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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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5)
[박정아]“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반지를 받고 마음이 너무 들뜬 것 때문은 아닐까.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평소에는 깊이 생각하기도 싫었던 주제를 내 입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나도 나한테 자격이 없다는 건 알아요. 당장 지구에 나가면 저한테 죽었던 사람들의 유가족들이 한 트럭은 찾아오겠죠. 저 자신은 옳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리 옳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알아요.”
내가 원하는 바를 짧게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 건 장구한 변명의 시작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떳떳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사람들을 위한다는 핑계를 썼으니,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은 정말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했었죠.”
언젠가 김민혁이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대화합의 날이었던가.
그가 말하길 나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했다.
범죄자들을 잡아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과 범죄자들을 죽이는 것.
그중 내게 더 큰 의미가 있는 목적은 당연히 후자였고, 전자는 그저 후자를 위해 사용될 뿐이라고.
김민혁은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내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만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나의 목적을 다른 하나의 가면으로 써서 자신을 속이기보다 두 가지 목적을 구분하고 둘 다 이루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의미는 좋았고, 해 준 말도 좋았으나 결국은 범죄자들을 잡아 죽이고 싶다는 내 욕망을 드러내어 주었을 뿐이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바깥에 나가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 자신이.
그래서 평생 튜토리얼에 남아 자경단을 책임지겠다는 김민혁의 말을 따라 했다.
나도 그러겠다고.
클리어를 향해 달려가던 그가 60층에 갇히게 되었을 때 안타까워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
이연희가 등장하고, 그녀가 60층을 향해 순항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를 응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초조했다.
김민혁이 밖으로 나갔을 때 직감할 수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어떤 이유에서든 이 튜토리얼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씩 밖으로 나가게 될 거라고.
그리고 결국에는 나 혼자 이곳에 남게 될 거라고.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 그간의 행적들을 스스로 지워 내기라도 한 건지, 새로운 욕망의 싹을 틔워 냈다.
묻혀 있던 욕망이 발아해 밖으로 고개를 내민 이후부터 그 존재감은 너무나도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너는 지금도 나갈 수 있어.]반지는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쉽게 속삭였다.
마치 그 일에는 아무런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만나고 싶어요.”
만나서 얼굴을 쳐다보며 이야기하고 싶었고, 함께 걸으며 돌아다니고 싶었다.
며칠의 짧은 시간이 지나면 헤어져야 한다는, 기한 없이 언제까지고 함께할 수 있다는 안도를 느끼고 싶었다.
십 년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짧은 기억에만 의존해 그리던 잔상과 딱딱한 메시지의 글자로만 마주하던 그를 옆에 두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내가 그 옆을 쫓아다니기라도 하고 싶었다.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 *
[이호치]“오늘 하루,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방문 앞에 서서 인사하는 백성웅 씨를 배웅했다.
오늘 하루 백성웅 씨는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산길에서 용용이가 그 대머리를 찰싹거릴 때나 갑자기 나타난 곰탱이가 폭사했던 그날보다 오늘이 백성웅 씨에게 더 힘겨웠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자경단 본부에 다녀온 이후, 우리는 숙소를 안내받았다.
숙소에 자신만의 가구와 장식물들을 늘어놓은 용용이는 이제 방 정리가 끝났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자고 주장했다.
용용이가 준비해 온 침대에 누워 한숨 자려 했던 나에게나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려 했던 백성웅 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오늘은 그냥 쉬고 내일부터 놀러 다니는 게 어떠냐고 용용이를 설득해 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나와 백성웅 씨는 용용이를 데리고 바깥을 돌아다녀야 했다.
거리는 마치 시장통과 같았다.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녔고, 그 와중에는 맛있는 간식거리나 자신이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아이템 등을 내놓고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용용이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신나서 구경하던 용용이는 어느 순간 물건들을 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쓸 만한 아이템도, 자경단에서 배포한 포인트 대체 화폐도 없던 용용이는 그 무엇도 살 수 없었다.
가끔 용용이가 귀엽다며 사람들이 쥐어 준 간식 몇 개를 얻긴 했지만, 용용이의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었다.
