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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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9)
[박정아]“아, 나도 모른다고!”
애먼 천장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멀쩡히 일 잘하고 있던 단원들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의자 등받이를 뒤로 쭉 젖히고 누웠다.
벌써 며칠째 시달리고 있다.
가까이는 한국 서버의 랭커들부터 멀리는 지구 구역의 위원회와 타국의 랭커들까지.
죄다 결투 스테이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어 오고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함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웬 듣도 보도 못한 외계인이 지구 구역에 난입한 후 결투 스테이지에 참가했다.
만나는 모든 도전자를 곤죽으로 만들며 상위 라운드에 진출했다.
그 목적은 호치였고, 그와 만나 상대하게 되자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사라졌다.
이게 내가 아는 전부였고, 다른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 외의 내가 더 자세히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게 계속해서 정보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나도 모른다고.
혼자 푸념을 하는 사이 또 메시지가 몇 통 날아왔다.
하나하나 대꾸해 주기도 지쳐, 대충 시야 구석으로 밀어 놓고 무시하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망자들의 처리보다도 까다로운 것이 호치가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정보 수집이었다.
나는 애초에 그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어차피 내 수준으로는 가늠하기도 힘들 테니.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힘의 정도를 조금이라도 알아내고자 노력했고, 그 노력의 대상을 죄다 나로 정해 두고 있었다.
잠시 조언을 구하기 위해 회의실에서 나와 조그마한 방으로 들어갔다.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몰라.]반지는 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마주 산뜻한 목소리로 물어 주었다.
“죽을래요?”
[아, 죽긴 왜 죽어. 뭔 말을 못 하게 하냐.]물론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 리 없지만, 언제부턴가 이렇게 티격태격하듯 대화하는 게 익숙해졌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서른을 넘었는데, 오히려 전보다 애처럼 유치하게 대화하는 것 같다.
[알잖아. 나 그런 거 몰라. 못 해. 알고 싶지도 않아.]“쯧.”
[야, 그렇다고 혀를 차냐.]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언제나처럼 사고 수습은 내 몫이고, 자기는 관여하고 싶지도, 관여할 생각도 없다는 거다.
“그래요, 어차피 크게 기대하고 있진 않았어요.”
혹시나 해서 물어봤을 뿐이다.
일을 정리할 방법을 묻기보다는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나 물어보기로 했다.
“오빠, 지금 얼마나 강해요?”
[응?]“힘이 어느 정도냐고요. 물론 내가 듣고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대략적으로.”
[아니, 그거 말고 그 전 거.]“뭐요, 오빠라고 부른 거요?”
[응.]오빠라고 부른 게 뭐 대수라고.
그럼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싸웠을 때처럼 야, 너, 이 새끼, 저 새끼 할 수도 없고.
[이렇게 목소리로는 처음 듣는 것 같은데.]그럴 수 있지.
마지막으로 만난 게 거의 10년 전이다.
그동안 호칭이 몇 번이나 바뀌어 왔으니.
잠시 생각을 돌려 보았다.
“아닌데, 예전에도 말한 적 있었는데.”
[언제? 아, 음, 생각났다. 그때가 분명…….]그도 기억이 났는지 말끝을 흐렸다.
정확히 언제라고 콕 집어 언급하기는 조금 민망한 타이밍이었다.
[어쨌든 또 말해 봐, 또.]“뭐요, 오빠요?”
[응.]이 사람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놓고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민망하게.
어쩐지 창피함을 느끼며 원하는 말을 해 주었다.
“…오빠.”
[또, 또.]“…오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쥐어짜 내듯이 말했다.
어차피 이 방에는 나밖에 없는데도.
[또.]“아, 진짜! 오빠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어요?] [아니, 네가 부끄러워하는 게 재밌어.]
순간적으로 반지를 빼서 집어 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진정하자, 진정해.
[후, 하, 후, 하. 심호흡하고 진정하세요, 단장님.]진정되려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오를 뻔했지만, 각고의 노력을 통해 평정심을 겨우 되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욱하는 건 안 좋은 습관이다.
고치자, 고치자.
최대한 차분한 말투로 아까 물었던 것을 다시 물어보았다.
다행히 그도 더 이상 깐족거리지 않고 진지하게 답했다.
“네.”
[음… 글쎄, 뭐라고 설명해야 알아듣기 쉬울까.]“레벨은 어때요?”
[아, 그래, 레벨이 있었지. 그편이 알아듣기 쉽겠네. 정확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항상 레벨은 강함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해 온 그다운 말이었다.
사실 다른 모든 도전자들은 레벨을 강함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레벨이 몇인데요?”
또 레벨에 대한 그의 지론 강의가 시작될까 봐 빠르게 레벨을 물어보았다.
[500.]“…500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숫자가 나왔다.
물론 그 단위가 내 생각보다 높기도 했으나 놀란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501레벨이 아니라요?”
[응, 500.]언젠가 레벨에 대해 그에게 들었을 때, 경지의 수준으로 인해 레벨이 자동 상승되면 101레벨, 151레벨, 201레벨 이런 식으로 50레벨씩 오른다고 했었다.
하지만 저 500이라는 숫자는…….
[만렙이야.]* * *
[이호치]“음… 뭐라고 할까.”
“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용용이에게 뭐라고 답해 줘야 할까.
모르겠다.
“아니야, 잘했어.”
용용이는 시장에서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직접 돈을 벌겠다며 나섰다.
그 중요한 순간 하필 내가 경합에 참여하게 되며 자리를 비웠었다.
내심 용용이가 어떻게 돈을 벌려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는데, 용용이는 생각보다 잘해 내고 있었다.
