 걷어차고 있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야, 나 무서워.
[나도 무서워.]호재 놈이 나와 똑같은 말투로 답했다.
이 빌어먹을 놈.
[이거 다 네 탓 아니냐. 뭐가 됐든 네가 잘못을 했으니까, 저렇게 화내는 거 아니야?]뻔뻔하게 그게 왜 내 잘못이야, 하고 답할 줄 알았던 호재 놈은 의외로 조용히 침묵했다.
이 자식, 이거 켕기는 구석이 있긴 하구만.
[야, 너랑 대화할 때 필요한 게, 단말이 되는 이 반지고. 또 통로가 되는 내 존재라고 했지?] [어, 그랬지.]호재 놈의 말을 듣고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렇다는 건 최소한 이 경합 내에서는, 내가 근처에 있는 한, 누구든 이 반지를 통해 호재 놈과 소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따가 쟤한테 반지 넘겨주고 가면 돼.]어쩐지 굳이 단말을 반지 형태로 만들었더라.
그나저나 이거 여자한테 선물하기에는 너무 단조로운 반지 아닌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호재가 설명했다.
[그거 시동어를 외면 디자인이 조금 바뀌는 기능이 있어.]나름 이것저것 숨겨 놨구만.
그나저나 뭔 잘못을 했는데, 저렇게 화내고 있는 거야.
내 기억에는 딱히 없는데.
[음… 뭐. 여러 가지 있지.]말끝을 흐리는 호재의 목소리로 보아, 자세히 설명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자세한 사항은 전혀 몰랐으나, 뭐가 됐든 저 호재 놈이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확실했다.
우선은 박정아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한참 성을 내던 박정아는 기운 없이 내 앞에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아닌가요?”
“네……. 저는 그 호재 녀석의 분신인데요. 아, 완전히 같은 존재는 아니고요. 인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그냥 동생 정도로 생각하시면 편해요.”
우선 나를 소개했다.
혹시라도 계속 오해할까 봐서 빠르게 내 소개를 마쳤다.
“네. 우선 사과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을 해서.”
박정아는 무언가를 걷어차지 않고서는 도저히 속이 안 풀릴 것 같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나는 갑자기 입술을 들이댄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들어 보니 내 앞에서 물건을 부수며 화를 낸 것에 대한 사과였다.
“아니, 아니. 괜찮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호재 놈 잘못이겠죠.”
“네. 그렇긴 하죠.”
박정아는 사양을 표할 것도 없이 호재에게 잘못을 돌려 버렸다.
이 녀석 도대체 뭔 잘못을 한 거야.
다음으로는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경합 입장 이후부터 우리를 안내해 준 대머리, 백성웅 씨에 대해서나, 이곳까지 오는 길에 있었던 일들.
앞으로 배정될 숙소나 경합을 통해 진행될 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방금 전까지 잡동사니들을 때려 부수던 모습과는 달리, 친절하게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며 설명하는 그녀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았다.
마치 고객 센터 직원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아, 물론 고객 센터 직원과는 만나 본 적도 대화한 적도 없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용용이에 대한 특별한 케어가 필요하다는 것과 내 친구 석천이에게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박정아는 가능한 조치를 다 하겠다고 말해 주었다.
특히 용용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조치의 예를 들어 주고, 이런 식으로 진행해도 괜찮냐고 재차 묻기도 했다.
박정아의 설명은 나머지 궁금한 점이나 필요한 게 있다면 백성웅 씨에게 물으면 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녀는 저녁에 시간이 괜찮다면 같이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우리 용용이는 술 마시면 안 되는데요.”
“미성년자라서요?”
“아뇨……. 그건 아닌데…….”
대충 말을 흐려 넘겼다.
박정아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용용이에게 술을 먹일 생각은 없었는지, 음료도 함께 준비해 가겠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방에서 나가기 전, 박정아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이 반지 받으세요. 이걸로 호재와 대화할 수 있을 거예요.”
박정아는 반지를 뚱한 표정으로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대화는 지금도 메시지로 할 수 있는데…….”
“메시지와는 달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박정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네요. 목소리가 들리네. 제 말은 어떻게 전하죠? 그냥 반지를 든 채 말하면 되는 건가요? 아, 그래요?”
내가 대답해 줄 것도 없이, 반지를 통해 호재가 대답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전 가 볼게요.”
들을 내용도 다 들었고.
반지에 열중하고 있는 박정아를 두고, 슬며시 방을 나갔다.
방을 나가기 전, 박정아가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표정에는 나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녀의 온화해진 얼굴을 보며 마주 인사해 주고, 방문을 닫았다.
“야, 이.”
방문이 닫히기 직전, 어쩐지 온화한 얼굴에서 욕설의 도입부가 흘러나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뭐가 됐든 내가 아닌 호재 놈을 향한 것일 테니.
“삼촌!”
백성웅 씨의 등에 업혀 있던 용용이가 내가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자마자 내게 안겨 들었다.
혹시 쫓아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떻게 잘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도중에 용용이가 들어왔으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삼촌, 누구야?”
용용이가 방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를 방으로 데려갔던 것이나, 방 안쪽에서의 대화 때문에 묻는 것이다.