백성웅 씨는 자경단에게 화폐를 조금 지원받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나는 거절했다.
용용이의 씀씀이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용용이의 욕심을 제대로 채우려면 시장에 나온 물건을 싹쓸이해도 모자랄 것이다.
아무리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용용이는 드래곤이었다.
나는 용용이에게 상거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필요한 교환이나 구매에 대해 들은 용용이는 당차게도 자신이 직접 화폐를 벌어 원하는 물건을 사겠다고 선언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도 용용이의 취침 시간이 되어 그 무모한 도전을 내일로 미룰 수 있었지만, 결국 내일부터는 용용이의 장사가 시작된다.
“하아,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
호재 놈과 대화라도 되면 좋을 텐데, 박정아에게 반지를 건네준 뒤로는 조언도 들을 수 없었다.
용용이가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흥분했던 것처럼, 내게도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모르는 것, 낯선 것투성이였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그저 신나고 흥분되지만은 않았다.
피곤했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박정아였다.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하다 오늘 저녁에 그녀가 찾아오겠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문을 열어 주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 * *
“다른 방에 가서 마실까요?”
박정아가 내 무릎 위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용용이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눈을 꾹 감고 있던 용용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대로 마시죠.”
용용이는 나와 박정아가 탁자에 마주 앉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나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아무래도 자기도 끼고 싶은 모양이었다.
너무나도 졸려 내 무릎 위에서 꾸벅꾸벅 졸지언정 혼자 침대에서 잠들고 싶진 않은가 보다.
“아이가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예… 뭐.”
피곤하기는.
용용이는 피곤하다고 자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드래곤은 잠을 몰아서 자는 종족이다.
때문에 짧으면 몇 달, 길면 몇 년에 걸쳐 수면기에 돌입하게 된다.
이전에 용용이가 첫 수면기에 들어갔을 때, 나와 호재 놈은 이 수면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용용이가 없는 하루하루는 너무 지루하고 또 우울했으니까.
호재는 용용이가 매일 조금씩 나누어 잘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 이후로 용용이는 어지간하면 하루 몇 시간은 반드시 수면을 취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인테리어가 좀. 원래 이런 방이었나요?”
박정아가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뭘 말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핑크로 도배된 방과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여기저기 매달려 있는 가구들 때문이겠지.
나는 그것이 용용이의 수제 가구들과 장식물들임을 알려 주었다.
“아, 그래요? 역시 여자아이라 이런 면에서는 다르네요.”
“네? 용용이는 남잔데요?”
“…네?”
박정아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이 되물었다.
“용용이는 남자애예요. 수컷. 염색체는 XY. 딸이 아니라 아들이요.”
“…네?”
박정아는 우리의 자식 교육에 심대한 의심을 품게 되었으나, 나는 이건 용용이의 개인 취향이며 관여할 생각도 해선 안 되고, 관여해서도 안 된다는 말을 분명히 전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심각했다.
박정아는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호재에게 들어 용용이의 취향이 매우 여성스럽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리 정색하고 반응할 일이었던가.
모르겠다.
“호재는요? 반지로 아무 말도 안 해요?”
“네. 아까까진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저녁쯤에 61층에 들를 일이 있다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61층이라.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내 기술적인 이해가 부족하다 해도 박정아의 말이 불가능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61층은 이미 호재의 권역에 속해 있다.
호재가 60층에 있건, 61층에 있건 통신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통신을 멈춘 이유는 뭘까.
정말 뭔가 할 일이 있던 걸까.
아니면 박정아와 나 사이의 대화에 끼고 싶지 않다는 건가.
우선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보기로 했다.
“아, 그리고 편하게 대하셔도 괜찮아요. 호재 놈 동생이라 생각하시고.”
사실 편하게 반말하며 대해 주는 게 더 좋다.
안 듣던 존대를 듣는 것도 껄끄럽고, 나이로 보아도 박정아가 나보다 연상이었다.
한참 연상이었다.
