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utorial Is Too Hard RAW novel - Chapter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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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2층 (8)
[최소 3시간 이상 체류하십시오.] [30초 후에 관문의 시련이 시작됩니다.]궁금증이 커진다.
1층 보스룸은 입장하자마자 그 테마를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2층 보스룸은 쉽게 짐작할 수가 없다.
과연 어떤 종류의 시련이 나타날 것인가.
2층에 등장했던 독, 더위, 추위 등이 다시 나타날까?
어?
현재 시각을 나타내는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도 안 알려 주고 버티라는 건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던 중 메시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문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당신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견뎌 내십시오.]고통스러운 기억이라.
과거 기억 속의 고통을 인내하라는 걸까.
내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대부분 튜토리얼과 연관이 있을 텐데.
허구한 날 화살만 쏴 대는 튜토리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법 고차원적인 함정이 등장했다.
일단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 자세를 낮추고 대기실 포탈 근처에 바짝 붙었다.
어지간하면 포기하고 포탈로 대기실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목숨이다.
눈에 빤히 보이는 구명줄이 있는데, 안 잡으면 병신이지.
그 시련이라는 것이 시작되려는지 우우웅- 거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그리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3초? 5초? 짧은 시간이지만 그대로 정신이 나가 버렸다.
뭐야, 이게.
몸이 긴장으로 굳어간다.
내가 대처할 수 없는 종류의 공격이다.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에 영상, 아니 환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두 개의 시야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
보스룸에 서 있는 육체의 시야와 환상의 세계 속에 서 있는 시야.
그리고 두 가지 모두 생생하게 느껴진다.
뭐야, 이게.
정신 공격의 일종인가?
육체의 시야에 집중했다.
대기실 포탈은 여전히 내 눈앞에 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그 확신에서 오는 용기와 함께 머릿속 환상의 시야에 집중했다.
곧 환상 속의 내가 처한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튜토리얼 1층 첫 번째 함정.
그 함정에 다가서기 직전이다.
그때의 내 기억이다.
역시, 이게 내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이구나.
방패와 칼을 부서져라 움켜지고 덜덜 떨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
그때 내가 저렇게 떨고 있었나.
당시의 공포와 불안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치 과거의 나에게 빙의된 것처럼.
당시의 감각, 감정 상태가 정말로 생생하게…….
푹- 푹-
화살들이 방패에 박힌다.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세 번째 화살을 엉겁결에 막아내고… 마지막 화살이 발목에 박혔다.
끔찍한, 정말 끔찍한 고통이 발목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깨달았다.
고통 내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통증이다.
고통 내성 없이 느껴지는 격통은 공포와 절망, 후회 등 당시의 감정과 뒤섞여 느껴졌다.
마치 실제로 내가 지금 화살에 맞은 것 같은 생생한 고통이다.
음… 진짜 아프긴 한데…….
어… 뭐 아픈 건 아픈 거지.
언제는 안 아팠나.
고통 내성 스킬이 없어도 이 정도 고통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애초에 고통 내성 스킬이 있다고 통증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이걸 그냥 3시간 동안 반복하는 걸까?
실망인데.
무덤덤하게 환상 속의 고통을 견뎌 냈다.
오히려 고통보다는 꽥꽥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게 더 힘들었다.
울면서 바닥을 기어 대기실로 돌아가는 내 모습을 한심스레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환상이 멈췄다.
뭐 하자는 거야, 이게.
잠시 후 환상이 다시 펼쳐졌다.
이번엔 2층의 풍경이다.
나는 대기실 포탈 구석에 불을 피워 놓고…….
아, 불과 며칠 전 자해를 하고 있을 당시의 기억이다.
불 위에 올려 달구고 있던 칼이 제법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칼로 다리 안쪽을 찌르자 치이익 하는 살 익는 소리와 함께 격통이 느껴졌다.
고통 내성, 관통 내성, 출혈 내성, 화상 내성을 한 번에 성장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환상 속의 나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봐도 미친놈 같군. 하하하하.
