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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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59층 (3)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조그마한 창문 너머로 바깥을 둘러보았다.
소란스러움은 잦아들지 않았다.
첫날 만났던 사냥꾼이 예고했던 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근원의 뒤를 쫓아 첨탑을 찾아왔다.
먼저 찾아온 것은 사냥꾼이나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적당히 혼내서 돌려보내면 되었다.
그 뒤에 찾아온 군부대가 문제였다.
선발대에 이어 찾아온 본대는 그 인원수가 십만 단위에 달했다.
나는 무의미하게 그들을 하나하나 때려죽이거나 단체로 태워 죽이는 대신, 지휘관들만 쏙쏙 납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휘관의 납치는 어렵지 않았다.
그냥 가서 데려오면 되었으니.
효과적이기도 했고, 납치된 지휘관들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다.
물론 자신들의 지휘관을 되찾기 위해 이따금 포격을 가하거나 진입을 시도하는 병사들이 매우 귀찮게 느껴졌지만.
아직까진 참아 줄 만했다.
저들이 몰려온 덕분에 얻은 게 있으니까.
창문에서 떨어져 방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내게 위안이 되어 주는 것은 근원 앞에 꿇어앉아 있는 주술사들이었다.
마치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 보듯 바닥에 놓은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주술사들.
[다들 열심히 쓰네요.]그래야지. 당연히.
처음으로 생포했던 지휘관은 부대에 주술사 따위는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첨탑 인근에 모여든 부대의 인원이 이십만을 넘어가자 종군 주술사를 제법 찾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사냥꾼이나 용병 일을 하던 주술사들 혹은 조사 목적으로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주술사들까지 싹싹 모으니, 무려 백여 명에 달하는 주술사를 모을 수 있었다.
백여 명에 달하는 주술사들을 일일이 잡아 온 다음 내가 그들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주술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종이에 적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이면 정말 중요한 원천 기술 같은 건 안 적을걸요. 하나도.]그런 건 원래 안 알려 준다.
내가 주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런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데, 중요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닦달해 봐야 헛수고였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을 것을 판별해 낼 능력이 없으니까.
나는 주술사들 사이를 가로질러 걸었다.
마치 시험장의 시험관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잘들 적고 있나 확인하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내 발걸음을 붙잡는 주술사가 있었다.
“저, 정말 이 종이만 가득 채우면 돌려보내 주시는 거죠?”
달달 떨면서 종이를 채우고 있던 주술사 하나가 내게 물어 왔다.
다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주술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이가 어린 꼬마 주술사였다.
“당연하지. 아까 다 끝낸 이야기잖아. 그렇지?”
나는 최대한 나긋한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주술사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니, 용기를 내어 내게 말을 걸었지만, 막상 이야기를 해 보니 무서운 모양이었다.
나는 겁 많은 꼬마 주술사가 적고 있던 종이를 힐긋 쳐다보았다.
척 보기에는 흠잡을 곳이 없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종이 윗부분에 적힌 글자와 아랫부분의 글자 사이에 크기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너 이런 식으로 글자 크기를 조금씩 키우면… 내가 눈치 못 챌 줄 알았니?”
“줄일게요, 줄일게요!”
“그래, 글자는 최대한 작게, 띄어쓰기는 최소한. 줄 사이 줄이고, 똑같은 말 쓰지 말고, 서른다섯 장 앞뒤로 꽉 채워서. 알았지?”
꼬마 주술사는 발작적으로 네, 네! 하며 다시 종이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뭔가 좀 이상했다.
나를 지나치게 무서워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내가 협박을 좀 하긴 했다.
그들을 억지로 잡아 오기도 했고, 지식 전수에 반발하는 주술사들에게 본보기 삼아 반발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주술사들은 유난히 나를 무서워했다.
[그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무서워할 만한 일들을 다 해 놓고 이유를 모르겠다니요.]아부부가 태클을 걸어 왔다.
아니, 들어 봐.
내가 누구 협박해 보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잖아.
[아주 자랑입니다.]아무튼 나는 협박의 스페셜리스트까진 아니더라도 숙련자 정도는 된다.
그런 내 견해로, 이 주술사들은 나를 과도하게 무서워했다.
협박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거 때문이 아닐까요.]아부부가 말하는 저것은 첨탑 방의 벽면에 못 박힌 채 걸려 있는 근원이었다.
확실히 근원의 꼬라지는 상당히 끔찍했다.
상체가 개복되어 그 속이 들여다보였고, 여기저기 난 자상과 절개 부위에서 핏물이 흘러내려 발밑으로 피 웅덩이가 고이고 있었다.
썩은내가 조금 나기도 했고.
저래 봬도 아직 살아 있는지라 이따금씩 나지막하게 끄륵, 하는 신음을 내기도 했다.
아부부의 의견이 그럴싸했다.
이제는 실험체 따위가 되어 버렸지만, 저건 원래 근원이 될 만큼 능력이 있었고 유명했던 대주술사다.
사람들에게 저건 한 나라의 수도를 날려 버린 괴물이겠지만, 같은 주술사들에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뇨… 그냥 끔찍해 보이는 게 눈앞에 널려 있으니 겁먹은 거라고 생각했는데요.]그런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주술사들 사이를 해치고 앞으로 계속 걸었다.
근원이 걸려 있는 벽 앞에는 백여 명의 주술사들이 꿇어앉아 있었다면, 그 너머에는 각 부대의 지휘관들이 포박된 채 꿇어앉아 있었다.
그들이 대처하고 저항할 새도 없이 깔끔하게 납치해 와서인지 상처나 흐트러짐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납치된 입장인지라 그들의 얼굴에서는 얼핏 공포가 비쳤다.