용용이라면 방음이고 뭐고 방 안에서의 말소리를 그대로 들었을 테니, 의문이 더했을 것이고.
용용이의 질문에 대답하기 난감함을 느꼈다.
이럴 때는 보통 호재 놈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반지마저 주고 나와 방법이 없었다.
“그게… 음. 나중에 얘기해 줄게.”
아직 용용이에게 복잡한 가정사에 대해 설명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 * *
[이연희]“귀찮은데.”
좁다란 비탈길을 가로막고 있는 네 사람을 보며 말했다.
솔직히 귀찮았다.
“아가씨가 귀찮건 말건,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 해서 말이야.”
“무슨 볼일인데.”
물론 경합 지역으로 향하는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시비를 걸고 있는 무리의 용무가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뻔했지만, 그래도 예의상 물어보았다.
“헬 난이도 도전자 이연희, 역사상 두 번째로 60층에 근접해 있는 도전자의 역량을 알아 오라는 의뢰지.”
“의뢰주는?”
세상에 어떤 간 큰 놈이 헬 난이도 도전자의 힘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지. 사실 말해 줘도 다 외우기도 힘들걸?”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나 보네.”
“당연하지. 61층은 두 사람이 들어가면 깰 수 있다면서. 그 말은 당신과 그 사람 둘이 61층을 벗어난다는 말이고, 어쩌면 근시일 내에 클리어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흥미롭다는 듯이 떠벌리는 남자의 말에 기분이 더 나빠졌다.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떠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클리어를 응원하는 사람도 많지만, 불안해하는 사람도 많지. 그리고 두 사람이 불러올 변화를 미리 알고 대처해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은 더더 많고.”
현실적인 남자의 말이 어쩐지 역겹게 느껴졌다.
이상할 것 없는 사람들의 당연한 욕망이었지만, 너무나 역겹고 하찮게 느껴졌다.
“목숨이 아깝지는 않아?”
내 말에 남자는 손을 가리고 후후거리며 웃었다.
시대가 어느 땐데 저렇게 웃는 거야.
경극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살아 돌아갈 자신은 있거든. 여기 이 친구들은 죽더라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약속이 되어 있고.”
“그래?”
“그렇지. 자, 그럼 시작해 보실까?”
남자는 경쾌하게 말했다.
나도 그 뜻에 따라 주기로 했다.
“죽여.”
내 말과 함께 길을 가로막고 있던 네 사람의 뇌에 자리 잡고 있던 정령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세한 먼지와 함께 적의 코로 들어가, 뇌 한복판에 자리 잡은 뒤, 그 뇌를 진탕으로 만들어 적을 무력화시킨 정령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자신들의 일을 마무리했다.
자연계에 속하지 않은 정령이고 사실 정령이라기보다는 악마라고 불리는 일이 더 많은 존재들이었지만, 그 유용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픽픽 쓰러지는 네 사람의 모습에선 아무런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없었다.
발로 그들의 몸을 툭툭 차, 의식이 없음을 확인했다.
“소각해. 아무도 알지 못하게끔, 깔끔하게.”
조용히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네 남자의 시체를 뒤로하고, 산길을 계속 걸어 나갔다.
* * *
이번 경합은 각 차원 별로, 그리고 차원 내에서도 각 서버별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다.
경합 자체는 전 차원이 통합되어 진행되지만, 다른 차원의 사람을 만나려면 제법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 서버는 지구 통합 서버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차원의 통합 서버는 지구 통합 서버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다른 차원의 어느 서버로 이동하고자 한다면, 한국 서버에서 지구 통합 서버로, 지구 통합 서버에서 타 차원의 통합 서버로, 타 차원의 통합 서버에서 타 차원의 개별 서버까지.
총 세 개의 서버 포탈을 지나쳐야 한다.
심지어 그 포탈을 지나치는 데에는 각각의 제한이나 규칙이 있었다.
차원 규모의 경합을 처음 맞는 지구와는 달리, 차원 규모의 경험을 이미 한차례 경험한 차원도 몇 존재했다.
그런 차원들에선 이미 경합 내에서의 규칙을 확립해 두었고, 이번에 새로 참가하게 된 차원들 중 일부는 기존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방식을 택했다.
지구의 특히 내가 속한 한국 서버가 그러한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의 할당 구역을 관리하는 조직, 자경단의 허가를 받아 지구 통합 지역에 진입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다.
튜토리얼 내에서 전과가 있거나, 조사 대상이 아니라면 자경단은 간단한 심사를 거친 뒤, 지구 통합 지역으로의 입장 권한을 부여해 준다.
앞으로 지나야 할 여러 관문에 비한다면, 사실 지구 통합 서버로 향하는 관문은 가장 간단한 편에 속했다.
다만 그 관문을 담당하고 있는 자경단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당연한 말을 인사말이랍시고 건네는 박정아를 보며 짜증을 삼켰다.
의도적으로 내게 짜증을 유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를 보자마자, 급히 등 뒤로 자신의 손을 숨기는 모습을 보인 것도 어쩌면 내 속을 긁기 위해 의도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에선 분명 아저씨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통합 서버로 옮기고 싶다고?”
“네.”
“이유를 물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