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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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의 장 (10)
[백성웅]“누굴 죽이고 싶은 거야?”
용용이가 물었다.
마치 점괘를 봐주기에 앞서 이름이 뭐냐고 묻듯.
문제는 그 질문의 내용이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냐니.
용용이의 입에서 나왔다기에는 지나치게 흉한 말이었다.
마치 용용이와 그 말이 공존해서는 안 된다는 듯 역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물었던 여자는 용용이의 질문을 듣자마자 매섭게 용용이를 쏘아보았다.
명백한 적의였다.
나는 용용이의 힘과 능력을 알고 있다.
물론 전부 다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도전자들에 비한다면 제법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만일에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용용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천을 걷어내고 용용이와 여자의 사이에 끼어들려 했다.
마음만 그랬을 뿐이었다.
천을 걷어 낸 직후 내 몸은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팔을 움직이려 하면 팔이 아파졌고, 입을 열려 하면 입술이 아파졌다.
마치 투명한 족쇄에 살갗이, 그리고 근육이 꽁꽁 동여매어져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여자가 답했다.
여자는 용용이를 쏘아보고 있었지만, 당장 공격하거나 어떻게 하기보다는 대화를 이어 나갈 것처럼 보였다.
내가 저 대화에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들의 대화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었다.
[백성웅, 89층 : 단장님, 긴급 상황입니다.]자경단의 구조대와 전투조의 파견을 요청했다.
작년의 혹은 재작년의 실무 팀 규모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의 파견 병력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전투조에는 하드 난이도의 90층대 도전자도 한 명 있었으니, 분명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다.
일차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둔 뒤 나는 다시 용용이와 여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나는 저 대화의 유일한 목격자이고, 대화의 내용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뭘 죽이고 싶은 거야?”
용용이가 다시 물었다.
누굴 죽이고 싶냐는 말에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고 답하니, 이번에는 뭘 죽이고 싶냐고 묻는다.
저 여자가 죽이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인 걸까?
“아무것도. 왜 내가 무언가를 죽이고 싶어 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여자가 물었다.
“아줌마가 그걸 원하니까.”
“아줌마 아니야, 이 망할 꼬맹아.”
용용이는 여자의 말에 뭐라 대꾸하지 않았다.
여자는 그 사실에 더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썼다.
불쾌하다는 감정을 아주 확고히 내비치며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래, 뭔가를 죽이고 싶긴 하지. 기왕이면 이 세상을 죽이고 싶네.”
그냥 미친년인가?
최근에는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튜토리얼 내에 정신병자가 득시글했다고 한다.
현실에 나갈 수 있다는 미래가 없던 그때, 사람들은 튜토리얼을 거치며 빠르게 미쳐 갔고, 그 능력을 미친 채로 휘둘러 대었다.
덕분에 자경단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골머리를 썩었고, 그런 정신병자들 중 몇은 처벌되기도 했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저 여자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비록 현실에 곧 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튜토리얼 내 정신병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실 밖에서도 있는 것이 정신병자이다.
이곳에서도 어떤 다른 이유로 정신병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전혀 없었다.
“내 팔다리를 묶고 있는 족쇄를 끊어 내고 싶어.”
여자가 말했다.
나도 그건 공감할 수 있어.
고작 30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허공에 묶여 있으니 정말 죽을 노릇이었다.
“가끔은 내 팔목과 발목을 함께 잘라 내어서라도 족쇄를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해.”
그건 좀…….
역시 미친년이었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내게 묶인 족쇄를 다 풀어 낼 순 없겠지. 그래, 네 말대로 죽이고 싶네. 혹시 내게 족쇄를 걸어 둔 자들을 하나하나 죽이다 보면 족쇄를 풀지 못하더라도 나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야.”
여자가 미친 발언을 이어 나갔다.
용용이는 그 말을 듣고도 질색하거나 이상해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이해해.”
“이해한다고?”
여자가 피식 웃었다.
우중충한 비웃음이었다.
“우리 예쁜 꼬맹이는 어떻게 날 이해할 수 있을까?”
여자가 비웃음을 머금은 채 물었다.
내가 보기에도 무서운 얼굴이었다.
“다들 그러니까.”
“다들 그런다고?”
무언가에 화가 나 많이 흥분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의 행동거지와 달리, 용용이는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 똑같으니까.”
여자는 용용이의 말에 더 화를 내기보다 그것에 수긍했다.
“똑같다라. 그래, 다 똑같지. 결국 생각하는 건 자기 자신뿐이고, 남을 그저 억지로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지. 다 똑같아.”
여자가 불시에 탁자를 내려쳤다.
쾅, 하고 폭약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탁자가 아니라 두꺼운 철판을 가져다 대어도 구멍이 뚫릴 법한 충격이었지만, 놀랍게도 탁자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용용이나 여자나 그 사실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했다.
“억지로 사람을 이딴 곳에 끌어들였어. 그러고는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듯 독촉했지. 마치 그러지 않으면 평생 어둠 속에서 맹물과 육포만 뜯으며 낙오된 쓰레기같이 살다 자살하게 될 거라는 듯이. 어쩔 수 있나, 살아남으려면 나아가야 했어. 그 이후로는 버티며 나아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속이고, 해치고, 죽이는 걸 강요하더라.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듯이. 그 뒤로도 계속 무언가를 강요했어. 그러다 지금까지 왔지.”
여자는 기운 없다는 듯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태도가, 그리고 목소리가 조금씩 바뀌었다.
“아저씨한테는 그 점이 고맙긴 해. 아저씨는 가이드라인과 숙제를 주었지,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거든.”
아저씨?
누굴 말하는 거지?
“하지만 결국 내게 바라는 게 있긴 했지. 그 모든 것에 내 의사는 안중에도 없었어. 결국 다 똑같아. 이젠 다 진력이 나.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여자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 나갔다.