방금 전까지 목소리를 죽이고 저들끼리 수군거리고 있던 지휘관들은 내가 가까이 오자마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을 닫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뻔했다.
내 정체, 탈출 방법 등을 몰래몰래 떠들고 있었겠지.
아니면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거? 글쎄.”
일차적으로 이들을 제압한 이유는 주술사들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이 스테이지가 끝나기 전에 주술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어서.
혹시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들을 수 있으면 더 좋고.
생각해 보니 그게 전부였다.
최고 지휘관들을 생포해 놨고, 그 휘하에 이십만에 달하는 군인이 있다.
하지만 그게 뭐.
저들은 군인일지언정 모두 평범한 인간이었다.
숫자가 십만 단위건, 백만 단위건 나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아무리 많아도 내겐 도움이 되지도, 위험이 되지도 않았다.
“각국 군대의 총사령관들을 모두 납치해 놓고 원하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닐 테지. 말해라, 나는 군부에 몸을 담고 있지만, 왕가의 일원이기도 하다.”
“왕가의? 그럼 왕자인가?”
“그, 그렇다. 몸값이라면 그대가 원하는 만큼, 그 이상으로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금이든, 그게 아닌 무언가든.”
금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
뭘 줄 생각인지 궁금해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대는 소속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대가 원하는 작위, 영지, 부와 명예, 새로운 신분, 뭐든 줄 수 있다. 의향만 있다면.”
왕자는 내가 그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고 생각한 건지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내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은 아니었다. 전혀.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왕자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론 다른 것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대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다. 이래서야 제대로 제안이나 하겠는가.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말해 줄 수 없는가. 내가 보다 나은 제안을 할 수 있도록.”
흥미로웠다.
왕자는 분명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말의 희망과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 근거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자신감인가.
고귀한 신분과 가진 힘에 대한 자신감.
내가 그를 섣불리 해치지 않으리라는.
그게 아니라면 낙관일까.
평생 정말로 좆같은 상황에 빠진 적 없는 귀한 신분이기에, 위기 상황에 제대로 판단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른다.
결국 잘 해결되겠지, 혹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글쎄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그래. 내가 그대에 대해 아는 것은 로시나 왕국의 수도를 날려 버린 저 괴물을 손에 넣었다는 것과 매우, 매우 강력한 주술사이며 전사이고, 또 암살자라는 것 정도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별 전투 없이 지휘관들과 주술사들만 납치해 왔으니까.
왕자에게 뭐라 대답해 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저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비웃음이었다.
반쯤 실성한 듯한.
“강력한 주술사라고? 크크큭… 누군지 말해 달라고? 푸하하하!”
조용히 결박되어 있던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나와 이야기하던 왕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가 그리 웃긴 건지 말해 줄 수 있겠나, 젠겐트 경?”
혼자 미친놈처럼 킥킥거리고 있는 지휘관의 이름이 젠겐트인 모양이다.
젠겐트는 왕자를 보며 웃다가 돌연 고함을 치듯 말했다.
“저자가 누구냐고?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작위와 영지를 주겠다고? 이 멍청이! 바로 코앞에서 고대의 악마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고대의 악마라니.
터무니없는 오해였다.
“저기, 벽에 걸려 있는 대주술사의 끔찍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저 수술 흔적과 본 적도 없는 기괴한 실험 도구들. 주술에 대한 지식을 탐하고 있으며 우리를 하루도 걸리지 않아 모두 납치했다. 그 때문에 이십만의 정병에 의해 포위되어 있지만, 아무런 동요도 비치지 않고 평온하게 대화하고 있다. 긴장도, 두려움도, 성취감도 없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피비린내에 당장이라도 코가 삐뚤어질 것만 같은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태연하게. 인간이라면 저럴 수 있을 것 같은가! 저자는 왕성 아래 봉인되어 있던 고대의 악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차마 반박할 수가 없군요.]깐족거리는 아부부에게 닥치라고 말해 주었다.
무심결에 왕자와 눈이 마주쳤다.
왕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허옇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납치된 신세였음에도 끝까지 쥐고 있던 한 줌의 여유는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왕자와는 더 이상 얘기할 게 없어 보였다.
나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젠겐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뭐, 일단 그렇다 치자고.”
내가 악마가 아니라 해도 딱히 믿을 것 같진 않고.
사실 그렇게 믿는다 해도 나는 별 상관 없었다.
악마임을 수긍하는 듯한 내 말에 지휘관들은 순간적으로 바짝 얼굴을 굳히며 긴장했다.
뒤쪽 주술사들에게서도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만약 악마가 맞다면, 넌 어쩔 셈이지?”
어쩔 생각이길래 신나서 그 정체를 떠들어 대는 걸까.
저 젠겐트라는 사람의 말투나 과장된 행동거지만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물어보았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심심풀이 삼아.
“어쩔 셈이길래 그리 당당하게 내가 악마라 떠든 거지?”
마력을 조금씩 흘려 그를 압박하며.
그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위압적으로 물었다.
가볍게 흘린 기세였지만, 저 젠겐트라는 지휘관에게 죽음의 공포를 일깨워 주기에는 충분했다.
젠겐트는 내 기세에 눌려 괴로워하면서도 천천히 자신의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당신을… 찾아왔소.”
“나를 찾아왔다고?”
“그렇소……. 나는 당신을 찾아 이곳에 왔소, 고대의 악마여…….”
젠겐트의 입에서 나온 건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저놈은 내가 고대의 악마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를 찾아온 거라고?
“거래를 하고자 하오. 내 영혼을 대가로!”
이건 또 웬 미친놈이지.
[거 사람 보는 눈, 아니 악마 보는 눈이 출중한 친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