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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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59층 (1)
[이호재]“없는데.”
[하나도 없는가? 가족이라든가, 인연이 남아 있을 것 아닌가.]드래곤이 물었다.
얘는 왜 남의 사생활을 캐묻고 이러냐.
“없어.”
튜토리얼에 들어오기 전에도 딱히 누굴 만나고 살진 않았다.
가족들도 안 보고 산 지 몇 년이었고, 그나마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은퇴 후에 하나둘 멀어졌었다.
물론 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데는 내 잘못도 있었지만, 굳이 그들을 다시 찾아가 만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이곳에 들어오기 전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는가. 인간은 사회에서 제각기 역할이 있지 않은가.]“백수 폐인이었다, 왜!”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도 없고, 일자리도 없을 수도 있지, 거참.
당연히 있을 거라 가정을 하고 물어보냐.
원래 어땠냐고 물어보기 전에 있었는지부터 먼저 묻는 게 올바른 순서다.
[저런… 그래서…….]조용히 나와 드래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부부가 중얼거렸다.
속에서 짜증이 왈칵 올라왔다.
[음… 미안하다. 내가 괜한 걸 물었군.]드래곤은 정말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아부부가 담긴 구슬과 드래곤의 수정구를 한데 모아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싶군그래.
계속 종알거리며 귀찮게 하는 둘을 무시하고 개구리에게 다가갔다.
계곡 근처 물웅덩이에 몸을 반쯤 담근 채 개골거리고 있던 개구리에 올라탔다.
몸을 뻗고 쭉 누우니 생각보다 편안했다.
개구리가 개골거릴 때마다 낮게 울리는 것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그르릉 소리를 내는 것처럼.
“개구리야, 너밖에 없다.”
“케에엑!”
얘는 기분 좋을 땐 개골개골, 하고 울면서 왜 말할 때는 케에엑,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걸까.
성대 구조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래도 소망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은 거라네.]“…응? 아직도 그 얘기야?”
드래곤은 아까부터 내게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나갔을 때 무엇을 하고 싶냐며 묻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한때는 튜토리얼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새삼 지구에 나가서 뭐를 하고 싶을 리가.
물론 힘을 얻었으니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고, 맛있는 것도 찾아 먹겠지만, 그것을 소망이라 부를 정도로 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삶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고향에 돌아가서 할 일이 전혀 없는가?]“할 일은 있지.”
내 목표가 있으니까.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지구에 나갔을 때, 내가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만큼 막막한 목표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해야겠지.
[저런, 목표가 삶을 잡아먹어 버렸군.]“목표가 무너져 가던 삶을 그나마 지탱해 주는 게 아닐까.”
개구리의 등에 누운 채 말을 이었다.
씁쓸한 말이었지만, 그게 더 사실에 가까웠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라. 계속 생각하고 떠올리려 노력해라. 네 삶은 네 생각보다 훨씬 길 터이니.]“알았어, 알았어. 그럴게.”
나는 줄곧 성의 없는 태도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지만, 드래곤은 충고를 멈추지 않았다.
이 드래곤은 끈질긴 면이 있었다.
[모든 목표는 언젠가 성공하거나 실패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단단한 의지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때 그대가 소원하는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삶은 긍정적으로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혼자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드래곤이 인생 선배로서 해 주는 충고인가.
이것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았어. 좋은 얘기 해 줘서 고마워. 지금 당장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네 말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나쯤은 생길지도 모르겠지.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
[나도 그대에게 새로운 소망이 생기길 기원하겠다.]* * *
[벌써 가려 하는가?]“가야지.”
쉴 만큼 쉬었으니,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게 당연하지.
이곳에 오래 있을 만큼 특별한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말하니, 드래곤은 어째서인지 무척 섭섭해했다.
[아쉽다.]아쉽기는 개뿔이.
코빼기도 안 보이고 수정구 너머로 말만 하는 쫄보 드래곤이.
[그럼 다음 스테이지를 정해 줘야겠군. 아니, 오, 이런.]“왜?”
[그대의 다음 스테이지가 정해졌다. 이런… 신들께서 이 스테이지를 원하시는군.]백신전의 신들이 스테이지 선택에 관여한 건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드래곤에게 스테이지를 고를 권한이 있다면, 신들 또한 그럴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드래곤은 상당히 불쾌해했다.
[이런 월권행위라니. 지고한 신들께서 이 빚을 내게 어찌 갚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기대가 된다는 말과는 달리 그 말투는 혀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껄끄럽기만 했다.
저 쪼잔한 드래곤이 신들에게 불만이 생겼으니, 과연 그 불만이 어찌 해소될까 궁금했다.
물론 굳이 캐물어 알아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정해진 스테이지는 어떤 곳인데?”
[이전까지의 스테이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드래곤은 그렇게 대답했다.
56, 57, 58층 스테이지 모두 신성력이나 근원과 연관된 곳이었다.
“이번에도 근원이야?”
[아니, 근원과 연관이 있긴 하다만, 주제는 그것이 아닐 것이다.]“그럼?”
[들어가서 판단하라.]들어가서 판단하라니.
최소한의 정보도 안 줄 생각인가.
키리키리였다면 케이크를 미끼로 정보를 더 끌어내 보겠지만, 이 드래곤은 한 번 입 밖으로 내보낸 말을 무르는 일이 없었다.
정말 스테이지에 대해 아무런 조언을 해 주지 않은 모양이다.