“문제는 때려치울 수가 없다는 거지. 그만둘 수도 없고. 내 힘으로는 족쇄를 끊어 낼 수가 없어.”
“그래서?”
“내 패가 더 필요해.”
용용이가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나라는 거네.”
“그래.”
“미안하지만, 나는 싫어.”
용용이는 마치 먹기 싫은 반찬을 먹기 싫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말에 여자는 빙그레 웃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여자의 섬뜩한 미소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지구에서 신입 사원들의 면접을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 그때 그곳에서 보았던 미소다.
물론 내 기억에 남은 사람들의 미소는 저렇게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미소였다.
“미안할 필요 없어. 싫어도 데려갈 테니까.”
여자가 자신의 납치 의사를 밝히고 있을 때, 나는 속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망할 전투조는 언제 오는 거야.
여긴 자경단이 본부로 쓰고 있는 곳에서 3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여자가 손을 들었다.
그 손에, 누군가 레이저 포인트를 쏘듯 빨간 점이 나타났다.
정체불명의 힘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전에 그녀와 용용이 사이의 공간이 일렁거렸다.
일렁이는 공간을 가르고 누군가가 나타났다.
* * *
[이호치]박정아 단장이 말해 준 장소는 자경단 회의실 옆에 붙어 있는 휴게실이었다.
휴게실에서 박정아는 석현이와 먼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선은 석현이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했다.
석현이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호재에게 물었을 때, 그 녀석은 석현이가 분명 사고로 죽었을 거라고 말했었다.
그게 일반적이라고.
매정한 자식.
하지만 분명 그 의견은 타당했고, 박정아에게 석현이의 행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어쩐지 그녀의 태도가 호재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여 더 불안했었다.
“어, 왔어?”
박정아가 물었다.
마치 찜질방에 누워 있는 아저씨가 늦게 온 친구를 보고 묻는 듯한 태도였다.
아, 물론 난 찜질방에 가 본 적이 없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박정아는 갈수록 나를 편히 대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직 우리는 그렇게 친한 것 같지 않은데.
나는 아직 좀 어색한데.
연륜의 차이인가?
박정아가 들었다면 화를 낼 법한 생각을 하다 다시 석현이를 보았다.
“안녕.”
심히 어색하게 나를 향해 인사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여러 번 듣기는 했지만, 역시 많이 어렸다.
아직 그 규칙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일정 나이 이하의 어린 사람은 소환하지 않는 튜토리얼이기에 석현이의 모습은 더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응, 안녕.”
나도 석현이에게 인사를 했다.
역시 어색했다.
메시지를 통해 많이 대화해 보았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 얼굴을 보니 어쩐지 민망하기까지 했다.
박정아는 재밌게 놀라는 말만 남기고 방을 나섰다.
개구지게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이 나를 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다행히 석현이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아니, 원래 친했으니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고 해야 하나.
석현이는 예상대로 스테이지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이지 난이도의 스테이지 중에선 상당히 특이한 편에 속하는 스테이지라고 했다.
“그러니까 스테이지 목표가 왕자와 공주가 결혼할 때까지 호위해 주며 위험을 막아 주는 거야. 하지만 공략이 다 나와서 어떤 위험들이 있는지는 다 알고 있는 거지.”
그것 참 쉽겠네.
위험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그것만 해결하면 만사 오케이구나.
“사실 나는 그 스테이지에 여러 번 도전했었거든.”
“여러 번 도전했었다고?”
“응.”
석현이는 자신이 현재 공략 중인 72층을 벌써 열 번 넘게 도전 중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재밌거든.”
이런저런 불편함이 있는 다른 스테이지들과는 달리, 이지 난이도 72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편히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임무가 있긴 했지만, 정작 그 임무는 손쉽게 클리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일종의 놀이나 휴양 느낌으로 여러 차례 도전하고 있다는 게 석현이의 설명이었다.
“재밌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음 회 차가 되면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거든. 한 번은 크게 싸운 사람이 있었는데, 다음 회 차에서 조금 잘해 주니 나에게 친하게 굴더라고. 아, 거기서 나는 은거 중이던 방랑 무인이라는 설정인데, 워낙 힘이 세니까 다들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해.”
석현이는 그렇게 스테이지에 대해 설명했다.
더불어 자신이 그 스테이지에서 어떻게 놀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스테이지의 특성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석현이는 자신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이래저래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장난으로 공주와 왕자의 결혼이 무산될 위기가 찾아왔고, 복잡 미묘해진 상황 때문에 스테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다행히 자경단의 도움으로 무사히 스테이지에 실패하고 대기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석현이는 즐거워 보였다.
전에 커뮤니티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예쁜 캐릭터가 나오는 스테이지는 여러 번 도전하다 못해, 대사나 진행 순서를 외우기까지 한다고.
그 위치나 찾아가는 길, 호감을 얻는 말투나 선물 등 방법에 대해서도 서로 공유했다.
그들은 정말로 게임을 공략하고 즐기듯 말했다.
역겨운 생각이었다.
호재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일정 시간을 영원히 되풀이하고 있는 스테이지 속 사람들을 보며, 혹시라도 자신이 스테이지 클리어에 실패해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를.
그때 호재는 그저 그들을 안쓰럽게 생각했다.
그들의 죽음과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인정했고, 또 거리낌 없이 그들을 베어 넘기거나 했지만, 그걸 가지고 장난감처럼 희롱하지는 않았다.
여태 신나서 떠들고 있는 석현이를 보았다.
이 아이가 특별히 악한 아이는 아닐 것이다.
그동안 이야기했던 것도 그렇고, 이 아이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도 그러했다.
원래 사람은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다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