“응, 그럴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편안한 대답에 왜 이 여자가 호재 놈 같은 미친놈이랑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 화목해진 분위기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박정아는 지금까지 개발된 것 중 가장 독한 술이라며, 자신 있게 술잔을 내밀었다.
아무리 나나 호재라 해도 취할 수밖에 없는 술이라 들었지만, 정작 나는 아무런 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반대로 박정아만 빠르게 취해 버렸다.
박정아가 너무 취해 그녀의 생각을 들을 수 없게 되기 전에 대화를 빠르게 진행시켜 보았다.
박정아가 내게 묻고 싶어 했던 건 역시 호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호재요?”
“응… 메시지를 통해서나, 반지를 통해서나 전해 듣긴 했지만, 그래도 어떤지 더 알고 싶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떤지. 어떻게 뭘 하며 지내고 있는지.”
혹시 이 질문 때문에 호재 놈이 통신을 끊은 게 아닐까.
박정아가 내게 이 질문을 편히 할 수 있도록 못 듣는 척을 하며.
“잘 지내고 있죠. 좋을 때는 생각보다 더 잘 지내고, 안 좋을 때는 생각보다 더 안 좋게 지낼 거예요. 평소에는 함께 식사하고, 용용이를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는 연구에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내고요. 불안정하고 힘들어할 때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많이 좋아졌어요. 밝아지기도 했고요.”
박정아는 내 말을 암기라도 하려는 듯 주의 깊게 들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도 조금씩 말해 주었다.
이왕이면 좋았던 일화들 위주로.
듣고 싶은 만큼 들었는지, 박정아의 얼굴에 만족이 떠올랐을 때 나도 그녀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늘 궁금했던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둘은 왜 사이가 안 좋았던 거예요?”
호재는 잘 설명해 주지 않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사이가 안 좋았고, 내 머릿속에 남아 있던 기억과 그 사실의 부조화 때문에 혼동을 겪기도 했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 우선은 내가 요청을 죄다 거절하기도 했고.”
“요청이요?”
박정아는, 미안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말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나을 거라고.
“처음 사이가 틀어진 건 그런 이유였고, 그 이후로는…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화가 나기도 했고, 실망하기도 했고.”
그 요청이라는 게 정말 큰일이었던 것 같다.
다만 호재에게 내가 직접 물어본다 해도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돌을 던져 보았지.”
“돌이요?”
뜬금없는 말에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어느 정도 취했는지 자신의 말을 이어 가기만 했다.
“예전에, 두 번째 경합 때, 이야기하는 걸 엿들은 적이 있거든. 누구와 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혼잣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가지고 있던 성검과 한 대화 같기도 해. 검과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내 기억에 있는 장면이었다.
언젠가 호재는 잠든 박정아 옆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질문에 의해 끌려 나온 속내였지만.
“항상 불안했거든.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그 사람에게 별 의미 없는 건 아닐까, 하고. 우리 관계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에게는 큰 의미가 아닌 건 아닐까, 하고.”
내 기억을 미처 되짚어 보기도 전에 박정아는 자신의 말을 줄줄 이어 나갔다.
이미 듣고 있는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풀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던져 봤어. 내가 던진 돌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멍청한 생각이었지만 효과가 있더라고. 내가 화를 내자 관계를 끊어 버리는 대신 나한테 마주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속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어.”
이상했다.
“이상하지? 그때는 그랬어. 나한테 반응하는 모습을 보려고 더 심하게 화를 내고 더 욕하고. 마치 그게 내가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응, 전혀 모르겠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아무튼 제가 호재를 대신해 사과드릴게요. 사실 잘은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호재 놈이 잘못한 거겠죠.”
내 말에 박정아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혹시 제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말씀하세요. 뭐든 도와드릴게요.”
“정말?”
“그럼요.”
* * *
너무 안일했다.
나는 박정아가 충분히 취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도 충분히 취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박정아는 내 말을 기억했고, 자신이 기억하는 내 약속을 허투루 허비하지 않았다.
[100초 후, 결투가 시작됩니다. 양 참가자분들은 결투 준비를 마치고 대기해 주십시오.] [경합-결투 스테이지, 1라운드가 곧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