신들이 스테이지 선택에 관여한 것이 그렇게 기분 나쁜 걸까.
드래곤이니만큼 자기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을 수도 있다.
어쩌면 백신전을 위해 일하는 입장이니만큼, 신들에게 별 항의를 하지 못하기에 더 불쾌해할 수도 있는 것이고.
뭐가 되었든 나와는 상관없는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자세한 정보 없이 스테이지에 들어가게 된 나만 손해였다. 젠장.
[잘 가라. 언젠가 또 보았으면 좋겠군.]내가 포탈에 올라서자 드래곤이 인사를 했다.
동감이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수정구 너머가 아니라 직접 대면했으면 했다.
* * *
[59층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 [끄륵.]뭐야, 이거.
내가 소환된 장소는 군사 요새로 보이는 곳의 높은 첨탑 안이었다.
첨탑의 창밖으로 요새의 전경이 보였고, 요새 바깥으로는 험한 바위산이 보였다.
딱 보아도 무언가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스테이지였다.
이번 스테이지의 주제는 퍽 알기 쉬운 편이었다.
드래곤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야, 이거 근원 아니냐?”
[근원이네요.]첨탑 꼭대기 방에는 나와 함께 웬 괴생물체 하나가 있었다.
원숭이나 오랑우탄 같은 영장류를 연상시키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는 괴물은 특이하게도 몸에 털 한 오라기 없었다.
물론 옷 따위를 걸치고 있지도 않아 징그러운 핑크빛 살갗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였다.
“보기에 예쁜 녀석은 아니네.”
아부부도 내 말에 동의했다.
괴물은 눈, 코, 귀 등의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직 입과 이마에 난 특이한 더듬이뿐이었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기괴한 모습에 어쩐지 역겨움이 느껴졌다.
[끄륵.] [59층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설명 :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행성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대륙에 얼마 전 근원이 탄생하였습니다.
탄생 과정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행성 지하에 묻혀 있던 고대의 악마에 맞서기 위해 나섰던 위대한 주술사가 근원화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근원의 힘이 행성 전역으로 퍼지기 전, 행성의 토착 신들이 나서 근원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그 직후 근원이 사라졌다는 점이었습니다.
행성을 이분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두 토착 신은 서로 먼저 근원을 찾아 독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강대한 두 토착 신뿐만 아니라 그 추종자들, 사냥꾼들, 연구에 미친 주술사들과 세속의 권력자들까지.
힘을 잃고 어디론가 숨어 버린 근원을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이 이 세상에 지천입니다.
[클리어 목표]-근원을 최대한 오랫동안 보호하십시오.
역시 알기 쉬운 스테이지였다.
최근 들어 복잡하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스테이들만 거쳐 오다 보니, 이렇게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스테이지가 나오자 반갑기까지 했다.
그냥 이 첨탑에서 근원을 보호하며 오래 버티면 되는 스테이지였다.
어느 기간까지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이라는 단서가 붙은 걸 보니, 이번에도 57층에서처럼 스테이지가 어쩔 수 없이 끝나 버리는 시점이 있는 모양이다.
[끄륵.]근원이 아까부터 끄륵, 끄륵, 소리를 내며 내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처음 보는 것에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원숭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보다 훨씬 징그럽긴 했지만.
우선 근원이 가까이 다가오게 내버려 둬 보았다.
내 코앞까지 다가온 근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크게 쩍 벌렸다.
[갸악!]“이 새끼가.”
이빨을 드러내고 급작스럽게 내 팔을 물어뜯으려는 근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근원은 이번에도 끄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보호해 줄 사람한테 이빨을 들이미네.”
[아이고, 용사님, 애를 그렇게 험하게 다루시면 어떡합니까. 기절했잖아요. 이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네가 치료하면 되잖아.”
[이 대책 없는 양반이……. 그러다 즉사해서 스테이지 클리어하면 어쩌시려고요. 가뜩이나 약화되어 있는 괴물 같은데.]아부부는 종알거리면서도 근원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이상은 없나 확인했다.
아부부가 유난히도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스테이지 끝나면 60층인 거죠?]“응, 그렇지.”
[거기 가면 제 검신도 수리할 수 있는 거겠죠?]“…그렇겠지?”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60층 이후 상점창에서 에고 소드를 수리할 방법이 있을 거라는 정보는 키리키리에게 이미 확인을 받았다.
하지만 꼭 수리할 수 있다기보다는 아마 수리할 수 있을 거라는 두루뭉실한 언급이었다.
아마, 라는 단서가 붙은 만큼 아부부의 수리에는 다른 조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조건이 포인트처럼 충족이 쉬운 것이길 바랄 뿐이었다.
“그나저나 곧바로 침입자가 들어온다거나 하진 않나 보네.”
[그러게요. 여유가 있는 스테이지인 것 같습니다. 뭐 하고 있을까요?]아부부가 내게 물었다.
“뭐하긴, 수술 준비 해야지.”
[네?]그동안 근원은 많이 만나 보았다.
질릴 정도로 많이.
잡아 본 적도 많았다.
그중에는 이렇게 사람 크기의 작은 근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게 작은 근원들은 대개 아주 미약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흉포한 맹수 정도의 힘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달랐다.
아무리 약화되어 있다 해도, 저 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결코 맹수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59층 스테이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더해 이곳의 토착 신들까지 이 근원을 탐내고 있었다.
이런 대어를 언제 또 얻어 보겠는가.
“침입자들이 오기 전에 실험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