나는 용용이가 자신이 만들어 낸 마도구를 팔거나 자신의 마법 실력으로 돈을 벌지 않을까 했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위험할 수 있으니 걱정이 되었는데, 용용이는 내 생각보다 건전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용용이는 사람들의 점을 봐주고 있었다.
심지어 장사가 아주 잘되고 있었다.
조그마한 천막과 책상만 갖다 놓고 하는 가게였지만, 천막 밖으로 길게 줄이 서 있었다.
[베네딕투스 레리시아 피아칸 라우코네스 나우플리온 니스 티아마트 카르세아린 발라카스 샨소 가르단데스 네세사리오 3세의 점술점]가게 명표만 보면 어디 피라미드 아래 잠들어 있던 파라오가 환생해 직접 점을 봐주는 것 같지만, 뭐.
그나저나 용용이, 저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는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점술은 또 언제 배운 거야.”
내가 기억하기로 호재가 저런 걸 가르쳐 준 적은 없었는데.
나 없을 때 가르쳐 줬나?
“사주 풀이와 카드 점을 봐주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그 가게에서 용용이가 아이디어를 따 온 것 같네요.”
백성웅 씨가 말했다.
그가 말하길,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용용이는 큰 흥미를 보였고, 사주 풀이를 봐주는 역술가에게 이것저것 방법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장사 비법이었지만, 역술가는 귀여운 용용이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비법을 알려 주었고, 용용이는 그때 배운 걸 토대로 장사 중이란다.
“감사한 분이네. 그 가게는 어디예요? 한번 가서 인사라도 해야겠네.”
“아… 그 가게는 없어졌습니다.”
“네? 왜요?”
“원래 있던 자리가 바로 이 천막의 옆자리였거든요.”
백성웅 씨의 말을 듣고 천막 밖으로 나와 보니 확실히 천막 옆에 가게 터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천막 밖으로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용용이가 그 가게의 손님들까지 다 끌어모았구만.
물론 용용이에게 악의는 없었겠으나, 멋도 모르고 자신의 밑천을 내주었다 장사까지 말아먹은 역술가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경합에서의 장사가 그다지 생계와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의 심정이 썩 달갑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되었다.
나중에 박정아에게 그의 소재를 물어보아야겠다.
생각을 마치고 다시 천막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조그마한 탁자를 앞에 두고 용용이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고.
용용이 뒤편으로는 안이 슬쩍 비치는 얇은 천이 쳐져 있었는데, 백성웅 씨의 역할은 그 천 뒤에서 어른거리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조잡한 티가 많이 났지만, 용용이의 점술점… 아니 베네딕투스 레리시아 피아칸 라우코네스 나우플리온 니스 티아마트 카르세아린 발라카스 샨소 가르단데스 네세사리오 3세의 점술점은 그런 것도 매력이었다.
마침 궁합을 보러 온 커플이 있었다.
용용이가 그들을 보며 허공에 팔을 젓더니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의 눈금은 3이 나왔다.
“저희 궁합은 어때요?”
“최고야.”
용용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아니, 상식적으로 1도, 6도, 아닌 3이 나왔는데 최고라는 극단의 결과가 나올 리가 없잖아. 그보다 궁합 보는데 왜 주사위를 굴려.
이름이나 생년월일이라도 물어봐야지. 대뜸 주사위를 굴렸는데 궁합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커플은 그저 좋아했다.
궁합이 좋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점을 봐주고 있는 용용이가 그냥 귀여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귀여운 용용이었지만, 진지하게 주사위를 굴리며 점을 봐주는 모습은 그 귀여움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점을 보는 족족 좋은 이야기만 해 주고 있으니, 사람들이 귀여운 해츨링을 구경할 겸 계속해서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계속 사람들의 점을 봐주고 있는 용용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박정아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박정아, 90층 : 이석현이라는 그 친구를 찾았어. 예상대로 스테이지에서 못 벗어나고 있었더라고. 생각보다 어린 친구던데? 말을 전해 뒀으니 메시지 보내 봐.]내가 경합에 들어오게 된 이유 중 하나인 석현이에게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답장도 안 하고 경합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 *
[백성웅]가게는 온종일 성황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용용이가 곰을 터뜨려 죽이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이 귀여운 아이가 혹시 제힘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해서.
나는 더 주의 깊게 지켜보고 또 챙겨 주자고 다짐했고, 다행히도 용용이나 이호치 씨는 그런 나를 간섭한다고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챙겨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나 또한 감사함을 느꼈다.
며칠이었지만, 하루 종일 같이 돌아다녀서인지 두 사람과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기도 했고.
처음 박정아 단장에게 두 사람을 담당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가 싶었지만, 지금은 둘을 만나 알게 된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되었다.
용용이가 손님들에게 점을 봐주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어른들에게 역할극을 보여 주며 재롱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지구에 있을 자식이 생각나기도 했다.
마침 손님 한 명이 새로 들어왔다.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온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혼자였다.
손님은 사뭇 진지하게 용용이 앞에 앉았다.
저런 손님도 종종 있었다.
대부분이 용용이를 구경하고 재미 삼아 점을 보려는 손님들이었지만, 간혹 진지하게 자신의 운명을 물어 오는 사람도 있었다.
드래곤, 해츨링이지 않은가.
심지어 그 이호재의 양자이기도 했다.
어디에나 막연한 희망에 인생을 걸고 싶어 하는 군상은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이들 또한 용용이를 찾아오게 되었다.
“제가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잘해 낼 수 있을까요?”
막연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질문자는 정말로 그 답을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용용이는 아직 많이 어렸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여자가 그저 덕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고, 대답하기에 앞서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용용이는 질문자에게 점괘를 말해 주기보다는 자신이 궁금한 것을 먼저 물었다.
“누굴 죽이고 싶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