이번에도 고통 내성의 여과 없이 통증이 느껴졌다.
꽤나 신선한 통증이다.
당시 나는 이미 고통 내성을 상당히 올려 두었었기에 이 정도의 통증을 여과 없이 느끼진 못했다.
이것도 나름 괜찮은 경험이다.
영화 관람하듯 환상 속의 내가 내성 노가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환상이 멈추었다.
어디선가 당황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모험의 신이 당신을 보고 당혹감을 느낍니다.]저 양반은 나한테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아까 메시지는 나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견디라고 했다.
이 정도면 뭐 그냥저냥 버틸 만한데?
다시 환상이 시작되었다.
이번 환상 속의 내 모습은 제법 어려 보였다.
튜토리얼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인가?
어린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저게 중학교 교복이던가, 고등학교 교복이던가.
곧 나는 환상 속의 내가 처한 끔찍한 상황을 깨달았다.
수백 명이 모여 있는 학교 강당 한가운데에 나는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고 서 있는 여자 애 한 명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당시의 나다.
오 마이 갓.
안 돼.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의 눈.
당황하고 있는 여자 아이.
덜덜 떨면서 준비한 말을 꺼내려 하고 있는 나.
웅성거림으로 가득한 강당 한복판에서 결국 환상 속의 나는 준비하고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좋아해. 나랑 사귀자.]터져 나오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비명 소리.
그 한복판에서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여자 아이.
그 모습을 하얗게 질린 채 바라보고 있는 나.
내 인생 최악의 흑역사다.
으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다.
앞선 두 개의 환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젠장.
물리적으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안 통하니까 정신적으로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거냐.
꼭 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어야 했냐! 이 나쁜 놈들아!
놀라서 나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는지 입에서 피 맛이 난다.
참고로 강당에 있던 학생 중 한 명이 저 프로포즈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하였고, 내가 프로 게이머로 데뷔한 후 게임 커뮤니티에 퍼져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으으…….
잠시 환상이 멈추고, 또다시 새로운 환상이 시작되었다.
이번 환상은… 젠장, 젠장.
정말로 떠올리고 싶지 않던 기억이다.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감각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걸 3시간 동안 견뎌야 한다고?
환상 속의 나는 쏟아지는 고함 소리를 들으며 서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 * *
우에에엑
한 번 속을 비워 냈지만 울렁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콧물인지 침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소매로 닦아 냈다.
이 환상은 단순히 눈을 돌리거나 감아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으니까.
이 피할 수 없는 환상은 계속해서 아버지와 관련된 내 기억들을 보여 주었다.
마치 드디어 약점을 찾아냈다는 듯 집요하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여 준다.
이 씨발, 흉악한 새끼들.
머릿속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병실에서 있었던 일이 재생되었다.
이 개 같은 함정에 대한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후회와 절망, 자괴와 죄책감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제는 그 게임도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니?]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찾으신다는 전화에 병실로 달려간 나에게 아버지는 대뜸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저 힘없는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고 몰두하고 있는지, 얼마나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으신 걸까.
한 번이라도.
아버지 당신의 병원비는 어떻게 벌고 있는 건지 모르시는 걸까.
내가 아직도 하고 싶은 것만 하려 드는 어린애처럼 보이신 걸까.
그쯤 했으면 충분히 논 거 아니냐는 듯이 말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화를 냈었다.
아버지도 내게 화를 냈었고.
결국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다가, 최악의 결과를 맺고 끝나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지가 수술 중에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도대체 수술 전날에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
내게 수술 일정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인지.
그때는 전혀 신경 쓸 수 없었다.
누나는 내가 아버지와 수술 전날 크게 다퉜던 것 때문에 수술이 잘못되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 나에게 소리치고 욕을 하며 울고 있는 누나에게 아무런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나 때문이라고.
죄책감의 수렁 속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고.
그날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고 있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을 집어 들고.
있는 힘껏 칼날을 내 허벅다리에 찔러 넣었다.